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럭셔리> 2025년 2월호

THE COLLECTOR 2 - 불완전함의 미학

흠 없는 아름다움이 아니라서, 완벽하지 않아서 더 빛나는 작품들이 있다. 그 안에서 미학의 새로운 면모를 찾아내는 컬렉터 이준혁은 이를 삶과 공간 속에 녹여낸다.

EDITOR 박이현 PHOTOGRAPHER 이창화

이준혁  디스플레이 공정과 시황을 예측하는 인공지능 엔지니어로 일하고 있다. 20년 가까이 이어진 조형예술에 관한 관심과 애정을 바탕으로 쉴 때면 전시를 보고 관련 서적을 탐독하며 재충전과 영감을 얻는 시간을 갖는다.


미술은 아름다움만을 좇는 영역일까. 컬렉터 이준혁은 그렇지 않다고 말한다. 그는 사실의 잔혹성과 날것의 정서를 담은 작품들 속에서 현실의 진실과 강렬한 감정을 발견하며, 그것이야말로 진정한 예술의 힘이라고 믿는다. 이준혁의 공간은 흔히 떠올리는 아기자기한 미술 인테리어와는 거리가 멀다. 대신 상처를 연상시키는, 긴장감과 생동감으로 가득한 아름답지 않은 질감들을 가득 채워 집 전체를 하나의 미술관으로 탈바꿈했다. 추醜의 예술을 통해 추를 해소하고, 그 안에서 또 다른 가치를 찾아내는 컬렉터 이준혁의 특별한 이야기를 들어보는 시간.




집에 들어서자마자 ‘미술관’이라는 인상을 강하게 받았습니다. 어떻게 컬렉터의 길을 걷게 됐나요?

어렸을 땐 손과 옷에 무언가 묻는 걸 싫어해서 미술보다 음악을 더 선호했습니다. 그러다 고등학교 1학년 때 아버지께 건축과 진학에 관해 여쭤본 적이 있어요. 당시 건설업에 종사하시던 아버지는 “건축 또한 조형예술 중 하나다. 하지만 너는 미술과 가까워 보이지 않으니 건축과는 어울리지 않을 것 같다”라고 단호하게 말씀하시더라고요. 저는 누가 제 가능성을 의심하면 오기로 더 해보려는 성격이 있거든요. 곧장 아버지께 미술 책을 추천해달라고 부탁드렸어요. 그러자 아버지께서는 책상 위에 있던 루브르박물관 소장품 도록을 건네주셨고, 그때부터 미술에 대해 관심을 갖기 시작했습니다.


당시 어떤 그림에 시선을 빼앗겼나요?

장-바티스트-카미유 코로Jean-Baptiste-Camille Corot와 프랑수아 부셰François Boucher의 작품에 매력을 느끼면서 미술 책에 푹 빠졌습니다. 고등학교 3학년 때는 베르나르 뷔페Bernard Buffet의 까슬까슬하고 뾰족한 선이 와닿았어요. 수험생으로 고단했던 나날들이 그의 메마르고 삭막한 풍경과 묘하게 닮아 공명했나 봐요. 이때 처음으로 ‘내 정서와 작가의 세계관이 닮았다’는 공감을 했습니다. 이 정도면 내가 돈을 벌어서 구매할 수도 있겠다는 확신 아닌 확신도 들었고요. 단순한 작품 감상을 넘어 ‘갖고 싶다’는 열망이 생긴 순간이었습니다.


작품 컬렉팅은 어떻게 하시나요?

미술, 즉 조형예술이라는 분야를 사랑하다 보니 전시를 관람하거나 관련 서적을 읽는 일이 일상이 되었습니다. 특히 비엔날레나 그룹전을 통해 새로운 작가들을 알게 되는 일이 잦은데, 그 작가들의 작품 세계를 중심으로 관심의 가지를 점차 확장해가죠. 전시나 책에서 눈길을 끄는 작가를 발견하면, 그를 더 깊이 알고 싶다는 열정이 생기곤 합니다. 그에 관해 공부하다가 ‘이 작품은 나와 함께하면 좋겠다’는 마음이 들 때 작은 조각이라도 소장해 그 작가와의 연결을 이어갑니다.


