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럭셔리> 2026년 10월호

실비아 그라시 다미아니 회장이 말하는 베니니의 시간

베니니는 해마다 컬러를 개발하고, 서로 다른 창작자의 아이디어를 유리로 옮긴다. 실비아 그라시 다미아니 회장에게 100년 넘게 다뤄온 소재에서 여전히 새로움을 찾는 일과 변함없이 지켜야 할 전통에 관해 물었다.

EDITOR 박이현 PHOTOGRAPHER 이기태

실비아 그라시 다미아니 다미아니 그룹의 부회장이자 베니니의 회장. 다미아니 그룹의 모든 홍보와 다양한 브랜드 이미지를 감독한다. 1987년 이탈리아 주얼리학 연구소에서 주얼리학 전문 과정을, 1991년 IPSOA에서 경영학 마스터 과정을 이수했다.


2020년 다미아니 그룹이 베니니 인수를 완료한 이래, 회장으로서 브랜드의 예술적 방향과 파트너십을 이끌어오셨습니다. 인수를 결정할 당시 베니니의 어떤 가능성에 주목하셨나요? 오래전부터 베니니를 잘 알고 있었습니다. 부모님께서 컬렉터였거든요. 어린 시절 저희 삼남매는 집에 놓인 베니니 작품을 망가뜨리지 않도록 늘 조심해야 했죠. 인수 기회가 왔을 때 무척 기뻤습니다. 베니니는 무라노 글라스의 오랜 전통을 간직한 메종입니다. 창립자 파올로 베니니Paolo Venini는 지난 세기 주요 디자이너들과 협업하며 새로운 시도를 거듭해왔고요. 이러한 역사를 계승하고 베니니를 세계에 알리는 일은 저희에게 도전이자 목표예요. 몸에 지니는 주얼리가 착용자에 관해 많은 것을 말해준다면, 베니니는 소장한 사람의 라이프스타일을 보여줍니다. 그런 점에서 베니니는 다미아니가 고객에게 제안해온 세계를 자연스럽게 확장해주는 브랜드라고 판단했습니다.


다미아니는 1924년, 베니니는 1921년에 설립해 창립 시기가 불과 3년 차이입니다. 회장님은 다미아니 가문의 3세대로 성장했고, 보석학을 공부한 뒤 주얼리 창작에도 직접 참여해왔습니다. 두 메종을 경험하며 발견한 가장 본질적인 공통점은 무엇인가요? 장인 정신입니다. 금세공과 유리공예의 장인을 모두 ‘마에스트로’라고 부릅니다. 물론 디자이너의 역할도 중요하지만, 장인의 뛰어난 기술과 집념이 없다면 다미아니와 베니니 어느 쪽도 아름다운 제품을 완성할 수 없어요. 둘 다 높은 온도를 다루며 재료를 녹이고 다듬지만, 제작 속도에는 차이가 있습니다. 주얼리는 천천히 정교하게 완성하는 반면, 유리는 식기 전에 외과의사처럼 정확하고 신속하게 다뤄야 할 때가 많아요. 저는 장인들과 함께 일하는 것을 매우 큰 특권이라고 생각합니다. 두 메종에서 사람이 손으로 만드는 일은 인공지능이 대신할 수 없기 때문이죠. 특히 유리에 숨을 불어넣는 모습을 보면 무언가에 생명을 안겨주는 것 같아요. 아주 오래된 기술이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다는 사실은 여전히 감동적입니다.


베니니는 125가지 유리 컬러를 구현하며, 가마 14개를 동시에 운용할 수 있습니다. 베니니에게 컬러는 어떤 의미인가요? 모든 것입니다. 각 색의 배합법을 기록한 비밀스러운 책이 있어요. 베니니는 레드로 유명한데, 다섯 가지 붉은 색조를 구현합니다. 만들기 가장 까다롭고 비용도 많이 드는 색조들로, 특정한 톤에는 24K 골드를 활용하기도 해요. 다미아니의 디자이너들도 하이 주얼리, 특히 단 한 점만 제작하는 피스(one-of-a-kind)에 흔치 않은 컬러 스톤을 사용하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이런 변화에 베니니의 영향도 있다고 봅니다.


