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지우 스스로를 ‘늘 무언가를 찾고 모으는 사람’이라고 소개할 만큼 왕성한 수집욕을 자랑하는 수집가. 우연히 찰스 & 레이 임스의 파이버글라스 체어를 만난 후 가구에 관심을 갖게 됐다. 빈티지 가구 숍 ‘오드플랫’을 운영하며 수집의 기쁨을 확장하고 많은 이와 취향을 나누고 있다.
어떤 물건은 사람의 생을 바꿔놓기도 한다. 빈티지 가구 숍 ‘오드플랫’을 운영하고 있는 박지우 대표가 미드센추리 모던 디자이너로 대표되는 찰스 & 레이 임스Charles & Ray Eames의 파이버글라스 체어를 만난 것은 하나의 사건이었다. 원래부터 오디오 기기, 시계, 차 등을 탐구하고 모으는 데 열심이던 그의 레이더가 강력하게 발동했다. 처음 구매한 오커 라이트 컬러 체어를 시작으로 ‘임스 체어’를 수집하기 시작했다. 의류 디자이너로 회사 생활을 하던 중에도 퇴근 후엔 의자를 붙들고 살았다. 희귀한 모델을 구해 만지고 닦고 고치며 시간을 보내다 보니 어느새 집이 발 디딜 틈 없이 의자와 빈티지 가구로 가득 찼다. 아이가 태어날 무렵 ‘안 되겠다’ 싶어 보관 창고 겸 개인 작업실로 8평 남짓한 공간을 구했고, 그즈음 형성된 빈티지 가구 시장의 확대 흐름이 맞물려 자연스레 숍 운영자의 삶에 들어서게 됐다. 그가 운영하는 오드플랫이 다른 가구 숍과 다른 특별한 점은 단순히 희귀한 빈티지 제품을 판매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는 것이다. 공간 한편에서는 빈티지 가구를 전문적으로 복원하고 직접 복원 파츠를 제작하는 리스토어 서비스를 제공한다. 임스 체어뿐만 아니라 다양한 가구와 리빙 아이템을 다루며 좀 더 많은 이에게 이야기와 아름다움이 깃들어 있는 물건을 찾고 곁에 두는 즐거움을 전파하려 한다. 친숙한 모던 가구 외에도 아직까지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디자이너의 제품이나 낯선 문화의 가구를 국내에 소개하려는 노력도 멈추지 않는다. 나아가 사람들과 함께 가구를 매개로 더욱 밀착된 관계를 이어가는 일, 그것이 박지우 대표의 궁극적인 바람이다. 시간이 많이 흐른 뒤에도 사람들이 머무르는 동네 작은 빈티지 숍 주인으로 살기를 꿈꾸는 박 대표와 스타일에 관한 30가지 이야기를 나눴다.
좋은 물건을 찾고 모으는 것에 진심이다. 시계와 오디오는 수집의 주요 테마. 수집하며 쌓이는 지식, 이야기, 인연, 사람들을 통해 세상을 배운다.
내 스타일의 ‘한 끗’은?
특정 스타일을 좇지 않는 것. 어느 순간부터 그때그때 끌리는 아이템을 구매해서 자유롭게 입는 방식을 추구하게 되었다.
나를 매료시킨 스타일 아이콘은?
어렸을 적엔 일본 배우 오다기리 조를 참 좋아했다. 아마도 내 또래 남자라면 다들 공감하지 않을까? 스타일리시하면서도 독특한 매력이 있다.
옷장에서 가장 오래된 아이템은?
캠버Camber의 맥스 웨이트 포켓 티셔츠. 화이트와 블랙 컬러 모두 구입해 정말 오래 입었다.
단 한 벌만 챙겨야 한다면?
만듦새가 훌륭한 브랜드, 오어슬로우Orslow의 올리브 컬러 퍼티그 팬츠. 가장 클래식하고 군더더기가 없을뿐더러 무엇보다 착용감이 편안하다.
늘 지니고 다니는 가방 속 필수품은?
