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왼쪽부터) 와인메이커 비비아나 곤살레스 라베, '이타닉가든' 손종원 셰프, 김성국(Nathan Kim) 총괄 소믈리에.
지난 12월 12일, 콜롬비아 유일의 와인메이커 비비아나 곤살레스 라베Bibiana Gonzalez Rave가 방한해 조선팰리스 ‘이타닉가든’에서 펼쳐진 와인 페어링 디너 행사에 참석했다. 콜롬비아는 와인과는 먼 나라라 누군가에게는 비비아나의 와인이 조금은 생경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프랑스에서 와인을 공부한 뒤 캘리포니아에 정착해 제작한 비비아나의 와인은 최근 10년 사이 캘리포니아를 대표하는 와인으로 자리매김했다. 우아하고 풍부한 과일 향을 지닌 ‘카틀레야 시라’(2014)가 캘리포니아 시라를 선호하지 않는 것으로 알려진 로버트 파커에게 97점을 받은 것이 대표적 사례. 비비아나와 이타닉가든의 만남은 필연 같은 우연에서 시작됐다. 2024년 봄 방한했을 때 그의 마지막 일정이 이타닉가든이었다고. “인생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식사 중 하나였어요. 환상적인 요리, 디테일한 서비스 등 상상 그 이상이었습니다. 저희 와인을 즐길 수 있는 디너파티가 열린다면 황홀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요. 이후 김성국 총괄 소믈리에가 우리 와인을 레스토랑에서 선택했고, 조선호텔 그룹 110주년 기념행사에서도 공개했더라고요. 그래서 비비아나 와인과 함께하는 서울의 밤을 이타닉가든에서 개최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이날 디너 행사에선 총 7종의 와인이 소개됐다. ‘쉐어드 노트 소비뇽 블랑 레 피에흐 끼 데씨덩Les Pierres Qui Decident’ (2012/2022)과 ‘쉐어드 노트 소비뇽 블랑+세미용 르 르쏭 드 메트흐Les Lecons de Maitres’(2012/2022) 그리고 ‘카틀레야 템트리스 샤르도네’(2021), ‘카틀레야 퀴베 넘버 1 피노 누아’(2021), ‘카틀레야 더 가디스 피노 누아’(2021)가 바로 그것. 테이스팅에선 쉐어드 노트 2종을 10년이란 시간을 사이에 두고 버티컬로 진행한 점이 특히 인상적이었다. 이는 쉐어드 노트가 시간을 견딜 수 있는 품질로 개발됐기 때문이라고. 여기에 비비아나는 다음과 같이 덧붙였다. “쉐어드 노트는 농도와 산도가 높은 까닭에 병에서 더 숙성하면 풍미가 깊어지는 장점이 있어요. 2012년산은 저희의 첫 빈티지로, 비비아나의 와인이 어떻게 발전했는지, 오늘날 생산하는 와인과 어떻게 개성이 다른지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실제 와인을 음미해보니 공통적으로 풀 향기를 유지한 채 2012년엔 통통 튀던 산미가 2022년엔 중후한 신사의 여유로움으로 탈바꿈한 게 느껴졌다. 참고로 ‘르 르쏭 드 메트흐’는 세미용 품종 덕분인지 다소 진한 텍스처를 자랑했다.
(좌) ‘쉐어드 노트 소비뇽 블랑 레 피에흐 끼 데씨덩’ (2012)에 페어링한 주전부리(부각, 잡채 등).
(우) ‘쉐어드 노트 소비뇽 블랑 레 피에흐 끼 데씨덩’ (2022)에 페어링한 묵은지 & 능성어.
