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럭셔리> 2024년 12월호

“You never walk alone” 엠마 캠벨

도움이 필요한 곳에 의료를 지원하고, 그곳의 현실을 알리기 위해 설립한 비영리단체인 ‘국경없는의사회’. 현재 한국사무소를 이끄는 엠마 캠벨이 말하는 함께한다는 것의 가치.

EDITOR 박이현 PHOTOGRAPHER 김제원


엠마 캠벨  한국에 대한 깊은 관심과 열정, 인도적 구호 활동 분야에서의 광범위한 경력을 가진 아시아태평양 지역 전문가. 국경없는의사회에 합류하기 전, 호주 주요 비영리 옹호 활동 단체, 호주 외무국제개발부 예비 내각 자문역, 캐세이퍼시픽 항공 고위 경영진으로 일했다.



2023년 8월, 국경없는의사회 한국 사무총장에 엠마 캠벨이 부임했다. 비영리단체의 수장은 왠지 유별날 것 같다는 선입견이 있었는데, 직접 만난 그는 호탕함 그 자체였다. 그의 행보도 심상치 않아 보인다. 지난 1년여간 그는 대중과의 적극적인 스킨십을 통해 인도주의, 기부, 후원 등의 단어를 친숙하게 만드는 데 앞장서 왔다. 덕분에 국경없는의사회가 무슨 일을 하는지, 어떻게 해야 지구 반대편에 있는 누군가와 온기를 나눌 수 있는지 알게 됐다. 혜택을 받는 입장에서 이젠 공여하는 나라가 된 한국의 국경없는의사회를 이끄는 엠마 캠벨을 만나 함께한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물어보았다.


국경없는의사회는 1971년 프랑스 의사들과 의학 전문 언론인들이 ‘활동’과 ‘발언’, ‘치료’와 ‘증언’을 내세우며 설립한 민간단체입니다. 단체를 설립하게 된 배경은 무엇인가요?

국경없는의사회Médecins Sans Frontières(이하 MSF)는 나이지리아 내전 중 비아프라 지역에서 활동하던 프랑스 의사들이 기아 문제를 목격하며 탄생했어요. 당시 의료진은 이 위기가 단순 자연재해가 아닌, 군사적 요인에서 비롯된 것임을 발견했는데요. 이를 계기로 의료 지원과 동시에 부조리한 현실을 세상에 알릴 수 있는 중립적이고 공정한 단체의 필요성을 느껴 MSF를 설립했습니다.


중립성과 증언의 공존이라···.

가령, 분쟁이 있는 지역에서 의료 활동을 수행할 땐 어느 쪽에도 치우치지 않습니다. 단지 환자들이 겪는 아픔과 민간인에게 가해지는 폭력을 알리는 데에만 열중하죠. 다시 말해, 인도주의적 사명감으로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을 돕는 일에 전념할 뿐입니다.


그럼에도 분쟁을 일으킨 지역에 지원을 나갔을 땐 괴리감이 들 것 같습니다.

MSF의 원칙은 눈앞의 환자가 가해자인지 피해자인지에 관계없이 치료하는 것입니다. 의사가 환자에게 범죄 이력이나 정치 성향을 묻지 않는 것처럼요. 다만, 이와 같은 인도적 지원이 악용될 가능성도 있어 항상 경계하고 있어요. 덧붙이자면, 분쟁 지역에서 국제 인도법이 지켜지지 않는 상황이 안타깝습니다. 병원이 공격을 받으면, 우리의 손길이 절실한 사람들에게 가까이 다가갈 수 없으니까요.


프로젝트 진행 시 MSF의 선택과 현지의 필요 중 어디에 비중을 두나요?

두 가지 모두 고려합니다. 기실 도움이 필요한 지역사회는 외부에 목소리를 내는 것조차 버거운 게 현실이기에, MSF는 상황을 긴밀하게 모니터링한 후 필요한 지원을 제공해요. 예로, 수단은 내전으로 인해 1000만 명 이상의 피난민이 발생했고, 아동 영양실조가 심각해 MSF가 주요 구호단체로 상주하고 있죠. 가자 지구, 미얀마, 시리아, 우크라이나, 예멘 등의 분쟁 지역에도 의료진을 파견했고요. 또, 전염병이 창궐했을 때는 각국 정부의 요청에 따라 프로젝트를 결정하기도 합니다.