립밤을 꼭 챙기는데, 참 끝까지 쓰기 어려운 아이템이다. 요즘은 후배가 선물해준 ‘보이 드 샤넬’ 립밤을 쓴다.
옷을 쇼핑할 때의 기준은?
이제는 나에게 어울리는 것이 무엇인지를 안다. 마냥 예쁜 것보다는 나와 잘 맞는 옷을 찾아 구매하고자 한다. 또 일할 때 편하고 튼튼한 옷이어야 한다. 가구를 다루는 데다 무거운 것을 많이 들기도 해서 옷이 찢어지거나 망가지는 경우가 많다.
가장 최근에 구입한 것은?
서병익오디오에서 제작한 진공관 EL34 싱글 앰프 ‘비올레타’. 오랜 취미로 빈티지 오디오를 수집하지만 주로 외산 오디오를 샀는데 이번에 나도 모르게 굳어진 편견을 깨고 싶어서 국산을 찾아 구매했다.
요즘 가장 갖고 싶은 것은?
포르쉐 ‘964’. 차를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갖고 싶은 차를 하나만 꼽으라면 이 모델을 꼽는 이가 많을 거다. 늘 변함없이 세련된 디자인을 자랑하는 포르쉐지만 964는 특유의 ‘개구리 디자인’이 돋보이고 공랭식 엔진이라 달리는 맛이 남다르다고 한다.
나의 시그너처 향은?
요즘은 크리드 ‘네롤리 소바쥬’를 쓴다. 사실 매장에 갔다가 예쁜 보틀이 눈에 띄어서 덜컥 샀다. 집 어딘가에 놓아두면 참 예쁘겠다고 생각했다.
요즘 즐겨 듣는 음악은?
제퍼슨 스타십의 1978년 앨범
근래 가장 인상 깊었던 책은?
아무래도 디자인 관련 책을 많이 보는데 최근 우연히 마광수의 <행복철학>을 사서 읽게 됐다. 처음엔 도무지 공감이 안 돼서 설렁설렁 보다가 몇몇 문장에 마음이 머물렀다. 예를 들면 ‘모든 걸 지나치게 노력하며 이루지 말라’는 식의 얘기들. 나름 치열하게 살아왔고 또 지금도 그렇게 살다 보니 간혹 지치기도 한다. 그럴 때 떠올려보면 좋을 생각들이었다.
근래 가장 인상 깊었던 영화는?
내 인생 영화를 언급하고 싶다. 1969년 개봉한 <미드나잇 카우보이>다. 낙원상가 맨 위에 서울아트시네마가 있던 시절, 그곳에서 이 영화를 혼자 봤다. 스토리도 흥미로웠지만 스크린에 펼쳐지던 옛 텍사스와 뉴욕의 모습이 충격적으로 멋있었다. 수십 번 봤고 유일하게 DVD를 소장하고 있는 작품이기도 하다.
작품을 소장하고 싶은 아티스트가 있다면?
제인 딕슨Jane Dickson. 서울시립미술관에서 그의 작품을 처음 본 후 푹 빠졌다. 대중적으로 크게 알려진 작가는 아니지만 지난 키아프 서울에서도 만나볼 수 있었다. 작품을 구매하고 싶어 알아봤는데 정해둔 예산보다 금액이 높아서 포기했다.(웃음) 언젠가는 꼭 한 점이라도 구입하고 싶다.
내 인생의 스타를 꼽는다면?
아버지. 아버지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았다. 내 손재주도 그로부터 물려받은 듯하다. 또 굉장히 꼼꼼하고 성실한 분이라 그런 삶의 태도를 자연스레 배울 수 있었다.
일어나면 가장 먼저 하는 일은?
아들에게 잘 잤는지 물어본다. 다섯 살 난 아들은 요즘 자기가 하고 싶은 말만 하는 시기라 딱히 돌아오는 대답은 없지만, 그래도 항상 “잘 잤어?” 하고 묻는다.
잠들기 전 하는 일은?
유튜브를 보다 잠든다. 주로 여행이나 인테리어 관련 내용을 보는 편이다.
