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M OK
옻칠은 으레 표면의 마감을 위해 작품에 적용하는 경우가 많으나, 김옥은 옻칠을 하나의 예술적 표현으로 바라본다.
가공한 나무인 백골에 곱게 으깬 토회를 바르고 옻칠로 생칠과 색칠을 더하는 것을 시작으로,
반복적인 사포질로 칠을 벗겨내고 다시 색을 입히는 과정을 수십 번 반복해 마침내 원하는 색과 질감을 완성한다.
“옻칠은 기법을 터득하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리고 때로는 옻독을 이겨내야 하나, 옻칠의 독특한 광채와 윤기는
다른 어떤 도료로도 표현할 수 없는 매력이 있다”라고 작가는 말한다. 마치 토템 같은 인상의 ‘머지Merge’ 시리즈는
김옥의 대표작으로, 한국인이 소원을 빌며 쌓는 돌탑에서 영감을 받아 자신만의 꿈의 탑을 쌓자며 시작한 작업이라고.
PARK SUI
박수이 작가는 옻칠 작업을 밭 일구기에 비유한다. 칠 작업은 매일 온도와
습도를 체크하고 형태를 구현하며 표면을 갈고 다시 칠하는 일의 반복으로 이뤄지는데,
그 행위가 수확을 위해 매일같이 밭을 가는 농부와 퍽 닮아 있다는 이유에서다.
작품에 ‘밭’을 연상케 하는 명칭이나 요소가 다분한 것 또한 이와 관련된 연장선이다.
밭을 에워싼 돌담을 닮은 ‘밭 바구니’나 돌담의 평면을 보고 형태적인 영감을 받은 옻칠 모빌을 보면
십분 이해가 갈 것. “옻칠은 작가가 내면에 자리한 세계를 현실로 구현하기에 최적의 재료다.
어찌 응용하느냐에 따라 그 결과물의 외양은 놀랍도록 달라진다”라는 작가의 말처럼
그의 작업 영역은 바구니, 모빌, 티웨어 등의 공예품을 넘어 회화까지 아우른다.
YANG BYUNGYONG
목공예가 양병용은 소반을 만들 때 부득이한 경우가 아니면 사포를 대지 않는다. 오로지 대패질만 한 거친 표면에 얇게 옻칠해
그 감촉을 감추거나 무마하는 대신 살려낸다. “나무 작품을 매만지면 상흔처럼 남은 도구 사용의 흔적이 손의 감각으로 느껴지는데,
이것에서 만든 이의 수고와 무한 연마의 기교를 느낀다”라고 그는 말한다. 작가의 손길이 옻칠을 만날 때 더욱 빛나는 셈이다.
구태여 다듬지 않는 데에서 오는 자연스러움은 그가 천연 도료인 옻에 매료된 이유이기도 하다. 안료를 섞지 않았을 때는
마치 잘 익은 알밤 껍데기 색 같던 옻이 반복적으로 칠하면서 더욱 깊어지며 질감과 기물에 안정감을 더해주는 것도 매력적이라고.
절묘한 결구로 완성된 소반의 만듦새에서 깊이감을 느끼는 순간이 있다면 그건 옻의 마성을 경험한 것이라고 그는 생각한다.
NOH KYUNGJOO
노경주 작가는 판화, 디스플레이, 주얼리 디자인을 거쳐
금속공예까지 시도하는, 전방위로 활약하는 아티스트다.
주변의 사물과 건축, 유기적 형태를 이루는 자연에서
영감을 얻는 그는 사실적인 표현보다는 은유와 단순화를 통해
작품을 구현한다. 선을 활용한 기하학적인 인상의 장신구를 주로 제작하다
선과 면이 어우러진 모빌 작업까지 작업 영역을 확장해온 그는 금속에 회화적인 방식으로
옻칠을 접목한다. 금속을 주 소재로 사용하는지라 옻이 지닌 방부·방습 효과를 얻기 위함은 물론,
선과 면 위주의 작업에 안료를 결합한 옻이 품은 선명하고 다채로운 색을 입혀
보다 드라마틱한 효과를 연출할 수 있어서다. 단순 덧바르기 식의 칠이 아닌 추상회화에서
볼 법한 터치도 그의 작업에서 볼 수 있는 특징 중 하나다.
PYEON SOJUNG
일상 전반에 도사린 다양한 요소를 공예적인 방법을 통해 형상화하는 데 주력하는 편소정 작가.
그릇, 합 등의 테이블웨어부터 소반과 찻상, 콘솔 등 일상적으로 마주할 수 있는 기물 형태의 작업으로
주로 알려져 있지만, 더 크게는 공간의 벽면이나 천장 등 큰 표면을 채우는 회화적 작업도 선보인다.
2가지 색을 상감한 다음 자잘한 무늬를 그려 넣는 그는 입체 기물에도, 평면 작업에도 활용할 수 있는
옻칠의 범용성을 적극 활용한다. 금속공예와 동양화, 칠화까지 공부한 그에게 옻칠의 이 같은 특징은 더욱 매력적으로 다가왔을 터.
“옻이라는 소재는 마치 낯을 가리는 것 같다. 좀체 다루기가 어려워 애를 먹곤 하지만 정작 아름다운 색감과 질감 표현을 보면
언제 그랬냐는 듯 한없이 가까워진다”라고 덧붙일 정도다. 지금, 그는 여러 분야와 협업을 통해 옻칠로 표현 가능한 영역을 넓혀
옻의 무한한 가능성을 증명하는 데 몰두하고 있다.
CHOI SEONGWOO
‘아름다움은 언제 깃드는가?’라는 의문이 창작의 시작점이 된 목공예 작가 최성우에게 옻칠이 다가온 순간은 찰나였다.
국립중앙박물관 전시실 귀퉁이에서 ‘아주 오래전에 쓰였던 옻칠 나무 그릇’이라는 명칭의 기물을 마주했을 때부터다.
볼품없이 손상된 그릇의 외관을 감싸안은 옻칠에 마음이 사로잡혔다고. 그는 사물을 보는 관점을 달라지게 만드는
옻칠의 힘을 보게 된 것. 이후 그는 나무 작업에 옻칠을 접목하기 시작했다. 버려진 나무껍질에 매끈하게 옻칠을 해
다구로 만들거나 통나무 사이나 벌레가 나무를 파먹은 흔적에 옻칠을 적용하는 등 옻칠을 통해 흠을 아름다움으로 만드는 작업을 거듭한다.
최근에는 전통 손바느질 작가인 김성미와 함께 버려진 원단에 옻칠과 바느질을 한 다구를 만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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