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럭셔리> 2026년 9월호

가장 낭만적인 시계 기능인 문페이즈의 역사

하늘에 떠 있는 달을 바라보며 시간을 가늠하고 소원을 비는 오래된 관습. 오늘날 스마트폰으로 다음 보름달이 언제 뜨는지 몇 초 만에 알 수 있지만, 시계 안에는 여전히 달이 천천히 차고 기우는 모습을 보여주는 장치가 남아 있다. 시계에 자연의 움직임까지 담아내려는 가장 낭만적인 컴플리케이션, 문페이즈의 이야기다.

EDITOR 남정화 PHOTOGRAPHER 이호현

오늘날 브레게가 문페이즈를 표현하는 방식이 훨씬 간결해졌음을 보여주는 ‘클래식 페이즈 드 룬 7787’ 워치. 12시 방향에 문페이즈를 크게 배치하고 3시 방향에는 파워 리저브를 표시한다. 지름 39mm 케이스에 셀프와인딩 무브먼트 ‘칼리버 591 DRL’을 탑재해 38시간의 파워 리저브를 제공한다. 그랑 푀 에나멜 다이얼과 브레게의 애플 핸즈가 어우러져 복잡한 기능을 하나의 우아한 풍경처럼 보여준다. BREGUET.


달이 손목 위로 올라온 순간

문페이즈의 역사는 손목시계보다 훨씬 오래됐다. 인간이 시간을 측정하는 데 사용한 가장 오래된 자연의 기준 가운데 하나가 ‘달’이었기 때문이다. 달이 차고 기우는 주기는 날짜와 계절을 가늠하게 했고, 농경과 종교의식, 항해의 기준이 됐다. 그래서 초기의 천문시계는 시각을 알려주는 역할을 넘어 태양과 달, 달력의 움직임까지 기계적으로 재현했다. 기계식 시계가 발전하면서 거대하던 천문학적 장치는 점점 작아졌고, 가장 시적인 기능인 문페이즈의 크기도 함께 줄어들어 그 매력이 반감되었을지도 모른다. 게다가 오늘날 달의 움직임을 쫓는 일은 거의 필요 없는 일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문페이즈가 여전히 살아남은 것은 기능이 아니라 시간을 바라보는 방식을 담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일반적으로 2개의 달을 그린 디스크를 59개의 톱니로 회전시켜 약 29.5일에 이르는 달의 위상을 표현한다. 초승달에서 보름달을 지나 다시 초승달로 돌아가는 자연의 리듬을 작은 금속 디스크 하나에 압축한 낭만적인 기능이다. 이 문페이즈의 역사에 가장 결정적인 변화는 20세기 초 찾아왔다. 회중시계에 구현하던 복잡한 달력 기능이 손목시계로 옮겨가면서 작은 케이스 안에 퍼페추얼 캘린더와 문페이즈를 함께 담으려는 시도가 이뤄지기 시작한 것이다. 그 중심에 파텍 필립이 있다. 1925년 완성한 ‘Ref. 97 975’ 워치는 세계 최초의 퍼페추얼 캘린더 손목시계로 알려져 있다. 날짜는 중앙의 포인터 핸드로, 월과 요일은 서브다이얼로, 문페이즈는 3시 방향에서 보여준다. 손목시계가 아직 회중시계의 대체품 정도로 여겨지던 당시, 천문학적 복잡성을 손목 위에 구현했다는 것 자체가 하나의 혁명이었다. 흥미롭게도 이 시계는 1927년 10월 13일 미국인 고객에게 판매됐고, 훗날 다시 파텍 필립으로 돌아와 현재는 파텍 필립 박물관에 소장돼 있다.


1925년 제작한 역사적인 ‘Ref. 97 975’ 워치. 퍼페추얼 캘린더를 탑재한 세계 최초의 손목시계다. PATEK PHILIPPE.


‘No. 1160 마리 앙투아네트’ 워치. 1783년 당시 현존하는 컴플리케이션 기능을 모두 담으라는 주문자의 요청에 따라 수십 년에 걸쳐 제작한 ‘No. 160 마리 앙투아네트’ 워치를 재현한 시계다. BREGUET.


