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럭셔리> 2025년 1월호

MICA : ONE EXCEPTIONAL EYE

세계적인 경매 회사 크리스티가 2024년 하반기를 미카 에르테군Mica Ertegun의 개인 컬렉션 경매로 마무리했다. 초현실주의 걸작, 러시아 모더니즘, 데 스테일De Stijl 그리고 한국 고미술품인 이택균의 ‘책거리 10폭 병풍’에 이르기까지. 스타일리스트이자 자선가로서 한 세기를 풍미한 안목을 지녔던 미카 에르테군의 삶과 컬렉션의 일부를 소개한다.

GUEST EDITOR 박지혜


미카의 유일한 한국 고미술 소장품인 이택균의 ‘책거리 10폭 병풍’이 걸려 있던 뉴욕 타운하우스 모습.

이 작품은 크리스티 뉴욕 경매를 통해 64만2600달러(약 9억2800만 원)의 가격에 낙찰되었다.

병풍 아래 오른쪽에 놓인 의자는 작가 잉그리드 도나의 ‘Caryatides, Chaise Longue’다.

© Christie’s Images Ltd. 2024


“크리스티에서 미카 에르테군의 컬렉션을 선보이게 되어 영광입니다. 전 세계에서 록펠러센터를 찾아와 그의 작품을 보고 감탄하는 방문객들의 반응을 볼 수 있어 기쁩니다. 오늘밤의 수익금은 그의 안목을 증명하는 결과입니다.” 크리스티 뉴욕의 회장 마크 포터는 ‘Mica: The Collection of Mica Ertegun Part I’ 경매가 끝난 이후 이 같은 소감을 남겼다. 2023년 미카 에르테군의 사망 후, 1년 가까이 기획한 이 경매는 미술품에 집중된 11월 19일과 20일의 경매, 그리고 앤티크 가구 및 소품 등에 집중한 12월 13일의 경매까지 총 3회에 걸쳐 진행됐고, 총 낙찰가 1억9420만 달러(약 2788억 원)를 기록하며, 한 세기를 풍미한 개인 컬렉션으로서 의미 있는 결과를 남겼다.


  앤디 워홀이 촬영한 미카 에르테군의 폴라로이드 사진.

Andy Warhol(1928-1987), ‘Mica Brtegun signed by Mica Ertegun(lower right)’; dated ‘Feb. 1973 (on the reverse) unique polaroid print 10.7×8.9cm, Executed in 1973, © Christie’s Images Ltd. 2024


미카 에르테군은 누구인가? 독특한 이름에서 유추할 수 있듯, 그는 루마니아에서 미국으로 이주한 이민자 출신이며, ‘에르테군’이라는 성을 가진 그의 남편 역시 튀르키예 출신의 이민자였다. 남편은 바로 아흐메트 에르테군Ahmet Ertegun으로, 20세기 레코드 산업의 호황기를 이끈 ‘애틀랜틱 레코드’의 창립자다. 미카 에르테군은 1926년 루마니아에서 태어났지만 전후 고국의 상황을 피해 프랑스와 캐나다 등으로 이주했고, 아흐메트 아르테군을 만난 이후 생을 마감할 때까지 평생 뉴욕을 삶의 터전으로 삼았다. 미카의 삶은 늘 뉴욕 상류사회의 한가운데에 있었다. 이들 부부는 정기적으로 음악, 미술, 문화, 패션계의 유명 인사들을 초대해 파티를 열었으며, 전설적인 패션 에디터 다이애나 브릴랜드, 아티스트 앤디 워홀, 작가 조앤 디디온, 가수 믹 재거 등의 유명한 인물들과 교류했다. (앤디 워홀이 촬영한 미카 에르테군의 폴라로이드 사진 역시 이번 경매에 출품되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에 앞서, 미카 에르테군은 1960~1970년대 뉴욕의 트렌드를 이끈 가장 영향력 있는 ‘데커레이터’였다. 1967년, <보그>의 기고가인 체시 레이너와 함께 인테리어 디자인 회사 ‘맥Mac II’를 설립했고, 뉴욕의 많은 명사가 이들의 확고한 안목에 전적인 신뢰를 보내며 집을 맡겼다. 스스로 밝혔듯, 아트 컬렉팅은 삶의 공간을 꾸미고자 하는 그의 개인적 필요에 의해 시작된 것이었다. “집은 그림에 대한 저의 모든 관점에 영향을 미쳤습니다. 필요에 의해 갤러리에 가서 그림을 수집하기 시작했는데, 집 안에 있는 비어 있는 벽들 때문이었죠. 하지만 그것이 이제는 큰 열정이 되었습니다.” 그가 남긴 말에서 유추할 수 있듯, 그의 컬렉션은 ‘예술품에 대한 맹목적 추종’으로 형성된 것이 아니라 공간, 가치관, 자신만의 미학과 접점이 있는 작품들을 켜켜이 모아놓은 은밀한 보물 상자처럼 느껴진다.



11월 19일 크리스티 뉴욕에서 진행된 경매에서 미카의 소장품 중 가장 높은 가격에 판매된 르네 마그리트의 ‘빛의 제국’.