절대 빼먹지 않는 자기 관리법은?
충분히 잠을 자는 것. 바쁘다 보니 꾸준히 운동하는 건 어렵고 잠이라도 잘 자려고 노력한다. 최근에는 금연에 성공했다.
냉장고 속 필수품은?
‘싱하’ 소다 워터를 꼭 구비해놓는다. 그냥 마시기도 하고 하이볼에 넣어서 즐기기도 한다.
평생 하나의 음식만 먹는다면?
선택이 어렵지만, 간장계란밥이 어떨까? 자극적인 맛이나 쉽게 질리는 음식을 제외하면 간장계란밥이 딱이다. 아들의 식사를 챙길 때 내가 자주 해주는 것이기도 하다. 그럴 때면 꼭 나도 한 입 같이 먹고 싶다.
나에게 의미 있는 장소는?
대학로. 학창 시절을 보낸 곳이기도 하고 대학로에서 인근의 성북동까지 이어지는 길의 분위기를 좋아한다.
최고의 여행 기념품은?
감도 높은 빈티지 숍에서 사 온 물건들. 여행지에는 언제나 멋진 빈티지 숍이 있다. 특히 시카고에 있는 ‘Richard’s Fabulous Finds’는 시카고를 방문하는 이들에게 꼭 추천하는 곳이다.
내가 받은 최고의 선물은?
아내가 선물해준 2011년식 벤츠 ‘비아노’. 예전엔 백패킹을 즐겼는데 아이와 함께하면서부터는 오토 캠핑을 다니게 됐다. 좋은 캠퍼 밴으로서 역할을 다해주길 기대하며 이 차를 선물해줬는데, 이후 부쩍 바빠져서 한 번도 못 떠났다.
요즘 내가 가장 집중하고 있는 것은?
유행에서 비껴가고자 하는 것. 어떻게 보면 내 일과 삶을 관통하는 생각이기도 한데, 언제나 유행에 휩쓸리는 것을 경계하고 유행과는 다른 길을 만들어가고자 다양한 고민과 시도를 한다.
인생에서 포기할 수 없는 즐거움은?
아들과 함께 노는 시간. 일을 쉬는 일요일은 항상 가족과 보낸다. 아들이 더 커버리면 지금의 이 시간이 정말 그리울 것 같다.
인생에서 가장 의미 있었던 조언은?
누가 말해줬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고마움에 감사함을 표현할 줄 알며, 나의 잘못에 사과할 줄 알아야 한다”라는 말을 자주 떠올리고 되새긴다.
내가 만약 다른 삶을 살 수 있다면?
서울과 멀리 떨어진 곳에 터전을 잡고 전통주 만드는 일을 해보고 싶다. 최근 만나게 된 한 분이 전남 당진에서 쪽 염색을 하시는데 집으로 불러주셔서 방문한 적이 있다. 함께 근처 양조장도 가고, 평화로운 곳에서 좋은 경험들을 했다. 술을 꽤 즐기는 편이라 술 만드는 일도 즐겁게 할 수 있을 것 같다.
내가 가장 편안함을 느낄 때는?
일요일 아침, 집에서 음악을 들으며 근처 빵집에서 사온 갓 구운 빵을 먹을 때. 그때 듣는 곡 플레이리스트가 있다.
나의 영감의 원천은?
아무래도 일할 때 영감을 얻고 또 발현된다. 나와 비슷한 일을 하는 이들로부터 영향을 많이 받는 편이다. 해외 빈티지 딜러들의 컬렉션과 취향, 그들이 벌이는 다양한 일은 항상 좋은 자극이 된다.
내가 생각하는 ‘럭셔리’란?
좋은 철학과 올곧은 태도. 그것이 물건이라면 뛰어난 만듦새까지. 내게 이런 인터뷰 기회가 주어진 것도 내가 곧은 심지를 갖고 사람들에게 좋은 제품을 판매하고 서비스를 제공하려 노력하기 때문이 아닐까? ‘럭셔리’한 삶의 자세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답변을 마치는 소감은?
커피를 더 마셔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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