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럭셔리 M> 2024년 12월호

2024 올해의 자동차

2024년 자동차 마니아들의 가슴을 뛰게 만든 신차는 무엇이었을까? 자동차 분야에서 맹활약 중인 콘텐츠 제작자들에게 올해 눈에 띈 새로운 모델과 선정 이유를 물어보았다. 각기 다른 브랜드의 매력만큼이나 흥미로운 7인의 짧은 에세이를 통해 연말을 결산하는 시간.

EDITOR 박이현

PORSCHE TAYCAN  

  자동차 칼럼니스트 조진혁



밀레니엄 팰컨이 하이퍼드라이브에 진입할 때처럼, 나는 중력에서 잠깐 이탈해 체공했다. 도로 풍경이 고무줄처럼 늘어나는 모습을 보았다. 레이스 트랙에서 열린 포르쉐 신형 타이칸 체험 행사에서였다. 최대출력 952마력을 지닌 신형 ‘타이칸 터보S’의 런치 컨트롤은 정지 상태에서 시속 100km/h까지 2.4초 만에 도달하는데, 가속페달을 밟던 시간이 마치 슬로모션처럼 느껴졌다. 중력과 시간에서 떨어져 나가는 기분은 흔히 경험하는 것은 아니다. 특히 소음과 흔들림이 있는 내연기관에서는 상상하기 힘들다. 미끄러지듯 가속하는 EV 스포츠카에서만 가능한 체험이다. 가히 올해의 차로 꼽고 싶다. 터보S가 아니더라도 신형 타이칸은 이전 세대에 비해 우월한 전기차다. 보다 효율적이고 안정적이며 강력하다. 전기차의 가장 중요한 요소인 주행거리가 이전 세대 대비 65% 늘어 최대 500km를 간다. 배터리 역시 이전보다 50kW 증가한 최대 320kW까지 충전이 가능하며, 배터리 충전 시간도 획기적으로 줄었다. 배터리 10%에서 80%까지 급속 충전이 18분 만에 이뤄진다. 안정성을 구현하는 성능도 향상됐다. 전 모델에 에어 서스펜션을 탑재했으며, 옵션이지만 사륜구동 선택도 가능하다. 여기에 포르쉐 액티브 라이드 서스펜션도 적용됐다. 굽이진 구간이나 급가속 시 차체가 한쪽으로 쏠리는 현상을 극복해 실내가 항시 수평 상태로 유지된다. 탑승자에게 가해지는 가속력을 줄여 주행감 또한 편안하다.



ALL-NEW 2024 FORD MUSTANG

  <오토타임즈> 에디터 김성환



반가웠다. 도로 위 SUV가 넘쳐나고 하이브리드와 같은 전동화 파워트레인이 빠르게 시장을 차지하고 있는 지금의 상황에서 포드 ‘머스탱 GT’의 등장은 너무 고마운 존재였다. 각진 차체와 굵은 캐릭터 라인, 근육질 펜더는 변함없는 머스탱의 정체성을 보여주고 보닛과 범퍼에 뚫려 있는 커다란 에어 덕트, 빨간색 브램보 브레이크 캘리퍼, 굵은 4개의 배기구는 바라만 봐도 흥분을 부추긴다. 전통적인 가치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실내는 신형다운 매력을 더욱 키운다. 길쭉한 변속레버와 ㄱ자 모양 전자식 사이드브레이크, 커다란 송풍구와 대시보드 장식까지 옛것을 지키려는 머스탱 정신을 느낄 수 있다. 반대로 커다란 커브드 디스플레이, 언리얼 3D 엔진으로 만든 화려한 그래픽, 주행에 도움을 주는 각종 마법 버튼들은 최신의 기술력으로 무장한 미국 스포츠카의 완성도를 경험하게 한다. V형 8기통 5.0리터 자연 흡기 엔진은 최고출력 493마력, 최대토크 58kg·m를 뿜어내며 주변을 압도하는 강력한 사운드와 정교한 핸들링으로 합을 맞춘다. 심지어 마음껏 뒤꽁무늬를 날릴 수 있는 드리프트 모드와 정지 상태에서 뒷바퀴만 회전시켜 하얀 타이어 연기를 낼 수 있는 마초적인 기능도 들어 있다. 이처럼 포드 머스탱은 요즘 차들과는 사뭇 다른 방향을 가지고 자신만의 영역을 확고하게 구축한다. 묵묵하게 자신만의 길을 가는 것. 머스탱 GT를 보면 미국산 스포츠카의 정신을 엿볼 수 있다. 투박하면서도 섬세하고, 무심한 듯하면서도 사려 깊은 상남자 차 ‘머스탱 GT’는 올해를 빛낸 차로 이름을 남기기에 충분하다.



