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규 3집 선발매 앨범 <역성>을 발매했어요. 세상에 <역성>을 선보인 소감은 어떤가요?
선발매 앨범이다 보니 다른 때와는 다르게 ‘끝났다’, ‘해냈다’ 이런 느낌은 아니에요. 정규 앨범을 향해가는 과정 중에 있는 거니까. 그보다는 목적지를 앞두고 잠깐 주유소에 들른 듯한 기분이랄까요. 아직 갈 길은 꽤 남았지만 잠시 쉬면서 맛있는 것도 먹고 어느 정도 휴식과 즐거움을 누리는 것 같은 느낌이 들어요.
<역성>의 시작은 어디부터였나요?
작년 4월 대만 타이베이에서 씨앗이 움텄죠. 당시 투어 공연을 끝낸 후라 앞으로에 대한 고민이 많았어요. 나는 뭘 하는 사람인지, 어떤 음악을 해야 하는지, 어떻게 살아야 할지 등이요. 저뿐만 아니라 함께 공연했던 멤버들도 다들 미래에 대해 깊이 생각해볼 시기였어요.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고민이 모아졌고, “우리 완전히 0에서부터 한번 뭔가를 만들어볼래?”라며 의견을 나누게 됐죠. 일단은 지금 당장 하고 싶은 것들을 진짜 제대로 해보자는 마음이었어요.
정체성에 대한 고민이 컸군요.
헷갈리더라고요. 제가 어느 쪽에 있어야 하는 사람인지, 아니 어디에 있고 싶어 하는 사람인지요. 저는 제가 자주 말하는 ‘방구석 음악인’이기도 했다가 주류의 문법을 따르는 활동을 하기도 했다가, 왔다 갔다 하는 것 같더라고요. 그렇다고 어느 쪽에 비집고 들어가려고 노력을 했던 것도 아니고요. 어디에 제 이름을 어떻게 새기고 싶은지를 좀 더 깊이 들여다봐야겠단 생각이 들었어요.
고민은 계속되겠지만, 그 고민의 답을 더욱 잘 찾아가기 위해 지금의 자리에서 해보고 싶은 것들을 다 펼쳐낸 거군요. 그래서인지 앨범의 구성과 표현에 느슨함이 없더라고요. 심지어 8곡을 수록했어요.
일단 올해까지는 앨범을 낸다면 꼭 정규로 만들어야겠다고 다짐했어요. 다만 한 번에 많은 것을 쏟아냈을 때 듣는 분들이 약간의 피로감을 느끼진 않을까 싶어 선공개 앨범을 준비한 거예요. 그런데 곡을 배분하기가 애매하더라고요. 그럴 바에야 제대로 8곡을 넣어 앨범을 만들자는 결정을 하게 된 거예요. 사실 이런 파격이 가능했던 이유는 제 곡 하나하나가 엄청난 파급력이 있다거나 이 앨범 하나로 많은 책임을 져야 한다거나 그런 상황이 아니기 때문이에요.(웃음) 마음껏 쏟아낼 수 있는 거죠.
전반적으로 거대한 밴드 사운드가 인상적이에요.
저는 음악을 시작할 때부터 늘 밴드 음악을 하고 싶었고 제대로 구현해내는 데 목마른 사람이었어요. 이번엔 특히 드러머, 기타리스트 등 악기를 연주하고 곡을 만드는 다른 뮤지션들과 의기투합해 작업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밴드의 색채가 강한 음악이 되었어요. 저희가 진짜 좋아하는 걸, 마음껏 해보고 싶었거든요.
8곡 모두 뭔가를 ‘거스르는 이야기’를 담았죠. 관성을, 어둠을, 판을, 시스템을, 결과를, 순도를, 목적지를, 완벽을요. 이 중 진짜 거슬러본 것은 뭔가요?
이 앨범을 낸 것 자체가 많은 것을 거스른 결과라 생각해요. 사실 이 앨범은 다 차치하고 ‘그냥 멋있는 거 남길래’란 의지가 만들어낸 거거든요. 결국엔 모두 ‘거슬렀기에’ 가능한 거죠. 앞으로는 ‘판’을 좀 더 거슬러보고 싶어요. 정체성을 찾아나가는 지금의 제가 해내야 하는 미션인 셈이죠.
더블 타이틀곡을 내세웠는데, 우선 ‘폭포’는 무려 6분이 넘는 길이의 곡이에요.
좋아하는 요소를 다 넣다 보니 그렇게 됐어요. 저희는 이 노래가 너무 마음에 들어서 완성하자마자 타이틀로 밀었어요. 이 결정이 뭘 의미하느냐면, 이 곡은 전파를 탈 일이 없을 거라는 거죠.(웃음) 그럼에도 불구하고 타이틀로 꼭 하고 싶은, 그만큼 자신 있고 마음에 드는 곡이에요. 오랫동안 품고 있던 도입부 멜로디와 가사 초안을 이번만큼은 반드시 완성하겠다는 생각으로 곡에 옮겼어요. ‘폭포를 뒤엎어 분수를 만들자’는 선언이 되었죠.
또 다른 타이틀곡 ‘폭죽타임’은 뜨거운 여름밤에 잘 어울리는 곡인 것 같아요.
섬광처럼 다가온 곡이에요. 폭죽을 보면 칠흑 같은 어둠에 ‘반짝’ 생채기를 내잖아요. 어둠을 찢고 빛이 새어 나오는 것을 떠올리며 만든 곡이에요.
