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원서 기능적 사물에 잠재된 미적 가능성을 탐구한다. 산업 자재나 공정과 같이 드러나지 않는 지점에서 의외의 감각적 성질을 발견하고, 새로운 매체나 공간, 담론과 연결하며 고유한 내러티브와 조형언어를 구축해 이를 전시를 통해 발언한다. 2024년 서울공예박물관에서 개인전 <얕은 시간>을 열었고, 아름지기에서 열린 단체전 <방房, 스스로 그러한>에도 참여했다.
일상에서 예술의 실마리를 포착하는 명민함. 무릇 아티스트라면 필히 갖춰야 할 덕목이 아닐까. 건축, 산업 재료를 작업의 주 소재로 삼는 최원서는 이를 충실히 이행하는 작가다. 기성 산업 재료나 기계 부속품같이 용도가 명확히 부여된 것들에서 본래의 용도 외적으로 쓰일 여지를 발견한 다음, 본래의 기능은 배제한 채 소재의 이색적 면모만 부각해 작품화하기 때문. 을지로에서 우연히 본 알루미늄 프로파일의 절단면을 보고 ‘기하학적이다’라는 인상을 받은 작가는 순간을 그저 흘려보내지 않았다. 알루미늄 프로파일에 여러 규격이 있다는 것은 물론, 호환되는 부속품 역시 다양한 것을 알게 됐고, 이것을 작업의 소재로 삼았다. 이후 어떻게 하면 단면의 문양을 더욱 기하학적인 형태로 잘 드러낼 수 있을지 연구하는 것과 더불어 단면의 마감 처리나 부속품 간 결합 방식도 다각화했다. 그 결과, 화려한 문양이 자리한 아트 퍼니처 시리즈 ‘패턴 오브 인더스트리얼’이 탄생했다. 독특한 점은 가구의 문양이 전통 건축 속 단청이나 이슬람 사원 건축에 적용되는 아라베스크 등을 연상케 한다는 것. “관람객들 중 상당수가 전통적인 요소를 가미한 가구로 받아들이더군요. 의도한 바가 아니었는데, 작품이 관람객의 개별적 경험과 문화적 배경에 의해 색다르게 읽힌 거예요. 기계나 건물 등에 쓰이는 현대적인 재료에서 작품의 시작점을 설정했는데 말이죠. 이런 면이 아이러니하면서도 흥미로웠습니다.” 작가는 기묘한 모순 역시 자양분으로 삼았다. 산업 재료로 만든 작품을 나무와 흙으로 이뤄진 한옥에 놓아두기도 하고, 소재는 동일하게 사용하되 이를 전통 건축의 부속 형태로 제작하는 등 대범한 시도를 감행한 것이 대표적. 소재의 잠재적 면모를 끌어내는 것뿐 아니라, 이를 작품화해 의외의 장소에 배치하며 새로운 내러티브를 부여한 셈이다. 지난 11월, 아름지기에서 열린 전시 <방房, 스스로 그러한>은 작가의 행보를 포착할 수 있는 자리였다. 산업 재료로 만든 자신의 작품을 한옥에 배치하면서 공간을 이루는 건축 요소 또한 작품으로 승화했다. ‘기하 문살’과 ‘기하보아지’ 등의 작품은 문창살, 기둥과 보를 이어주는 건축 부자재인 보아지의 형태적 특징을 각각 반영해 알루미늄 프로파일로 제작한 것. 작품의 아이러니를 한 단계 확장해 전통과 현대를 아우르는 한국 주거 문화의 새로운 적용 가능성까지 모색했다.
