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악과를 따는 아담과 이브
미켈란젤로의 걸작으로 꼽히는 ‘시스티나 성당Sistine Chapel 천장화’는 ‘빛과 어둠의 창조’, ‘아담과 이브의 창조’, ‘노아 이야기’ 등 창세기의 이야기를 묘사한 9개의 중앙 패널로 구성된다. 그중 뱀은 가운데 부분에서 볼 수 있다. 선악과를 중심으로 한쪽에는 뱀의 형상을 한 사탄에게 유혹당해 선악과를 따고 있는 이브의 모습이, 다른 한쪽에는 에덴동산에서 쫓겨나는 아담과 이브가 그려졌는데, 여기서 뱀은 간교함과 유혹을 상징한다.
자연과 인간의 관계
렌티큘러 표면에 새겨진 이미지는 베트남 남부의 전통 종교 의례인 ‘무어 봉 로이múa bóng rỗi’를 표현한 것이다. 베트남에서 뱀은 용과 같은 혈통으로 여겨지며, 하늘과 땅을 잇는 존재로 인식된다. 이는 평범한 사람들이 천상의 영역으로 승화하는 것을 의미한다고. 베트남 호찌민에서 활동 중인 아를레떼 꾸인-아인 쩐의 작품은 메콩강 삼각주를 배경으로 신, 자연, 인간, 자동화 등의 관계를 유희적으로 그려낸다. 더불어 미래지향적 기계화를 바탕으로 자연과 인간세계가 달라지는 모습도 담아낸다. 2024 아트스펙트럼 <드림 스크린>(리움미술관) 출품작이다.
알렉산더 맥퀸의 마지막 컬렉션
포토그래퍼 닉 나이트가 촬영한 알렉산더 맥퀸의 마지막 컬렉션인 ‘플라톤의 아틀란티스Plato’s Atlantis’ 이미지. 모델 하케우 지메르망Raquel Zimmermann 위로 비단뱀이 휘감은 모습이 화제가 됐다. 환경문제에서 출발한 이 컬렉션은 자연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메시지를 전달하는데, 뱀은 생명력, 순환, 재생을 상기시키는 요소로 작동한다.
틀을 깨는 주먹
1970년대 페미니즘 미술을 통해 여성의 권리와 역사를 다룬 것으로 잘 알려진 주디 시카고의 작품. 들어 올린 주먹과 황금색 뱀이 결합된 형태가 단번에 시선을 사로잡는다. 여기서 주먹은 권력과 단결을, 뱀은 그리스신화 속 아테나처럼 강인함과 생명력을 상징하고, 여기에 덧입힌 금색은 부와 번영을 함의한다. 작품은 여성이 사회에서 긴요한 역할을 하며, 불평등과 성 고정관념을 극복해야 한다는 목소리를 피력하는 의의를 담고 있다.
샨 주와 치앙라이에서 받은 영감
3세대 중국계 미얀마 작가 소 유 느웨는 아시아 종교 문화에서 발견되는 ‘나가Naga(뱀의 정령)’를 탐구해 뱀 여신 조각을 제작한다. 특히, 강력한 힘이 있다고 여겨지는 여신 ‘나가 메다우’는 1897년 영국령 옛 버마의 모곡에서 태어난 실제 인물이자 독실한 불교 신자였던 ‘먀 난 느웨’가 신격화된 존재다. 인간과 뱀이 결합한 형상을 묘사한 그의 작품은 국경을 초월하는 믿음의 체계를 탐구한다. 2024 아트스펙트럼 <드림 스크린>(리움미술관) 출품작.
뱀으로 읽는 나의 마음
아직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듯하지만, 곧 무슨 일이 일어날 것만 같은 제임스 울머의 작품은 단순한 형태와 대담한 색상, 그리고 알 수 없는 표정의 얼굴 덕분에 다양한 해석이 가능하다. 마치 앙리 마티스의 작품처럼. 울머의 작품에서 뱀은 단순한 메타포로 한정되지 않는다. 유혹과 지혜, 위험과 재생 등 장면마다 다르게 해석되며, 이 경계 속에서 관람객은 자연스럽게 자신의 감정을 작품 속 인물에 투영하게 된다.