지금부터는 사무총장님 이야기에 초점을 맞춰 질문을 드릴게요. 법학, 중국어, 아시아 정치학 등을 전공한 이력을 보면, 국경없는의사회라는 험난한 길이 잘 떠오르지 않습니다.

저는 그동안 제게 주어진 기회와 혜택이 대부분 운에서 비롯됐다고 생각합니다. 항공사에서 경력을 쌓고 학업을 이어나갈 수 있었던 것도 제가 어디서 태어났고 어떤 환경에서 자랐는지에 큰 영향을 받았죠. 시간이 지나면서 이런 불공평함을 둘러싼 고민이 커졌고, 제가 누린 것들을 사람들과 나누고 싶다는 마음이 생겼어요. 조금이나마 공정한 세상을 만들고자 하는 바람을 원동력 삼아 MSF 일원이 되기로 결심했습니다.


의료 전공자가 아닌 비의료인으로서 겪었던 어려운 상황이 있다면?

처음 현장에 나갔던 곳이 에스와티니(구 스와질란드)였습니다. 2012년 당시, 국민 3분의 1이 HIV에 걸릴 정도로 상황이 심각했고, 약제내성 결핵 환자도 늘어나는 추세였어요. MSF 직원들도 HIV를 피해 갈 수 없었습니다. 저는 인사·행정 업무를 맡고 있었는데, 질병으로 고통받고 가족을 잃은 동료들을 보며 가슴이 아팠어요. 그런데도 동료들은 지역사회를 돕기 위해 헌신하더군요. 그때 그 장면이 아직도 뇌리에 깊게 남아 있습니다. 제 인생을 바꿨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죠. 이후 2014년 시에라리온 에볼라 사태 때도 비슷한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의료 지원을 마친 직원들이 본국으로 돌아가서 차별을 받았거든요. 그래서 인사 담당자로서 그들에게 할 수 있는 모든 지원을 아끼지 않았어요.


한국사무소 사무총장으로 취임할 때 ‘꿈의 직장’이란 표현을 하셨습니다. 총장님을 한국사무소로 이끈 한국의 매력은 무엇인가요?

1996년 중국에서 유학하던 시절, 한국인 친구들과 만나면서 한국을 사랑하게 되었습니다. 한국 정치사회 연구로 박사 학위도 받았고요. 저는 제가 누린 것을 사람들과 나누고 싶었는데, 이런 가치에 부합하는 MSF와 한국이 만났으니 ‘꿈의 직장’일 수밖에요. 2023년 8월 부임한 이후, 상상하던 것 이상으로 행복하고 만족스럽습니다. 더욱이 한국인 기부자·후원자의 관대함과 한국 의료진의 헌신에 대해서는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모를 정도로 고마움이 큽니다.


아시아, 나아가 전 세계에 국경없는의사회 한국사무소가 어떻게 이바지할 수 있을까요?

오늘날 한국은 기부와 의료진 파견을 통해 MSF의 주요 활동에 기여하고 있어요. 앞으로는 MSF 내 의사 결정과 리더십에서 보다 적극적인 역할을 하길 희망합니다. 원조 수혜국에서 공여국이 된 한국의 역사적 경험과 발전된 의료 기술을 바탕으로 인도주의적 지원의 범위를 넓히는 것도 우리의 목표이고요.


여행 금지 제도와 여권법을 한국사무소의 장단기 도전 과제로 꼽으시기도 했죠. 이에 대한 논의는 얼마나 진척이 됐나요?

많은 분이 기자나 인도주의 활동가는 여행에 제약이 없지 않느냐고 묻곤 하는데, 이들에 대한 예외 조항은 매우 제한적입니다. 그러나 이렇게 물어봐주시는 것 자체가 어느 정도 진척이 있었다는 신호인 것 같아요. 고통받고 있는 사람들을 돕고 싶지만, 그 과정에 걸림돌이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는 것 자체가 변화의 시작 아닐까요? MSF는 한국 정부가 여행 금지 제도를 시행하는 이유를 잘 이해하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한국 의료 기술이 현장에 크게 이바지할 수 있다는 점에서 예외 조항이 마련되기를 기대하고 있죠. 현재 일부 국회의원들이 이와 관련된 법안을 개정하려고 논의 중이에요.


국제 인도주의 의료 구호단체인 국경없는의사회가 생존의 위협에 처한 사람들을 위해 긴급구호 활동을 펼치고 있는 모습.



2023년 부임한 이후 게임 유저들과의 기부 캠페인, 다큐멘터리 상영회, 프로야구 시구 등을 통해 한국 사람들과 스킨십을 늘려오셨습니다.

