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럭셔리 M> 2025년 5월호

PERSONA’S CHOICE

한 줌의 낭만과 멋을 지닌 채 세상을 구하고, 때로는 익살맞은 모습으로 영화 속에 등장하는 페르소나들은 오래도록 많은 이의 표상이자 롤 모델이 되어왔다. 우상의 모습으로 남자들의 마음 한편에 자리했던 그들이 선택한 위스키 브랜드를 조명해본다.

EDITOR 이호준 PHOTOGRAPHER 염정훈


THE MACALLaN, 007 SKYFALL

“보드카 마티니 한 잔, 젓지 말고 흔들어서”란 명대사에서도 엿볼 수 있듯 모든 007 시리즈에는 마치 징표처럼 시그너처 위스키나 칵테일이 등장한다. 배우 대니얼 크레이그의 제임스 본드를 만날 수 있는 <007 스카이폴>에서 한자리를 차지한 위스키는 바로 맥캘란. 비록 영화 속에서는 007 시리즈의 50주년을 기념하는 특별판 위스키 ‘맥캘란 파인 레어 1962’가 등장했지만, 그 멋을 오마주하고 싶다면 ‘맥캘란 레어 캐스크’를 추천해본다. 맥캘란 하우스의 오크통 관리법의 결정체라고도 불리는 이 술은 스페인의 모든 쿠퍼리지에서 직접 고른 16가지의 각기 다른 캐스크 타입의 셰리 오크통에서 숙성한 원액만으로 만들었다.


THE DALMORE, KINGSMAN

“매너가 사람을 만든다”라는 신사의 전형과도 같은 걸출한 명언을 남긴 <킹스맨>의 시크릿 에이전트들은 달모어 위스키를 선택했다. 영화 속에 등장한 위스키는 달모어 1962년 빈티지이지만, 이는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 가상의 술. 다만 달모어의 블렌드 마스터 리처드 패터슨이 ‘달모어 하우스 스타일의 전형’이라 평가한 ‘달모어 15년’을 선택한다면 비밀스러운 영국 신사들의 멋에 한 발짝 가까이 다가갈 수 있을 것. 달모어 15년은 아모로소, 아포스톨레스, 마투살렘 올로로소 등 3가지 셰리 오크통에서 숙성한 원액과 미국산 화이트 오크통에서 숙성한 위스키를 조합해 완성했다. 코끝을 스치는 오렌지 마멀레이드와 계피 향을 즐길 수 있다.




THE GLENLIVET, JOHN WICK

위스키에 일가견이 있는 이들에게는 영화 <존 윅>은 버번위스키의 영화일 터. 하지만 버번위스키 특유의 풍미에 진입 장벽이 느껴진다면 영화 속에 등장하는 또 하나의 위스키, 더 글렌리벳에 주목해보는 것도 좋겠다. 코냑 숙성으로도 유명한 프렌치 리무쟁 오크통에 숙성해 이국적인 향과 미묘한 풍미를 지닌 ‘더 글렌리벳 15년’은 부드러운 버터 향과 달콤한 아몬드를 떠올리게 하는 복잡다단한 여운이 특징.


JOHNNIE WALKER, BLADE RUNNER

1982년 개봉한 <블레이드 러너> 그리고 2017년 각색 버전이자 속편 격 작품 <블레이드 러너 2049>의 공통점은 조니 워커 블랙 라벨을 네오 누아르적 미학을 갖춘 미래지향적인 위스키로 표현한다는 것. 조니 워커 블랙 라벨은 2년 이상 숙성한 40개 이상의 몰트와 그레인을 블렌딩한 스카치 블렌디드 위스키로, 아일러 지역의 피트 향과 스페이사이드 지역의 과일 향이 조화를 이룬다. 첫맛은 스모키하다가도 이내 후추와 같은 스파이시한 맛이 스멀스멀 감돈다.


GLENFIDDICH, STAR TREK BEYOND

2016년작 <스타트렉 비욘드> 속 우주선을 이끄는 선장 제임스 T. 커크와 매코이의 페어 신에서는 반가운 이름의 위스키가 등장한다. 커크의 생일을 맞아 글렌피딕 위스키를 선물하는 장면이 펼쳐진 것. 물론 스페이스 오페라라는 SF 장르 특성상 실제 술이 등장하거나 언급되는 경우는 드물지만, 글렌피딕이라는 싱글몰트 스카치위스키의 저력을 확인할 수 있는 대목이었다. 미래적인 인상의 영화와 부합하는 위스키는 바로 ‘글렌피딕 30년 올드 서스펜드 타임’. 아메리칸, 유러피언 오크통에서 최소 30년간의 시간 동안 숙성을 거친 원액으로 만들었는데, 길고 긴 세월을 증명이라도 하듯 성숙한 오크 그리고 말린 과일, 구운 호두, 무화과 테이스트 노트의 조화가 일품.




