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공예를 위해 헌신해온 재단법인 예올이 지난해에 이어 올해 역시 샤넬과 함께하는 프로젝트를 이어간다. 예올이 기획과 주최 및 주관을 맡고, 샤넬 코리아가 후원하는 2024년 ‘예올×샤넬 프로젝트’는 올해의 장인으로 정형구 대장장을, 올해의 젊은 공예인으로 박지민 유리공예가를 선정했다. 비영리 재단법인 예올은 우리 문화유산을 아끼고 사랑하며, 전통 공예의 가치를 올바르게 성찰해 미래의 새로운 전통을 만들어가는 데 주안점을 두고 있다. 샤넬 역시 쿠튀르의 장인 정신과 공예적 미학을 보존 및 계승하고자 꾸준한 시도를 거듭해왔다는 점에서 해당 프로젝트는 보다 본질적인 가치를 추구하는 데 그 목적을 두고 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샤넬과 함께 본 프로젝트를 통해 사라져가는 우리의 대장간 문화를 새롭게 재탄생시킬 수 있어 뿌듯하다. 시대의 흐름 속에 잊혀가는 전통 공예가 현대와 잘 어우러져 미래의 새로운 전통이 될 수 있도록 한국 공예를 가꾸고 지켜나가겠다.” 재단법인 예올의 김영명 이사장의 말에서도 이 같은 지점을 발견할 수 있다. 예올×샤넬 프로젝트의 핵심은 ‘예’와 ‘올’을 선정하는 데 있다. 과거와 현재를 잇는 장인을 ‘예’, 현재와 미래의 가교 역할을 하는 동시대의 젊은 공예인을 ‘올’로 표현하는 것. 매해 올해의 장인과 올해의 젊은 공예가를 선정해 지속 가능한 전통 공예품을 기획하고 개발하는 동시에 생산 및 배포에 필요한 지원 또한 제공하며 궁극적으로는 한국 공예의 발전과 미래를 도모한다.
“대장장이의 매력은 남이 하지 않는 일을 한다는 것. 그리고 내가 원하는 것을 나의 손으로 온전히 만들어낼 수 있다는 점이다. 반복적이고 지속적인 두드림을 통한 연마와 담금질로 무쇠는 더 아름다워지고 강건해진다. 처음의 마음으로 쇠를 두드리는 우직함만이 비로소 성취를 만들어낸다.” _ 대장장 정형구
올해의 장인과 올해의 젊은 공예인 선정을 기념하며 두 사람의 작품을 감상할 수 있는 전시도 마련했다. 10월 9일까지 열리는 전시 <온도와 소리가 깃든 손 : 사계절로의 인도>는 작년에 이어 양태오 디자이너가 기획과 총괄을 맡았다. 전시명에서 언급된 손은 정형구 대장장과 박지민 공예가의 작품 세계를 관통하는 핵심 단어다. 기존 소재의 물성에 형태적 변주를 시도하고 그 주체 역시 장인과 작가의 손이라는 점에서 해당 전시는 대장장 정형구와 유리공예가 박지민의 작업이 일부 궤를 같이하고 있음을 알 수 있는 자리이기도 하다. 올해의 장인, 대장장 정형구는 대장간들이 사라져가는 현대에도 묵묵히 철을 두드리며 대장간의 맥을 이어가는 이다. 대개 대장장이 공예는 보다 실용성에 초점을 맞추는 결과물을 선보이는 경우가 많다. 인류의 문명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소재인 철을 가공해 일용품을 만드는 작업으로, 농기구부터 문고리까지 일상생활에 필요한 다양한 도구를 제작하기 때문. 대장간을 운영하는 장인어른의 뒤를 이어 대장장이의 길로 들어선 그는 끊임없이 수련해 실력을 갈고닦았으며, 숭례문 화재를 계기로 문화재 복구 및 복원을 목적으로 하는 전통 철물 분야에도 도전해 국가유산수리기능자(철물)를 취득했다. 이번 프로젝트 전시를 위해 정형구 대장장은 철물 공예를 현대의 사계절 라이프스타일에 맞춰 새롭게 제작한 일용품을 선보이며 전통의 소재를 현대적인 감각으로 풀어내는 시도를 감행했다. 대장장이의 작업으로 유명한 원예 도구 외에도 화로, 책받침, 접시 등 실용성은 물론 심미적인 부분까지 고려한 다양한 철물 공예 작품을 만나볼 수 있다.
한편, 올해의 젊은 공예인으로 선정된 유리공예가 박지민은 일상 속의 작은 나뭇잎 혹은 종잇조각 등 자신이 수집한 일상의 사물을 유리 안에서 태우고 흔적으로 남은 그을음과 재를 고스란히 유지한 상태에서 그 위에 새로운 유리판을 소성한 작품을 선보인다. 이러한 작업은 제작 과정에서 내내 발열하던 유리가 완결된 모습을 갖출 때면 차가운 상태를 유지한다는 양면적인 면모에 주목한 결과이기도 하다. 한없이 차가워진 유리 위 남은 재와 그을음은 작가의 작품을 한층 더 고유하게 만든다. 추상에 가까운 형태의 오브제 작업뿐 아니라 생활 속에서 활용도가 높은 공예품으로 작업의 범위를 확장하고 있는 박지민의 작품은 국내를 넘어 세계적으로 주목받을 정도. 철을 두드리고 유리 속에 잔재를 담아내는 두 사람 사이에는 또 하나의 공통점이 있다. 재료 위로 쉬이 사라지지 않는 자신만의 흔적을 남긴다는 것. 대장장이의 반복된 담금질과 두드림, 유리와 유리 사이 재료를 태운 잔여물은 그 상태 그대로 영원히 머문다.
