
록 크리스털 프레임 안에 에메랄드와 다이아몬드를 배치한 이어링, 에메랄드와 다이아몬드로 교차 포개어 아르데코 양식을 시각화한 링, 진주와 다이아몬드를 교차 배치한 아르데코 스타일 클립, 각기 다른 컷의 다이아몬드를 번갈아 연결한 테니스 브레이슬릿 모두 개인 소장품. 아이보리 재킷 PORTS INTERNATIONAL. 리넨 베스트 재킷 WEEKEND MAX MARA.
윤성원 신문방송학을 전공
하고 마케터로 일하다 미국
GIA에서 보석 감정과 디자
인을, 스튜디오 주얼러스Studio Jeweler’s에서 세공
을 익혔다. 현재 한양대학
교 신소재공정공학과에서
주얼리 브랜딩과 문화사,
마케팅을 강의하며, 하이
주얼리 메종의 직원 교육과
VIP 및 대중 강연을 폭넓게
이어가고 있다. 22년간 보
석 유통의 전 과정을 탐구
해온 현장 경험을 바탕으로
글을 쓰고 있다.
신문방송학을 전공하던 중 주얼리 세계에 발을 들이게 된 결정적 계기는 무엇이었나요? 20여 년 전 티파니 매장에서 새끼손톱보다 작은 다이아몬드의 가격을 보고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설명하기 어려운 아름다움과 쉽게 납득되지 않는 가치, 그 두 가지 질문이 저를 미국 GIA로 이끌었죠. 그런데 정작 현지에서 저를 사로잡은 것은 다이아몬드가 아니라 유색 보석이었습니다. 흙 묻은 유리 조각처럼 보이던 원석이 커팅의 각도와 산지에 따라 전혀 다른 빛과 가치를 발산하는 과정에 매료됐습니다. 맨해튼 47번가 다이아몬드 거리의 유대인 딜러 시장을 드나들고, 수많은 경매 프리뷰를 찾아다니며 보석을 단순한 장식품이 아닌 역사와 시장의 맥락 속에서 읽는 법을 배웠습니다. 손톱만 한 스톤 안에 수억 년의 시간과 인간의 욕망, 그리고 문화의 흔적이 응축돼 있다는 사실은 지금도 저를 설레게 합니다.
매달 ‘주얼리 & 아트’ 칼럼을 통해 독자들과 만나고 있습니다. 지면의 한계로 미처 소개하지 못한 흥미로운 스토리가 있다면 들려주세요. 나폴레옹이 두 번째 황후 마리 루이즈에게 선물한 에메랄드 파뤼르 세트에 얽힌 이야기가 떠오릅니다. 나폴레옹 몰락 후 합스부르크 가문이 100년 넘게 간직하다 1953년 티아라를 반클리프 아펠에 매각했는데, 메종이 티아라에 세팅된 에메랄드를 낱개로 떼어 팔아버렸죠. 200여 년의 풍파 속에서 온전한 건 네크리스와 이어링뿐이었고, 2004년 루브르박물관이 이를 매입해 소장했습니다. 그런데 지난해 도난 사건으로 남은 피스마저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황제의 선물이 왕가의 유산으로 대물림되다 보석상의 손에서 해체되고, 끝내 범죄의 표적이 되어 흩어지기까지. 한 점의 보석이 겪어낸 이 파란만장한 궤적이야말로 보석의 서사가 지닌 매혹적인 본질을 보여줍니다.

(왼쪽) 2012년부터 출간해온 저서들. (오른쪽) 오랜 시간 모은 주얼리 서적.
이 중
최근 출간한 <나는 금 대신 보석을 산다>는 보석을 경제적 관점에서 조명한 책입니다. 강연이나 디지털 콘텐츠가 아닌, 한 권의 책으로 메시지를 전하고자 한 이유는 무엇인가요? 최근 백화점에서 하이 주얼리의 성장세가 눈에 띄게 가파릅니다. VIP 강연 현장에서도 분위기 변화가 뚜렷해요. 예전에는 ‘어떤 디자인이 내게 어울리는가’를 주로 물었다면, 이제는 ‘자녀에게 물려줄 때도 가치가 보존되는가’, ‘금 다음 자산으로는 무엇을 주목해야 하는가’ 같은 질문이 주를 이룹니다. 전쟁과 팬데믹으로 광산이 멈추고 물류가 막힐 때마다 보석의 가치는 요동칩니다. 그런데 정해진 시간의 강연이나 디지털 채널만으로는 산지와 유통, 옥션과 글로벌 브랜드가 얽힌 복잡한 시장구조를 풀어내기 어려웠습니다. 광산에서 출발해 쇼케이스에 도달하기까지 방대한 생태계를 입체적으로 조망하려면 책이라는 긴 호흡이 필요했습니다. 이 책의 핵심은 ‘보석의 가치는 타고난 물성과 거쳐 온 서사, 그리고 거래 경로가 겹치는 지점에서 만들어진다’는 것입니다. 물성만 보면 감정서에 갇히고, 경로를 모르면 손해를 봅니다. 독자가 스스로 단단한 안목을 세우길 바라는 마음입니다.
유색석 시장의 판도가 재편되고 있는 지금, 가장 주목하는 변화는 무엇인가요? 또한 평생 소장할 단 하나의 스톤을 꼽는다면 무엇일까요? 공급망의 지각변동이 시장을 재편하고 있습니다. 미얀마가 국제 제재로 막히면서 모잠비크산 루비가 옥션 최고가를 경신했고, 에메랄드 역시 잠비아산이 콜롬비아의 대안으로 안착했죠. 이처럼 요동치는 시장 속에서 단 하나의 보석을 고른다면 주저 없이 ‘브라질산 파라이바 투르말린’을 꼽겠습니다. 구리와 망간의 결합이 만들어낸 특유의 네온 블루 컬러가 어두운 조명 아래에서도 스스로 빛을 뿜어내는 듯한 착각을 줍니다. 본산지인 브라질 광산이 사실상 고갈되어 1캐럿만 넘어가도 가격이 어마어마해지죠. 최근 뉴욕 경매에서 캐럿당 31만 달러라는 기록적인 금액에 낙찰된 이유이기도 합니다. 자연이 빚어낸 이 형광빛 푸른색은 그 어떤 보석도 따라갈 수 없습니다.

