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CREATORS: THE ART OF MAK
디자인하우스가 걸어온 반세기의 철학 위에서 창간 25주년을 맞은 <럭셔리>는 한국 문화에
내재한 ‘막MAK’의 정신을 하나의 미학이자 태도의 언어로 정리하고자 한다. 이에 유연한 막 정신을 삶과 작업 속에 체화하고 있는 창작자 10인의 생생한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미술가·음악가·배우 백현진부터 드라마와 연극, 영화를 아우르는 공민정, 무대와 런웨이를 오
가는 기무간, 다양한 표정을 지닌 배우 옹성우, 음악의 진동을 시각적으로 표현하는 그레이코드와 지인, 이제는 하나의 장르가 된 윤산하, 캔버스에 해석의 여지를 남기는 캐스퍼 보스만스,
다채로운 능력과 독보적 존재감의 대명사 수리, 가구와 공간을 잇는 문승지, 장르를 넘나들며
브랜드 컨설팅을 하는 김아린까지. 이들의 기록은 우리 시대의 독보적인 아카이브가 될 것이다.
공 민 정

오버사이즈 네이비 셋업 슈트 EENK.
스카이블루 셔츠 ENFÖLD.
실버 링 모두 MONDAY EDITION.
공민정 <갯마을 차차차>, <내 남편과 결혼해줘>, <천 원짜리 변호사> 등의 드라마에서 탄탄한 연기력과 함께 강렬한 여운을 남긴 배우. 부드러움과 카리스마 같은 상반된 역할을 소화해내는 입체적 면모를 지녔다. 독립영화와 드라마, 연극을 아우르는 폭넓은 연기 스펙트럼을 펼치고 있다.
공민정의 취향을 화보 요소로 녹여봤어요. 다이어리, 책, 슈트 같은 것들이요. 좋아하는 것에 관해 이야기해주세요. 원래 일기를 오래 썼어요. 방황하거나 속상할 때면 일기에 감정을 쏟아냈죠. 그런데 요즘은 마음이 충만한 상태예요. 일기에 ‘토해내는’ 것이 아니라 원할 때만, 그러니까 좀 더 능동적으로 기록하게 된 거죠. 책도 자주 봐요. 동네 편집 서점에 가서 그때그때 마음 가는 대로 책을 골라요. 태도 면에서는 털털한 편인데 옷차림은 슈트를 선호하고요. 아, 물론 귀여운 것도 좋아한답니다.
‘귀여운 것’이라고 하니 궁금한 게 떠올랐어요. 꿈이 ‘귀여운 할머니’라고요. 맞아요! 구태여 설명하지 않아도 ‘귀여운 할머니’ 하면 연상되는 이미지가 있잖아요. 지나가는 아이에게 주머니에서 사탕 하나 슬쩍 꺼내 줄 수 있는 그런 할머니요.(웃음) 나이를 먹을수록 표정이나 마음을 숨기기 어렵다고 생각하는데요. 결국 내가 어떻게 살아왔는지 묻어날 텐데, 고운 마음으로 지내다 보면 삶의 궤적이 쌓여서 같이 있고 싶은 할머니가 되지 않을까요? 편안하고 정다운 사람으로 늙고 싶어요.
“‘막’은 스스로에 대한 확신과 단단한 내면에서 우러나오는 힘이에요.”

과감한 컷아웃 디테일이 도드라지는 블랙 드레스
ANNAKIKI. 실버 링 MONDAY EDITION.
스틸레토 힐은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관계를 중요하게 생각하는군요. 결국 힘을 얻는 것은 사람이에요. 운 좋게 인연의 복도 있었죠. 작품을 할 때면 현장에서 동료들과 연기하는 순간이 무척 행복합니다. 힘들었던 순간도 돌아보면 추억으로 남더라고요. 무얼 하든지 함께하는 이들과 어떤 결과물을 만들어냈다는 사실은 언제나 기쁜 일이에요. 지나온 모든 작품에 애정이 가는 이유이기도 해요.
곧 개막하는 연극 <나의 죽음을 애도하기>도 즐겁게 준비하고 있나요? 물론이에요. 이 인터뷰가 나오는 시점에 공연을 시작하겠네요. 시기가 시기이다 보니 연습에만 매진하고 있어요. 매일 같이 동료들과 대본 리딩을 하고, 대사를 외우고 있죠.
화면이 아닌 무대에서의 공민정을 볼 수 있겠어요. 오랜만의 연극이죠? 거의 10년 만이에요. ‘오랜만에 연극이 하고 싶다’라는 생각이 들 때 마침 섭외 연락이 왔어요. 합류하기 한 달 전만 해도 연극은 상상하지 못한 일이었는데, 인도 여행을 앞두고 있던 차에 캐스팅이 된 거예요. 당시 새로운 것에 도전하고 싶다는 마음이 일렁였던 터라 연극도, 여행도 모두 실행에 옮겼습니다. ‘지금이 아니면 할 수 없는 일들이다’ 싶더라고요. 혼자 인도로 떠나 에너지도 얻고, 작품을 위해 재정비하는 시간을 가졌어요.

