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럭셔리> 2024년 7월호

오데마 피게의 새로운 로열 오크 미니

1875년 창립한 오데마 피게는 소재에 대한 남다른 열정으로 끊임없이 발전하고 있다. 지난 6월 밀라노에서 열린 전시 <상상 그 너머의 세계: 소재를 성형하다>가 이를 뒷받침한다. 전시 오픈에 앞서 ‘로열 오크 미니 트리오’를 선공개하며 새로운 서막을 알렸다.

EDITOR 이민정


밀라노의 이른 아침, 바구타 거리에 위치한 AP 하우스로 사람들이 하나둘씩 모이기 시작했다. 올해 3월에 새롭게 오픈한 AP 하우스 밀라노는 차고로 사용했던 유서 깊은 옛 건물이 리모델링을 통해 오데마 피게의 감성으로 재탄생한 곳. 5층부터 9층까지 이어지는 내부는 나선형 계단으로 연결되어 있고, 가장 위층에는 루프톱 공간이 마련되어 도심의 전경을 감상할 수 있다. 루프톱 옆 공간에 사람들이 북적이기 시작하자, 오데마 피게의 CEO 일라리아 레스타Ilaria Resta, 헤리티지 디렉터 세바스티안 비바스Sébastian Vivas 그리고 주얼리 디자이너 카롤리나 부치Carolina Bucci가 등장했다. 베일에 싸여 있던 오데마 피게의 신제품이 공개되는 순간이었다.


MINI YET MIGHTY

오데마 피게가 자신 있게 내놓은 신제품은 ‘로열 오크’ 컬렉션의 소형 쿼츠 워치. 정식 명칭은 ‘로열 오크 미니 프로스티드 골드 쿼츠’ 워치다. 1972년에 제랄드 젠타Gerald Genta가 디자인한 오리지널 ‘로열 오크’의 미학적 코드와 1997년에 출시했던 케이스 지름 20mm의 ‘미니 로열 오크’를 계승하는 모델이다. 케이스 크기는 오리지널 모델보다 살짝 커진 23mm로, 손목 위에서 앙증맞은 사이즈를 자랑한다. 작은 크기에 비해 존재감이 뚜렷한 데는 텍스처에서 그 이유를 찾을 수 있다. 끝부분이 뾰족한 다이아몬드로 이루어진 툴을 사용해 골드 표면에 미세한 자국을 내서 질감을 살린 것. 이 공법은 피렌체의 전통적 주얼리 장식 기법의 하나로, 주얼리 디자이너 카롤리나 부치가 현대적으로 재해석했다. 오데마 피게는 2016년 여성용 ‘로열 오크’의 출시 40주년을 맞아 처음으로 워치에 적용했고 이를 기점으로 이것을 프로스티드frosted 골드라 명명했다. ‘로열 오크 미니’는 전면과 측면에 질감 차이를 줘 컬렉션의 상징인 팔각형 베젤을 강조하는 동시에 주얼리로서의 미학을 고조시킨다. 다이얼은 프티 타피스리 패턴과 다면으로 이루어진 골드 아워 마커를 톤온톤으로 매치했고 아워 마커에는 야광 물질을 채워 어둠 속에서도 가시성을 높였다. 매뉴팩처는 소형 워치에 맞춰 쿼츠 무브먼트를 선택하고 7년 이상 지속되는 오랜 수명의 쿼츠 칼리버 ‘2730’을 탑재했다. 이는 같은 사이즈 시계 중에서도 최고 수준을 자랑한다. 칼리버에는 스위치가 장착되어 크라운을 당기면 배터리를 무기한으로 비활성화할 수 있는 것도 장점이다. 크기는 작지만, 결코 가볍지 않은 존재감을 발산한다.


케이스 지름 23mm의 ‘로열 오크 미니 프로스티드 골드 쿼츠’ 워치와 케이스 지름 34mm의 ‘로열 오크 프로스티드 골드 셀프와인딩’ 워치.



해머 마감 기법을 통해 골드 표면의 텍스처를 살린 프로스티드 골드를 사용했다.



화이트·옐로·핑크 골드로 만날 수 있는 ‘로열 오크 미니 트리오’.



