넘치는 아이디어와 재해석
최근 카녜이 웨스트의 서포트를 받으면서 가장 핫하게 떠오른 프로토타입은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브랜드다. 패션쇼 시작 전부터 공간 자체가 풍기는 아방가르드하고 실험적인 분위기에 온전히 압도되었고, 이후 첫 번째 모델이 등장했을 때는 이번 패션위크 중 가장 신선한 순간이었다. ‘미완성’을 주제로 구성한 프로토타입의 2025 S/S 컬렉션은 옷을 방금 입거나 벗고 있는 듯한 스타일링이 핵심이었다. 속옷만 입은 채 티셔츠를 얼굴에 뒤집어쓰고, 부츠지만 양말처럼 보이는 신발을 신고 나오는 등 모든 착장이 파격적이었다. 카녜이가 프로토타입을 애정하는 이유를 이제 좀 알 것 같기도. 카고 팬츠의 유행은 카무(플라주) 팬츠가 이어받지 않을까란 생각을 하던 찰나, 여러 패션쇼를 직관한 후 그 예상이 적중했다는 걸 깨달았다. 한 가지 달라진 점이 있다면 많은 디자이너가 기존의 카무플라주 패턴을 색다르게 변형해 선보였다는 것이다. 카무플라주 프린트에 회화적 요소를 가미한 스커트를 선보인 언더커버를 비롯해 겐조는 트로피컬 패턴을, 구찌는 플라워 패턴을 멋스럽게 재해석해 내놓았다. 평소 스트리트 룩을 선호하는 편이기에 서울로 돌아가면 당장 사야겠다는 결심이 선 이유다. 심한 교통 체증으로 이동할 때마다 자전거를 탔던 기억도 생생하다. 멋진 의상과 예쁜 헤어, 메이크업으로 무장한 채 바람을 맞았던 속상함이란… 이루 말할 것도 없다.
이동연 @dong_zz 유명 아이돌과 배우의 패션을 책임지는 스타일리스트. 매 시즌 새롭게 도전하는 국내외 디자이너 브랜드에 관심이 많아 출장을 갈 때면 여러 쇼룸에 방문하고, 이렇게 모은 정보를 편집숍 ‘샘플라스’의 바이어로 활동하는 데 요긴하게 활용한다.
화려하지만 때론 은밀했던 파리 현장
조너선 앤더슨의 로에베 쇼는 인트로 음악이 나오는 순간부터 가슴이 두근거린다. 팬데믹 이후 4시즌 연속으로 같은 장소에서 남성 쇼를 보았지만 이번 쇼가 가장 좋았던 이유 중 하나는 바로 공간에 있었다. 피터 휴자Peter Hujar, 찰스 레니 매킨토시Charles Rennie Mackintosh, 카를로 스카르파Carlo Scarpa 등 독보적인 작품 세계를 펼치는 20세기 예술가들의 오브제가 쇼장을 채웠고, 이에 온전히 매료될 수밖에 없었다. 쇼 자체는 감탄이 절로 나오는 독특한 비주얼의 향연이었다. 허리까지 길게 늘어뜨린 깃털 헤어피스부터 작은 메탈 조각을 그물처럼 엮어 만든 톱, 오스트리치 소재의 벨트와 가방까지. 로에베는 다음 시즌 쇼를 다시 한번 기대하게 만드는 데 일가견이 있는 듯하다. 훨씬 더 극단적인 면모를 갖춘 2025 S/S 시즌의 실루엣 또한 눈에 띈다. 쇼츠와 크롭트 톱은 더 짧아졌고, 골드·실버·네온 같은 컬러와 함께 메탈, 자개, 퍼, 이그조틱 레더 등 다양한 소재가 그 존재감을 가감 없이 드러냈다. 엉덩이를 간신히 가리는 쇼츠 위에 시폰 망토를 두른 릭 오웬스와 트렌치코트에 네온 핑크 컬러를 적용한 드리스 반 노튼의 쇼에서 특히 돋보였던 부분. 화려한 패션쇼 대신 아늑한 공간에서 프레젠테이션을 진행한 브랜드도 기억에 남는다. 랄프 로렌 퍼플 라벨은 칵테일파티가 열리는 근사한 저녁 만찬 자리에서 테일러링과 스포츠웨어를 결합한 슈트 스타일을 제안했고, 더 로우는 밥 말리의 음악이 흘러나오는 편안한 공간에서 브랜드 특유의 클래식한 무드의 옷을 자유롭게 믹스 매치해 선보였다.
김봉법 @bebekimxx <로피시엘>, <보그>, <데이즈드> 등 잡지의 프리랜스 에디터 및 스타일리스트로 활동 중이다. 일본부터 대만, 유럽, 미국 등 다양한 글로벌 미디어와 협업하며, 태국에서는 패션 매거진 ‘Mint Thailand’의 컨트리뷰팅 디렉터직을 맡고 있다.
