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우재 2025 메종 & 오브제 라이징 아티스트로 선정된 작가 이우재는 네덜란드 디자인 아카데미 에인트호번에서 예술학 학사 학위를, 호주 왕립 멜버른 공과대학에서 파인 아트 학위를 취득했다. 2016년 에인트호번 졸업 프로젝트로 페이퍼 브릭을 처음 선보인 후, 다양한 작업을 이어나가고 있다. 2018년 런던 사치 갤러리, 2020년 서울 스페이스 B-E 갤러리, 2022년 암스테르담 스테델레이크 미술관 등에서 전시를 진행했다. 2024년 개인전 <전이공간>을 개최했다.
시대와 공예의 조응은 패러다임에서부터 시작된다. 작가는 무가치한 것으로 여겨지는 재료에서 변형과 재생의 가치를 발견하고, 작품을 통해 공예의 본질을 재정립해 시대와 부합하는 예술의 또 다른 가능성을 제시한다. 신문지를 주재료로 사용하는 이우재 작가 역시 동시대성에 대한 중요도를 깊이 인지하는 인물 중 하나다. 종이는 재활용이 잘된다는 장점이 있지만 여러 번 반복해 사용할 경우 섬유 입자가 가늘어져 결국엔 재활용이 불가능한 단계에 이른다. 신문지는 해당 과정을 거친 마지막 단계의 종이다. 또한 정치·사회·경제 등 우리 사회의 소란하고 중차대한 일을 전하지만, 한 번 읽고는 이내 버려지거나, 때로는 읽히기 전에 폐기되기도 한다. 이 지점에서 작가는 신문지를 유용과 무용의 경계선상에 놓인 소재로 인식했다. “신문지는 본래의 이름으로 불리다 버려지는 순간에 이르러서는 종이 쪼가리 혹은 쓰레기로 취급받죠. ‘쓰임을 다했다’라는 편견만으로 유용했던 것이 순식간에 쓸모없는 것이 된다는 사실에 많은 회의감이 들더군요. 그 시선을 전복시키고 싶었습니다.”
신문지를 활용했지만 이우재의 작품에서는 인쇄된 활자를 읽을 수 없을 뿐 아니라 어떤 재료를 사용했는지조차 파악하기 어렵다. 신문을 물에 불린 다음 으깨어 펄프 상태로 만들었기 때문. 이는 어린 시절 어머니와 종이 죽으로 탈이나 인형을 만들었던 기억을 십분 살려 작품을 제작하는 방법으로 활용한 것이다. “종이 반죽을 만드는 행위는 재료의 사회적 역할을 해체하는 동시에 본래의 물성에 집중하고자 하는 과정의 시작점입니다. 신문지의 본질은 종이예요. 펄프를 얇게 펴서 만든 종이는 쉽게 찢어지지만, 접착제와 섞어 뭉치듯 반죽하면 섬유가 촘촘히 얽혀 단단해지죠.”
접착제와 혼합한 종이 반죽을 틀에 넣고 모양이 잡히면 꺼내어 건조시킨 뒤 표면을 매끄럽게 다듬는 연마 과정을 거친다. 그 결과 탄생한 것이 바로 ‘페이퍼 브릭’ 시리즈다. 형태가 해체된 종이가 다른 물성으로 변환되는 점을 강조하기 위해 단단한 건축자재인 벽돌의 형태를 떠올린 것이다. 완성된 페이퍼 브릭은 종이 특유의 부드럽고 따뜻한 촉감과 높은 강도를 자랑한다. 나아가 염색이나 접합 등 추가 작업을 거치면 페이퍼 브릭은 3차원의 조각이나 강렬한 마티에르를 지닌 평면 회화 작품으로도 발전한다.
