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럭셔리> 2024년 7월호

조민석, 군도의 여백

올해 서펀타인 파빌리언의 주인공 건축가 조민석. 정자 툇마루의 단면을 연상케 하는 그의 작품은 무슨 이야기를 담고 있을까.

EDITOR 박이현



조민석 설계, 2024 서펀타인 파빌리언 ‘군도의 여백’, © Mass Studies, Photo: Iwan Baan, Courtesy: Serpentine



조민석 건축사무소 매스스터디스Mass Studies 대표. 2014년 제14회 베네치아 비엔날레 국제건축전에서 황금사자상을 받았다. 구하우스 미술관, 부띠크모나코, 송원아트센터, 스페이스K, 원불교 원남교당, 2010 상하이 엑스포 한국관 등을 설계했다.


런던 서펀타인 갤러리가 매년 여름 개최하는 파빌리언(한정된 시간에 존재하다가 사라지는 건축물) 프로젝트가 있다. 바로 ‘서펀타인 파빌리언Serpentine Pavilion’이다. 2000년 시작한 이 프로그램은 그동안 자하 하디드, 렘 쿨하스, 알바루 시자, 올라푸르 엘리아손 등이 참여해 현대건축의 경계를 확장해왔다. 서펀타인 갤러리 디렉터 한스 울리히 오브리스트에 따르면, 이 프로그램의 핵심은 ‘건축적 실험에 끝이 없어야 하고, 건축물이 감동을 줘야 한다’는 것. 올해로 23번째를 맞은 서펀타인 파빌리언 작가로 건축가 조민석이 선정됐다. 부감으로 보면 정자 툇마루의 단면을 연상케 하는 그의 파빌리언 주제는 ‘군도의 여백Archipelagic Void’. 언뜻 추상적으로 들리는 이번 작업과 관련해 조민석과 일문일답을 가졌다.


서펀타인 파빌리언 설계 의뢰를 받았을 때 정의한 파빌리언이 궁금합니다.

20년 넘게 서펀타인 파빌리언을 지켜보면서, 프로그램의 목적이 문화 플랫폼과 사교의 장을 만드는 것이라고 이해했습니다. 그래서 서펀타인 갤러리의 큐레이터십과 하이드파크 켄싱턴 가든 활동의 연장선이 되길 바라며 올해 파빌리언을 기획했죠. ‘군도의 여백’은 강당, 갤러리, 도서관, 찻집, 플레이타워 등 5개의 구조물과 이들 사이에 존재하는 5개의 공간, 그리고 중앙 공간으로 이뤄지는데요. 누군가와 대화를 나누든, 미술책을 읽든, 아니면 조용히 자신을 알아가든 각자 취향에 따라 ‘콘텐츠 머신’을 즐기면 됩니다.


기존에 매스스터디스가 설계했던 파빌리언과 연결 고리가 있다면?

‘링 돔’(2007~2015)과 ‘2010 상하이 엑스포 한국관’은 규모는 다르지만, 모두 소통과 교류를 위한 공공장소예요. 시각적인 개방성과 투과성도 공유하고요. 이는 특히 한국관과 ‘군도의 여백’에 공통으로 잘 드러나 있습니다. 당시 한국관에 탁 트인 공간, 즉 보이드void를 부여했는데요. 이는 건축물의 공간을 관대하게 사용하기 위함이었습니다. 핵심은 출입문이 따로 없어 누구나 1층에 쉽게 들어왔다는 것. 또 공연과 참여 프로그램까지 준비해 2층 전시장에 올라가기 전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었습니다. 한편, 링 돔은 훌라후프를 엮어 만든 지름 8~9m의 구형 구조물로, 2007년 뉴욕에서 처음 공개된 뒤로 여섯 번 더 설치됐습니다. 이 안에선 모임과 묵상이 진행됐어요.


‘군도의 여백’은 그동안의 서펀타인 파빌리언과 궤를 달리하는 듯해요. 기존 파빌리언이 구심력이라면, 올해는 원심력이랄까요? 마치 중앙에 모이는 구조에서 벗어난 것처럼.

