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럭셔리 M> 2025년 4월호

식스티헤르츠 김종규 대표, 하늘과 바람과 별과 에너지

기후 위기의 시대, 재생에너지는 탄소 중립의 핵심 화두다. 식스티헤르츠는 여기저기 분산되어 생산되는 재생에너지를 IT 기술을 통해 관리하는 솔루션을 만드는 기업이다. 김종규 대표는 기후 위기에 대응하는 과정에서 새로운 기회가 창출될 것을 믿는다고 말했다.

EDITOR 이호준 GUEST EDITOR 이기원 PHOTOGRAPHER 이준용

한국에서 재생에너지는 꽤 논쟁적인 주제다. 태양열이나 풍력 등 재생에너지는 효율적이지 않으며 비용만 많이 든다는 식의 주장이 웹상을 떠돌아다닌다. 탄소 배출 없이 전력을 생산할 수 있는 재생에너지가 세계적으로 지속 가능한 미래를 위한 핵심으로 자리 잡고 있지만 한국은 예외다. 한국의 재생에너지 발전 비중은 2023년 기준 9.67%. 세계 평균(약 30%)에 비해 턱없이 낮다. 원자력과 화석연료 중심의 에너지 정책을 펼쳐온 한국으로서는 에너지 안보와 기후 위기 대응 사이에서 균형점을 찾아야 하는 기로에 서 있다. “현재 한국에 자리한 화력발전소나 원자력발전소는 수십 개 정도지만, 재생에너지 발전소는 벌써 20만 개가 넘어요. 앞으로 50만 개, 100만 개가 될 거라고 생각하면 IT 기술을 활용한 가상 발전소의 가능성과 중요성은 더 커질 수밖에 없습니다.” 식스티헤르츠 김종규 대표의 설명이다. 식스티헤르츠는 ‘에너지 전환을 위한 IT 서비스’를 만드는 기업이다. 태양열이나 풍력을 이용하는 소규모 재생에너지 발전소의 소유자들은 ‘얼마나 전기를 생산할 수 있는지’를 미리 예측해서 보고해야 한다. 전기는 한 번 생산하면 바로 소비해야 하기 때문에 전력망을 안정적으로 운영하기 위해서는 이 예측이 정확해야 한다. 하지만 소유자들이 직접 발전량을 정확하게 예측하기란 현실적으로 어렵다. 이때 식스티헤르츠 같은 기업이 전국 각지에 있는 발전소의 데이터를 모아 AI와 데이터 분석을 통해 발전량 예측을 대신해주는 시스템이다.


전국 8만여 개 재생에너지 발전소의 정보를 무료로 보여주는 햇빛바람지도의 화면. 재생에너지를 효율적으로 관리하고 계획할 발판을 마련했다는 점을 인정받아 2021년 대통령상을 수상했다. 사업자들뿐 아니라 학교 교사들도 이 서비스에 많이 가입한다고 한다.



김종규 대표는 소프트웨어 개발자로 일하다 유학을 결심, 독일 베를린 자유대학교와 막스플랑크 연구소에서 박사과정 공부를 했다. 독일에서 공부하면서 그는 의문을 가졌다. “독일에서는 내가 원하는 에너지원을 직접 선택할 수 있다는 점이 놀라웠어요. 한국에서는 화력 발전으로 만들어진 전기를 사용하기 싫다고 해도 그걸 거부할 방법이 없으니까요. 팬데믹 기간 동안 의미 있는 삶이 뭘까, 이 시대에 가장 시급한 문제가 뭘까 고민했는데, 우리가 기후 위기에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마지막 세대일 것 같더라고요. 그래서 기후 위기 해결에 기여할 수 있는 일을 해보자는 고민을 했고, 그것이 창업으로 이어졌습니다.” 이상적인 에너지 정책은 연료비도 필요 없고, 탄소 배출도 없는 재생에너지 발전소에서 생산한 전력을 소모한 후, 전력이 더 필요할 때는 화력이나 원자력 에너지를 생산하도록 구조와 규칙을 바꾸는 것이다. 하지만 한국의 전력 시장은 반대다. 화력이나 원자력이 생산한 전기를 먼저 소비하도록 설계되어 있다. 전력은 공급이 부족해도 문제지만 공급이 넘쳐도 문제다. 전압의 변동성이 전력망의 붕괴로 이어질 수 있어서다. 그래서 가끔 제주도의 풍력발전기를 인위적으로 멈춰 세우는 일이 벌어진다. 공급이 넘치는 걸 방지하기 위해서다. “그런 점에서 아쉬움이 있습니다. 예컨대 풍력에너지를 먼저 쓰고 나머지가 빈 공간을 채우는 것이 국가적으로나 환경적으로 바람직할 테니까요. 우선 가상 발전소가 제 역할을 해서 발전량 예측을 상당히 정확하게 할 수 다면 다른 발전소의 가동 스케줄을 효율적으로 구성할 수 있을 겁니다.”

재생에너지가 늘 받는 비판 중 하나가 예측 가능성과 설치 비용에 대한 것이다. 태양과 바람의 세기를 인위적으로 조절할 수 없고, 설치 비용마저 만만치 않다. 하지만 김 대표는 말한다. “물론 예측이 쉽지 않습니다만, 한 번 설치하면 연료비도 없고 탄소 배출도 없죠. 한 번 건설하면 건설 비용이 회수되는 기간도 6~7년에 불과하고, 그 기간도 점점 짧아지고 있어요. 태양광 패널만 해도 해가 지날수록 가격이 내려가고 있습니다. 재생에너지 발전 비중을 높이는 방향으로 정책을 이끌어가는 국가들을 잘 살펴봐야 해요. 독일은 지난 2023년 ‘재생에너지법’을 만들어 2030년까지 총전력 소비의 최소 80%를 재생에너지로 충당하겠다는 목표를 설정했습니다. 만약 실제로 이것을 달성한다면 2036년에는 어떤 일이 생길까요? 햇빛과 바람이 존재하는 한 에너지는 계속 생산되고, 설치 비용도 이미 다 회수된 강력하고 저렴한 에너지 인프라를 다음 세대에 물려줄 수 있겠죠. 탄소세가 본격화되고 있는 지금, 한국이 현재와 같은 에너지 포트폴리오를 유지한다면 10년 뒤에는 갈라파고스가 될 거예요. 글로벌 에너지 시장에서 경쟁력을 상실한다는 거죠.” 한국 전력망의 주파수인 60Hz에서 이름을 따온 식스티헤르츠는 전국 8만여 개 재생에너지 발전소의 발전량을 AI가 예측해주는 ‘햇빛바람지도’를 만들어 2021년 대통령상을 수상하는가 하면, KOICA의 지원을 받아 베트남의 에너지 공기업과 함께 다양한 프로젝트도 실행 중이다. “기본적으로는 아시아태평양 지역에서 영향력 있는 에너지 회사로 발전하고 싶습니다. 발전원들은 다양한 사회 구성원들이 소유하고, 저희처럼 IT 기술을 기반으로 수십만 개의 발전원들을 모아서 관리하는 회사가 다음 세대 에너지 회사의 모습일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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