가구가 뿜어내는 강렬한 인상으로 인해 섣부르게 최원서 작가를 단순한 가구 제작자로 인식할 수도 있겠지만, 그는 공예적인 접근법을 기반으로 한 시각 예술 프로젝트에도 적극적이다. 지금껏 선보인 세 번의 개인전만 보더라도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각 전시의 구성 형태나 작품의 소재, 표현법이 표면적으로 확연히 달라 보이는 이유는 폭넓은 작업 영역에 도전하겠다는 결심의 흔적이기 때문. 이를 두고 작가는 이렇게 말했다. “가구 역시 작품으로 읽힐 여지가 있지만, 기능성을 지닌 사물이기에 작가로서 온전히 표현의 장을 펼치는 데 제약이 있습니다. 아트워크로 분류한 작품과 가구 모두 동일한 이야기를 품고 있고, 같은 방법론으로 전개한 결과물이죠. 두 카테고리 간에는 어떠한 위계도 없어요. 다만 작가로서의 자유와 메시지에 몰입하기 위해 조각, 설치 등 조형 작업도 계속 선보이려 합니다.” 2022년부터 폐비닐과 3D 프린팅으로 만드는 ‘퇴적’ 연작을 선보여온 점이나 적동을 활용한 작품 ‘멍’ 등을 보면 쉬이 파악할 수 있다.
최원서의 작업 영역은 향후에도 더욱 폭넓어질 예정이다. 작가는 조각과 입체, 설치 작품의 방식과 조형성에 대한 탐구를 심화하는 동시에 ‘패턴 오브 인더스트리얼’ 시리즈의 기하학적 문양을 탁본으로 만드는 등 기존 작업의 변주에도 박차를 가할 것이라 밝혔다. “예전에는 여러 예술 장르를 횡단하는 작가가 되겠다고 말하기도 했어요. 각 매체를 존중하고 여러 분야에서 고루 인정받는 아티스트로 거듭나겠다는 의미죠. 머무르지 않고 새로운 것을 창작하는 사람이 되겠다 말하고 싶습니다. 어릴 적부터 제게 귀감이 된 어른들은 모두 자신만의 창작 세계를 지닌 분들이셨거든요. 저 역시 그런 사람이 되고 싶어요.”
INSPIRATION IN LIFE
기능적 사물에 잠재된 미적 가능성을 탐구하는 최원서 작가의 일상을 구성하는 것들.
아름지기 통의동 사옥에서 열린 단체전 <방房, 스스로 그러한>. 전통 건축의 구조와 형태, 소재 등 3가지 요소의 조화에서 은은하게 드러나는 한국적 미를 탐구하는 전시에 최원서 작가의 작품 역시 자리하고 있다. 전시장 좌측 상단에 지붕을 지지하는 기둥과 벽면을 연결하는 작품 ‘기하보아지’가 보인다.
경기도 수원에 자리한 최원서 작가의 작업실에는 앙증맞은 형태의 모크업이 곳곳에 놓여 있다. 아트 퍼니처를 만드는 이답게 컬러 포인트가 있는 의자 모크업 역시 작업실의 키 인테리어 오브제로 자리하고 있다.
최원서 작가의 스케치 노트. 가구는 물론, 조각이나 입체 등 조형성을 탐구하는 작품을 주로 제작하는 그에게 필수적인 아이템이다.
‘패턴 오브 인더스트리얼’ 시리즈 작품 중 하나로, 알루미늄 프로파일에 패브릭을 접목한 점에 눈길이 간다.
작품 스케치와 재료가 다닥다닥 붙어 있는 무드 보드가 작업실 한쪽 벽면을 차지하고 있다.
‘퇴적’시리즈가 만들어지는 모습. 폐비닐을 재료로 사용하며 3D 프린팅 작업을 통해 완성된다.
개인전 <생동>에서 선보인 적동 소재의 작품 ‘멍’. 최근 농구를 하다 왼쪽 발목을 크게 다쳐 복사뼈 주위에 멍이 든 모습을 보고 다시 한번 이 작품을 떠올리게 됐다고 작가는 덧붙였다.
산업 재료를 주재료로 삼다 보니 작가의 작업실 한편에는 가공 및 재단을 위한 각종 설비들이 구비되어 있다. ‘바르게 살자’라는 타이포그래피를 새긴 작품 역시 ‘퇴적’ 시리즈 중 하나다.
프라이탁 가방을 모으는 취미가 있다.
산업 소재를 재활용해 만든 업사이클링 아이템으로, 강렬한 색감이 포인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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