‘군도의 여백’은 구심적이면서 원심적이에요. 서펀타인 파빌리언에 색다른 무언가를 기여하고 싶었습니다. 갤러리 앞 잔디밭과 대응하는, 다양한 공간 경험을 창출하기 위해선 ‘중심’에서 벗어나는 것이 중요하다고 인식했죠. 그래서 서펀타인 파빌리언의 역사를 반영하고, 기존에 자리 잡고 있던 주변 요소들과 마주하는 과정을 거치며, 가운데를 공허한 공간으로 조성했습니다. 나아가서는 과거의 건축(지난 20여 년의 서펀타인 파빌리언)에서 벗어나 새로운 가능성과 서사를 촉진하고자 했어요. 파빌리언에 들어오고 나가는 건 스스로 결정하면 돼요. 열린 하늘 아래서 햇빛을 즐기든, 구조물 안에서 콘텐츠를 즐기든 정해진 순서는 없습니다.


위의 질문 연장선에서, 군도 개념을 활용한 이유가 궁금합니다. 개별 활동을 하다가 필요 때문에, 혹은 어떤 목적 때문에 모이는 요즘의 사회상을 반영한 것일까요?

작년에 디자인을 제안받기 전, 서펀타인 갤러리 디렉터 한스 울리히 오브리스트가 철학자 에두아르 글리상Édouard Glissant과 10년 동안 나눈 대화를 모은 책 <군도 대화The Archipelago Conversations>를 선물했어요. 에두아르 글리상은 과거의 고정되고 완벽한 유토피아의 대안으로 제시한 ‘떨리는 유토피아’(지속적으로 변화하고 진화하는, 다면적이고 불완전한 상태)를 보자마자 “유레카!”를 외쳤습니다. 다양한 너비, 높이, 부피의 구조물 집합체를 어떻게 작동시킬지에 관한 힌트를 얻었거든요. 오늘날 우리는 디지털 화면으로 소통하는 일에 너무 집착하고 있어요. 모여서 서로 온기를 나누는 일이 절실합니다. 올여름과 가을, ‘군도의 여백’이 켄싱턴 가든 속 만남의 장소가 되길 바랍니다.


‘스페이스K 서울 미술관’, 2020, Mass Studies, © 신경섭 Kyungsub Shin


‘페이스 갤러리 서울’, 2022, Mass Studies, © 김용관 Yong-Kwan Kim


‘오설록 티 뮤지엄’ 리모델링 및 증축, 2012~2023, Mass Studies, © 김용관 Yong-Kwan Kim


“군도와 같은 오늘의 시대에 건축은 기념비를 세우기보다 보이지 않는 것을 드러내야 한다”라는 책 구절에 영감을 받으셨다고요. 올해 파빌리언에서 주목한 ‘보이지 않는 것을 드러내는 행위’란 무엇일까요?

노자의 <도덕경>에는 “서른 개의 바큇살이 하나의 바퀴통에 모여 있으나, 바퀴통 속이 비어 있어야 수레에 쓸모가 있다”라는 구절이 있어요. 수레바퀴의 빈 중심이 수레를 돌게 하는 원동력이라는 의미예요. 또 초기 불교는 부처의 상이 없는 빈 옥좌만 그렸습니다. 이는 중앙의 공간, 공허함, 보이지 않는 것들이 희망을 불러일으킨다는 뜻이 아닐는지. 전통적으로 공간은 사물이 자리 잡은 공간이었지만, ‘군도의 여백’에서 공간은 크고 작은 구조물로 둘러싸인 ‘마당’으로 탈바꿈했습니다. 일종의 반전이죠. ‘군도의 여백’은 사람들이 구경꾼으로 전락하는 요즘, 중앙에 자발적·적극적으로 모여 이야기를 주고받아야 한다는, 다시 말해 공동체 의식을 함양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담고 있어요.


관람객이 보는 것에서 나아가 구조물을 만지는 것도 인상적이더군요.

