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물 전면에 세워진 차양 벽체는
수평성을 배제한 까닭에
골프선수의 정교한 스윙이 연상된다.
브랜딩, 하나로 수렴하라
최근 우리가 미디어와 사무실, 혹은 집 근처 매장에서 자주 보고 듣는 단어는 무엇일까. 추측건대 대다수가 ‘브랜딩’을 대답할 것이다. “이렇게 브랜딩 해보세요”, “당신을 브랜딩해드립니다” 등의 문구는 종종 일상의 인사처럼 들리기도 한다. 브랜딩이란 개념은 흥미롭다. 머리로는 이해되지만, 막상 풀어내려고 하면 단번에 입이 떨어지지 않기 때문. 브랜딩에 관한 다양한 서적과 사전 내용에 따르면, 브랜딩은 ‘판매자나 개인이 시장을 통해 제공하려는 제품이나 서비스를 특정 짓고, 경쟁 상황에서 차별화하기 위해 만든 네임, 로고, 상표, 패키지’로 정의된다. 이는 브랜딩이 소비자들에게 제품이나 서비스가 갖는 특징을 알려주는 일종의 고유명사라는 뜻이기도. 그렇다면 실무 일선에 있는 전문가는 브랜딩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을까. 현대카드의 온라인 강연 프로그램 ‘오버 더 레코드’에서 정태영 부회장은 이렇게 말한다. “기업과 상품이 가진 방향성, 존재 이유, 철학 등을 보여주는 것이 브랜딩입니다. 물건을 직접적으로 판매하는 영업과 상품을 개발하고, 가격을 정하고, 판촉을 기획하는 마케팅보다 장기적이고 모호한 개념이라고 할 수 있죠. 브랜딩에서 가장 핵심은 ‘동기화Synchronization’예요. 즉 영업 부서의 소구점, 마케팅, 콜센터의 스크립트, 팸플릿, 폰트 등을 일관되게 하는 것입니다.” 종합하면, 브랜딩이란 어떠한 대상이 지닌 페르소나를 정립해가는 과정인 셈. 여기에 정 부회장은 덧붙인다. “브랜딩은 수식어, 미사여구가 아니에요. 특질을 잡아주는 단어가 브랜딩을 위한 단어입니다. 아름다운 단어를 다 넣으면 아무것도 전달하지 못해요. 가령, ‘파격’이라는 단어는 어떤 가치를 창출하기 위한 도구적 행위이지 회사의 특질은 아니죠. 기업의 활동이 하나의 페르소나로 수렴할 때 시장에서 받아들여집니다.”
자칫 차가운 인상을 줄 수 있는 사옥 로비에는 샌드블라스팅 처리한 유리창을 상부에 설치해 빛을 은은한 간접광 형태로 끌어들였다.
아침엔 검푸른빛을 선보인 파사드는 정오엔 진한 회색이 되었다가 오후엔 황금빛으로 물든다.
서로 다른 물성의 3가지 재료로 둘러싸인 건물 입구는 빛반사가 풍만하게 이뤄져 색다른 볼륨감을 자아낸다. 이진규 대표가 심혈을 기울인 부분이라고.
대담하고 견고하며 관능적인 골프 브랜드 PXG
이와 같은 동기화된 브랜딩으로 눈길을 끄는 기업이 있다. 골프 브랜드 PXG다. PXG를 구성하는 모든 것을 보노라면, ‘단단하고 정밀하다’라는 말이 절로 나온다. 검은색을 강조한 디자인, 고급 소재와 고도의 기술이 만나 탄생한 골프 클럽, 역동적 스윙이 집약된 모양새다. 독특하게도 PXG의 개성은 2022년 완공된 사옥에서도 오롯이 드러난다. 규격화된 모듈로 빨리빨리 지어낸, 스타 건축가가 지은 건물에 브랜드 로고를 설치한 것이 대부분인 우리나라에서 브랜드가 지향하는 바를 이토록 멋들어지게 녹여낸 건축이 또 있나 싶을 정도다. 이에 관해 PXG 신재호 회장은 “PXG 골프 클럽이 선사하는 최고의 퍼포먼스와 PXG 어패럴을 입었을 때 느끼는 미적 만족감은 ‘볼드Bold(대담한), 솔리드Solid(견고한), 센슈얼Sensual(관능적)’이라는 우리의 정체성을 통해 소비자에게 다가간다고 믿어요. 건축도 예외는 아닙니다. 아무리 현대사회가 온라인 시대라고는 하지만, 도시 위에 굳건히 서서 사람들과 직접적으로 교감하는 채널인 건축은 브랜딩 전략에서 매우 긴요한 위치에 있어요. 이를 구현하기 위해 건축사사무소 머릿돌에이스 이진규 대표와 오랫동안 교감했습니다. 수백 수천 장의 스케치를 그렸고, 심도 있는 대화를 나눴죠. 그 결과 제가 그리던 추상적인 형태의 브랜드 페르소나를 이 대표가 이어받아 물리적인 건축 어휘로 완성해냈습니다.”