A PRESENT FROM THE PAST

워치메이킹에서 복각은 흔히 사용되는 코드지만 기술적으로나 디자인적으로나 오리지널 모델을 뛰어넘는 타임피스를 출시하는 경우는 흔치 않다. 그렇다고 완전 불가능한 일도 아니다. 오데마 피게의 ‘[리]마스터’ 컬렉션이 이를 방증하는 좋은 예다. 과거의 전통을 계승하면서도 이전보다 발전한 기술력을 토대로 선구적인 워치 에디션을 선보이고 있기 때문. 2020년에 처음 공개한 ‘[리]마스터01’ 워치는 1943년에 출시한 크로노그래프 워치를 조명해 재탄생했다. 그 후로 4년이 지난 2024년 여름, 오데마 피게는 두 번째 ‘[리]마스터’ 컬렉션을 공개했다. 매뉴팩처의 아카이브 모델인 만큼 ‘[리]마스터02’ 워치의 시초부터 살펴봐야 한다. 1960년에 출시한 ‘5159BA’ 워치가 바로 그것인데, 독특한 비대칭 케이스가 가장 두드러진 특징이다. “1959년과 1963년 사이에 오데마 피게는 30개 이상의 비대칭적 모델을 탄생시켰습니다.” 헤리티지 및 뮤지엄 디렉터 세바스티안 비바스에 따르면 이 워치들은 대부분 10피스 미만으로 생산했다고 한다. 한마디로 희소성이 높은 셈이다. 실제로 오리지널 모델은 총 7점 생산했고 그중 한 점은 현재 스위스에 위치한 ‘뮤제 아틀리에 오데마 피게’에서 전시 중이다. 다시 신제품으로 돌아와 외관을 살펴보면, 비대칭 케이스는 유지한 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모습이 인상적이다. 과거 지름 27.5mm의 옐로 골드 케이스는 41mm로 대폭 크기를 키우고 옐로 골드 대신 오데마 피게에서 올해 초 처음 선보였던 18K 합금 소재인 샌드 골드로 케이스를 제작했다. 금, 구리, 팔라듐을 조합해 만든 샌드 골드는 빛에 따라 화이트 골드와 핑크 골드를 넘나들며 시시각각으로 달리 보이는 풍부한 컬러 스펙트럼을 자랑한다. 그리고 이 워치의 하이라이트라 할 수 있는 직사각 형태의 다면 케이스는 어느 방향에서 보느냐에 따라 보이는 면이 달라 여러 각도로 감상하는 재미가 있다. 정면에서 바로보면 시계의 왼쪽을 늘린 듯하고 러그 방향 측면에서 보면 15.8도로 꺾어지는 경사를 확인할 수 있다. 이런 독특한 케이스를 완성하기 위해서는 고도의 기술이 필수적이다. 경사진 사파이어 크리스털을 제작하는 것부터 각진 케이스의 방수 기능을 보장하는 것까지. 2년간의 연구 개발 끝에 세상에 나올 수 있었다. PVD(물리적 기상 증착) 공정으로 완성한 다이얼도 눈여겨볼 만하다. ‘블루 뉘, 뉘아주Blue Nuit, Nuage 50’이라 명명한 다이얼은 부채꼴과 삼각형 등 12개의 다각형을 황동 플레이트 위에서 조각보처럼 결합한 것. 조립한 다이얼을 강조하기 위해 아워 마커나 날짜 창 등의 디테일을 과감하게 덜어냈다. 그 대신 중앙에서 뻗어나가는 라인이 아워 마커 역할을 대신한다. 무브먼트는 2.8mm의 얇은 두께를 자랑하는 칼리버 ‘7129’로 구동하며 사파이어 크리스털 케이스 백을 통해 감상할 수 있다.



‘[리]마스터02’ 워치에 영감을 준 1960년의 모델 ‘5159BA’ 워치.




보는 각도에 따라 색다른 느낌을 주는 비대칭 케이스의 ‘[리]마스터02’ 워치 에디션. 250점 한정으로 만날 수 있다.



SEEK BEYOND: SHAPING MATERIALS

밀라노 중심부에 있는 포트레이트 밀라노의 콰드릴라테로Quadrilatero 광장 앞에 커다란 직사각형의 금빛 파빌리언이 등장했다. 입구는 어떤 힘을 받아 뚫린 듯한 형태로 제작했고 광장 곳곳에는 입구에서 떨어져 나온 듯한 금빛 소재들이 오브제처럼 흩어져 있었다. 이 파빌리언은 바로 오데마 피게의 <상상 그 너머의 세계: 소재를 성형하다> 전시장이다. 지난 6월 3일부터 6월 15일까지 진행한 전시는 오데마 피게의 소재에 대한 열정을 바탕으로 창의적인 기술과 디자인에 대한 이야기를 전시로 담았다. 총 5개로 구분 지은 전시실은 새롭게 개발한 신소재부터 소형 워치에 대한 헤리티지, 사다리꼴·팔각형 등 독특한 형태의 시계 케이스 컬렉션, 신제품까지 매뉴팩처의 지속적인 탐구 정신과 노력을 간략하게 추렸다. 가장 인상적인 곳은 그동안 오데마 피게에서 나온 소형 워치를 한데 모은 공간. 대형 ‘로열 오크’가 반기는 살굿빛 공간에 그간 출시했던 소형 워치와 신제품 ‘로열 오크 미니’를 전시했는데, 각 워치에 어울리는 음악을 함께 감상할 수 있도록 플레이리스트를 준비해 시각과 청각 모두 울림을 주었다. 형태와 소재에 대한 전시인 만큼 신소재 이야기도 빼놓을 수 없다. 지난 3월, 다채로운 색을 지닌 ‘크로마 세라믹’을 공개한 데 이어 카무플라주 모티프의 ‘크로마 골드’를 소개했다. 화이트·옐로·핑크 골드를 최신 방전 플라즈마 소결(SPS) 기술로 카무플라주 패턴처럼 보이도록 결합한 것. 이 기술로 특허를 취득한 오데마 피게는 또 한 번 새로운 장을 여는 열쇠를 거머쥐었다. ‘로열 오크’ 크로마 골드를 마주할 날이 머지않았다는 얘기다.



콰드릴라테로 광장에 위치한 <상상 그 너머의 세계> 전시장 전경 이미지.



오데마 피게의 소형 워치 컬렉션을 소개하는 전시 공간.



플라즈마 소결 기술로 화이트·옐로·핑크 골드를 결합해 카무플라주 패턴으로 완성한 크로마 골드.



OOPERATION  오데마 피게(533-13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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