한국사무소는 커뮤니케이션 측면에서 크게 3가지에 집중하고 있어요. 첫 번째는 MSF를 잘 모르는 한국 사람들에게 우리의 활동을 소개하는 것, 두 번째는 MSF의 원칙인 공정성·독립성·중립성을 이해시키는 것, 세 번째는 MSF가 대응하고 있는 인도적 위기를 알림으로써 사람들이 이 문제에 관심을 두도록 하는 것. MSF는 기부금과 후원금으로 운영되는 비영리단체이기에 더 많은 사람의 참여가 필요합니다. 물론 MSF여야만 하는 이유는 없어요. 직면한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연대하는 것이 더 우선이니까요.


기부금과 후원금으로 운영되는 단체인지라 투명성에 더 신경써야 할 듯해요.

MSF의 핵심 원칙 중 하나예요. 저희는 기부금과 후원금의 80%를 인도적 지원에 사용하는데, 자세한 내역은 홈페이지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후원자들이 여러 단체를 비교하고, 무슨 일을 하는지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것에 존경을 표합니다. 이는 현장에서 고통받고 있는 환자들에게 의료 지원을 하는 저희의 책무와 맞닿아 있기 때문이죠.


한국인 의료진과 자원봉사자들은 어떤 분야에서 활약하고 있나요?

원조 수혜국에서 공여국이 된 역사, 차별을 겪은 경험, 사람 사이의 정情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해서 그런지, 한국인이 특별하게 잘하는 영역이 있어요. 개인주의 성향이 짙은 유럽인과는 다른 방식으로 공감하고, 사람들을 아우른다고 할까요? 일례로, 나이지리아에서 한 한국인 물류 담당자가 한국 문화를 팀원들과 공유하며 팀워크를 강화해 현장 지원을 성공적으로 마칠 수 있었습니다. 그 덕분에 물류 프로세스가 눈에 띄게 개선됐어요. 마취과와 외과 의사들의 활약도 뛰어나고요. 더불어 팬데믹 기간에는 한국 의료진이 코로나 19 대응에 관한 한국의 성공적인 경험과 지식을 MSF에 공유해주기도 했습니다.


말씀하신 바와 같이 한국은 수혜국에서 공여국으로 전환된 유일한 국가입니다. 최근 소외 열대 질환을 진단하는 기기가 부족해 의료 취약 국가가 큰 어려움에 직면해 있다고 전해지는데요. 한국 의료 분야의 역할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한국 제약 회사들이 의약품 접근성을 높일 수 있다고 생각해요. 특히 소외 열대 질환의 경우 저소득 국가에서 의약품 접근이 어려운 상황인데 한국 제약 회사들은 이를 풀어낼 잠재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제약 회사들과 대화하며 느낀 점은, 그들이 단순히 이윤 추구에 그치지 않고 사회적 기여에 대한 책임감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었어요. 국제백신연구소나 국제보건기술연구기금과 협력해 소외 질환에 대한 의약품 접근성을 높이려 다양한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모습은 고무적이었습니다. 한 CEO는 미국에서 장학금을 받아 공부할 수 있었던 경험을 이야기하며, 그것이 불공정한 기회 문제를 개선하고자 하는 동기가 되었다고 하더군요. 저는 이러한 정신과 노력이 계속 이어지길 원합니다. 이 의식이 진정한 변화를 끌어낼 수 있는 시발점이 될 수 있기 때문이에요.


네이비 셔츠는 브룩스 브라더스. 그레이 울 팬츠는 트렁크 프로젝트.



가까이서 본 한국의 후원 문화는 어떻게 달라지고 있나요? 마지막으로 후원에 관해 사무총장으로서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저희가 활동을 지속할 수 있는 건 후원자분들 덕분입니다. 재정적 후원을 넘어 MSF 캠페인과 행사에 와주셔서 응원과 격려를 아끼지 않는 점에 감사드려요. 앞서 말한 대로 MSF의 일을 신중히 살펴보시고, 후원 결정을 내려주신 후원자분들께 깊이 감동하고 있습니다. 앞으로 기업 후원과 필란트로피philanthropy(개인 고액 후원이나 유산 기부) 등 후원 방식에 관한 인식을 확산하고자 하니, MSF를 통해 온정의 손길을 전해주시길 바랍니다.



HAIR  최서형  MAKEUP  성지안  STYLIST  김수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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