1억2120만 달러(약 1739억 원)에 판매되며 마그리트 작품의 경매 신고가 및 초현실주의 미술 최고가를 경신했다.

Rene Magritte(1898-1967), ‘L’empire des lumières’, oil on canvas,146×114cm, Painted in 1954, © Christie’s Images Ltd. 2024



데이비드 호크니의 ‘유리 테이블 위의 정물’(1971)이 걸려 있던 미카의 뉴욕 타운하우스 응접실 모습.

David Hockney, ‘Still Life on a Glass Table’, acrylic on canvas, Painted in 1971, © Christie’s Images Ltd. 2024



호안 미로의 회화 ‘아무르’는 이번 경매에 출품된 주요 초현실주의 작품 중 하나다.

Joan Miro(1893-1983), Peinture(Amour), oil on canvas, Painted in 1925, © Christie’s Images Ltd. 2024



아르데코의 미학과 자코메티의 기법을 따르고 있는 현대 작가 잉그리드 도나의 테이블 램프.

Ingrid Donat, ‘Paire de Lampes de Table ‘Ficelle’, Le Modèle Créé En 2002, © Christie’s Images Ltd. 2024



르네 마그리트의 ‘빛의 제국’과 함께 미카의 거실에 자리했던 마호가니 책상.

A German Ormolu-Mountedand Bronzed Mahogany Secretaire, Circa 1815-1820, © Christie’s Images Ltd. 2024



“걸작부터 기능적인 물건에 이르기까지 미카의 집에 있는 모든 것은 정교하고 개인적인 것이었습니다. 에드 루샤, 데이비드 호크니, 호안 미로와 함께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작가의 작품이 나란히 걸려 있고 데 스테일, 퓨리즘, 초현실주의의 정수를 보여주는 작품이 어우러지는 등 여러 문화에 대한 그녀의 관대한 포용력은 컬렉션의 범위에도 반영되어 있습니다.” 크리스티의 20~21세기 미술 담당 부회장 맥스 카터Max Carter는 이렇게 설명한다. 비더마이어 양식의 마호가니 가구 뒤로 걸린 아돌프 고틀리브의 간결한 추상화, 조지 왕조 시대의 테이블과 짝을 이룬 엘즈워스 켈리의 페인팅, 잉그리드 도나의 청동 라운지체어 위로 벽면 가득 펼쳐지는 이택균의 책거리 병풍…. 단순함과 화려함, 시대와 사조를 뒤섞으며, 긴장과 조화를 꾀하는 방식이야말로 미카가 시대를 앞서 추구했던 스타일임을 알 수 있다. 그의 컬렉션에서 또 하나의 특징을 꼽자면, 미술품을 압도하는 방대한 양의 장식미술품이다. 특히 세 번째 경매에서는 19세기 독일의 비더마이어 가구, 일본 에도 시대의 옻칠 함, 파리의 가구 회사 메종 얀센Maison Jansen의 빈티지 가구, 러시아산 은식기까지 현대 장식사의 명작들이 한꺼번에 쏟아져 나왔다. 그가 중요한 순간마다 착용해 여러 사진과 함께 하나의 역사로 남은 주얼리 컬렉션 역시 희소성과 미학적인 면 모두에서 큰 주목을 받으며 의미 있는 기록을 남겼다. 미카의 유일한 한국 고미술품 컬렉션인 이택균의 ‘책거리 10폭 병풍’도 추정가의 42배가 넘는 높은 가격에 낙찰되었다.  

크리스티가 대대적으로 진행한 이번 경매가, 단순히 20세기를 살았던 한 사치스러운 여인의 예술품 잔치로 보이지 않는 이유는 명백하다. 예술과 인류, 그리고 아름다움에 대한 끝없는 열망이 하나의 명백한 기준을 관통하며 빛나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 한 가지 의미를 덧붙이자면, 혼란스러웠던 20세기를 정면으로 부대끼며 살아온 자가 목도한 ‘예술의 흐름’이 그 컬렉션 안에 하나의 의미 있는 ‘사료’로서 생생히 살아 있다는 점이다. 미카의 뜻에 따라 판매 수익의 일부는 자선 활동에 기부될 예정이다. 생전의 미카 에르테군은 옥스퍼드 대학교 인문대학원 장학 프로그램을 포함하여 수많은 자선 활동을 아낌없이 지원한 관대한 후원자였다. 컬렉션의 화려한 면면은 차치하고, 이러한 정신이야말로 후대의 컬렉터들에게 가장 의미 있게 작동할 미카의 유산이 아닐까!



데 스테일 그룹의 창립 멤버였던 화가 조르주 반통겔루Georges Vantongerloo와 테오 판두스뷔르흐Theo van Doesburg,

추상화가 장 엘리옹Jean Helion, 우크라이나 아방가르드를 대표하는 화가 바실 이에르밀로우Vasyl Yermilov 등 1920~1930년대의

미술 사조를 반영한 소규모 작품들을 모아둔 미카의 저택 전경.

© Christie’s Images Ltd. 2024



COOPERATION  크리스티(christi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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