강한 모노톤으로 인해 PXG 사옥은 일견 단조로울 듯하지만, 유심히 살펴보면 다채로운 매력을 발견할 수 있다. 아침엔 검푸른빛을 선보인 파사드는 정오엔 진한 회색이 되었다가 오후엔 황금빛으로 물들며, 건물 전면에 똑같은 간격으로 세워진 18개의 차양 벽체(비와 직사광이 들어오지 않도록 폭이 좁은 판을 일정한 간격으로 비스듬히 배열한 것)는 수평성을 배제한 덕분에 골프 선수의 정교한 스윙이 연상된다. 더욱이 서로 다른 물성의 3가지 재료(특수 유약으로 표면을 처리한 테라코타 패널, 박판 세라믹 타일, 불소수지로 코팅한 알루미늄 패널)로 둘러싸인 건물 입구는 빛반사가 풍만하게 이뤄져 색다른 볼륨감을 자아내기도. 건축사사무소 머릿돌에이스 이진규 대표는 설명한다. “30대 중반을 타깃으로 하는 PXG의 브랜드 페르소나 이미지를 곰곰이 상상해보았어요. 그러다 럭셔리한 블랙 슈트를 팽팽하게 당겨 입은 ‘배대스Badass(거친 멋을 아는 남자)’가 떠올랐습니다. 마치 배우 톰 하디Tom Hardy의 몸짓 같은. 대담하고, 견고하고, 관능적인 젊은 골프 애호가가 힘차게 움직이는 모습이 단번에 떠오르지 않나요?”
차경 수법을 통해 우면산의 전경과 노을 지는 하늘을 감상할 수 있는 야외 테라스.
자연광과 신선한 공기를 얻을 수 있는 선큰 가든.
건축가 이진규의 집요함
PXG 사옥 주변을 천천히 거닐다 보면, 작은 디테일 하나하나에 감탄하게 된다. 어쩌면 건축가 이진규의 집요함에 혀를 내둘렀다는 묘사가 더 정확할지도 모르겠다. 견고하게 조립된 PXG 골프 클럽의 밀도 있는 아름다움을 재현하려 특수 표면 처리한 테라코타 패널과 천연 박판 세라믹 타일, 불소수지 코팅 알루미늄 시트, 마천석 등을 활용한 건 일부에 불과하다. 풍부한 질감이 돋보이는 외장재 패턴은 PXG 의류 제품의 꼬임, 매듭, 솔기에서 영감을 얻었고, 자칫 차가운 인상을 줄 수 있는 사옥 내 로비에는 샌드블라스팅sandblasting(연마재를 분사해 소재 표면을 다듬거나 깎는 가공 방법) 처리한 유리창을 상부에 설치해 빛을 은은한 간접광 형태로 끌어들였다. 심지어는 미니멀리즘 기조를 유지하기 위해 냉난방장치를 벽 뒤에 숨긴 다음, 벽면에 약간의 틈을 만들어 공기가 새어 나오게 하기도. 게다가 앞서 잠시 언급한 것처럼 동일한 소재가 나열된 부분은 한 치의 오차도 없을 만큼 사이사이의 거리가 고르다.
(왼쪽) 건축사사무소 머릿돌에이스의 공동대표 건축가 이진규 사회 흐름에 따라 변화하는 공간의 유형과 기능, 그리고 구축의 논리를 융합하는 것에 몰두하며, 물성이 지닌 가능성을 최적화해 아름다움을 끌어낸다. (오른쪽) 골프 브랜드 PXG의 신재호 회장 골퍼들에게 하이엔드 스타일을 제안해 PXG 제품을 사용하고 입는 골퍼들이 최고의 자신감과 가치를 느끼는 것을 목표로 한다.
“극적인 명확성과 명징함으로 대표되는 건축가 미스 반데어로에Mies van der Rohe를 사사한 김종성 선생님께 많이 배웠어요. 미스 반데어로에는 ‘신은 디테일에 있다’라며 사소하다고 여겨지는 요소까지 품격을 지키려 한 것으로 유명합니다. 그런 그의 유일한 한국인 제자인 김종성 선생님이 건축 기행을 할 때마다 제가 따라다녔으니 영향을 받을 수밖에요. 이는 PXG 프로젝트에 명확히 나타나 있습니다. 건물의 내적인 구성 원리를 외적인 형태와 공간 구축으로 발현하는 ‘구조합리주의’ 건축의 사례를 찾아보시면, 건축이 단조로운 건물이 아닌, 살아 있는 유기체로 다가올 거예요.”
오늘날 브랜딩과 건축은 긴밀한 관계다. 현재 내로라하는 서비스업과 제조업 브랜드가 앞다퉈 공간에 집중하고 있다. 실제 공간에서 보고, 듣고, 만지는 행위가 브랜드와 고객을 정서적으로 연결하는 데 효과적이라는 분석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PXG는 브랜드 정체성을 건축으로 표현한 독보적 사례로 꼽힌다. 물론, 골프 클럽과 의류 등 구체적인 형태가 있는 콘텐츠를 건축으로 확장하는 일이 추상적 개념을 구체화하는 작업보다 덜 까다롭다는 점이 그 배경으로 작용했을 터. 그러나 브랜드 철학을 체화한 공간을 조성하는 데에는 건축가의 역량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건축은 긴 시간과 복잡한 과정을 수반하기에 도중에 방향을 잃거나 좌초되는 일이 잦다. 그렇기에 건축가는 단순 설계를 넘어 브랜드의 페르소나를 건축적 언어로 해석하고 조화롭게 담아내는 것이 필수다. 이를 성공적으로 수행한 결과물이 바로 PXG 사옥이다. 사옥 안팎을 넘나드는 것만으로도 고객과 조직 구성원이 브랜드의 방향성과 철학을 인식할 수 있도록 이진규 대표가 PXG 프로젝트를 진두지휘했기 때문. 건축이 1차원적 디자인을 넘어 브랜딩을 극대화하는 강력한 도구임을 보여준 PXG 사옥을 지금 우리가 주목해야 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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