팔각형 프레임 속 에메랄드와 다이아몬드의 삼층 구조로 아르데코 특유의 기하학적 미학을 정교하게 표현한 링.
전문가로서 주얼리를 소장하는 기준과 그 안에 어떤 철학이 자리하고 있나요? 제 컬렉션은 나석부터 하이 주얼리 브랜드 피스, 독립 디자이너의 작업, 빈티지와 앤티크, 그리고 어머니의 기억이 깃든 센티멘털 주얼리까지 다섯 가지로 나뉩니다. 그중에서도 기하학적 구조와 실용성을 겸비한 아르데코 클립 브로치를 자주 착용합니다. 제 소장 철학의 핵심은 명확합니다. 주얼리는 몸에 얹혀 움직일 때 비로소 완성됩니다. 금고 안에만 갇혀 있는 보석은 그저 숫자로 매겨지는 자산에 불과합니다. 수천 년 전 유물 중 유독 주얼리가 온전한 형태로 전해지는 이유는 대를 이어 사람의 몸에 머물렀기 때문입니다.
세계적인 주얼리 컬렉터이자 알비온 아트Albion Art 수장인 아리카와 가즈미Arikawa Kazumi의 초청으로 일본에 다녀왔다고 들었습니다. 롯데뮤지엄에서 열린 아리카와 컬렉션 전시의 자문을 맡으며 맺은 인연입니다. 도록을 집필하고 전시를 함께 준비하며 깊은 신뢰가 쌓였죠. 이번 여정에서는 헬레니즘 시대의 귀고리부터 예카테리나 2세의 진주 브로치까지, 박물관에 있을 법한 마스터피스들을 두고 깊은 대화를 나눴습니다. 요코하마 미술관 관람부터 도쿄와 가마쿠라의 고즈넉한 사찰로 이어진 2박 3일은 단순한 보석 감상을 넘어, 그가 삶과 예술을 대하는 태도를 온몸으로 체감한 시간이었습니다.

(왼쪽부터) 어머니에게 물려받은 산호 반지를 진주와 조합해 새로운 형태로 재탄생시킨 네크리스.
본인의 탄생석인 산타마리아 아콰마린 본연의 색채에 집중해 간결한 아르데코 실루엣으로 커스텀 세팅한 클립.
잎과 열매 형태로 섬세하게 조각한 에메랄드와 루비, 진주 장식이 옷깃 양단으로 드러나며
1920년대 투티 프루티 양식의 이국적 정취를 전하는 브로치.
섬세한 세공을 거친 핑크 오팔과 콩크 셸의 파스텔 톤 위로 아르데코 프레임을 더한 브로치.
그가 말하는 ‘영적인 예술’이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수백억 원의 보석 앞에서도 그는 ‘마음이 먼저 반응하는가’를 물었습니다. 불교적 세계관을 바탕으로 영적 깨달음을 품은 조각으로 주얼리를 다룹니다. 미국 GIA에서 훈련받은 저는 산지와 시장가치부터 분석하는 편이라 초기에는 사뭇 낯설었습니다. 하지만 쇼케이스가 아니라 손바닥 위에서 보석의 생명력을 느끼게 해주는 그를 보며 깨달았습니다. 객관적 고증과 주관적 울림이 함께해야 비로소 컬렉팅이 완성된다는 사실을요.
마지막으로 <럭셔리> 독자들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가 있다면 들려주세요. 더불어 스스로를 하나의 보석에 비유하면 어떤 스톤이라고 생각하시나요? 한국에서 보석은 한 세대에서 그 생을 다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보석을 사치품으로 바라보는 인식 탓에, 세대를 넘어 물려주는 유산의 문화가 충분히 자리 잡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저는 보석이 시간을 품은 자산이자 가족의 이야기를 담은 유산으로 이어질 수 있도록 인식을 바꾸는 일을 오랜 과제로 삼아왔습니다.
만약 저 자신을 하나의 보석에 비유한다면 ‘스타 사파이어’를 꼽고 싶습니다. 둥글게 연마된 카보숑 형태의 부드러운 외형과 달리, 모스 경도 9를 지닌 단단한 커런덤입니다. 또한 빛을 받았을 때 비로소 별 모양의 광채를 드러내죠. 저 역시 오랜 시간 현장에서 묵묵히 쌓아온 연구와 경험이 어느 순간 빛을 만나 자연스럽게 드러나기를 바랍니다. 겉은 유연하지만 내면은 단단한 사람, 그리고 시간이 흐를수록 자신만의 빛을 발하는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습니다.
HAIR & MAKEUP ARTIST 구성은 ASSISTANT 양서윤 COOPERATION 위크엔드 막스마라(1661-4841), 포츠 인터네셔널(ports1961.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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