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F1 2024 시즌은 ‘75년 역사상 최초’라는 표현이 따라붙는 다양한 기록이 작성된 특별한 시즌이었다. 처음으로 7명의 드라이버가 두 차례 이상 F1 그랑프리에서 우승을 차지했고, 네 팀이 시즌 4승을 달성했다. 서로 다른 네 팀에서 소속 드라이버 2명이 1, 2위로 레이스를 마치는 1-2 피니시를 기록한 것 역시 2024 시즌이 처음이다. 한마디로 네 팀이 최강의 전력을 가지고 경쟁한 최초의 시즌이었다는 뜻이다. 지난 F1 역사를 돌아보면 대부분의 시즌에 두 팀이 경쟁하거나 한 팀의 독주로 마무리되었다. 드물게 세 팀이 경쟁력을 보이는 경우가 있긴 했지만, 네 팀이 우승을 노릴 수 있는 전력을 갖췄던 것은 처음이다.
F1 2024 시즌은 드라이버의 이적과 시트 확보 문제 등 경기 외적인 문제로도 복잡했다. F1 역사상 최초로 2023 시즌을 마무리했던 10팀 20명의 드라이버가 모두 자기 자리를 그대로 지킨 채 2024 시즌을 시작해 유례없이 고요한 시즌 초반을 예상했지만, 시즌 개막 전부터 루이스 해밀턴이 다음 시즌 페라리로 이적한다는 초대형 뉴스가 들려오며 폭풍이 몰아칠 것을 예고했다. 많은 드라이버가 다음 시즌 자리를 옮길 수밖에 없는 도미노 현상이 발생했고, 시즌 중 3명의 드라이버가 시트를 잃었다. 2025 시즌에는 초특급 유망주 여러 명의 F1 데뷔가 예고된 가운데, 올리버 베어먼과 프랑코 콜라핀토, 잭 두언 등 어린 드라이버들이 시즌 중에 데뷔해 팬들에게 눈도장을 찍기도 했다.
2024 시즌은 월드 드라이버 챔피언 부문에서 시즌 후반까지 타이틀 경쟁이 유지됐고, 월드 컨스트럭터 챔피언 부문 역시 시즌 중반 선두가 바뀐 것은 물론 마지막 순간까지 타이틀 경쟁이 이어졌다. 애타게 기다렸던 홈 그랑프리에서 우승하는 장면도 있었고, 예상치 못했던 사고와 실수로 의외의 결과가 속출하기도 했다. 결국 레드불의 막스 페르스타펀이 F1 역사상 여섯 번째 4년 연속 챔피언 타이틀을 차지했고, 맥라렌은 26년 만에 컨스트럭터 챔피언 타이틀을 차지하는 기쁨을 누렸다.

태그호이어의
‘포뮬러 1 크로노그래프 ×
오라클 레드불 레이싱’ 워치.
1 AGAIN 2023
레드불 팀의 막스 페르스타펀은 2023 시즌 F1 역사를 다시 쓰는 기록을 세웠다.
10연승으로 최다 연승 기록을 갈아 치웠고, 시즌 22경기 중 19승을 거두며 독주를 계속했다.
각 레이스에서 보여준 압도적인 경기력 때문에 앞으로 몇 년 동안 제대로 된 경쟁이 어려울 것이란 예상이 속출했다. 페르스타펀은 2024 시즌도 첫 두 경기 모두 우승하며 지난 시즌 후반부터 9연승을 기록했다.
누가 봐도 2023 시즌이 재현되는 것 같았고, 7라운드까지 차량 문제로 조기 이탈하거나
운이 따르지 않았던 두 경기를 제외하고는 전부 우승을 차지했다. 초반 7경기 중 5승만으로도
충분히 ‘독주’라고 부를 만했던 페르스타펀은 7라운드까지 페라리의 샤를 르클레르를 48포인트 차로 크게 앞섰고, 컨스트럭터 챔피언 경쟁에서도 레드불이 한 경기 차 이상의 큰 차이로 페라리를 앞섰다.
2 경량화(?)의 승리
시즌 초반 페르스타펀의 연승 행진에 제동을 건 것은 페라리의 카를로스 사인스였다.
사인스는 충수염 때문에 2라운드 사우디아라비아 그랑프리에 결장했지만, 이어진 호주 그랑프리에 출전해 레이스 초반 페르스타펀을 추월하며 선두로 나서 팬들을 열광시켰다.
페르스타펀은 브레이크 문제로 경기를 포기했고, 사인스는 끝까지 선두를 지키며 우승을 차지했다.
2023 싱가포르 그랑프리에서도 10연승 중이던 페르스타펀의 연승을 끊은 그가
다시 한번 페르스타펀의 연승 저지에 성공한 것. F1에서는 차가 가벼울수록 경기력에 도움이 되기 때문에, 몇몇 팬은 경기 전 충수 제거 수술을 받은 사인스의 우승을 ‘경량화의 승리’라고 부르기도 했다.