현재도 이러한 과정을 거치고 있을 텐데, 가장 소장하고 싶은 작품이 있다면?

렘브란트Rembrandt나 프랜시스 베이컨Francis Bacon의 작품을 소장하는 건 엄청난 성공이 뒷받침돼야 가능할 테니 현실적으로는 제외해야 할 것 같고.(웃음) 가장 소장하고 싶은 작품은 카임 수틴Chaïm Soutine의 ‘도살된 소’예요. 수틴의 그림을 보노라면, 그의 이전 세대에서는 렘브란트와 프란시스코 고야Francisco Goya가 떠오르고, 이후 세대에서는 프랜시스 베이컨과 프랑크 아우어바흐Frank Auerbach, 게오르크 바젤리츠Georg Baselitz가 연상됩니다. 나아가서는 오늘날의 샹탈 조페Chantal Joffe나 데이나 슈츠Dana Schutz로 이어지는 흐름도 보이죠. 저에게 카임 수틴은 단순히 한 명의 작가가 아니라, 미술사 속에서 제가 애정하는 작가들을 연결하는 허브 같은 존재예요. 그의 작품을 매일 직접 볼 수 있다면, 앞서 언급한 모든 작가의 작업을 한데 모은 기쁨을 누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저는 현실을 달달하고 예쁘게 포장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직시하게 만드는 작품에 눈길이 갑니다. 현실은 늘 이상적이지 않으니까요.”




소장품의 면면을 보면, 미술관을 옮겨놓은 듯합니다. 컬렉팅하기까지 우여곡절도 많았을 것 같은데요.

키키 스미스Kiki Smith와 요제프 보이스Joseph Beuys의 작업은 컬렉팅 과정이 비현실적이었어요. 2018년 말, 키키 스미스 작업 세계에 매료돼 여러 해외 갤러리에 연락하며 작품 리스트를 받아 보고 있었는데요. 직접 작품을 볼 기회가 없어 아쉬워하던 어느 날, 친구와 경리단길을 걷다가 우연히 새롭게 오픈 준비 중인 인터아트채널Inter Art Channel(현 두손 갤러리)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밤이 늦은지라 취기를 빌려 잠시 내부를 볼 수 있느냐고 직원분께 양해를 구하고 들어갔는데, 놀랍게도 갤러리 한쪽에 키키 스미스의 작품이 걸려 있더라고요. 평소 제가 찾고 있던, 구겨진 네팔 페이퍼Nepal Paper에 여성 혹은 신화 속 내용을 그린 바로 그 작품이요. 너무 반갑고 신기해서 망설임 없이 컬렉팅했습니다. 요제프 보이스의 작품은 긴 기다림 끝에 만난 운명이라고 할 수 있어요. 2023년 타데우스 로팍 서울에서 피가 굳은 반창고와 “보이스와 함께”라는 문구가 적힌 카드를 콜라주한 작업을 만났는데요. 보자마자 운명임을 알아챘습니다. 요제프 보이스 하면 치유와 온기를 상징하는 오브제로 대표되는데, 상처를 치유하는 반창고 역시 그의 철학과 작품 세계를 잘 담아낸 중요한 오브제였죠. 보이스는 자신의 어린 시절 경험을 주제로 삼으며 태어난 날을 ‘반창고로 상처가 아문 전시회’로 명명했는데, 이런 일화를 알고 나니 반창고가 포함된 작업을 꼭 소장하고 싶더라고요. 사실은 그날 다른 작가의 작품을 구매하려고 인보이스를 요청하려던 참이었어요. 하지만 경매에서도 보기 힘든 작품을 마주했기에 계획을 바꿔 이를 소장했습니다.


