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럭셔리 M> 2024년 8월호

관객을 낚은 10분, <밤낚시> 문병곤 감독

10분짜리 단편 영화 <밤낚시>가 관객 수 5만 명을 향하며 예상 외의 흥행을 이어가고 있다. 실험적인 앵글과 스토리로 관객을 낚아버린 문병곤 감독을 만났다.

GUEST EDITOR 이기원 PHOTOGRAPHER 박용빈

문병곤  1983년생. 중앙대학교 영화과를 졸업했고, 2013년 칸영화제에서 〈세이프〉로 단편 부문 황금종려상을 수상했다. 요즘 그는 러닝에 푹 빠졌다고 한다. 올 연말에는 서울마라톤(구 동아마라톤) 하프 대회에 출전할 예정이다.


요즘 나오는 자동차에는 수많은 카메라가 달린다. 차량의 전면부와 후면부, 윈드실드 위, 디지털 사이드미러 등 이 카메라들의 목적은 자동차의 상태를 좀 더 세심하게 살피기 위한 것이다. 현대자동차그룹의 광고 계열사 이노션의 김정아 부사장은 문득 심플한 아이디어를 떠올렸다. ‘자동차에 장착된 카메라만으로 단편영화를 만들면 어떨까. 홍보에 도움이 되지 않을까.’ 광고주인 현대자동차도 이 아이디어에 동의하면서 제작된 영화가 바로 <밤낚시>다.

처음 예정됐던 감독 후보는 대학에서 영화 연출을 전공한 배우 손석구였다(손석구는 지난 2021년 왓챠의 오리지널 단편 프로젝트를 통해 <재방송>이라는 작품을 연출한 바 있다). 하지만 손석구가 공동 제작자로 빠지면서 오랜 친구인 문병곤 감독을 추천했다. 문 감독은 <세이프>라는 작품으로 2013년 칸영화제에서 단편 부문 황금종려상을 수상한 경력이 있다. “처음에는 영화라기보다 브랜드 필름을 생각했어요. 그런데 제가 몇 가지 기획을 제안하면 김 부사장이 ‘너무 광고 같다, 너무 안정적이다’ 하시더군요. 참신함과 재미만 생각해달라고 했죠. 덕분에 좀 더 영화 자체에 집중할 수 있었어요.”

<밤낚시>는 애초에 유튜브용으로 기획한 영화였지만, 관계자 시사회 후 경쟁력이 있다는 판단하에 극장 상영을 결정했다. 옳은 판단이었다. <밤낚시>는 6월 말 기준 누적 관객 4만 명을 넘어 5만 명을 목전에 두고 있다. 기대치를 한참 웃도는 수치는 영화를 본 관객들의 입소문 덕분이다. “단편영화지만 촬영에는 어려움이 많았죠. 보통 촬영장에서는 찍고 바로 모니터로 확인할 수 있는데, 이번에는 그게 안 됐어요. 자동차용 카메라에 녹화된 데이터를 꺼내서 옮기는 작업이 필요했기 때문에, 실제 촬영 시간은 거의 3배 정도 더 걸렸어요. 그래서 사전 준비 작업에도 시간을 많이 투자할 수밖에 없었죠.”



현대모터스튜디오 서울 및 고양에서는 <밤낚시> 팝업 스토어를 운영 중이다. 소품 등을 통해 영화의 세계관을 확인할 수 있다.

<밤낚시>는 곧 OTT에서도 볼 수 있을 예정이다.


<밤낚시>는 ‘1000원에 보는 스낵 무비’라는 타이틀을 달고 나왔다. 가볍게 즐길 수 있는 상업 영화임을 전면에 드러낸 것이다. 실제로 영화는 시작부터 끝까지 긴장감과 호기심을 안겨주면서 알찬 영화적 경험을 선사한다. 누구라도 만족할 만한 상업영화다. “영화를 전공하긴 했지만 감독에 대한 열망이 아주 크지는 않았어요. 이야기를 만드는 게 적성에 맞았지, 꼭 연출을 하고 싶은 건 아니었거든요. 대기업에 취직해서 회사원으로 일하다 중년이 되면 소설을 쓰는 게 목표였어요. 그래서 CJ에서 인턴 생활을 1년 정도 했는데 결국 정직원을 안 시켜주더라고요?(웃음) 마침 영화과 졸업 작품을 찍었고 그게 운 좋게 칸영화제에서 수상하면서 감독의 길에 들어서게 되었죠.” 이후 다른 영화의 시나리오 작업도 하고, 장편 연출 제의도 몇 번 있었지만 생각만큼 일이 잘 풀리지는 않았다. 데뷔작 연출 이후 10여 년의 공백은 그런 이유에서다. 최근에야 본격적으로 여러 작품을 준비하던 차에 마침 <밤낚시>를 만난 셈이다.

문 감독은 이제 40대에 접어들었다. 그가 일하던 10여 년 전에 비해서 영화 산업도 크게 달라졌다. 요즘 관객들은 긴 영화를 잘 보지 못하고, 심지어 화면을 2배속으로 보는 경우도 있다. 유튜브의 영화 하이라이트와 쇼츠 형태의 짧은 영상에 익숙해진 시대다. 이런 세태를 살아가는 감독의 마음가짐은 어떨까. “저도 사실 유튜브나 쇼츠 많이 봐요. 시대의 유행은 그렇게 언제나 변한다고 생각해요. 사람들이 이런 포맷을 좋아한다면 그 방식에 맞춰서 이야기를 하면 되지 않을까요? 저는 플랫폼이나 포맷에 대한 고집 같은 건 없어요. 오히려 이런 변화가 새로운 창작의 기회를 제공할 수도 있죠. 동시에 전통적인 장편영화의 매력도 여전하다고 생각하고요. 다양한 형식과 플랫폼을 넘나들면서 작업하고 싶어요.”

문병곤 감독은 현재 두 편의 장편 시나리오를 준비 중이다. 하나는 액션 스릴러 영화(오래전부터 손석구와 함께하기 위해 준비해오던 작품이다. 지금도 매주 한 번씩 만나서 시나리오 얘기를 나눈다)이고, 또 다른 하나는 OTT용 코미디 드라마다. 완전히 다른 장르를 동시에 준비할 수 있는 건 그만큼 자신이 하고 싶은 얘기를 잔뜩 쌓아둔 작가라는 증거처럼 보였다. 스스로 ‘유연함’이 장점이라고 말하는 그가 만들어낼 긴 이야기가 벌써부터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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