FERRARI 12CILINDRI

  <환카> 콘텐츠 크리에이터 이광환



“터보엔진은 배기음이 답답해!” 자연 흡기 추종자들의 볼멘소리였다. 그러다 하이브리드와 전기차가 지구를 지키겠다며 앞장섰다. 하지만 하이브리드는 배기량과 실린더 수를 줄였고, 전기차는 부드럽고 조용했다. ‘찐차쟁이’들에게 터보엔진의 아쉬움 따위는 아무것도 아닌 시대가 됐다. 이런 흐름과 그에 따른 감성 상실을 정면으로 거스르는 차가 나왔다. ‘페라리 12칠린드리.’ 이름부터 대놓고 ‘12기통’이다. 6.5리터의 배기량에 자연 흡기다. 12칠린드리의 존재 이유는 첫째도 엔진, 둘째도 엔진이다. 긴 보닛은 실린더 12개를 품기 위한 최소 공간. 뾰족한 콧날과 검게 칠한 A필러는 긴 보닛을 더 길어 보이게 만든다. 불룩 솟은 리어 펜더의 볼륨과 휠 하우스를 가득 채운 21인치 휠, 315mm에 달하는 뒤 타이어 폭은 12기통 심장이 만든 830마력에 대한 암시다. 눈으로 홀렸다면, 이제 귀로 취할 차례. 터보엔진의 답답함도 작은 엔진의 애처로움도 없다. 맹렬하게 치솟는 계기판 바늘이 엔진 회전 한계 9500RPM에 이를 즈음 내지르는 고음은 끝을 알 수 없이 아득하다. 오른발로 가속페달을 밟고 손가락으로 패들 시프트를 튕기노라면, 나는 연주자요, 12칠린드리는 악기, 귀를 타고 전해지는 소리는 음악이다. 12칠린드리가 V12 엔진에 대한 페라리의 마지막 헌정이 될지는 알 수 없으나, 누구라도 타고 나면 똑같은 생각이지 않을까? “V12여 영원하라!”



BMW M4 COMPETITION M XDRIVE CONVERTIBLE

  <모터트렌드> 에디터 주영삼



열린 지붕 사이로 따스한 햇살이 내리쬐고 공기에선 산뜻함이 느껴진다. 제멋대로 뒤섞인 잡념은 머리칼을 어루만지는 바람을 타고 어디론가 흩어진다. 나란히 선 6개의 트럼펫이 연주하는 기분 좋은 진동과 잔잔한 울림으로 오랜만에 여유라는 걸 만끽하고 있다. 새빨간 M 버튼에 손길이 닿을 때까지는 결코 정체를 밝히지 않는다. 아직까지는 이 직렬 6기통 터보엔진이 포르쉐도 두려워할 만한 힘을 잘도 숨긴다. 트리거를 당겼을 때에야 비로소 우리가 상상하고 또 바라는 그 모습을 내비친다. 다리에 힘을 잔뜩 준 상태로 큰 기합 소리와 함께 아스팔트를 박차고 나간다. 미들급이지만 그 동작이 라이트급만큼 날쌔다. 고속에서의 반응도 무하마드 알리의 풋워크를 닮았다. 기어를 올리고 내리는 과정은 흥을 돋운다. 이 순간을 더욱 화려하게 만들고 싶다면 그 어떤 음역대도 소화가 가능한 아티스트를 부르면 된다. 나만을 위한 바워스 & 윌킨스 팀은 바리톤의 저음도, 소프라노의 고음도 자유자재로 낼 수 있다. 잠깐 인상 쓰며 생각해봤지만, 이렇게 달리고 이런 노래를 들려주면서 바람까지 갖춘 차는 떠오르지 않는다. 물론 이 금속 쇳덩이는 결코 쉽게 닿을 수 없는 영역에 있다. 다들 롤렉스를 외치지만 주위에서 흔히 찾아보기 힘든 것처럼. 예전보다 조금 쉬워 보이는 건 시대의 아이콘이 되었기 때문이다. 2024년? 아니, 2025년에도 이곳에 이름을 올릴 것이다. 아니지, 해가 넘어가며 바뀌는 숫자와 관계없이 매번 초대받을 모델이다.



