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럭셔리> 2025년 1월호

지나간 시간과 다가올 시간의 사이에서 일라리아 레스타

작년 11월, 오데마 피게는 한국에서 첫 플래그십 오픈을 기념하며 그랜드 오프닝 이벤트를 열었다. 이를 축하하기 위해 서울을 찾은 글로벌 CEO 일라리아 레스타Ilaria Resta를 AP 하우스 서울에서 직접 만났다.

EDITER 이민정

일라리아 레스타  오데마 피게의 최고경영자. 스위스-이탈리아 국적의 그는 이탈리아어, 영어, 프랑스어를 사용하며, 여러 기업에서 주요 부문을 이끌며 26년 이상 국제적인 경험을 쌓았다. 여가 시간에는 테니스와 스키를 즐기며, 스위스 푸넥스에서 남편과 두 자녀와 함께 시간을 보낸다.



1895년, 쥘 루이 오데마와 에드워드 오귀스트 피게가 합심해 고향인 스위스 르 브라쉬 지역에 시계 공방을 설립한 것이 바로 오데마 피게의 시초다. 이후 150년이 흐른 현재 오데마 피게는 독보적인 하이엔드 시계 제조사로 자리매김했다. 매년 새롭게 선보이는 워치는 역사와 전통에 머무르지 않고 한발 더 나아가는 미래지향적인 면이 강한데 이는 시계에서만 느껴지는 건 아니다. 2024년에는 시계업계 출신이 아닌 여성을 글로벌 CEO로 발탁하면서 또 한번 선구적인 면모를 보였다. 이 주인공이 바로 일라리아 레스타다. 올해로 부임한 지 2년 차인 그는 오데마 피게의 창립 150주년을 책임지는 막중한 임무를 맡게 됐다. 중요한 기로에서 선봉에 있는 그를 AP 하우스 서울에서 마주했다. 상냥한 미소로 인사하는 그녀의 손목에는 작년 6월 밀라노에서 공개한 ‘로열 오크 미니’의 로즈 골드 모델이 채워져 있었다.



청담동 패션 거리에 자리한 오데마 피게의 플래그십 스토어. 내부는 물, 불, 나무, 흙, 금속의 요소를 활용해 공간 곳곳을 구성했다.


다시 만나 반갑습니다. 작년 6월에 밀라노에서 열린 <상상 그 너머의 세계: 소재를 성형하다> 전시 때 인사하고 5개월 만이군요. 그때는 AP 하우스 밀라노에 있었는데, 지금은 AP 하우스 서울에 있네요.

그때 있었군요! 밀라노와 비교해서 어떤가요? AP 하우스 서울은 스위스의 향기와 한국의 정서를 잘 융합하고 싶었어요. 플래그십 스토어 외관에 연출한 라멜라lamella 구조물을 통해 모던하면서도 혁신적인 면을 강조했습니다. 밤에는 조명을 활용해 비가 내리는 것처럼 연출했는데 꽤 시적이에요.


아직 플래그십 스토어를 방문하지 않은 <럭셔리> 독자들을 위해 공간에 대해 보다 자세히 소개해주세요.

오데마 피게의 본고장인 스위스 발레 드 주를 고스란히 옮겨오고 싶었어요. 총 6층으로 이루어진 플래그십은 부티크와 AP 하우스 그리고 고객 서비스 센터로 구성되어 있어요. 층마다 테마를 다르게 했고 물, 불, 나무, 흙, 금속의 요소를 활용해 공간 곳곳을 꾸몄습니다. 한국에서 이는 오행을 뜻하죠. 스위스에서는 쉽게 접하는 4가지 자연 요소와 시계 제조에서 빠질 수 없는 금속을 의미합니다. AP 하우스 내부는 고객이 집처럼 편안함을 느끼도록 아늑하게 완성했어요. 나무 소재의 벽과 기둥, 흙빛 색조 그리고 난로가 제 역할을 톡톡히 하죠. 이곳에서 시계를 구입하는 목적을 넘어 특별한 시간을 경험했으면 합니다.


2024년 1월에 정식으로 부임해 오데마 피게의 글로벌 CEO가 된 지도 벌써 1년이 넘었습니다.

이전까지는 시계 산업이 아닌 곳에서 대부분의 경력을 쌓았어요. 그래서 부임하고서 1년 동안 오데마 피게를 들여다보고, 전반적인 시계 산업을 이해하는 데 많은 시간을 할애했죠. 매뉴팩처에서 시계를 제조하는 걸 보면 경이롭고 존경심이 들 수밖에 없더군요. 알다시피 하이 컴플리케이션 워치는 개발하는 데만 상당한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장인의 열정 없이는 불가능합니다. 그들 덕분에 지금의 오데마 피게가 존재한다고 생각해요.


