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준섭 잘 알려진 아트 컬렉터이자 다양한 것들의 수집가. 어릴 적부터 장난감을 비롯해 다양한 물건들을 모으길 좋아했고 운동화, 모자, 안경, 시계 등을 거쳐 지금은 다채로운 범주의 미술 작품을 수집하고 있다. 현재 미술과 미식을 접목한 와인 바 ‘오프닝’을 운영 중이다.
심준섭 대표가 처음으로 자신의 공간에 초대한 작품은 이제 많은 이가 작품을 소장하고 싶어 하는 작가가 된 옥승철의 그림이다. 이후 박서보의 묘법 소품을 보고 그 모던하고 탁월한 아름다움에 매료돼 작품을 구입했고, 그때부터 본격적으로 컬렉팅의 세계에 빠져들었다. 13여 년을 몸담은 패션업계를 떠나 논현동 지하 공간에 와인 바를 차린 것도 어쩌면 박서보 작가가 이끈 결과. 세로가 260cm에 달하는 작가의 그림을 구입한 후 걸 수 있는 곳을 고민하던 중 이 공간을 만났다. 사람들이 부담 없이 들러 와인 한잔을 즐기는 자그마한 바를 차려볼까 하던 그의 계획은 결국 다양한 컬렉션을 감상하며 수준 높은 음식을 맛볼 수 있는 근사한 공간, ‘오프닝OPNNG’으로 거듭났다. 손님들은 이곳에서 그가 자신 있게 공유하는 작가들의 그림 앞에 앉아 근황과 취향을 나누고 공감과 사유로 충만한 시간을 갖는다. 출구 없는 수집의 세계에 빠져 있는 그의 다음 목표는 오프닝을 양적·질적으로 확장하는 것이다. 현재 지하 1층과 1층을 활용하고 있는데 언젠가는 건물 전체를 아트 살롱으로 운영하며 국내는 물론 해외 애호가들까지 즐겨 찾는 공간으로 만들고 싶다. 그 어느 곳보다도 반짝이는 생각과 순수한 애호가 넘쳐나는 곳 말이다. 그의 꿈이 이루어지는 날을 그리며 크고 작은 서른 가지 이야기를 나눴다.
내 스타일의 ‘한 끗’은? 안경. 눈이 사람의 인상을 좌우하지 않나. 몇 년 전부터는 지금 쓰고 있는 것과 같은 고글형 스타일을 고수하는데, 안경을 통해 원하는 인상을 연출해보려 한다.
나를 매료시킨 스타일 아이콘은? 뮤지션이자 패션 디자이너인 퍼렐 윌리엄스. 2000년대 초반, 그가 미국 음악계를 주도하던 때부터 좋아했고, 패션 분야까지 트렌드를 이끄는 그의 활약이 흥미롭다. 그가 루이 비통 남성복 크리에이티브 디렉터가 됐을 때 괜히 내가 뿌듯했을 정도. 어릴 적 스타일 아이콘이 여전히, 아니 더 폭넓게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는 점이 근사하게 느껴진다.
옷장에서 가장 오래된 아이템은? 특별히 오래 간직하는 건 없다. 오히려 예전에 갖고 싶었던 것들을 요즘에야 많이 사고 있다. 예를 들면 슈프림 예전 박스 로고 티셔츠 같은 것들.
단 한 벌만 챙겨야 한다면? 고르기 어렵긴 한데, 꼭 하나 꼽자면 아끼는 슈프림 티셔츠를 챙기겠다. 아, 괜찮다면 하나 더, 크롬하츠의 라이더 재킷. 작심하고 체중 감량을 했을 때 목표 달성을 기념하며 나 자신에게 선물한 옷이다. 볼 때마다 성취감이 느껴져 아끼는 아이템이다.
오랫동안 꾸준히, 그러나 계속해서 새로운 것을 내놓는 브랜드들을 좋아한다. 새로운 것, 잘 알려지지 않은 것,
낯선 것 그러나 아름답고 견고한 것을 찾아내고
더 많은 이에게 소개하고 싶다.
늘 지니고 다니는 가방 속 필수품은? 사실 가방을 갖고 다니지 않는다. 외출할 때는 지갑, 차 키, 휴대폰만 주머니에 챙겨 나간다.
옷을 쇼핑할 때의 기준은? 예전부터 좋아해오던 것들 위주로 산다. 오래 나를 사로잡는 브랜드의 아이템들. 어릴 적 열광하던 스트리트 브랜드들 중에서 지금도 좋은 제품을 선보이는 곳이 많다. 또 예전에 갖고 싶어 했지만 여건상 사지 못한 것들을 노력을 기울여 구입하는 즐거움도 있다.