곡을 만들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건 뭔가요?
곡 전체가 주는 정서가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전체적인 색채 혹은 뉘앙스라고 할까요. 제가 만들고 싶은 노래는 일종의 점묘화 같은 거죠. 열심히 하나씩 점을 찍어 그림을 그리지만, 그 점 하나하나를 들여다봐야 하는 건 아니거든요. 한눈에 봤을 때 ‘아름답다’고 느낄 수 있으면 되는 것 같아요.
살면서 느끼는 다양한 경험과 감정 가운데 특히 음악으로 다가오는 것은 무엇인가요?
글쎄요, 이건 제가 어떻게 표현을 해야 할지 잘 모르겠는데 대충 뭉뚱그려 말하면 화가 나거나 불편할 때인 것 같아요. 제 센서가 아주 섬세하고 예민해질 때, 뭔가가 떠오르기도 하고 그려진다고 할까요? 물론 늘 그런 건 아니지만, 대체로 그런 경우가 많았어요.
‘장르가 이승윤’이란 말도 있죠. 아티스트로서 자의식이 매우 뚜렷해 보여요.
네, 확실히 강한 자의식을 갖고 있는 것 같아요. 그리고 이번 앨범을 만들면서는 아예 자의식 과잉의 상태로 집중하려 했어요. 자의식이 유의미하게 작동하는 때가 있는데 그게 바로 지금인 것 같더라고요.
지금 이 시점에서 당신의 음악, 당신이라는 아티스트를 한마디로 다시 소개한다면요?
제 곡의 제목과 같은 ‘검을 현’이라고 할게요. 한 번씩 나 자신이 체스판 위에 놓인 말과 같다는 생각을 해요. 그 안에서는 한 칸 전진하는 게 너무나 중요하고 바로 옆과 앞에 있는 것들이 너무나 크게 느껴지지만, 사실 떨어져서 보면 그냥 하나의 ‘말’인 거잖아요. 그런 맥락에서 ‘검’을 얻으려고 아등바등하지 말고 검을 현으로 쥐고 밖으로 나가 노래나 하고 살아야겠다는 생각인 거죠. ‘검을 현’과 같은 음악인, 저는 그런 사람인 것 같아요.
사람들이 바라보는 시선 말고, 스스로 생각하기에 어떤 의외의 면을 갖고 있나요?
제 인생의 8할은 시시껄렁한 헛소리에 농담 따 먹기 하는 일상일 거예요. 정말 아무것도 없고 그저 까부는 거 좋아하는 사람이에요. 낯을 가리다 보니 그런 모습을 쉽게 내보이지 않을 뿐이죠. 그런데 요즘 지나치게 진지하게 살고 있는 것 같단 생각을 해요. 조금 더 가벼워져도 좋을 것 같아요. 또 무척 현실적인 사람이기도 해요. 사리에 밝다는 게 아니라 ‘실제’를 살아가고자 노력한다는 점에서요. 저는 ‘지금’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그만큼 현실을 받아들이며 오늘을 충실히 누리는 사람이고 싶어요.
무대 위에서는 주체 못할 만큼 에너지가 넘치는 사람이던데, 실제로 만나보니 느긋하고 또 자신만의 속도를 지닌 사람으로 느껴지네요. 자신을 하루에 비유한다면 어떤 시간대의 사람이라고 생각해요?
음, 밤 12시 45분? 계속해서 활기가 넘치고 들썩거리는 사람은 아닌데, 한 번씩 그런 모습이 나올 수 있는 것 같아서요. 밤 12시 45분 정도면 그게 가능한 딱 마지노선이라 생각해요. 쓰러져 잠들기 전, 마지막으로 모든 것을 불태울 수 있는 때요.
이승윤을 계속해서 움직이게 하는 동력은 무엇인가요?
솔직히 잘 모르겠어요. 그냥 하고 싶어서 해요. 진짜 멋있는 거 하고 싶다는 마음이요. 가끔 지칠 때도 있지만 희한하게도 공연을 하고 내려오면 힘이 채워져요.
앞으로 어디까지 더 가보고 싶나요?
실은 아까 ‘나를 움직이게 하는 동력’에 대한 질문을 받았을 때 ‘관객분들, 팬분들’이라고 답할까 하는 생각도 했는데요. 한편으로는 그렇게 말하기엔 그분들께 감사한 만큼 미안한 마음이 들더라고요. 그렇기에 제 목표는 저의 음악에 관심을 갖고 마음을 써준 모든 이가 약간의 자부심을 얻었으면 하는 거예요. 제 노래를 들어서, 제 무대를 함께해서, 기쁘고 뿌듯하다는 감정을 느끼실 수 있으면 좋겠어요.
오늘의 자신에게 얼마나 만족하고 있나요?
100%요. ‘솔드아웃’이란 곡의 가사에도 썼어요. “최고의 나도, 최악의 나도, 최선의 나도, 어차피 나는 나”라고요. 제가 저에게 만족하지 않으면 어쩌겠어요. 스스로가 가장 못마땅한 것도 결국은 저고요. 그러니까 자신을 긍정하고 마땅하게 여길 수밖에요. 저는 ‘어차피 나’일 수밖에 없는 저를 계속해서 좋아할 거예요.
FASHION EDITOR 차세연 HAIR 수철(이유) MAKEUP 현경(이유)
COOPERATION 구찌(3452-1521), 드리스 반 노튼(3479-1796),
코스(070-4166-5047), 클락스(070-5034-0453), 펜디(544-1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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