브레게가 만든 달의 풍경

문페이즈의 역사를 이야기하면서 브레게를 빼놓을 수 없는 이유는 천문학과 정밀한 시계를 향한 아브라함 루이 브레게의 집요한 관심 때문이다. 이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유명한 ‘No. 160 마리 앙투아네트’ 워치다. 1783년 한 주문자가 당시 가능한 모든 컴플리케이션과 정교함을 하나의 시계에 담아달라고 요청했고, 브레게는 이를 위해 수십 년을 들였다. (실제로 제작 기간과 비용에도 제한을 두지 않았다고!) 마침내 1827년 완성된 시계에는 미닛 리피터, 퍼페추얼 캘린더, 방정식 시계, 파워 리저브, 온도계 등 최고의 기술이 총망라됐다. 브레게가 이를 두고 “마치 대성당 시계를 몇 제곱센티미터 안에 압축하는 작업 같았다”고 했을 정도다.

이 시계는 1983년 예루살렘 박물관에서 도난당한 뒤 2007년 다시 모습을 드러냈고, 2008년 브레게는 아카이브와 원본 도면을 바탕으로 이를 ‘No. 1160 마리 앙투아네트’ 워치로 재현했다. 시계가 완성되기 전에 마리 앙투아네트가 세상을 떠났다는 사실까지 더해져 시계 역사상 가장 드라마틱한 에피소드 중 하나로 남았다.


부드러운 미소가 익살스러운 ‘맨 인 더 문’ 문페이즈. BLANCPAIN.


문페이즈 얼굴의 작은 뷰티 마크가 18세기 유럽 여성들이 얼굴에 붙이던 장식용 점 ‘무슈’를 떠올리게 하는 ‘빌레레 우먼 데이트 문페이즈’ 워치 BLANCPAIN.


달이 사라질 뻔한 시대, 얼굴을 가진 달의 등장

문페이즈의 역사에서 가장 역설적인 순간은 시계에서 달이 거의 사라질 뻔했던 1970년대 쿼츠 파동 때다. 쿼츠 시계가 등장하면서 스위스 기계식 시계 산업은 거대한 위기에 빠졌다. 더 저렴하고 정확한 시계와 경쟁하기 위해 많은 제조사가 기계식 시계의 복잡성을 줄였다. 하지만 블랑팡은 정반대의 선택을 했다. 1983년 ‘컴플리트 캘린더 문페이즈’ 워치를 선보인 것이다. 당시 시계 산업이 복잡한 기능을 덜어내고 있을 때 오히려 문페이즈와 캘린더를 다시 꺼내든 것은 쿼츠와 기계식 시계가 애초에 같은 물건이 아니라는 사실을 보여주는 계기가 됐다. 이후 블랑팡의 문페이즈에는 흥미로운 발전이 이어졌다. 100시간의 파워 리저브를 제공하는 모델이 등장했고, 2003년에는 ‘맨 인 더 문Man in the Moon’ 형상을 손으로 조각한 로터를 장착한 기념 에디션도 제작됐다. 또 러그 아래에 교정 장치를 배치해 케이스 측면의 버튼을 없앤 세계 최초의 손목시계도 블랑팡의 문페이즈 계보에서 나왔다. 복잡성을 더하면서도 겉으로는 더욱 단순하게 보이도록 만든 것이다.

블랑팡의 문페이즈가 다른 메종의 문페이즈와 구별되는 또 다른 지점은 달에 얼굴을 부여했다는 데 있다. 맨 인 더 문의 부드러운 미소는 기능적인 문페이즈를 하나의 캐릭터로 바꿔놓았다. 특히 여성 컬렉션에서는 달의 얼굴이 더욱 섬세하다. ‘빌레레 우먼 데이트 문페이즈’ 워치는 문페이즈에 부드러운 표정을 입히고, 작은 뷰티 마크를 더했는데, 18세기 유럽 여성들이 얼굴에 붙이던 장식용 점 ‘무슈mouche’를 떠올리게 한다. 달을 바라보는 일이 천문학적 정보를 읽는 행위에서 미적 경험으로 바뀐 것이다.

