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럭셔리 M> 2025년 1월호

비알랩 대표 이종민, 잠 못 드는 나의 도시

한국은 OECD 국가 중 하루 평균 수면 시간이 최하위권이다. 대한민국의 경제 규모를 고려하면 만성적인 수면 부족은 간과할 수 없는 사회적 문제다. 비알랩은 AI 기술과 생체 신호 분석을 통해 더 나은 수면을 설계하는 기업이다.

GUEST EDITOR 이기원 PHOTOGRAPHER 박용빈

수면 부족은 현대 한국인의 고질병이다. 하루 평균 수면 시간이 OECD 국가 기준 8시간 22분인 데 반해 한국인은 7시간 41분에 불과하다. 직장인으로 한정하면 그 시간은 더욱 짧아진다. 절대적인 시간도 모자라지만 질적인 면은 더 심각하다. 대한수면의학회에 따르면 한국인의 수면 만족도는 5점 만점에 2.87점에 그친다. 수면의 양과 질 모두에서 최하위권에 속하는 건 충분히 심각한 문제다. 이런 상황에서 AI 기술로 수면 문제를 해결하려는 기업이 등장했다. “저희는 자연에서 주로 발견되는 ‘동기화 현상’을 수면 개선에 적용합니다.” 슬립 테크Sleep Tech 기업인 비알랩 이종민 대표의 설명이다. 동기화 현상이란 콘서트장에서 관객들의 박수가 하나의 리듬으로 맞춰지거나, 서로 다른 속도로 움직이던 메트로놈이 같은 진동판 위에서 점차 동일한 리듬을 찾아가는 현상을 말한다. 이런 원리를 인체의 심장박동에 적용한 알고리즘이 비알랩의 핵심 기술이다.

서울대 생체 신호 정보 처리 연구실에서 석사 학위를 받은 이 대표는 미국 반도체 회사와 벤처 캐피털을 거쳐 2021년 비알랩을 창업했다. “연구실에서 ‘두 사람이 한 침대에서 자면 심박 수가 동기화된다’는 가설로 연구를 시작했는데, 이를 실제로 입증했어요. 2019년 미국수면의학회의 <슬립Sleep> 저널에 게재될 만큼 의미 있는 연구였죠. 동기화 현상은 깊은 수면을 강화하고 기억력 향상에도 큰 도움을 줬습니다.” 비알랩이 개발한 ‘벤자민’ 매트리스에는 특별한 센서가 내장되어 있다. 이 센서는 수면 중인 사람의 심박을 실시간으로 측정하고, 이보다 약간 느린 진동 자극을 제공한다. 2개의 메트로놈이 서로의 리듬을 맞춰가듯, 우리 몸도 센서가 보내는 느린 진동과 자연스럽게 동기화된다. 그 결과 심장박동이 안정되고 호흡도 차분해지면서 부교감신경계가 활성화되는 원리다. 더 빨리, 더 깊은 잠에 빠져들 수 있게 되는 것. 비알랩의 임상 시험 결과 수면 진입 시간 31% 감소, 깊은 수면 단계 16% 증가, 수면 중 각성 현상 24% 감소 등 주요 지표에서 유의미한 개선 효과를 보였다. 앱을 통해 수면 데이터를 확인하는 것도 물론 가능하다. 문제는 센서가 내장된 매트리스 자체를 직접 서비스하다 보니 초기 가격이 조금 높다는 것. 벤자민 싱글 사이즈 매트리스는 대략 월 7만원 대에 구독 서비스 형태로 제공된다. “기존 슬립 테크 기업에서 만든 제품들은 몸에 차고 자야 하는 웨어러블 기기 위주였습니다. 하지만 무언가를 ‘차고 잔다’는 건 굉장히 불편한 일이죠. 충전도 필요하고 몸에 꽉 조이지 않으면 정확도도 떨어집니다. 매트리스 일체형이 사용자 입장에서 가장 효율적인 방법이었어요.”



스타트업 대표들 중에는 불면증을 호소하는 이들이 많다. 매출과 성장, 투자자들의 압박 속에 스트레스가 과중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종민 대표는 “깊은 수면이 부족하면 뇌 건강에 치명적이라는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기에

매일 최소 7시간은 무조건 잔다”고 전했다.


연구실에서 수많은 수면 데이터를 접했을 그에게 묻고 싶은 게 있었다. 한국인만의 독특한 수면 패턴이 있을까? 한국인은 스트레스 지수가 유독 높지 않나? 이건 수면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 하지만 이 대표는 한국인이 스트레스에 많이 노출된 것은 사실이지만 오히려 수면 환경 자체는 괜찮은 편이라고 말했다. “북유럽 국가들만 해도 이맘때면 해가 뜨지 않아서 수면 문제가 심각합니다. 그래서 역설적으로 핀란드 같은 국가가 슬립 테크 기술이 가장 발전한 국가 중 하나기도 하죠.”

비알랩은 내년 초 일본 진출을 시작으로 글로벌 시장 확장을 준비하고 있다. 더 가벼운 전기장판 형태의 모듈형 제품 개발과 함께 멜라토닌 분비 개선 솔루션, 헬스케어 플랫폼이나 자동차 회사와의 협업도 진행 중이다. 스마트 가전업체 등과 협업하면 신체 상태에 맞춰 에어컨 온도를 조절한다거나, 가습기 강도를 조절하는 일도 가능하다. 신체가 보내는 신호들을 분석할 수 있는 원천 기술이 있어 가능한 일이다. “비알랩의 목표는 수면의 중요성을 알리고, 사람들이 더 깊고 효율적인 수면을 취할 수 있도록 돕는 겁니다. 수면은 건강과 직결되어 있어요. 치매도 수면 부족이 주요 원인 중 하나죠. 뇌의 노폐물은 수면 중에만 처리되거든요. 저희는 단순히 제품을 파는 게 아니라, 사람들이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도록 돕고 싶습니다.”

목록으로

Related articl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