3 노리스 첫 승 신고!
맥라렌의 랜도 노리스는 2019 시즌 데뷔 이래 미래의 챔피언감으로 손꼽히는 드라이버였지만, 2024시즌 5라운드 중국 그랑프리까지
6년 동안 여덟 차례 2위를 기록하는 등 단 한 번도 우승은 차지하지 못했다.
2021 이탈리아 그랑프리에서 맥라렌이 7년 만에 우승했을 때도
팀메이트인 다니엘 리카르도에 이어 2위에 머물렀다. 그러나 6라운드 마이애미 그랑프리에서 노리스에게 기회가 찾아왔다. 세이프티 카 타이밍에
운이 따랐던 노리스는 레이스 중반 선두로 나섰고, 이후 페르스타펀에게 추격을 허용하지 않는 운영으로 자신의 F1 첫 승을 신고했다.
노리스의 우승은 레드불과 페르스타펀이 앞서 나가고 페라리가 뒤를 쫓던 2024 시즌 경쟁 구도가 바뀌고 있음을 알리는 신호탄이었다.
4 저주를 끊은 르클레르
모나코 출신의 샤를 르클레르는 명실상부 페라리의 에이스로 많은 사랑을 받았지만,
유독 홈 그랑프리인 모나코 그랑프리에서는 거듭된 불운으로 고통받았다. 주니어 시절에도
모나코 서킷 완주 기록이 없었던 르클레르는 F1 데뷔 후 두 차례 모나코 그랑프리에서
모두 중도 이탈했고, 2021 시즌에는 폴 포지션을 차지하고도 레이스 스타트라인에 서지 못했다.
2022 모나코 그랑프리에서 다시 폴 포지션을 차지하긴 했으나 팀 라디오와 함께 수많은 밈을 양성한 채 결국 포디엄에 오르지 못했고, 모나코의 저주를 언급하는 사람이 늘어났다. 그러나 2024 시즌
제8라운드 모나코 그랑프리에서 르클레르는 마침내 홈 그랑프리의 저주를 끊어냈다.
폴 포지션에서 레이스를 시작한 그는 단 한 랩도 선두를 내주지 않으며 선두 자리를 지켰고,
모든 변수를 차단하며 감동적인 우승 장면을 연출했다. 르클레르는 모나코 그랑프리 우승으로
드라이버 챔피언 타이틀 경쟁에서 페르스타펀을 31포인트 차로 추격했고, 사인스까지 3위에 오르며
더블 포디엄 피니시에 성공한 페라리는 레드불과의 격차를 단 24포인트로 좁혔다.
5 격전의 오스트리아
11라운드 오스트리아 그랑프리는 2024 시즌 가장 격렬한 격전의 무대였다.
막스 페르스타펀과 랜도 노리스의 경쟁 구도가 뚜렷해진 가운데 두 드라이버는
레이스 후반 치열한 접전을 펼쳤다. 점차 압박의 강도를 높여가던 노리스는
여러 차례 페르스타펀을 추월하기 위한 공격에 나섰고, 거칠게 방어하는 페르스타펀과 노리스 사이에 아슬아슬한 장면이 이어지던 중 두 드라이버가 부딪치는 사고가 발생했다. 노리스는 결국 경기를 포기했고, 차의 손상에 더해 페널티까지 받은 페르스타펀은 5위로 밀려났다. 이전까지 3위로 순항하던 메르세데스의 조지 러셀은 어부지리로 우승을 차지했고, 시즌 다섯 번째 우승자가 되었다. 러셀은 앞서 9라운드 캐나다 그랑프리에서 극적인 폴 포지션을 차지하고도 오락가락하는 날씨 속에 레이스에서 우승을 놓쳤던 한을 풀었다.
6 ‘경’의 귀환
메르세데스 팀의 루이스 해밀턴은 F1의 최고, 최다 기록을 대부분 독점하고 있는
명실상부 최고의 드라이버다. 그러나 여덟 번째 드라이버 챔피언 타이틀을 눈앞에 뒀던
2021 아부다비 그랑프리에서 논란의 마지막 순간 우승을 놓친 뒤 극심한 침체기에 빠졌다.
