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럭셔리> 2026년 10월호

송은 x 스테델릭 = 온에어

스테델릭 뮤지엄의 소장 영상을 새로운 주제로 엮어 서울에 소개하고 한국 작가의 작업을 다시 암스테르담으로 보내는 ‘송은×스테델릭: 비디오 클럽’.

EDITOR 박이현

열차 안에서 젊은 남성들이 여성, 그리고 연애에 관해 시끄럽게 떠든다. 누군가의 사적인 대화를 몰래 엿듣는 것 같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율리카 루델리우스는 거리에서 만난 남성들을 섭외해 카메라 앞에 앉히고, 평소 여성이나 연애에 관해 갖고 있던 생각을 과장해 이야기하도록 했다. 이렇게 취합해 만든 ‘Train’(2001)은 어디까지가 진심이고, 어디부터가 연기인지 가늠하기 어렵다. 웃으며 주고받는 말이 불편한 건 이런 연유에서다. 연출된 상황임을 알아도 그들이 과시하는 남성성은 그리 낯설지 않다.

‘On Masculinity(남성성에 대하여)’를 주제로 한 ‘송은×스테델릭: 비디오 클럽’이 8월 27일부터 29일까지 송은에서 열렸다. 스테델릭 뮤지엄이 2018년 시작한 ‘비디오 클럽’은 소장 영상을 하나의 주제 아래 묶어 보여주는 스크리닝 시리즈다. 멀티미디어 아트를 전략적으로 수집해온 미술관의 소장품을 더 많은 사람과 향유하고자 2018년 기획한 것으로 시대와 지역, 예술 운동을 넘나드는 작품 4~10편을 선정한다. 이러한 형식에 영감을 받은 송은은 스테델릭 뮤지엄과 협력해 2023~2024년 총 4회에 걸쳐 영상 작품을 선보였다. 2026년 다시 돌아온 비디오 클럽은 불가리 코리아와의 파트너십으로 이어가고 있다.

글로리아 카미루아가, 베레나 블로크, 율리카 루델리우스, 비토 아콘치, 린다 벵글리스, 트레이시 에민, 탁영준이 참여한 올해 3회차 비디오 클럽에서 에디터의 눈길을 사로잡은 또 다른 작품은 비토 아콘치의 ‘Seedbed’(1972)다. 그는 뉴욕의 한 갤러리 안에 설치한 경사로 아래 몸을 숨긴 채 위를 지나가는 관객의 발소리를 듣고 따라 움직이며 성적 욕망과 은밀한 시선을 드러냈는데, 29년의 간격을 둔 ‘Train’과 ‘Seedbed’를 연달아 보니 남성성이란 말과 행동으로 타인과의 관계를 점유하려는 태도에 있지 않을까 싶었다.

한국 작가들의 작품도 암스테르담을 향한다. 송은 전시에 참여한 미디어 작가를 선정해 작품을 매입한 뒤 스테델릭 뮤지엄에 기증하는 방식이다. 2023~2024년에는 안정주와 전소정의 작품이 소장됐고, 올해는 류성실×업체, 오민, 이승애, 탁영준의 작품이 신규 소장됐다.



Interview

시간을 수집하는 미술관

스테델릭 뮤지엄 큐레이터 멜라니 뷜러Melanie Buhler


Ⓒ 이창화

멜라니 뷜러 스위스 출신 큐레이터. 프란스 할스 뮤지엄과 쿤스 트무제움 장크트갈렌을 거쳐 2025년 스테델릭 뮤지엄에 합류 했다. 디지털 문화와 제도 비평에 대한 관심을 바탕으로 역사적 컬렉션과 동시대 미술을 교차시키며 미술을 바라보는 시선을 확장해왔다.


송은은 후원을 통해 한국 작가의 작품을 매입한 다음, 스테델릭 뮤지엄에 기증하고 있습니다. 작품 소장 여부를 판단하는 기준이 궁금합니다. 또 미술관과 후원사는 각각 어떤 역할을 맡았나요? 송은이 한국 작가들의 후보군을 제안하면, 저희는 스테델릭의 수집 전략과 연결되는 작품을 선정합니다. 특정 담론과 주제, 예술적 입장을 중심으로 기존 소장품과 어떤 관계를 맺는지, 예술적·역사적으로 어떤 의미가 있는지, 동시대 미술에서 어떤 입장을 대변하는지 살펴보지요. 미술관이 주목하는 영역을 넓혀갈 수 있는지도 중요한 기준이에요. 최종 선택과 장기적 방향에 대한 판단은 스테델릭이 맡고, 송은은 작가 발굴과 매입을 지원합니다. 불가리 코리아는 이를 가능하도록 후원하고요.