가장 최근에 구입한 것은? 발렌시아가 가죽 재킷을 구입했다. 두껍고 무거운 소재의 재킷인데 여름 시즌 제품이라는 사실. 독특한 디자인과 의외성이 매력이다. 발렌시아가도 좋아하는 브랜드 중 하나인데,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뎀나의 세계와 방향성이 마음에 든다. 내가 꾸준히 좋아하고 동경해왔던 문화를 따르고 존중한다는 느낌을 받기 때문.
요즘 가장 갖고 싶은 것은? 뭔가를 막 갈망하거나 바라는 마음을 오래 품는 편은 아니다. 그보다 순간순간 떠오르는 것이 있으면 찾아보고 산다.
나의 시그너처 향은? 평소 향수는 잘 사용하지 않는데, 얼마 전 아내가 딥티크 향수 ‘도손’을 사줘서 가끔씩 뿌리고 있다.
이우환, 정상화, 박서보 등의 단색화 외에도 이배, 김종학 등 컨템퍼러리 아티스트들의 작품도 좋아한다.
동시에 지난 시절을 함께한 스트리트 컬처와 관련된 작품들도 열심히 모으고 있다.
그 자체만으로도 흥미진진한 이야깃거리가 많은 와인. 그림 또한 그렇다. 그림을 앞에 놓고 감상은 물론
개인적인 체험과 느낌까지, 다양한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 그가 그림이 있는 와인 바를 차린 이유다.
요즘 즐겨 듣는 음악은?
최근에는 그룹 뉴진스의 ‘Supernatural’에 꽂혀서 반복해 듣고 있다. 사실 아이돌 그룹의 음악은 거의 듣지 않는 편인데 이 곡의 뮤직비디오가 무라카미 다사키와 협업으로 탄생했다고 해서 찾아 감상해봤다. 듣자마자 딱 ‘좋다’는 느낌이 왔다. 크레디트를 보니 퍼렐이더라. 역시, 다르다 싶었다.
근래 가장 인상 깊은 책은?
‘인생 책’이라 할 수 있는 피천득의 수필집 <인연>을 종종 꺼내 다시 읽는다. 괜히 마음이 스산할 때나 부쩍 지칠 때, 아무 페이지나 펼쳐서 그 장만 곱씹어 읽곤 한다. 왠지 모르게 몸과 마음이 편안해지는 느낌이다.
근래 가장 인상 깊은 영화는?
이것도 역시 최근 작품이라기보다 ‘인생 영화’를 꼽고 싶은데, 론 셰르피그 감독의 영화 <원 데이>를 좋아해서 수십 번은 본 것 같다. 주인공 두 사람의 관계를 그려내는 방식이 참 좋았다. 미장센도 너무나 완벽하게 아름답다고 생각한다.
언제나 새로운 트렌드를 이끄는 퍼렐 윌리엄스의 행보가 흥미롭다. 확실히 좋아하지 않을 수 없는 영원한 ‘나의 아이콘’이다.
작품을 소장하고 싶은 아티스트가 있다면?
재작년 봄 파리에 가서 페로탱 갤러리를 방문했다. 그곳에서 크리스티나 반반Christina Banban의 작품을 보고 마음에 새겨두고 있었는데 다음 해 도쿄 겐다이 국제 아트페어에서도 볼 수 있었다. 작가와 만날 수 있는 기회가 생겨 인사도 나눴고.
내 인생의 스타를 꼽는다면?
글쎄, 내가 워낙 타인의 영향을 최소화하며 사는 편이어서 쉽게 답하기가 어렵긴 한데.(웃음) 아티스트 그라플렉스Grafflex를 꼽겠다. 실력, 자기관리, 사람에 대한 에너지 등 모든 면에서 좋은 영향을 준다.
일어나면 가장 먼저 하는 일은?
휴대폰을 확인한 다음 씻고 나서 달걀프라이를 해 먹는다.
국가와 세대, 장르를 넘나드는 신선한 협업은 언제나 환영이다. 무라카미 다카시, 퍼렐 윌리엄스가 함께한
뉴진스의 일본 데뷔 싱글. 관심 있게 지켜보고 있다.
잠들기 전 하는 일은?
특별한 루틴은 없고, SNS에서 팔로잉하는 친구나 작가들의 피드와 스토리를 둘러본다. TV 방송 프로그램이나 넷플릭스 드라마를 보다 잠들기도 한다.
절대 빼먹지 않는 자기 관리법은?
솔직히 자기 관리를 철저히 하는 편은 아니다. 그래도 요즘은 매일 아침 일립티컬 머신을 활용해 운동을 하고 있다. 부쩍 늘어난 체중도 감량하고 체력도 키우기 위해서다.
냉장고 속 필수품은?
달걀과 대파. 아침마다 달걀프라이를 먹기 때문에 달걀은 떨어지지 않게 구비해둔다. 또 요리하는 걸 좋아해서 자주 뭔가를 만드는데 어떤 메뉴든 대파가 꼭 필요하더라.
평생 하나의 음식만 먹는다면?
라면을 엄청 좋아한다. 라면이라면 종류를 가리지 않고 다 좋다.