직접 부딪혀본 시계 산업 분야는 어땠나요?

갓 부임했을 때는 전 세계 시계 산업의 성장이 피크를 찍고 하향세에 들어서는 초입 단계였어요. 개인적으로 시장이 침체할수록 오히려 기회라고 생각합니다. 우리의 전략을 다시 한번 점검하고 리셋할 수 있기 때문이죠.


어떤 전략인지 알 수 있을까요?

오데마 피게는 오랜 시간 매뉴팩처 중심으로 돌아갔기 때문에 리테일적인 부분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했어요. 시장은 빠르게 변하고 있고 최근에는 ‘젠Z’ 소비자가 등장했죠. 이런 때일수록 고객에 대한 이해가 필수적입니다. 트렌드도 변하고 고객의 니즈도 달라지기 때문이죠. 지금은 이런 부분에 포커스를 맞추고 있어요. AP 하우스 서울을 오픈한 이유이기도 합니다.


오데마 피게는 오랜 헤리티지를 지닌 동시에 동시대적이고 또 미래를 위해 많은 연구 개발을 하는 시계 제조사라고 생각합니다.

과거와 미래 사이에서 균형을 잘 잡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150년의 헤리티지에 자긍심을 느끼지만 그저 향수에 젖어 과거에 기대지는 않을 거예요. 오데마 피게만의 DNA를 바탕으로 진보적인 자세로 나아가려고 합니다.


CEO로서 생각하는 오데마 피게만의 DNA는 무엇인가요?

가장 먼저 소재를 이야기하고 싶어요. 53년 전 로열 오크를 처음 선보였을 때, 럭셔리 스포츠 워치를 스테인리스스틸로 만든다는 게 굉장히 혁신적인 도전이었죠. 골드 못지않은 스테인리스스틸을 구현하기 위해 피니싱이나 디테일 부분에서 완벽에 가깝도록 연구 개발을 거듭했어요. 그 덕분에 꾸준히 발전할 수 있었죠. 이런 강점을 살려서 현재는 하이 퀄리티의 세라믹과 카본을 비롯해 독창적인 샌드 골드를 선보이고 있습니다. 두 번째는 컴플리케이션 워치인데, 특히 슈퍼소네리의 경우 순수한 소리를 내도록 공gong을 재설계하고 사운드 보드를 접목해 소리가 멀리 퍼지도록 구현했어요. 2023년에는 총 23개의 컴플리케이션 기능을 갖춘 ‘코드 11.59 울트라 컴플리케이션 유니버셀’ 워치를 선보여 오데마 피게의 기술력을 입증하기도 했습니다.


최근 아티스트 카우스와 협업한 ‘로열 오크’ 워치를 공개했습니다. 꾸준히 다양한 협업을 선보이는 원동력은 무엇일까요?

지금의 오데마 피게가 되기까지 컬래버레이션이 큰 역할을 했다고 생각합니다. 디자인이나 워치메이킹뿐만 아니라 동시대 문화와도 연계할 수 있다는 점에서 중요하죠. 또 이런 협업을 통해 그동안 한계를 뛰어넘는 발전을 이룬 점도 간과할 수 없습니다. 카우스와 협업한 신제품의 경우, 다이얼을 꽉 채운 입체적인 ‘컴패니언’을 감상하기 위해 시침과 분침을 덜어냈어요. 대신 다이얼 가장자리인 주변부 휠에서 시, 분을 표시하는 시스템을 고안했죠. 이를 실현하기 위해 매뉴팩처는 새로운 무브먼트를 개발하기도 했고요. 단순히 디자인으로만 보여주는 게 아니라 협업을 통해 시계 제작 기술이 한 단계 발전한 셈이죠.


올해는 창립한 지 150년이 되는 해입니다. 많은 준비를 하고 있을 것 같아요.

이제 곧 순차적으로 알 수 있을 거예요.(웃음) 아마도 놀라움의 연속이지 않을까요? 전 세계 곳곳에서 오데마 피게의 150주년을 기념할 예정이에요. 과거에 대한 오마주와 미래지향적 사고가 결합된 스페셜 에디션도 준비 중입니다. 여러 번에 걸쳐 선보일 예정이니 기대해도 좋습니다.


마지막으로 오데마 피게가 생각하는 ‘럭셔리’란 무엇인가요?

단순히 고가를 강조하기보단 눈에 보이지 않는 부분까지 심혈을 기울여 수작업으로 제작하는 장인 정신과 가치야말로 오데마 피게가 보여줄 수 있는 진정한 럭셔리라고 생각합니다.



COOPERATION  오데마 피게(543-29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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