THE NEW AUDI Q8 E-TRON

  <럭셔리> 피처 디렉터 박이현



전기차에 관한 편견이 있었다. 사실 여전히 갖고 있다. 운전자가 무슨 잘못이 있겠느냐마는 전기차에 탈 때마다 제동을 부드럽게 해달라고 간곡하게 요청한다. 여기에 전기차 특유의 가속감을 급격한 차선 변경에 활용하는 운전자까지 만나면, 그날은 온종일 멀미에 시달린다. 하지만 이러한 선입관을 일정 부분 상쇄한 차량이 있으니, 바로 ‘더 뉴 아우디 Q8 e-트론’이다. 브랜드 최초 순수 전기차 ‘아우디 e-트론’의 페이스리프트 모델인 더 뉴 아우디 Q8 e-트론은 아우디 슬로건인 ‘기술을 통한 진보’에 걸맞은 차량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름과 달리, 첫인상부터 날렵함과 스포티함 그 자체다. Q8이란 단어가 주는 오라 때문에 웅장할 듯하나, Q8 내연기관 모델보다는 다소 몸집이 작다. 그런데 무게감 덕분에 되레 고속 주행은 안정적으로 느껴진다. 분명 60km/h라고 생각했건만, 계기판이 100km/h를 가리켜 감탄과 놀람이 함께 찾아왔던 기억이 난다. 차체를 최대 76mm까지 올려주는 어댑티브 에어 서스펜션도 흥미롭다. 일반적으로 배터리가 차량 하부에 자리 잡은 전기차는 험지에 어울리지 않는다고 하나, 이는 이 전기차에는 기우에 불과할 터. 시승 당시 범피 구간을 강하면서 부드럽게 넘어가 황당함에 웃음이 났을 정도다. 그렇다면 이를 외유내강이라 해야 할까, 아니면 ‘단짠’의 미학이라 해야 할까. 어찌 됐든 한 가지 확실한 점은 올해 에디터의 온·오프로드 감성을 동시에 충족시킨 전기차가 더 뉴 아우디 Q8 e-트론이라는 것이다.



NEW MINI COUNTRYMAN

  <에디테인> 콘텐츠 크리에이터 김선관



사실 신형 ‘컨트리맨’은 ‘올해의 차’라기보다 ‘올해의 충격’이다. 그런데 그 충격이 꽤나 신선하다. 우선 ‘미니’ 관점에서 볼 때 크기부터 ‘빅’이다. 지금까지 미니에서 출시한 그 어떤 차보다 크다. 미니의 자랑이던 ‘고카트 필링’의 주행 감각 역시 찾아보기 힘들다. 아니, 오히려 너무 편해 장시간 운전을 해도 피로가 적다. 기존의 미니는 작고 딱딱한 승차감, 빠릿빠릿한 핸들링 덕분에 운전의 재미는 충분했지만, 반대로 그만큼 불편한 차였다. 기자들 사이에서도 “몸이 힘들어서 미니를 못 타겠다”라는 이야기가 어렵지 않게 들려왔을 정도다. 하지만 그런 볼멘소리도 신형 컨트리맨의 등장으로 이제 끝이다. 비록 크기와 승차감에서 미니의 맛이 살짝 떨어지긴 했지만 디자인과 위트는 여전히 미니답다. 실내 한가운데에 자리 잡은 둥근 디스플레이도 그대로다. 그 안에 티맵 기반의 내비게이션을 넣어 자체 시스템 활용도를 넓혔다. 게다가 내비게이션과 전방 카메라를 활용한 증강현실 기술로 초행길도 부담 없이 달릴 수 있다. 또 하나 재미있는 건 운전자가 좋아하는 사진을 디스플레이에 띄울 수 있는 커스터마이징 기능이 들어갔다는 점이다. 가족도 좋고 반려견도 좋고 ‘푸른 산호초’를 부르는 하니의 모습도 좋다. 배경 화면 하나로 실내 분위기가 싹 바뀐다.



LOTUS ELETRE R

  자동차 칼럼니스트 김태영



어느 유명한 영국 요리 전문 식당에 방문했다고 가정해보자. 그런데 웬일인지 갑자기 식당의 철학이 바뀌어 모든 메뉴가 중식이 됐다. 더 놀라운 건 그 중국요리가 엄청난 완성도를 자랑한다는 것. 이런 상황은 처음엔 당황스러워도, 결과가 좋아 결국은 고개를 끄덕일지 모른다. 로터스 ‘엘레트라 R’이 바로 그 예다. 1950년대 로터스를 창립한 콜린 채프먼은 F1에도 참여할 만큼 고성능 경량 스포츠카를 만들기 위해 노력했다. 하지만 중국 지리 자동차가 브랜드 지분의 대부분을 소유한 지금은 회사의 분위기가 다르다. 그 과정에서 탄생한 엘레트라 R은 초고성능 럭셔리 SUV 고객을 타깃으로 한다. 길이가 5m를 넘고 무게는 2700kg이며, 네 바퀴에 전달되는 전기모터의 총출력은 918마력에 달한다. 정지 상태에서 시속 100km/h에 도달하는 시간도 단 2.9초다. 놀라운 것은 성능만이 아니다. 레이어가 여럿 겹친 것처럼 화려한 실내디자인은 단순하면서도 동시에 세부 디테일을 강조한다. 차의 복잡한 기능은 15인치 중앙 디스플레이에서 터치로 쉽게 제어한다. 23개 스피커, 2160W의 오디오는 웅장한 소리를 낸다. 최고급 나파 가죽과 어울리는 스웨이드, 각종 메탈 소재 부품으로 포인트를 준 실내는 완성도가 뛰어나다. 한결 구체적인 목표를 위한 혁신적인 변화. 2024년 우리가 이 차를 주목해야 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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