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럭셔리> 2025년 2월호

ARTIST COLLECTIVE - 결속은 우리 힘

최근 아트 신에서 작가 그룹이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하나보다 둘, 둘보다 더 나은 이들의 시너지와 작품 세계.

GUEST EDITOR 박의령

오디오-비주얼 프로덕션 컬렉티브, 업체

업체  2017년 김나희, 오천석, 황휘가 결성한 오디오-비주얼 프로덕션 컬렉티브. 미래를 가속하는 신기술과 그와 맞물려 작동하는 초자본주의적 환경을 배회하며, 그 틈에서 간과된 내러티브를 사변적으로 직조해왔다.


2017년 결성된 ‘업체eobchae’는 미래를 가속하는 신기술과 그와 맞물려 작동하는 초자본주의적 환경을 배회하며 그 틈에서 간과된 내러티브를 사변적으로 직조해왔다. 다소 어려운 자기소개를 풀어 얘기해보자면 이들의 교집합은 학교에 있다. 대학에서 같은 과에 다니던 김나희와 오천석이 먼저 친구가 되었고, 졸업 무렵 황휘가 합류해 같이 작품을 만들며 업체가 시작되었다. 팀을 결성할 당시 전시만 하지 않고 돈벌이를 할 수 있는 집단을 만들자는 의미에서 이름을 ‘업체’라고 지었다. 김나희는 프로그래머로서 웹과 네트워크 작업을 하고, 오천석은 기획자로서 작품이 시작되는 발단이나 완성되는 골조에 대해 생각하는 역할을 맡았다. ‘HWI’라는 이름으로 여러 음반을 낸 전자음악가 황휘는 영상과 사운드를 맡아 작업한다. 작년 한 해 업체 구성원은 각자의 작품은 물론 함께한 작업물로 아트 신을 누볐다. 김나희는 3월까지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열리는 <접속하는 몸: 아시아 여성 미술가들>에 참여 중이다. 20~30여 명의 사이보그가 자신의 이야기를 가십처럼 전하는 과정을 도식화한 2D 포스터 작업 ‘가십걸 프로토콜’을 선보였다. 황휘는 백남준아트센터의 커미션 작업인 ‘너의 전생’이 포함된 첫 정규 앨범 을 발표했다. 구성원의 결속이 느슨하다가도 팽팽해지는 순간은 바로 업체라는 이름으로 전시를 열 때다. 작년 여름 서울시립미술관 SeMA 벙커에서 연 <롤라 롤즈>는 화석연료가 고갈된 미래에 인간이 새로운 환경에 맞게 자신을 개량해 ‘롤라’라는 종種으로 진화한다는 SF적 상상을 바탕으로 기후 위기가 가속화된 미래를 상상하고 오늘날 인류의 기술과 자본주의에 질문을 던지는 전시였다. 2년 동안 고민해온 주제를 오천석이 정리하고 확장한 다음, 다른 두 구성원이 인공지능과 블록체인 같은 기술을 동원해 이미지와 사운드를 만들어 ‘업체표’ 작품을 완성했다. 이런 활약으로 업체는 ‘제24회 송은미술대상전’ 본선 20팀에 이름을 올렸다. ‘d.raft’는 컴퓨터 네트워크가 작동하는 방식과 종교 집단이 계시를 받아 진리를 찾아가는 과정의 유사한 지점을 환각적으로 그려낸 그래픽 노블이다. 기술과 종교, 시시각각 변하는 뉴스처럼 서로 다른 관심사를 가졌지만 그것들을 곱게 걸러 자신들의 스타일과 도식을 만든 점에 대해 이들은 이렇게 말한다. “작업의 주제는 개인적 관심사 안에서 찾은 공통분모가 시의성 있는 이야기와 겹칠 때 선정합니다. 빅테크와 경주하고 싶지만 제대로 붙을 수 없기에 가상의 프로덕트를 만들어내는 거죠. 각자의 의견이 강한 편인데 의외로 합의가 잘되는 건 서로 유머 코드가 맞기 때문이에요.”



시각 연구 밴드, 이끼바위쿠르르


이끼바위쿠르르  고결, 김중원, 조지은으로 구성된 시각 연구 밴드. 팀명은 이끼가 덮인 바위인 ‘이끼 바위’와 의성어 ‘쿠르르’를 결합한 것. 농부, 해녀 등 여러 사람들과 만나며 그들 삶의 방식을 통해 식물, 인류, 생태학을 배운다.