그렇다면, 컬렉팅할 때 무엇을 염두에 두나요?

개인적으로 ‘사실의 잔혹성’과 ‘날것’이라는 표현을 좋아합니다. 현실은 늘 이상적이지 않으니까요. 이 세상을 살아가는 과정은 냉혹함, 비정함 그리고 슬픔을 겪고 이겨내는 연속이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저는 그런 현실을 달달하고 예쁘게 포장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직시하게 만드는 작품에 눈길이 갑니다. 그다음으로는 제 나름의 기준에서 작가와 작품의 발전 가능성을 고려해요. 예술이 감성의 영역이라고 하나, 시간의 흐름 속에서 작가의 감각이 언제나 예리하게 유지되는 건 아니더라고요. 다만, 이성과 논리를 바탕으로 작업하는 작가들은 꾸준히 진일보하는 경향이 있더군요. 그래서 저는 작가가 감성에만 의존하지 않고, 자신만의 논리 체계를 갖추고 있는지를 살펴봅니다. 물론, 이 모든 기준이 항상 일정하게 작동하는 건 아녜요. 결국 컬렉팅이란 이성과 감성이 교차하는, 직관적인 순간에 결정되는 것 같아요.




비슷한 맥락으로, 가정집 미술 컬렉션에서 ‘추의 미학’이 읽히는 점이 흥미로워요. 예쁜 인테리어와는 거리가 멀다는 느낌도 들고요.

작품과 인테리어의 조화보다는, 작업과 작업 간의 형식적 연관성이나 내재한 의미의 선형적인 연결 고리를 중요시해요. 예로, 집에 들어서면 로르 프루보Laure Prouvost의 가슴 그림과 세라 루커스Sarah Lucas의 ‘Beer Can Penis’가 시야에 들어오도록 설치했습니다. 약간의 당황스러움과 충격이 섞인 유머를 받아들이면, 가식 없이 편안하고 즐거운 대화를 나눌 수 있으니까요. 에디터님도 집에 들어서자마자 로르 프루보 작품을 보고 “어? 괜찮아요?”라며 대화의 물꼬를 텄던 것 같은데···.(웃음) 또 요제프 보이스의 반창고 작업과 엘름그린 & 드락세트Elmgreen & Dragset의 꼬리뼈 조각은 신체라는 알레고리를 공유해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이고요. 더불어 집 안 곳곳에 상처 입은 피부를 묘사한 듯한 맨디 엘-사예Mandy El-Sayegh의 작품과 이근민, 이미래의 작품을 배치해 통일감을 더했습니다. 위의 질문에서 설명한 것처럼 이들은 미적으로 아름답기보다는 날것의 정서와 현실의 불편함을 드러내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어요.


마지막으로, 지금까지의 대화를 정리하는 질문을 드릴게요. ‘사실의 잔혹성’과 ‘날것’에 영향을 준 문장이 있을까요?

조르주 바타유Georges Bataille의 <에로티즘>에 나오는 한 문장에 공감이 갑니다. “아름다움은 더럽혀지기 위해 욕구되는 법이다. 아름다운 것에 대한 욕구는 아름다움 자체를 위해서가 아니라, 그것을 확실히 더럽힌 후에 오는 기쁨을 맛보기 위해서다.” 그리고 프랜시스 베이컨이 마티스와 피카소에 대해 남긴 말도 긴 여운을 주는데요. “내가 피카소의 작품에 더 많은 흥미를 느끼는 이유는 마티스의 작품에는 거의 없는 사실의 잔혹성을 피카소의 작품은 갖고 있기 때문이다.” 문득, 스페인에서 피카소의 ‘게르니카’를 보고 ‘미술이 우리에게 이렇게 큰 울림을 전달할 힘을 가졌구나!’라고 깨달았던 그날이 떠오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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