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혜진 대표가 최초로 구매한 작품인 구자현 작가의 노동 집약적 프린트 앞에서.
김혜진 크리스티 코리아를 거쳐 공간 디자이너로 변신해 인테리어 스튜디오 HJRK를 운영 중이다. 공간에 맞는 커스텀 가구를 꾸준히 선보여왔다. 최근 가구 라인 ‘카라멜’을 발표해 호평을 받았다.
HJRK 김혜진 대표를 만나기 위해 찾아간 곳은 한남동에 있는 홈 오피스다. 1층과 지하는 회사와 공유하고, 2층은 거주 공간으로 구성했다. 하루 중 가장 고대하는 시간은 업무를 마친 뒤 2층 거실에서 장 미셸 오토니엘의 유리 작품이 물성으로 인해 시시각각 바뀌는 색깔을 바라볼 때다. 창가에 앉아 아름다운 작품과 규칙적 패턴의 벽이 조화를 이루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이내 심신이 편안해진다고. 실제 지하부터 2층까지 살펴보니, 거실뿐 아니라 집 안 곳곳이 매력적이었다. 새벽과 낮과 밤, 아침의 그림자를 형형색색으로 바꿔주는 작품들이 홈 오피스를 수놓고 있어서다.
처음 구매한 작품은 무엇인가요?
크리스티 코리아에서 일하다가 파리로 유학을 떠난 까닭에 20대 때는 컬렉션을 할 마음의 여유가 없었어요. 늦은 공부를 마치고 한국에 돌아와 보금자리를 갖게 되니 작품과 함께하고 싶은 마음이 들더군요. 그래서 2015년 남편과 아트페어에 갔다가 게리 흄Gary Hume과 구자현 작가의 작품을 동시에 구매했어요. 게리 흄의 작품은 판화와 콜라주가 어우러졌고, 구자현의 작품은 수십 개의 레이어가 있는 노동 집약적인 프린트라는 점에 매료됐어요. 특히 구자현의 작품은 노란색이 주는 기운이 좋았어요.
양혜규 작가의 양배추 작품은 딸의 탄생을 기념하며 소장하게 됐다.
집에 들어오자마자 보이는 게 남춘모 작가의 초기 작품이죠?
최초의 컬렉션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미술사를 전공한 어머니가 선물해주셨어요. 제가 미술사를 전공한 후 크리스티 코리아에서 일하게 된 것도 어머니의 영향이 있었을 거예요. 흥미롭게도 저희 둘 다 컬러풀한 풍경화와 추상화에 관심이 많습니다. 어머니는 김종학, 정창섭, 이미 크뇌벨, 제이컵 캐세이, 클레르 타부레 등의 작품을 소장하셨어요.
딸의 방을 살짝 봤는데, 김재용 작가의 도넛 조각이 있더군요.
아기 때부터 거실에 장 미셸 오토니엘의 조각이 걸려 있어서인지 작품은 만지면 안 된다는 것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였어요. 왈가닥 여섯 살인데, 참 신기하죠?(웃음) 이곳으로 이사 오기 전, 딸 방에 양배추를 이용한 양혜규 작가의 작품이 있었습니다. 비록 지금은 거실로 옮겼지만. 서양에서는 아기가 양배추에 싸여 온다고 해요. 제가 어머니에게 영향을 받은 것처럼, 여러 작품이 딸에게 긍정적 영향을 주길 바라요.
김재용 작가의 도넛 조각 6점이 딸 방에 놓여 있다.
작품에 얽힌 에피소드가 궁금해요.
2층으로 올라가는 층계에 걸린 핀란드 사진작가 펜티 사말라티Pentti Sammallahti의 작품 2점은 운명적으로 소장하게 되었어요. 2012년경 파리에서 인테리어를 공부할 때, 학교 바로 옆에 카메라 옵스큐라 갤러리가 있었습니다. 수업을 마치고 전시를 보러 갔는데 사진 한 장이 단번에 시선을 사로잡더라고요. 눈보라가 치는 상황에서 새와 교감하는 듯한 운전자의 모습이 멋지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2015년 서울에 와서 이 작품을 다시 발견했으니, 소장할 수밖에요. 한 점 더 갖고 싶어서 눈 오는 거리의 풍경을 촬영한 작품도 구매해 마주 보게 걸었습니다. 이 사진들을 보노라면, 함박눈이 내리는 날 군의관이었던 아버지가 제가 태어났다는 전화를 받고 화천에서 눈발을 뚫고 대구로 달려왔다는 이야기가 떠올라요.