이후 레이싱 카의 성능도 뒷받침되지 않았고, 심리적 문제까지 겹친 가운데 2년이 넘는 시간이 흘렀다. 12라운드 영국 그랑프리의 일요일 레이스는 변화무쌍한 날씨 탓에 혼란스럽게 진행됐고 맥라렌, 레드불, 메르세데스가 상황에 따라 우세와 열세를 주고받았다. 해밀턴은 레이스 내내
꾸준히 좋은 모습을 보이다가 마지막 드라이 타이어 교체 이후 선두로 나서 끝내 감동적인
우승을 차지했다. 해밀턴이 2021 아부다비 그랑프리 이후 첫 승에 성공하면서, F1 2024 시즌 우승자는 모두 6명으로 늘어났다. 메르세데스는 두 경기 연속 우승으로 기세를 끌어올렸지만,
폴 시터였던 조지 러셀이 기계적 문제로 경기에서 이탈하며 또다시 불운에 시달렸다.
7 팀 라디오의 100분 토론
시즌의 중간 반환점을 돌아 펼쳐진 13라운드 헝가리 그랑프리에서는 맥라렌이 가장 빨랐다. 랜도 노리스가 폴 포지션을 차지했지만,
레이스 스타트 직후 팀메이트 오스카 피아스트리가 선두로 나섰다. 문제는 다른 드라이버들을 의식한 맥라렌의 핏 스톱 타이밍이 꼬이면서
타이어 교체 후 자연스럽게 노리스가 앞서 달리게 되었다는 것이었다. 맥라렌의 전략 담당자들이 개입했고, 노리스의 레이스 엔지니어는 설득을 위해 긴 토론을 시작했다. 마치 100분 토론을 보는 듯한
논쟁이 이어진 끝에 결국 노리스가 팀의 뜻을 따랐고,
레이스 종반 속도를 늦춘 팀메이트를 추월해 오스카 피아스트리가
F1 데뷔 후 첫 승을 기록했다. 시즌 일곱 번째 우승자 탄생과 함께
맥라렌은 페라리를 추월해 컨스트럭터 챔피언십 2위로 올라섰지만,
팀 라디오 논쟁의 후폭풍은 F1 관계자와 팬들 사이에
갑론을박을 불러왔다.
8 혼돈의 상파울루
맥라렌은 아제르바이잔 그랑프리에서 오스카 피아스트리의
우승과 함께 컨스트럭터 챔피언십 선두로 올라섰다.
멕시코시티 그랑프리에서는 페라리마저 레드불을 추월했다.
반면, 드라이버 챔피언십은 막스 페르스타펀(레드불)과
랜도 노리스(맥라렌) 사이의 격차가 계속 좁혀지지 않았다.
20라운드 상파울루 그랑프리에서 스프린트 우승 직후
폴 포지션에서 레이스를 시작한 노리스에게
기회가 찾아온 반면, 많은 비로 연기된 퀄리파잉에서
부진했던 페르스타펀은 엔진 교체 페널티까지 더해져
17그리드 스타트의 암울한 상황에 놓였다.
다시 한번 많은 비가 덮친 레이스에는 다양한
사건 사고가 이어졌는데, 선두로 올라선
조지 러셀과 경쟁하던 노리스에게 큰 악재가 터졌다. 세이프티 카 발령 직후 당연해 보이는
타이어 교체를 단행한 러셀과 노리스는 앞서
프랑코 콜라핀토(윌리엄스)의 사고가 불러온
레드 플래그로 가장 큰 손해를 보았다.
반면, 타이어 교체 없이 버티던 페르스타펀은
2위까지 도약했고, 마지막 세이프티 카 이후
선두로 올라선 뒤 누구도 범접할 수 없는 속도로 빗속을 질주하며 우승을 차지했다. 시즌 초반 최하위였던 알핀은 기적적으로 더블 포디엄 피니시에 성공했지만, 노리스의 드라이버 챔피언 타이틀 도전은 사실상 막을 내렸다.
9 모두가 페라리 팬
100년 역사를 지닌 몬차 서킷은 F1에서 가장 중요한 이벤트 중 하나인 이탈리아 그랑프리의 무대다. F1에서 가장 큰 영향력을 가지고 있는 팀이자
대체할 수 없는 가치를 지닌 페라리의 홈이기도 하며, 페라리를 응원하는 열성팬 ‘티포시’는 그 자체로 볼거리가 되기도 한다. 일찍이 네 차례
챔피언 타이틀을 차지한 제바스티안 페텔은 “모두가 페라리 팬이다.
자신은 아니라고 말할지라도, 그들은 페라리 팬이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2024 시즌 16라운드 이탈리아 그랑프리는 맥라렌의 강세로 출발했지만, 레이스 초반 같은 팀인 피아스트리와 노리스의 과열된 경쟁 속에
페라리의 르클레르가 2위로 올라섰다. 이후 타이어 관리의 부담이 컸기 때문에 투-스톱 전략이 당연해 보였으나, 페라리는 원-스톱 전략을
택하는 도박수를 두었다. 다행히 르클레르는 환상적인 운영으로
타이어를 지켜냈고, 사인스의 필사적인 방어를 뚫은 피아스트리의
추격전이 실패하며 르클레르가 우승컵을 차지했다.