베니니의 한국 첫 단독 부티크가 현대백화점 무역센터점에 오픈했다.


베니니는 드로잉 4만5000점, 빈티지 사진 1만 점, 작품 4000점의 아카이브를 갖고 있습니다. 회장님은 이탈리아 문화유산 보호 기구 FAI와 베네치아 헤리티지의 회원이기도 한데요. 오랜 유산을 보존하고 활용하는 데 어떤 노력을 기울이고 계신가요? 다음 세대에게 과거를 보여주는 것은 우리의 의무입니다. 그래야 헤리티지 안에서 영감을 얻고 자신만의 방식으로 혁신할 수 있으니까요. 베니니는 2011년부터 ‘카탈로그 레조네Catalogue Raisonné(전작 도록)’를 만들고 있습니다. 자료를 디지털로 정리하면 더 많은 사람이 열람하고 연구할 수 있어요. 오래된 드로잉도 원본을 꺼내거나 옮기지 않아도 되니 보존에 도움이 되고요. 현재 아카이브의 약 70%를 정리했습니다. 이와 더불어 저는 과거에 판매한 작품 일부를 다시 매입해 인하우스 뮤지엄의 소장품을 늘리는 일도 맡고 있습니다.


‘아트 글라스Art Glass’(뛰어난 조형미를 지닌 베이스와 장식 오브제)와 ‘아트 라이트Art Light’(공공 및 프라이빗 공간을 위한 샹들리에와 대형 조명 설치) 두 컬렉션을 가진 베니니의 작품은 뉴욕 메트로폴리탄미술관과 뉴욕 현대미술관, 런던 V&A 등에 소장돼 있습니다. 2018년에는 토머스 스턴스의 1962년 작품 ‘La Sentinella di Venezia’가 73만7000달러에 낙찰되며 무라노 글라스 역대 최고가 중 하나를 기록하기도 했고요. 공간에서 기능하는 오브제와 수집·감상의 대상이라는 두 성격은 어떻게 공존하나요? 아트 라이트는 건축과 밀접하게 연결된 작업입니다. 주택, 호텔, 레스토랑, 오피스 등 공간에 맞춰 의뢰인의 스타일을 해석해요. 불가리, 티파니, 까르띠에, 보테가 베네타 등의 매장을 위한 샹들리에도 각 브랜드가 추구하는 우아함과 럭셔리에 따라 다르게 제작하죠. 반면 화병을 비롯한 아트 글라스는 공간을 꾸미는 작품이자 개인의 소장품이기도 합니다. 가끔 친구들이 자신이 모은 작품을 제게 자랑스럽게 보여주더군요. 20년, 30년이 지나 역사적 의미가 더해지고 가치도 높아지는 작품이 있습니다.


1921년 출발한 베니니의 역사가 한 세기를 훌쩍 넘겼습니다. 카를로 스카르파부터 안도 다다오까지 서로 다른 창작자와 협업하면서도 베니니만의 정체성을 유지해왔는데요. 시대와 시장이 달라져도 베니니가 반드시 지켜야 할 본질은 무엇인가요? 베니니는 여러 창작자가 유리를 어떻게 해석하는지 보여주는 일종의 큐레이터입니다. 파올로 베니니는 사물의 본질을 중시했고, 정제되고 우아하되 지나치게 복잡하지 않은 형태를 추구했습니다. 전통적인 제작 기술은 존중하되, 새로운 컬러와 표현에 도전하는 일을 두려워해서는 안 됩니다. 유리를 사랑하는 디자이너들에게 이 소재로 작업할 기회도 많이 제공해야 하고요. 그렇다면 다음 100년, 그 이상도 지속할 수 있을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럭셔리> 독자들이 베니니를 어떤 세 단어로 기억하길 바라시나요? 아름다움Beauty, 본질Essence, 혁신Innovation.



COOPERATION 베니니(3467-8817)

목록으로

Related articl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