그레이 슬리브리스 니트 톱 ÀVIE MUAH.
다양한 포켓 구성이 독특한 브라운 스커트 PUSH BUTTON.
실버 링 모두 MONDAY EDITION.
갑작스러운 엄마의 죽음을 마주한 남매의 이야기라고 들었어요. 슬퍼할 겨를 없이 장례식을 책임지는 누나 ‘어진’을 맡았죠. 죽음이라는 주제, 감정을 절제해야 하는 인물. 감정적인 동요는 없었나요? ‘어진’이란 인물은 슬픔을 슬픔이라 여기지 못해요. 감정에 흔들림이 별로 없고 현실의 일이 우선인 사람이죠. 과거를 회상하며 엄마와 부딪히는 장면에서는 감정이 흔들리지만요. 평소의 저와는 분명 다른 성격이지만, 그럼에도 제 안에서 어진의 모습을 찾았어요. 아니, 믿었어요. 어떤 인물이든 무조건 내 안에 다 존재하는 것으로 생각하고 나면, 전혀 이해되지 않을 것 같던 캐릭터도 곧잘 연기하게 되거든요. 아, 극 중 이야기는 죽음이라는 개념보다 그 이후의 삶을 조명하기 때문에 긴장하며 봐야 하는 작품은 아니에요. 건강하게 웃으면서 볼 수 있는 구석도 있답니다.
한 방송에서 “여러 취미를 도전해봤지만 연기만 한 게 없다”라고 말한 장면이 기억에 남아요. 이토록 배우로서 원동력과 영감을 주는 매개체가 궁금해요. 주변의 모든 것이 영감의 원천이에요. 우연히 마주한 것들도 긍정적인 자극으로 다가올 때가 많아요. 선물받은 책, 비행기에서 본 영화마저도요. 작은 모니터로 보는데도 그 안의 배우들이 얼마나 멋지고 아름다운 연기를 펼치는지 느낄 때면, 저도 덩달아 배우로서 욕심이 생깁니다.

왼쪽부터) 재킷 EENK. 셔츠 ENFÖLD. 그레이 재킷 GABRIEL LEE. 볼드한 이어
커프는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실버 링 모두
MONDAY EDITION.

블랙 슬리브리스
드레스 GABRIEL LEE. 실버 링 모두
MONDAY EDITION.
그럼 욕심나는, 혹은 도전하고 싶은 배역이 있을까요? 접근하기 쉽거나 접점이 많은 것보다 오히려 저와 간극이 큰 역할을 연기해보고 싶어요. ‘어떻게 하면 이 사람을 내 안에서 찾아낼 수 있을까’ 고민하게 만들고, 제 내면의 모습을 막 꺼내면서 그를 통해 내가 놀 수 있는 캐릭터요. 이를테면 아주 비사회적인 역할도 괜찮아요. 악역은 우리 주변에 없을 법한 캐릭터가 대부분이잖아요. 그런 악한 캐릭터와 놀이하고 싶어요.
치열한 연기의 과정을 ‘놀이’라 표현하는 것이 인상적이에요. 일종의 재미로 승화하는 거군요. 연기를 위한 모든 과정이 즐거워요. 끊임없이 연구하고 고뇌하면서 새로운 나를 마주하는 시간까지도요. 일종의 놀이죠. 나를 힘들게 하는 캐릭터를 만나서 받아들이고, 놀고, 희열을 느껴요. 배우 활동 초기에는 잘해야 할 것 같은 마음에 더 애쓰고 긴장을 많이 했어요. 그래서 연기를 온전히 즐기지 못했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정답 같은 건 없다는 생각이 들어요. 마음껏 놀면 되고, 못해도 괜찮아요. 막 해보는 거예요.
막 해보면서 오히려 연기의 기쁨을 경험하게 됐네요. 정제되거나 오랜 연습으로 맞추어진 틀대로 하는 쪽보다는 ‘막’에서 나오는 힘, 어떻게 보면 나이브naive한 것을 좋아해요. 대신, ‘막’이라는 건 그만큼 스스로 확신이 있을 때 성립된다고 생각합니다. 무작정 막 하는 건 결과를 장담할 수 없어요. 나에 대한 자신감과 확고한 중심이 있을 때 비로소 나은 결과로 이어지는 거죠. 연기나 인생을 대하는 관점에서도 통하는 지점이 있어요. 저는 상대에게 집중하려 하고 나를 더 내어주려는 사람이거든요. 기꺼이 막 내어줄수록 많은 걸 얻은 적도 많아요. 이건 사실 몸으로 살아내야만 가능한 건데, 온전히 나로서 지내다 보면 결국 어떤 화학작용이랄까요? 예쁜 빛을 만들어내지 않을까 싶어요. 연기뿐 아니라 삶에서도. 연기는 제 삶이에요. 그 모든 것이 다 ‘나’니까요.

단추 장식이 눈길을 끄는 레더 재킷 GABRIEL LEE. 은은한 광택의
새틴 그린 미니스커트 VENTÉ. 롱부츠는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실버 링 모두 MONDAY EDITION.
HAIRSTYLIST 한수화 MAKEUP ARTIST 무진 STYLIST 시주희 COOPERATION 가브리엘 리(070-8886-0898), 먼데이에디션(794-5922),
방떼(790-5038), 아비에무아(790-9410), 안나키키(@ANNAKIKIOFFICIAL), 엔폴드(1644-4490), 잉크(070-8733-2237), 푸시버튼(797-1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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