그리고 올해, 블랑팡 ‘레이디버드’의 역사에 또 하나의 아이콘이 등장했다. 2026년 6월 1일, 마릴린 먼로 탄생 100주년을 맞아 공개한 ‘레이디버드 트리뷰트’ 컬렉션이 그것이다. 2016년 블랑팡이 인수한 마릴린 먼로의 주얼리 워치에서 영감을 받아 7개의 유니크 피스로 제작했으며, 각각 M-A-R-I-L-Y-N의 한 글자씩을 케이스 백에 새겼다. 7개 컬러의 스트랩 역시 특별히 개발했다. 이 시계 자체는 문페이즈 워치가 아니지만, 문페이즈에 여성의 얼굴을 지닌 달을 담아온 블랑팡이 레이디버드와 마릴린 먼로라는 상징적인 여성을 한데 묶었다는 점에서, 문페이즈가 여성 워치메이킹의 기능을 넘어 미학으로 확장되는 과정을 보여준다.


1945년 출시한 ‘트리플 캘린더 문페이즈’ 워치. 스몰 세컨즈 카운터 안에 문페이즈 디스플레이를 통합한 18K 옐로 골드 시계로, 프랑스 시장을 위해 제작했다. JAEGER-LECOULTRE.


달을 더 정확하게

그런데 문페이즈에는 아주 작은 ‘문제’가 있다. 문페이즈의 작은 달 뒤에는 59개의 톱니가 숨어 있다. 달이 같은 모습으로 돌아오는 삭망월은 약 29.53일이다. 하지만 기어에 반 개의 톱니를 만들 수는 없다. 그래서 시계 제작자들은 2개의 달을 하나의 디스크에 올리고 59개의 톱니를 새겼다. 디스크가 하루에 한 톱니씩 움직이면서 59일에 한 바퀴를 돌며, 2개의 달이 각각 약 29.5일의 주기를 표현하는 방식이다. 단순하지만 실제 달의 주기와는 미세한 차이가 생길 수밖에 없다.

바로 여기서 문페이즈의 또 다른 역사가 시작되었다. 그것은 달을 더 아름답게 보여주는 동시에, 실제 달의 움직임에 더욱 가까이 다가가려는 시도였다. 예거 르쿨트르 역시 이러한 흐름 속에서 문페이즈와 캘린더를 결합하며 천문학적 정보를 손목 위에 구현해왔다. 1946년 제작된 ‘트리플 캘린더 문페이즈’ 워치는 지름 35mm 케이스 안에 날짜와 요일, 월, 문페이즈를 담은 역사적인 모델로, 프랑스 시장을 위해 특별히 제작됐다.

결국 문페이즈는 시간을 정확히 알려주는 기능을 넘어, 시간을 바라보는 방식을 바꾸는 기능인지도 모른다. 수백 년 전에는 달을 보며 날짜와 계절을 헤아렸다면, 오늘날에는 시계 속 작은 달로 그 오래된 시간의 감각을 마주한다. 추석이면 우리는 여전히 하늘을 올려다본다. 음력 8월 15일의 둥근 달 아래에서 계절의 풍요와 가족의 안녕을 기원하는 마음은, 달이 시간을 넘어 인간의 기억과 감정을 담아온 역사와 맞닿아 있다.


달의 미적 요소를 한층 강조한 ‘레이디버드 컬러 페이즈 드 룬’ 워치. 지름 34.9mm 레드 골드 케이스에 머더오브펄 다이얼을 얹고 총 2.22캐럿, 138개의의 다이아몬드를 세팅했으며, 셀프와인딩 ‘칼리버 1163L’은 100시간의 파워 리저브를 제공한다. BLANCPAIN.



COOPERATION 브레게(6905-3571), 블랑팡(3479-1833), 예거 르쿨트르(1877-4201), 파텍 필립(6905-33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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