SUNTORY, LOST IN TRANSLATION

국내에서는 <사랑도 통역이 되나요?>라는 제목으로 개봉한 영화에서 배우 빌 머리가 맡은 남자 주인공 밥 해리스는 소위 말하는 한물간 스타다. 그가 산토리 위스키 광고 촬영을 위해 일본에 입국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다룬 이 영화는 실제 산토리 위스키가 브랜드 스폰서로 참여한 것으로도 잘 알려져 있다. 극중 가장 두드러진 역할을 맡은 위스키는 바로 ‘히비키’. 먼 타지에서 만난 여자 주인공 샬롯에게 동질감과 연정을 느끼게 해주는 매개체가 히비키이기 때문. 재퍼니즈 위스키 특유의 섬세한 표현력과 은은하게 감도는 허브 향을 체험해본다면 극중 두 남녀 간에 피어오르는 사랑의 실마리를 발견할 수 있을지도.


GLENFARCLAS, THE GENTLEMAN

가이 리치가 감독과 극본을 맡은 범죄 액션 스릴러 영화 <더 젠틀맨>은 휴 그랜트가 맡은 사립 탐정 플레처그리고 주인공 미키 피어슨의 동료 레이먼드와의 대화를 중심으로 극이 전개된다. 사건의 경위와 당위를 묻고 답하는 듯한 긴장감 있는 대화에서 두 남자의 갈증을 해소해주는 위스키는 글렌파클라스. 그랜트 가문의 증류소에서 탄생하는 글렌파클라스는 스카치위스키 중 숙성 과정에서 증발량이 가장 적게 발생하는 위스키로도 유명하다. 거친 남성미를 발산하는 두 남자의 상황에 감정을 이입하고 싶다면 ‘글렌파클라스 25년’을 추천한다. 말린 과일과 버터 스카치 아로마가 더해진 복합적인 향이 강점인 위스키로, 입안에 머금으면 몰트와 셰리의 완벽한 균형미를 만끽할 수 있다.




ARDBEG, CONSTANTINE

아드벡을 한 번이라도 맛본 사람이라면 위스키와 <콘스탄틴>의 연결점을 자연스레 가늠할 수 있을 것이다. 병마와 싸우는 인간의 몸으로 천사와 악마의 경계에 위태로이 서 있는 콘스탄틴은 늘 술과 담배를 달고 산다. 특히, 극중 콘스탄틴은 ‘아드벡 10년’을 즐겨 마신다. 위스키 중에서는 독특하게 짙은 녹색 병에 담긴 아드벡은 스코틀랜드 아일러섬 위스키 특유의 이탄 건조 몰트를 사용한 피트 위스키다. 강렬한 훈연 향과는 달리 텍스처 자체는 가벼운 편이라 피트 표현이 더욱 날카롭게 느껴지는 편. 이 같은 이유로 호불호는 강한 편이지만 콘스탄틴의 거친 매력과 강렬한 캐릭터성에 대한 메타포로서의 역할을 충실히 이행한다.


BALLANTINE'S, WHISKY GALORE!

희뿌연 파이프 담배 연기와 다수의 위스키 보틀이 등장하는 1949년 영화 <위스키를 가득히!>. 위스키 러버들에게 필수 시청 영화라 불리는 이 작품에서 가장 많이 출연한 위스키는 바로 발렌타인. 블렌디드 위스키계의 바이블이라고도 불릴 만큼 블렌딩 위스키 시장에서 발휘하는 브랜드 파워 역시 막강한 술이다. ‘발렌타인 21년’은 그중에서도 단연 프리미엄 위스키의 표준이라 불린다. 풍부한 보디감에 맛과 향의 완벽한 밸런스가 절묘하기 때문. 향기로운 꽃 향, 풍부한 아로마는 물론, 비단처럼 부드럽게 혀에 감기는 은은한 여운을 직접 경험해봐도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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