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지용 대학에서 텍스타일 아트를 전공한 김지용 작가는 전통의 소재와 기법을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보며 현대사회의 폐기물과 환경 문제를 섬유공예에 접목시켜 자신만의 장르를 개척했다. 지난해 10월 이화갤러리에서 개인전
김지용 작가는 조각보에서 발견한 전통의 미학과 철학적 태도를 현대적으로 구현한 섬유공예를 이어간다. 그의 작업이 특별한 이유는 폐현수막과 방수 천막 등 산업폐기물을 소재로 활용하는 데 있다. 이전까지 흙과 나무 등 자연물을 공예 소재로 삼았던 것에 반해, 동시대 작업자로서 도시에서 흔히 발견할 수 있는 산업폐기물을 재료로 삼은 것이다. “대학교 4학년 무렵 우연히 한복대교 사업의 일환으로 한복의 제작 방식과 소재, 문화를 배우는 수업을 들었습니다. 그중 조각보가 인상적이었어요. 당시 원단이 귀했기에 자투리 천도 버리지 않고 이어 붙여 아름다운 조각보를 만들던 조상들의 지혜가 지금의 업사이클링과 닮았다고 느꼈거든요. 일상에서 버려지는 소재를 구해보고자 서울 일대 전통 시장을 모두 둘러봤는데 마땅한 것이 없었어요. ‘기업이나 공공기관, 지자체에서 구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라는 고민 끝에 서울새활용플라자의 소재은행에서 폐현수막, 방수 천막 등을 만났습니다.” 처음 작업을 시도할 당시 대학생이던 작가에게 산업폐기물 소재들은 합리적인 가격대에 재료를 수급할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그러나 작업이 길어지면서 소재를 자기화하는 과정에서 고민이 깊어졌다. 스위스의 업사이클링 패션 브랜드 프라이탁을 중심으로 방수 천막이나 폐현수막을 예술, 디자인 분야에 활용하는 방법이 고착화되었기 때문. 또한 소재의 생산공정에서 일어나는 애로 사항 및 환경 파괴 등의 문제를 마주하게 되었다. 그는 이러한 지점을 차별화한 방식으로 타개하고자 소재를 해체하고 재조합하며 자신만의 컬러 조합, 패턴, 기법을 고안하기 시작했다. “이제는 소재 자체에 제 자신을 투영하는 듯싶습니다. 한 번 쓰임만으로 제 쓸모를 다해 폐기물로 전락한 소재들에 수고를 더해 예술 작품으로 승화시키는 작업 과정 자체에 깊은 애정을 느낍니다.”

작가는 잘게 조각낸 소재를 재봉질이나 본딩으로 이어 붙이며 현대적인 조각보 형태를 완성하는데, 그 중심에 직조가 있다. 수천년의 긴 역사를 지닌 공예 기법인 직조는 완성될 컬러나 패턴을 머릿속에서 수없이 계산하더라도 씨실과 날실이 실제 얽어지기 전까지 그 모습을 가늠할 수 없다. 더욱이 작가가 사용하는 현수막, 천막은 각기 다른 타이포그래피와 컬러를 지닌 만큼 변수가 크다. 그는 이러한 변수와 우연성을 큰 축으로 삼아 형형색색의 작업을 이어간다. “어릴 적부터 다채로운 색깔의 옷을 입으며 저 자신을 표현하고자 노력해왔어요. 화려하면서도 이채로운 색의 조합을 통해 저만의 조형 언어를 구축하고자 합니다. 때로는 폐기물이 지닌 색감이나 패턴이 영감이 될 때도 있어요. 직조를 통해 공예라는 손의 감각을 보다 깊게 익히며 이전까지 미숙했던 부분들의 변수를 줄여나가려 노력하고 있어요. 더 견고하고 아름다운 작업을 선보이고 싶어요.” 그의 정진은 기법, 소재, 형태에 대한 도전에서도 드러난다. 최근 그의 관심은 보다 입체적이고 조형적인 작품을 만드는 데 쏠려 있다. 현수막을 걸기 위해 사용한 로프를 활용해 직조를 하거나 칠漆 기법을 응용한 작업을 통해 기존의 평면적인 섬유공예를 입체적인 형태로 확장시키려는 시도를 이어간다. 또한 부여에 위치한 한국전통문화대학교 대학원에 진학해 전통 섬유, 자수, 복식에 대한 공부를 하며 작업의 확장을 모색하고 있다. “정체된 작업자가 되고 싶지 않아요. 매번 새로운 것을 선보이기 위해서 엄청난 에너지가 들지만 도전을 멈추지 않고 있습니다. 제가 생각하는 궁극의 럭셔리는 시간이 흘러도 그 가치가 변하지 않는 고유의 클래식함이에요. 그리고 그 근간에는 꾸준한 성실이 있다고 봅니다. 김지용만의 작업 세계를 쌓아나가기 위해 힘써 나아가보려고요.”
INSPIRATION IN LIFE
전방위적인 관심을 통해 섬유공예의 스펙트럼을 확장시키는 김지용 작가의 취향.

김지용 작가는 1년에 한두 번씩 태국 방콕으로 여행을 떠나 재충전의 시간을 갖는다. 화려한 색감과 다양한 물성이 공존하는 도시에서 가장 좋아하는 스폿은 직물과 액세서리가 가득한 쌈펭시장Sampeng Market이다.

‘로에베 크래프트’ 어워드를 통해 공예 신의 세계적 흐름을 만들어가는 패션 브랜드 로에베의 행보를 늘 흥미롭게 바라보고 있다.

평소 동식물 다큐멘터리 보는 것을 즐긴다. 특히 구애를 위해 나뭇가지나 돌을 모아 화려하게 집을 짓는 바우어새가 지구의 플라스틱 쓰레기양이 늘면서 빨대나 병뚜껑으로 장식하는 모습을 보며 지난해 개인전의 영감을 받았다.

지난해 부산 여행 중 우연히 관람한 부산현대미술관의 전시 <백남준, 백남준, 그리고 백남준>. 비디오 아트 장르의 선구자로서 대중에게 새로운 생각을 던져온 작가의 생애를 두루 살필 수 있어 흥미로웠다.

최근 아침마다 수영을 배우고 있다. 하루의 활력을 채우는 동시에 몸과 마음을 단단하게 단련하는 시간이다.

봉재나 건칠, 3D 프린팅 등 다양한 기법을 작업에 활용하고 있으나 수천년간 이어져온 공예 기법 직조에 가장 큰 매력을 느낀다.

그간 다양한 컬렉션과 플래그십 스토어 인테리어를 통해 직조에 대한 깊은 관심을 드러내온 패션 브랜드 앤더슨 벨을 애정한다. 브랜드가 지향하는 화려한 컬러감, 조형적인 디자인 형태 또한 작가의 취향과 꼭 닮았다고.

작가는 저마다 지닌 고유한 향을 통해 공간이나 타인을 기억하곤 한다. 그만큼 작업실 향기도 중요하게 생각하는데 시낭의 ‘사보이 아파트먼츠’를 즐겨 뿌린다. 자몽과 라즈베리에 향긋한 블랙 바이올렛, 사프론 향이 깃든 유니크한 향을 지녔다.

유재하, 신해철 등 1980~1990년대 가수들의 노래를 좋아한다. 서정적인 가사와 멜로디가 아날로그 감성을 일깨워 작업할 때 영향을 받곤 한다고. 특히 신해철의 노래 ‘내 마음 깊은 곳의 너’를 가장 자주 듣는다.
CONTRIBUTING EDITOR 유승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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