핀란드 사진작가 펜티 사말라티의 눈 오는 날 풍경
사진 2점이 계단에 걸려 있다.
인테리어 전문가로서 주위에도 컬렉션을 추천하나요?
인테리어를 마친 공간에 작품을 추천하는 편입니다. 최근 어떤 기준으로 작품을 제안하느냐는 질문을 받은 적이 있어요. 저는 과시나 투자를 위해 작품을 구매하지 않습니다. 컬렉션은 개인의 관심과 사고가 밑바탕에 있어야 해요. 최근 미술 작품을 인테리어 소품 정도로 여기는 일이 잦은데, 이는 지양해야 합니다. 작품과 공간이 어우러지는 것도 필요하지만, 결국 사람이 사는 공간이잖아요. 장 미셸 오토니엘이 훌륭한 작가이고 유명하다고 해서 그의 작품이 모두에게 어울리는 것은 아닙니다. 그렇기에 클라이언트의 취향에 맞춰 작품을 추천하는 일이 늘 난관이에요. 하지만 컬렉팅에서 불변의 진리는 결국 ‘자신의 진심을 따라야 한다Follow Your Heart’는 것입니다.
초보 컬렉터에게 조언한다면?
저도 아직 걸음마 수준이지만, 일단 전시를 많이 봐야 합니다. 아트페어도 괜찮아요. 자신의 작품 스타일을 찾았다면, 이젠 저지를 차례예요. 누구나 처음에는 실수를 합니다. 많이 구매해봐야 취향을 찾을 수 있어요. 작품을 사서 공간에 걸어보고, 어떤 에너지를 주는지 계속 느껴봐야 합니다. 초보의 경우 작품 하나 사면 끝이라고 생각하는데요. 내 인생의 마지막 작품이라는 마음으로 고가의 작품을 하나 구매하는 것은 추천하지 않습니다.
1층 주방으로 들어가는 입구의 핑크색 작품은 남춘모 작가의 초기작.
작품에서 에너지를 받는다는 말이 가슴에 와닿았어요.
예로, 엘스 피셔 한센Else Fischer-Hansen의 색감은 작품 소장을 결심했던 당시의 마음을 떠오르게 합니다. 고지영 작가의 작품 속 치즈를 보면, 파리에서 갔던 치즈 가게가 머릿속을 스쳐 지나가고요. 작품에서 색은 중요한 요소입니다. ‘왜 파란색을 이렇게 칠했을까?’, ‘이것은 산일까, 바다일까?’ 등 이런저런 상상하는 일이 재미있습니다. 또 질감을 선택하는 디자이너로서 안드레아스 에릭손Andreas Eriksson의 마티에르에서 영감을 받기도 하죠. 가끔 불편한 자극이 될 때도 있지만, 작업을 통해 새로운 감정을 경험하고, 몸과 마음에 자양분을 공급하고 있어요.
앞으로의 컬렉션 계획이 있나요?
어머니가 소장한 클레르 타부레Claire Tabouret를 눈여겨보고 있어요. 미국에서 활동하는 1981년생 여성 작가로, 음울하면서 밝은 색의 표현과 입체적인 붓 터치가 인상적입니다. 어머니는 인물화를 구매했지만, 저는 풍경화에 관심이 있죠. 타부레 작품은 주로 기관이 구매하는지라 개인이 소장하기가 어려운데요. 언젠가는 인연이 닿으리라 봅니다.
김혜진 대표가 최초로 구매한 작품인 게리 흄의 프린트가 지하 거실에 걸려 있다.
WRITER 이소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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