“유리의 모양은 온도와 작가의 마음가짐에 따라 그 형태가 자유로이 변화한다. 때로는 우연적인 아름다움을 발견할 수도, 기대보다 못한 결과물을 마주할 수도 있듯, 이 투명하고도 기묘한 재료는 내게 계속해서 물음을 던진다. 지금의 나는 그저 그 답을 찾아가는 중이다.” _ 유리공예가 박지민
대장장 정형구, 유리공예가 박지민
철과 유리. 쉬이 상생할 것 같지 않은 소재임에도 전시를 보니 분명한 공통분모가 있다고 느껴졌다. 두 재료 모두 자유로이 형태를 변화할 수 있다는 점 그리고 작업 과정에서 협업이 이루어져야 한다는 점에서 말이다. 이러한 소재를 각각 다루는 두 사람이 함께 준비한 예올×샤넬의 프로젝트 전시 <온도와 소리가 깃든 손 : 사계절로의 인도>에 대한 감회가 궁금하다.
정형구 공예 작품을 만든다는 건 전통 철물 작업과는 또 다른 갈래 같았다. 평소 실용적인 면을 강조한 결과물을 만들어왔기에 이전과는 다른 접근법이 필요했다. 잘 해낼 수 있을까 의구심도 들었다. 그러나 분명 내게 찾아온 기회가 대장장이의 맥을 잇고자 하는 몇 없는 제자들에게 새로운 길을 열어줄 것이라 봤다. 박지민 공예가의 작품이 또 워낙 매력적인지라 함께 전시를 꾸릴 수 있어 행복했다.
박지민 기대가 많았다. 특히 젊은 작가들의 경우에는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에 대해서도 많은 고민을 하는데 유리공예 작업을 한 지 10년 차에 천재일우의 기회가 찾아온 것 같다. 특히 정형구 선생님과 전시를 꾸릴 수 있었다는 점도 좋았다. 선생님이 다루는 철이나 내가 만지는 유리 모두 불을 사용하고, 원 소재를 가지고 특정한 형체를 만들어낸다는 점에서 공통점이 있기 때문에 두 재료로 만든 작품이 전시에서 분명 시너지를 낼 것이라 봤다고 생각했다.
이번 전시에서 만나볼 수 있는 작품의 특징이 있다면?
정형구 철이라는 재료에 대한 감상을 차가움과 강인함이라는 단어로 정의할 수 있을 것 같다. 튼튼하기에 지속성이 있는 소재이지 않나. 다만, 이번 전시에서는 철이 지닌 부드러움을 보여주고 싶었다. 철을 향한 선입견을 비트는 동시에 어떻게 생활 속에 유하게 녹아드는지를 느낄 수 있게끔. 테이블웨어나 우산꽂이 등으로 변신한 철의 모습을 바라봐줬으면 한다.
박지민 입체와 평면 작업을 가리지 않는 편인데, 이번 전시에서는 조금 더 ‘입체’에 특히 주목해봤다. 달항아리 형태의 유리 도자나 비정형적인 형태의 화병을 전시장에서 다수 만나볼 수 있을 거다. 달항아리는 예부터 백자로 만드는 경우가 많은데, 백자에는 주로 소나무 가지나 과일 송이를 문양으로 그려 넣곤 했다. 나는 문양에 그려지던 소나무 가지 등을 실제로 태우고 그을린 다음 그 위에 유리를 소성해 자연물의 문양을 그리는 것이 아니라 실제 그 흔적을 담아내봤다. 전통을 나만의 관점으로 재해석한 것이다.
올해의 장인 그리고 올해의 젊은 공예가. 더없이 영예로운 칭호인 만큼 부담감 또한 뒤따를 것 같다. 앞으로 어떠한 마음으로 작업에 임하려 하나?
정형구 대장장이의 길에 들어서고부터 장인어른께서 늘 해주신 말이 있다. “대장장이란 돈을 생각해선 안 된다.” 그걸 지금 조금씩 이해하는 중이다. 사실 더 세월이 흘러야 더욱 체감할 테지만 말이다. 대장장이의 매력은 남이 하지 않는 일을 한다는 것. 그리고 내가 원하는 것을 나의 손으로 온전히 만들어낼 수 있다는 것이다. 더욱이 이번 전시를 통해 나와 같은 길을 걷는 후학들에게 대장장이가 걸을 수 있는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준 것 같아 기쁘다. 아무래도 직업의 명맥이 위태로운 만큼, 무엇보다 동시대를 살아가는 대장장이들은 ‘지구력’이 필요하다. 우직하게 작업에 몰두하고 반복해 자신의 기틀을 다질 필요가 있다. 지치지 말았으면 한다. 그러면 우리의 땀과 노력은 결국 그 보답을 가져다줄 테니까. 나 또한 늘 처음의 마음으로 쇠를 두드릴 것이다.
박지민 유리와 10년을 동고동락했는데, 아직도 잘 모르겠다. 너무 어렵다. 무언가 깨우쳤다 싶으면 어림도 없다는 듯 가마에서 꺼낼 때 작품이 깨진 상태로 나온다. 다치는 경우도 더 잦아진다. 오만해지지 말라며 뒤통수를 때리는 느낌이다. 재료에 대한 탐구의 길은 끝이 없는 것 같다. 유리가 깨지지 않으려면 내면의 초심부터 깨트리지 않아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처음 걷고자 했던 길에서 벗어나면 유리는 또다시 말할 것이다. ‘아직 너는 나를 모른다’고. 지금은 유리와 조금 더 가까워질 때라고 본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하나뿐이다. 계속해서 유리에게 물음을 던져보는 것.
COOPERATION 샤넬(080-805-9628, chane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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