스테델릭 뮤지엄의 ‘비디오 클럽’을 이야기할 때는 항상 ‘시간 기반 미디어 컬렉션Time-Based Media Collection’이란 표현이 등장하더군요. 시간의 흐름 속에서 전개되는 지속적이고 다원적인 다중 매체 예술을 ‘시간 기반 미디어’라고 부릅니다. 스테델릭 뮤지엄은 35mm와 16mm 필름, 싱글·멀티채널 영상, 사운드와 빛을 활용한 설치, 컴퓨터 생성 및 인터넷 기반 작품 등 약 2000점을 소장하고 있어요. 소장의 출발점은 1960년대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당시 스테델릭은 영구적이고 자율적인 오브제로서의 미술에서 벗어나 움직임과 참여, 행위와 과정, 장소와 상황을 다루는 실험 작품을 적극적으로 소장했어요. 그 출발점을 알린 대표적인 전시가 (1961)과 (1962), 빔 베이런Wim Beeren이 기획한 (1969) 등입니다. 특히 빔 베이런의 전시에서 리처드 세라Richard Serra는 녹인 납을 미술관 벽에 던지는 ‘Splash Piece’란 작업을 선보였는데요. 이때부터 일시적이고 고정되지 않은 예술을 어떻게 보존하고 수집할 것인지 고민하기 시작했습니다.

비디오는 그에 대한 하나의 답이었어요. 1970년대 초 미디어 아티스트 게리 슘Gerry Schum과 관련한 작품을 소장했고, 1974년 도린 미뇨Dorine Mignot가 회화와 조각, 비디오를 담당하는 첫 큐레이터로 합류하면서 비디오와 퍼포먼스를 중심으로 한 프로그램도 본격화했죠. 예로, 1977년 열린 는 비디오를 플럭서스와 퍼포먼스, 실험 음악이라는 맥락 안에 놓았습니다. 1980년에는 전용 비디오 공간을 제안했고, 이는 이후 컬렉션의 영상을 주제별로 상영하는 ‘비디오 계단Video Staircase’으로 이어졌습니다. 또 1984년 ‘The Luminous Image’는 비디오를 단순한 기록이 아니라 공간적·시간적 설치의 일부로 제시한 전환점이 됐고요. 이후 사운드와 퍼포먼스, 설치 등 매체 사이의 경계가 흐려지면서 지금의 시간 기반 미디어 컬렉션으로 확장됐습니다. 최근에는 디지털 이미지와 인터넷, 데이터베이스, 컴퓨팅 기술을 활용한 작업까지 아우르고 있습니다.


지난 5월 뮤지엄이 있는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선 소장품과 새로 선정한 작품을 함께 상영하고 작가들과 대화하는 시간을 마련했습니다. 아티스트 토크는 녹화해서 미술관의 기록 자료로 남깁니다. 작가의 의도나 작업을 어떻게 제시해야 하는지 이해하는 자료가 되기 때문이에요. 취득 단계에서도 기술 사양과 설치 지침 등 정보를 수집하고, 설명이 충분하지 않으면 별도의 인터뷰를 진행하죠. 시간 기반 미디어는 결과물만 보존하기가 어렵습니다. 기술적 세팅은 물론 이미지와 사운드, 공간의 관계, 관객이 경험하는 방식까지 작품을 구성하는 요소가 되거든요.


8월 말 송은에서 진행한 비디오 클럽은 당신이 스테델릭 뮤지엄에서 기획한 전시 (4월 17일~9월 2일)와 연결되는 것 같더군요. 남성성을 남성과 동일한 것으로 보거나 주어진 속성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역사적·문화적으로 생산되는 하나의 형식으로 바라보고 싶었습니다. 이번 프로그램은 남성 자체보다 남성성을 하나의 클리셰이자 원형, 욕망과 규범, 가부장제와 결부된 폭력의 형태로 살펴봤어요. 1970년대부터 2022년까지 서로 다른 시대와 지역에서 제작된 작품을 고른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권력 체계로서의 남성성에서 출발해 그것이 어떻게 수행되고 도전받으며 욕망화되는지 추적하고자 했죠. 글로리아 카미루아가의 ‘Popsicles’는 어린아이의 놀이와 가톨릭, 군사적 폭력과 섹슈얼리티를 교차해 가부장적 권력이 만들어지는 방식을 드러내고요. 탁영준의 ‘Wohin?’에서는 아우토반을 매개로 남성성과 퀴어 욕망, 종교와 섹슈얼리티가 교차합니다. 시대와 문화적 배경이 다른 영상을 통해 남성성을 고정된 정체성이 아닌, 사회 안에서 끊임없이 형성되고 수행되는 것으로 보여주고자 했어요.

목록으로

Related articl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