고갱, 미술의 신
폴 고갱의 자화상은 그의 내면세계와 기독교적 사상을 담아낸 작품이다. 황금색 후광halo과 선악과를 연상시키는 사과, 손에 쥔 뱀(유혹과 타락을 상징)은 기독교적 이야기를 암시한다. 또 지옥 불을 연상케 하는 붉은색은 그의 불안정한 정신 상태와 정체성에 대한 고민을 드러낸다. 흥미롭게도 고갱은 자신을 그리스도와 사탄을 넘나드는 존재로 묘사했는데, 이는 자기 내면의 갈등을 드러낸 것일지도 모르겠다.
비난을 사뿐히 즈려밟고
구스타프 클림트의 작품에서 황금 갑옷을 입고 말에 올라탄 기사는 선과 악의 투쟁을 표현한다. 비잔틴 모자이크로 장식된 투구를 보노라면, 투구를 쓴 기사가 클림트 자신을 투영한 이미지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왼쪽 아래를 살펴보면 뱀 한 마리가 길을 가로막고 있는데, 기사는 개의치 않고 앞으로 나아가려는 모양새다. 이를 보노라면, 당시 그의 작품에 가해졌던 외설적이라는 비난과 맞서 싸우려는 클림트의 의지가 강하게 느껴진다.
뭉쳐야 산다
천장에 22.5m에 달하는 뱀 한 마리가 떠다니고 있다. 자세히 보면, 구명조끼 140벌을 연결해 만들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아이웨이웨이의 ‘구명조끼 뱀’은 그리스 레스보스섬에서 난민들이 벗고 간 구명조끼를 활용해 제작했다. 신화에서 허물을 벗는 뱀은 영생을 상징하는데, 이를 통해 작가는 난민들의 절박한 상황과 생존을 위해 감수해야 했던 위험, 연대의 중요성을 예술로 승화시킨 듯하다.
대담한 매력
뱀이 가진 에너지와 생명력을 재해석한 불가리 ‘세르펜티’의 탄생 75주년을 기념해 2023년 기획된 전시. 당시 천경자, 니키 드 생팔, 함경아, 최욱경, 홍승혜, 최재은의 작품이 국제갤러리를 수놓았다. 그중 홍승혜(위)는 시인 쥘 르나르의 세상에서 가장 짧은 시 ‘뱀Le Serpent’의 “뱀, 너무 길다” 구절을 기하학적 이미지로 형상화했고, 불가리가 사랑하는 작가 니키 드 생팔(아래)은 약동하는 뱀의 생명력을 익살스럽게 표현했다.
질투의 화신
오페라와 퍼포먼스를 결합한 마리나 아브라모비치의 ‘Seven Deaths’ 시리즈는 인간의 죽음과 존재의 본질을 탐구한다. 작품은 20세기를 대표하는 디바 소프라노 마리아 칼라스Maria Callas와 연관된 7개의 오페라(라 트라비아타, 토스카, 오셀로, 나비부인, 카르멘, 람메르무어의 루치아, 노르마) 중 여주인공이 죽음을 맞이하는 순간을 재구성했다. 특히 <오셀로>에서 데스데모나는 남편 오셀로의 오해와 질투로 인해 목 졸라 살해되는데, 이 장면을 빗댄 것이 바로 아브라모비치의 목을 감싼 뱀이다.
처절한 몸부림
천경자의 이름을 알린 작품은 ‘생태’(1951)로, 작가는 뱀 35마리를 통해 실패로 끝난 첫 결혼과 가난, 두 가족을 떠나보낸 슬픔을 그려냈다. <불가리 세르펜티 75주년, 그 끝없는 이야기>(2023)에서 공개한 ‘사군도’(1969)도 비슷한 맥락이다. 천경자는 캔버스에 허물 벗는 뱀 4마리를 담아냈는데, 자신의 고통과 슬픔을 씻어내려는 몸짓으로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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