색상, 질감 같은 재료의 특성을 직접 느끼며 경험의 영역을 확장하는 데 의의가 있습니다. 자연도 깊이 탐구할 수 있고요. 이러한 맥락에서 탄소 배출량이 적은 재료를 런던에서 직접 선택했습니다. 재활용이 용이한 폴리카보네이트와 PVC 멤브레인의 사용도 지속 가능한 삶을 위해서죠. 인간과 건축이 촉각적으로 연결된 한국 전통 생활양식이 모든 것의 모티프가 됐습니다.


어쩌면, 그동안 보여준 매스스터디스의 건축 키워드와 일맥상통할지도 모르겠습니다. 개인적으로 최근 매스스터디스의 건축 키워드를 ‘따로 또 같이’로 꼽고 싶어요. 원불교 원남교당, 서광다원, 스페이스K의 경우 방문객은 확장과 축소를 경험하면서 건물들의 관계성을 고민하게 되거든요. 획일성에 저항하는 태도로 봐도 괜찮을까요?

저항이 아니라 주어진 조건과 조율하는 거예요. 원불교 원남교당은 주변과 소통하는 데 방점을 찍습니다. ‘도시침술Urban Acupuncture’(최소한의 개입으로 도시를 살리는 것을 지칭)을 바탕으로, 종교관 주변에 순환로를, 부지 가장자리에 7개의 골목길을 연결했습니다. 이러한 골목길은 부지 안으로 이어져 ‘깨달음의 길’을 형성합니다. 물론, 종교 공간 내부를 소란스러운 외부 환경으로부터 지키는 건축적 장치도 있어요. 마당을 중심으로 북쪽과 남쪽에 마련했죠. 서광다원은 매스스터디스와 12년째 인연을 이어오고 있습니다. 정영선 조경가와 협업해 바둑에서 집을 짓듯이 기존 단지와 환경을 고려해 단계별로 섬세하게 건물을 세우고 확장했습니다. 방문객은 거미줄같이 연결된 길을 탐험하며 어떤 ‘관계’를 발견할 수 있을 거예요. 더불어 높아졌다가 낮아지고, 넓어졌다가 좁아지고, 똑바로 가다가 굽어지는 길의 반복은 독특한 시선을 유도하고요. 스페이스K는 녹지 공원(대지)-미술관-옥상정원을 이어 공공과 민간의 경계를 모호하게 했습니다. 공공의 민간 미술관이 된 것이죠.


그런데도 레지스탕스적 면모가 강해 보입니다. ‘모더니즘적’ 건축물이 팽배한 우리나라에서 매스스터디스 건축은 사회에 어떤 반향을 일으킬 수 있다고 생각하시나요?

앞서 답변한 것처럼, 저항이라기보다는 ‘열린 마음’입니다. 저는 고유의 스타일이 없으므로 작업에 특정한 형식적 언어를 적용하겠다는 거창한 계획과는 거리가 있어요. 프로젝트마다 접근 방식과 질문이 다르기에, 현장에서 최대한 건축의 잠재력을 끌어내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저는 건축을 통해 도시든 시골이든 우리 주변 환경을 가꾸고, 나아가 이를 홍보하는 방법을 모색하려고 해요. 모든 것을 포괄하는 단 하나의 해결책은 없습니다. 단지 제가 이해한 내용과 해석만 제시할 뿐.


마지막으로, 건축가를 만날 때마다 드리는 질문이 있습니다. 건축은 예술에 가까울까요? 실용에 가까울까요?

건축은 예술이 아닙니다. 제 친한 친구들 상당수가 예술가인데, 그들은 건축가의 사고를 뛰어넘는 질문과 방법론을 보여주더군요. 절로 존경하게 되었습니다. 건축은 분명 표현의 한 형태가 될 수 있지만, 특정 방식으로 수행하고 기능해야만 합니다. 건축이 만들어내는 제스처는 단순히 예쁜 배경이 아닌, 우리가 살고 일하고 휴식하는 행위에 영향을 미쳐야 한다는 뜻이에요.


‘링 돔’, 밀라노, 2008, Mass Studies, © Eric Xu and Vivi YingH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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