경기장을 가득 메운 홈 팬은 물론 다른 팀의 팬들까지 열광하며
‘모두가 페라리 팬’이라는 말이 실감나는 감동적인 분위기가 연출됐다.
10 SUPER M4X
2023 시즌에 이어 두 번째로 펼쳐진 라스베이거스 그랑프리는 컨스트럭터 챔피언십 경쟁의
중요한 기로였지만, 마음 급한 맥라렌, 페라리를 제치고 폴 포지션을 차지한 것은
메르세데스의 조지 러셀이었다. 페라리는 르클레르와 사인스가 2, 3위에서 추격전을 펼쳤지만,
초반 타이어 손상이 예상보다 빨라 순위가 밀렸다. 페르스타펀이 2위로 올라선 가운데,
레이스 중반에는 해밀턴이 무서운 기세로 페라리 드라이버들을 압박했다.
레이스 후반은 메르세데스가 경기를 주도하는 가운데, 페르스타펀은 과격한 방어를 자제하고
팀의 목표인 챔피언 타이틀 획득에만 집중했다. 결국 페라리는 3, 4위에 그쳤고
우승 트로피는 조지 러셀에게 돌아갔다. 메르세데스가 1-2 피니시에 성공한
라스베이거스 그랑프리에서 5위로 레이스를 마친 ‘슈퍼 막스’ 페르스타펀은 네 번째 F1
월드 드라이버 챔피언 타이틀을 차지했고, 이를 뜻하는 ‘M4X’라는 표식이 등장했다.
11 러셀의 새옹지마
뜨거웠던 시즌 전반기를 마무리하는 14라운드 벨기에 그랑프리는
치열한 전략 싸움이 펼쳐졌다. 막스 페르스타펀이 전년도처럼 손쉬운
추월 행진을 펼칠 것이란 예상도 있었지만 달라진 경쟁 구도 속에 레드불은 쉽게 순위를 끌어올리지 못했고, 페라리의 드라이버들과 루이스 해밀턴, 오스카 피아스트리가 각각 선두를 주고받는 가운데, 타이어 관리가 어려워
두 차례 타이어를 교체하는 투-스톱 전략이 당연한 것처럼 보였다.
그런데 레이스 중반 조지 러셀이 무리일 것 같던 원-스톱 전략을 밀어붙였고, 투-스톱을 선택해 타이어 상태가 좋은 드라이버들의 압박에 노출됐다.
위기의 러셀은 한계를 넘어선 타이어 관리와 뛰어난 방어 능력을 보여줬고, 끝까지 선두를 지키고 우승을 차지하며 ‘타이어 위스퍼러’라는 극찬을 받았다. 그러나 경기 종료 후 검차에서 최소 중량 위반으로 실격 처리가 발표되었고, 러셀에게 최악의 결말이 찾아왔다.
12 26년의 한을 풀다
50년이 넘는 역사를 지닌 맥라렌은 1998 시즌 컨스트럭터 챔피언 타이틀 획득 이후
단 한 번도 왕좌에 복귀하지 못했다. 2024 시즌 컨스트럭터 챔피언 타이틀에 근접한 맥라렌은 21포인트 뒤진 페라리 드라이버들보다 퀄리파잉에서 앞서 타이틀 경쟁에 유리한 고지를 차지했고, 페라리의 르클레르가 10그리드 페널티까지 받아 무난한 타이틀 획득이 예상됐다.
그러나 피아스트리가 스타트 직후 페르스타펀과 부딪히며 후미로 밀려났고, 콜라핀토를 들이받는 실수로 10초 페널티까지 받았다. 반면 르클레르는 첫 랩에 8위로 뛰어오른 뒤, 레이스 중반 3위까지 순위를 끌어올렸다. 사인스와 르클레르가 노리스를 뒤쫓는 상황에서, 만약 어떤 이유로든 노리스와 사인스의 순위가 바뀌면 컨스트럭터 챔피언 타이틀의 주인공이 바뀔 수 있었다.
다행히 노리스는 마지막 순간까지 선두 자리를 굳건히 지켰고, 분전에도 불구하고 페라리 드라이버들은 그 격차를 좁히지 못했다. 결국 노리스의 우승과 함께 맥라렌의 아홉 번째이자
26년 만의 F1 월드 컨스트럭터 챔피언 타이틀 획득이 확정되었고, 14시즌 동안 이어졌던 메르세데스와 레드불 두 팀의 독점 경쟁 구도가 종식됐다.
윤재수 쿠팡플레이 F1 해설위원으로 활약 중이다. 2010년부터 F1과 다양한 모터스포츠 해설위원으로 활동했고, ‘그랑프리 블랙북 시리즈’ 도서로 과 을 집필했다. F1과 모터스포츠를 주요 콘텐츠로 하는 유튜브 채널도 운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