고결, 김중원, 조지은이 결성한 이끼바위쿠르르는 ‘컬렉티브’ 보다는 ‘밴드’로 불리고 싶어 한다. 미술 그룹을 통해 도시와 이주에 관한 프로젝트를 진행했던 조지은 외에 두 구성원은 미술보다는 음악과 더 친했다. 고결은 제주에서 태어나 밴드 활동을 하면서 궁금한 것을 집요하게 파고드는 재주를 키웠다. 김중원은 취미로는 밴드를 하고, 업으로는 이미지나 손에 쥘 수 있는 것을 만들며 생계 활동을 해왔다. 각자가 잘하는 것이 희미한 포지션이 되고 그에 따라 담론을 정하고 리서치해 결과를 만들어낸다. 당연한 과정을 지나는 만큼 소란스럽지 않게 친숙한 ‘밴드’라는 개념을 쓴다. 3년 전 독일 카셀에서 열린 제15회 ‘도큐멘타Documenta’에서 유일한 한국 팀이었던 이끼바위쿠르르는 2024년 12월 3일부터 올해 1월 26일까지 아트선재센터에서 개인전 <이끼바위쿠르르: 거꾸로 사는 돌>을 치렀다. 스산한 기운이 가득한 들판 위에서 읽을 수 없는 표정으로 본인의 위엄을 드러내는 미륵 조각상들. 동아시아 전통에서 미래를 상징하는 부처로서 우리나라 풍경 속에 위화감 없이 자리했지만 이제는 방치 상태나 다름 없는 미륵을 조각과 필름 등으로 재조명했다. “미륵이 우리를 부활시킨 것과 다름없어요. 도시화된 곳의 건물 한 편이나 공장 뒤에 덩그러니 서 있기도 하고 풀과 덩굴에 뒤덮여 있어 찾기 어려운 경우도 많았어요. 정상적인 길이 아닌 곳에서 발견한 미륵의 모습은 당혹감을 주기에 충분했지요. 그렇지만 재구성된 풍경을 통해 우리가 사는 풍경도 다시 보게 되는 것이죠. 미륵이 새로운 생태에 진입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준 것이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이들의 이름은 말 그대로 이끼가 낀 바위와 의미 없는 의성어를 더한 것이다. 처음 들으면 의문부호부터 떠오르게 하고 정체를 알고 싶게 만든다. 이번 개인전을 통해 땅과 공기 사이의 좁은 경계에서 주변 환경에 따라 자신의 세계를 넓히는 이끼의 모습 같은 작업 태도를 유감없이 드러냈다. 이처럼 농부, 해녀, 학자 등 여러 사람들과 만나며 그들 삶의 방식을 통해 식물, 자연현상, 인류, 생태학을 배우는 이들의 행보는 올해 열리는 일본의 아이치 트리엔날레로 이어진다.



건축 큐레이터 컬렉티브, CAC


CAC  김희정, 정다영, 정성규 큐레이터를 중심으로 공간과 사물, 이미지와 글에 담긴 건축적 형식을 탐구하는 기획 집단. 2025년 베네치아 비엔날레 국제건축전 한국관 예술감독으로 선정돼 전시 <두껍아 두껍아>를 준비 중이다.






CAC는 ‘Curating Architecture Collective’의 약자로 말 그대로 글과 사물, 공간에 담긴 건축적 형식을 탐구하는 기획 집단이다. 김희정 서울시 문화본부 박물관과 학예연구사, 정다영 전 국립현대미술관 건축 분야 학예연구사, 정성규 독립 큐레이터가 이끌어간다. 오랫동안 활동했지만 현재 관심이 더 집중되는 이유는 5월에 열릴 ‘2025년 베네치아 비엔날레 국제건축전’ 한국관 전시를 총괄할 예술감독이라는 사실이 한몫한다. 2014년 한 전시를 통해 처음 인연을 맺었지만, ‘2018년 베네치아비엔날레 국제건축전’을 위해 뭉친 후 2021년부터 본격적인 연구 집단의 기능을 시작했다. 특히 CAC가 건립 30주년을 맞이한 베네치아 비엔날레 한국관의 최연소 예술감독으로 선정된 일은 이들에게도 고무적이다. “지난 30년간 베네치아 비엔날레의 전시 궤적이 담겨 있는 한국관의 건축을 조명하는 ‘나무의 집’을 선보입니다. 나무는 한국관이 맺고 있는 다층적인 관계를 밝혀내는 매개체입니다.” 시간을 거슬러 1995년 베네치아 비엔날레의 상황을 알면 나무가 얼마나 중요한 요소인지 알 수 있다. 이미 많은 국가관이 들어선 자르디니 공원에 더 이상 추가 건축이 불가능한 상태에서 한국관의 건축 허가가 떨어졌다. 다만 나무 한 그루에도 손을 대지 말라는 추신은 거의 불허나 다름없는 조건이었다. 그런 상황에서 공원의 마지막 남은 한 조각 지면을 한국관으로 완성해낸 건축의 힘을 소환한 순간을 CAC가 만들어냈다. 이 밖에도 직책을 맡기 전부터 리딩룸을 운영하며 외연을 넓히고 있는 중이다. 건축, 디자인 분야에서 이루어지는 연구와 논의를 보다 많은 이와 나누기 위한 공간으로 전시 도록, 역사 · 비평서, 프로젝트 북, 잡지 등 600여 권의 도서를 소장하고 있다. “건축 전시를 유명한 건축가나 건물을 보여주는 것으로 한정하지 않습니다. 책, 사물, 도시 등 다양한 대상이 건축적으로 어떻게 보이는지, 혹은 건축적으로 어떻게 이야기할 수 있는지를 논하는 데 관심이 있습니다.”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밝힌 것처럼 CAC는 건축의 저변을 넓히고 그 갈래를 더 촘촘하게 나누기 위한 행보를 걷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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