나에게 의미 있는 장소는?
내가 운영하는 바로 이 곳 오프닝이다. 이 공간을 처음 봤을 때부터 내가 막연히 그려온 와인 바의 모습이 그림처럼 펼쳐졌다. 사실 가게의 콘셉트도 이곳이었기 때문에 구체화하고 실현될 수 있었다. 오랫동안 다니던 직장을 퇴사하고 온전한 나의 의지와 계획을 통해 얻고 꾸민 소중한 ‘직장’이자 ‘미래’인 곳이다.
최고의 여행 기념품은?
나를 위한 것을 사기보다는 다른 이들과 함께 나누기 위한 기념품을 구입하는 편이다. 여행을 할 때면 꼭 그 나라의 미술관에 들러 전시를 보고 기념품 숍에서 작지만 의미 있는 무언가를 사온다. 이를테면 연필, 파우치, 가방, 양말 같은 것들. 나누고 기념하는 기쁨이 있다.
내가 받은 최고의 선물은?
주변에 가깝게 알고 지내는 작가들이 많지만 작품 선물은 받지 않으려 한다. 내가 직접 보고 마음에 드는 것을 구입하는 게 좋다고 생각하기 때문. 그런데 본격적으로 작품을 모으기 전부터 알고 지낸 에디 강과 현준이 준 것이 있다. 워낙 좋아하는 이들이기도 하고 작품도 마음에 들어서 소중하게 간직하고 있다.
요즘 가장 집중하고 있는 것은?
아무래도 오프닝의 운영에 관한 것 아니겠는가. 앞으로 이곳을 어떻게 발전시키고 경영해나갈지 고민이 많다. 아무리 경기가 어렵고 힘들다 해도 결코 포기할 수 없는 내 삶의 목적이기 때문이다.
인생에서 포기할 수 없는 즐거움은?
좋아하는 사람들과 맛있는 음식을 먹고, 좋은 술을 나누고, 소소하지만 행복한 시간을 보내는 것 아닐까? 가족과 함께하는 시간도 너무나 소중하다. 내가 성심껏 만든 저녁을 가족들이 맛있게 먹는 모습을 보면 참 뿌듯하고 보람을 느낀다. 기쁘게도 우리 아이는 내가 해주는 밥을 무척 좋아한다.
새로운 감각을 자극한 크리스티나 반반의 작품. 특히 파리에서 봤을 때 가장 인상 깊게 남은 작품이 그다음 전시의 포스터로 활용되었는데, 아티스트와 뭔가 통한다는 생각이 들어 괜히 더 좋아졌다.
인생에서 가장 의미 있는 조언은?
대단한 슬럼프는 아니었지만 조금 힘들고 지치던 시기, 친구가 니체의 격언을 들려줬다. “나를 죽이지 못한 모든 시련은 나를 강하게 만든다”라는. 종종 그 문구를 떠올리며 마음을 다잡는다.
내가 만약 다른 삶을 살 수 있다면?
지금의 내 모습에 만족하지만, 별개로 어떤 일을 해볼 수 있다면 공부에만 집중하는 인생을 살아보고 싶기도 하다. 무언가를 탐구하고 깊이 파고들다 보면 단순히 지식을 습득하는 것 외에도 세상의 논리와 삶의 방법을 배울 수 있을 거라 기대한다.
내가 가장 편안함을 느낄 때는?
어떤 측면에선 낯설게 들릴 수도 있을 텐데, 완전히 편하지는 않은 그러나 서로에 대해 어느 정도는 알고 있는 이들과 함께 특별할 것 없는 무용한 시간을 보낼 때다. 그런 시간이 살면서 어느 정도는 꼭 필요하더라.
나의 영감의 원천은?
‘사람들’인 것 같다. 누군가와 나누는 대화, 새롭게 알게 된 사람에 대한 탐구, 친한 이들과 공유하는 깊은 이야기들. 그런 시간들 속에서 떠오르는 것, 느끼는 것, 몸에 배는 것들이 새로운 ‘나’를 만든다.
내가 생각하는 ‘럭셔리’란?
내 생각엔 소유의 유무를 떠나서 좋은 것 앞에서 편안함을 느낄 수 있는 상태, 그런 마음이 진짜 ‘럭셔리’가 아닐까 싶다.
답변을 마치는 소감은?
사실 꼭 모든 사람이 특별하고 고급스러운 취향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하지만 우리가 살아가는 데에서 일하지 않는 다른 시간을 무엇으로 채우느냐는 매우 중요한 문제일 테다. 하루의 대부분을 일하며 보내는 사람이라 해도 나이를 먹을수록 일의 비중이 줄어들 수밖에 없고. 그렇다면 그 시간은 결국 취향으로 메워야 한다. 좀 더 풍요로운 시간을 만들고 누리기 위해 삶의 곳곳에서 더욱 적극적으로 취향을 다듬고 만들어나갈 수 있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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