흥미롭게도 7종의 와인을 지역별로 구분하면, 웨스트 소노마 코스트에서 만든 ‘카틀레야 더 가디스 피노 누아’를 제외하고, 모두 러시안 리버 밸리에서 생산한 것이었다. 지도만 봤을 때는 서로 지근거리에 있어 어떤 차이를 보여줄지 궁금했던 게 사실. 이에 관해 비비아나는 이렇게 설명한다. “제가 추구하는 와인 스타일에는 몇 가지 특징이 있어요. 먼저, 모든 것이 시작되는 테루아르를 존중하는 것으로 품종, 헥타르당 포도나무 수, 계절에 맞춘 농사법 등을 맞춤화합니다. 다음으로, 산도나 질감 등에 집중해 모든 와인에서 빈티지 고유의 개성을 드려내려고 해요. 저는 보디감과 우아함을 동시에 갖춘 와인을 사랑하기에 러시안 리버 밸리와 웨스트 소노마 코스트를 AVA(American Viticultural Area: 미국의 공식 포도 재배지 구역)로 정했습니다. 러시아 리버 밸리는 부드럽고 풍만한 질감을, 웨스트 소노마 코스트는 긴장감과 미네랄감, 때때로 높은 산도를 제공하는 것이 매력적이죠. 참! 저는 나파밸리와 산타 루시아 하일랜드에서도 와인을 생산한답니다.”
현장에서 비비아나 와인과 환상적인 궁합을 보인 존재가 있었으니, 이타닉가든 손종원 셰프의 음식이다. 비비아나 와인은 꽃 내음의 여운이 깊은 것으로 유명한지라, 처음엔 한식과 어울릴 수 있을지 물음표가 붙었다. 하지만 기우였다. 입안에서 와인과 식재료가 각자 개성을 조금씩 양보하고 조화를 이뤄 혀끝이 풍미로 가득했으니까. 당시 손 셰프는 ‘쉐어드 노트 소비뇽 블랑 레 피에흐 끼 데씨덩’에는 부각, 잡채 등의 주전부리와 묵은지 & 능성어를, ‘쉐어드 노트 소비뇽 블랑+세미용 르 르쏭 드 메트흐’에는 감태국수와 캐비아 & 잔다리 두부를, ‘카틀레야 템트리스 샤르도네’에는 코다리찜을, ‘카틀레야 퀴베 넘버 1 피노 누아’에는 삼계탕을, ‘카틀레야 더 가디스 피노 누아’에는 한우와 구운 더덕을 매칭했는데, 이를 맛본 VIP 고객과 소믈리에 테이블에선 연신 감탄사가 들려왔다. 이번 페어링의 비결을 묻는 말에 손종원 셰프는 “와인의 꽃 내음은 발효 장류나 제철 나물과 잘 어우러질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예로, 소비뇽 블랑의 스파이시한 노트를 표현하려 간장과 청양고추를 곁들이는 식으로요”라며 셰프의 킥을 넌지시 전달했다.
현재 비비아나는 프리미엄 브랜드 ‘카틀레야Cattleya’, 식탁에서 편히 마실 수 있는 ‘알마 드 카틀레야Alma de Cattleya’, 와인메이커인 남편과 노하우를 공유해 제작한 ‘쉐어드 노트Shared Notes’ 3종을 선보이고 있다. 10여 년의 짧은 역사이지만, 다양한 레이어를 통해 더 많은 사람과 자신의 철학과 열정을 나누겠다는 일종의 포부로 다가온다. 이런 비비아나 와인을 누구와 나누면 좋을지 김성국 총괄 소믈리에에게 물었다. “전통적인 프랑스 양조 철학과 신세계의 창의성이 만나 탄생한 비비아나 와인은 욕심쟁이예요. 한 잔에 과거와 현재, 미래를 전부 담아내려 하거든요. 소믈리에에게는 자칫 산만해질 수 있는 콘셉트를 높은 퀄리티로 묘사한, 마치 전통 예술을 이해한 작가의 모던 퍼포먼스 같아 큰 재미를 줍니다. 이 와인은 꽃향기와 경쾌한 산미가 음식을 돋보이게 하는데, 강한 미국 와인에 상호보완적인 마리아주보다는 전통적인 방식에 따라 같은 방향성으로 나가는 마리아주를 추천합니다.”
조선팰리스
이타닉가든에서 열린
와인 페어링 디너 행사에선
총 7종의 와인이 소개됐다.
사진: 보틀샤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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