평범함 속의 특별함
루이 비통의 여행 정신을 다시 한번 일깨운 2025 S/S 남성 컬렉션 패션쇼 현장. 현재 가장 주목받는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퍼렐 윌리엄스가 보여주고자 하는 뚜렷한 방향성을 느낄 수 있었고, 다양한 하우스 유산의 재해석도 흥미로웠다. 비행기 조종사들이 입는 바머 재킷과 비행복을 입은 비행기 조종사부터 더블브레이스트 코트와 정장 팬츠를 입은 외교관까지 여행자 룩을 기반으로 편안한 스타일의 아이템이 대거 등장했다. 다미에와 카무플라주 패턴을 혼합한 ‘다무플라주’와 타조 가죽의 도트 무늬, 컬러풀한 색상의 다미에 패턴은 쇼로서 즐길 수 있는 룩과 일상에서 즐길 수 있는 룩 사이를 넘나들었다. ‘평범함 속의 특별함’이란 간단해 보이지만 결코 쉽게 풀어낼 수 있는 코드가 아니다. 하지만 이번 패션위크 출장에서는 신선한 디테일, 아이디어를 더한 릴랙스 룩이 출장 내내 가슴을 뛰게 했다. 네크라인을 비대칭으로 배치한 폴로넥 니트와 셔츠 스타일링을 선보인 펜디, 어깨 위에 우뚝 솟은 절개선 디테일을 더한 사카이의 런웨이가 좋은 예시. 패션, 엔터테인먼트 분야에서 새롭게 떠오른 이슈도 있다. 기업들의 관심사와 트렌드를 바탕으로 나아갈 방향을 제시해야 하는 직업의 특성상 다양한 사람들을 만났던 바. K-팝 아티스트에 대한 전 세계적 관심과 인기가 여전한 가운데, 태국의 존재감이 점차 커지고 있다는 걸 느꼈다. 배우 메타윈 오파시암카존Metawin Opas-iamkajorn, 팍품 롬사이통Phakphum Romsaithong 등 태국 셀러브러티가 등장할 때면 수많은 플래시 세례가 이어졌다. K-팝의 인기가 언제까지 갈지, 차세대 스타는 누가 될지 더욱 관심을 가지게 된 계기다.
김현민 @minihkim 국내외 여러 패션, 아트, 엔터테인먼트 기업의 사업 전략을 수립하고 영업 및 마케팅 분야를 지원한다. 전문적인 지식과 풍부한 경험을 바탕으로 커리어를 쌓아왔으며, 언제나 기업의 트렌드와 관심사를 놓치지 않기 위해 발 벗고 나선다.
허물어진 패션의 경계
파리에서 한국 브랜드의 위상을 당당하게 떨치고 있는 우영미 쇼가 인상적이었다. 1248년 대학에서 공부하는 수도사들을 위해 세운 건축물에서 진행되었는데, 장소가 주는 압도감과 더불어 동양과 서양 두 문화가 공존하는 룩과 아이템이 강한 인상으로 다가왔다. 한국계 미국인의 생활 방식이나 문화에서 받은 영감과 서핑복, 야구 유니폼 등 스포츠 요소를 결합해 고급스러운 프레피 스타일로 풀어낸 것. 한국 민화를 이미지로 엮은 태피스트리 소재의 코트와 세트업, 한국 전통 패치워크에서 착안한 지그재그 그래픽 요소 역시 돋보였다. 이번 패션위크에서 무엇보다 놀라웠던 것은 더욱 과감해진 유니섹스 코드다. 남성과 여성의 경계를 허문 것은 물론, 기존 여성복보다 더 페미닌하게 과장한 옷까지 만나볼 수 있었다. 꼼데가르송 옴므 플러스는 핫 핑크 컬러의 재킷을 오버사이즈 리본으로 장식하는가 하면, 언더커버는 레이스 소재의 안대와 네크리스를 선보였다. 컬러 역시 중성적인 분위기의 뉴트럴 톤이 많았고, 현재의 유행에 힘입어 내년 봄·여름 시즌까지 이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언제나 흥미롭고 즐거운 파리 출장이지만 물론 아쉬웠던 점도 있다. 파리 올림픽 준비 기간과 패션위크 기간이 겹쳐 교통 체증이 너무 심해 거의 대부분을 걸어서 이동한 기억이 난다. 이전 출장 때 느꼈던 좋은 기억을 이번엔 느끼지 못했으니, 다음 시즌에는 꼭 만회할 수 있기를.
조창현 @windowpresent 패션 분야에서 14년, 이후 샤넬에서 6년간 브랜드의 콘셉트에 맞춰 제품을 진열하고 매장을 관리하는 VMD로 활약했다. 현재는 ‘자기 자신을 존중하고 인생을 즐기자’라는 신념하에 스트리트 브랜드 ‘템포러리 유니버스’를 운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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