작품의 특색을 결정짓는 또 다른 중요 요소는 이방인으로 지내온 그의 기억이다. 초등학생 무렵부터 해외에서 생활해온 작가는 대부분의 이민자들이 경험하는 것처럼 주변과 온전히 동화될 수 없는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 항상 고민했다. “저는 늘 스스로를 정의하고 싶었어요. 어린 시절부터 이방인으로 살아왔던 게 주된 이유였으리라 봅니다. 다만, 별도의 언어적 표현 대신 작품으로 스스로를 정체화하고 싶었습니다. 작품이 곧 제 자신을 대변하는 메타포가 될 수 있도록요.” 여느 장식이나 기교 없이 미니멀한 종이 벽돌을 반복적으로 배치한 그의 작업은 아시아계 이민자로 성장하면서 무의식적으로 본인이 처한 문화적 위치를 찾고, 외부의 편견이 담긴 태도와 해석으로부터 자유롭고 싶었던 작가의 바람이 담겨 있는 셈이다.
올해 1월, 그의 계속된 노력은 마침내 빛을 발했다. 프랑스에서 열리는 세계적 위상의 디자인 축제, 메종 & 오브제에서 그를 올해의 라이징 아티스트 중 1인으로 선정한 것. ‘재료의 물성을 깊이 있게 탐구하는 태도가 돋보이는 작품’이라는 선정 이유를 보고서는 다시 한번 본인의 길에 확신을 얻게 됐다고. 이번 메종 & 오브제에서 작가는 신작 ‘블루’ 시리즈를 공개했다. 소재에 대한 깊이 있는 시선을 한층 확장해 색을 활용하며 작업의 세계를 폭 넓게 발전시키려는 시도의 일환이다. 나아가 그는 종이에 구애받지 않고 새로운 쓰임의 여지나 잠재력을 지닌 소재를 발굴하고 연구하는 것에도 박차를 가할 예정이라 밝혔다. “연초부터 좋은 소식이 찾아왔지만 늘 되뇌입니다. ‘이 순간 역시 내게는 삶의 한 챕터일 뿐’이라고요. 어떠한 방식으로든 새 생명을 얻는 재료처럼 단 한순간도 머무르지 않는 작가가 되고 싶거든요.”
INSPIRATION IN LIFE
재료의 잠재적 가치를 발굴하는 이우재 작가의 일상을 구성하는 것들.
2023년 남산골하우스뮤지엄에서 열린 전시 <한옥담닮: 한옥, 재생을 닮다>에서 선보인 작품 ‘일월오빌딩’. 이우재 작가는 음양오행을 상징하는 해와 달, 5개의 산봉우리를 그린 ‘일월오봉도’에서 영감을 받아 빌딩 숲이 된 서울의 모습을 재해석해 작품을 제작했다.
초창기 작가 시절 사용하던 명함. 이우재 작가는 자신을 알리기 위한 여러 방법을 고안하다 명함 역시 작품처럼 제작했다.
종이 반죽을 평평한 틀에 발라 굳히면 마치 강렬한 마티에르의 회화 같은 질감을 낸다.
2025 메종 & 오브제에서 선보인 작품 ‘블루’ 시리즈. 역사적으로 파랑이라는 컬러가 어떠한 과정을 통해 하나의 색으로 인정받아왔는지에 대해 알게 된 후 해당 시리즈를 만들게 되었다고 작가는 덧붙였다.
여러 가지 색으로 염색한 종이 반죽을 소분해 보관하고 있다.
작가의 작업실 곳곳에서 피겨를 발견할 수 있었다. 그의 평면 작품 위에 놓인 핑거 몬스터 피겨는 그가 틈날 때마다 수집하던 것.
나이키의 ISPA 슈즈가 접착제를 사용하지 않고 만들어진다는 것에 착안해 만든 작품. 접착제를 사용하지 않고 플라스틱에 열을 가한 뒤 굳어가는 소재의 물성을 담아낸 것이 특징이다.
언뜻 실제 벽돌처럼 보이는 페이퍼 브릭. 작업실 창가에 차곡차곡 쌓아놓은 모습이 마치 작은 돌담 같다.
‘블루’ 시리즈를 제작하기 위해
탐독한 책들. 평소에도 그는
작품의 영감을 위해 한국의 문화와
관련된 여러 분야의 서적을 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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