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처드 미즈락 UC 버클리에서 심리학을 전공한 후 50년 이상 미국 서부의 역동적인 풍경을 정치적·환경적 시선으로 담아왔다. 시각적으로 매혹적인 그의 대형 포맷 풍경 사진은 인간의 개입, 산업 발전, 핵실험, 석유화학 오염 등 인간이 자연에 미치는 파괴적인 생태학적 영향을 탐구한다.
선명하고 사색적인 대형 작품을 통해 인간이 자연에 미치는 파괴적인 생태학적 영향을 연구하는 사진작가 리처드 미즈락. 1970년대부터 대형 카메라와 컬러필름으로 미국 서부 사막의 화재, 핵실험장, 미국-멕시코 국경 등을 촬영한 그의 작업은 동시대 사진의 인덱스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작가가 설정한 네모난 프레임 안에는 과거와 현재를 잇는 사회, 정치, 환경문제, 사진의 역사를 뒤흔든 획기적 기술과 예술적 행위가 내포돼 있기 때문. 그런 그의 대표 연작과 신작을 감상할 수 있는 전시가 6월 15일까지 페이스갤러리에서 열린다.
심리학과를 졸업한 뒤 사진작가의 길을 걷고 있다.
1967년부터 1971년까지 UC 버클리에서 심리학을 전공했다. 2학년 무렵, 친구가 캠퍼스 안에 미술 스튜디오가 있다며 나를 데려갔다. ‘ASUC 스튜디오’라 불린 그곳에선 도자기, 암실, 에칭 등의 작업을 할 수 있었다. 그때는 미술과 멀리하고 있어서 뭐가 뭔지 잘 몰랐지만.(웃음) 그러다 스튜디오 스태프로 일하던 로저 미닉Roger Minick의 작업을 보고 단번에 사진과 사랑에 빠졌다. 여느 매체와 달리, 메시지를 전달하는 방식이 매우 강렬했으니까. 이로 인해 스튜디오에 자주 방문하게 됐고, 열정적으로 암실 테크닉을 익혔다. 또 캘리포니아에선 앤설 애덤스Ansel Adams, 에드워드 웨스턴Edward Weston 등이 유명했기에 그들의 사진을 찾아보며 공부했다.
첫 번째 작업 ‘Telegraph 3 AM’(1974)과 심리의 연관성은 무엇일까? 텔레그래프 애비뉴에 있는 노숙자의 얼굴을 ‘기록’했는데.
당시 미국은 정치적으로 격동의 시절을 관통했다. 마틴 루서 킹이 암살당했고, 베트남전쟁이 일어났다. UC 버클리에 전쟁 반대 시위가 끊이지 않아서 자연스레 카메라를 들고 현장에 뛰어들었다. 이는 앤설 애덤스 같은 풍경 사진을 바랐던 관심사가 거리에서 일어나는 사건으로 전환되는 계기가 됐다. ‘Telegraph 3 AM’은 1972년부터 1974년까지 찍은 사진들로 이뤄져 있다. 캠퍼스 근처에 살았던지라 반드시 텔레그래프 애비뉴를 지나쳐야 했는데, 길 위에 노숙자와 히피가 많아 무서웠던 기억이 난다. ‘꿈’을 주제로 졸업 논문을 작성해서일까. 밤에 잠을 자다가 그들을 사진 찍는 꿈을 꾸었다. 꿈에서 깬 순간, 텔레그래프의 현주소를 남기는 일이 나의 임무란 확신이 들었다. 그러나 몰래 찍는 행위는 내키지 않았다. 우선 협조를 구한 다음, 카메라를 삼각대에 고정해 그들을 촬영했다. 이후 사진을 인화해서 가져다주니 금세 친해졌다. 덕분에 사진 속 인물과 당신이 눈을 마주칠 수 있게 된 것이다. 이러한 과정 전부가 심리학의 일부 아닐까.
저널리즘적 사진을 촬영하다 보면, 내가 찍은 한 장의 사진으로 세상을 바꾸는 상상을 하게 된다.
‘Telegraph 3 AM’을 작업하면서 나의 고정관념과 선입견을 버렸다. 내가 그들과 친숙하게 지낸다면, 보는 이도 있는 그대로 그들을 대할 수 있으리라 확신했다. 그래서 작업을 발표했을 때 세상이 바뀔 것으로 예상했지만, 그렇지 않았다.
1979년부터 사막에서 진행한 ‘Desert Cantos’ 프로젝트에는 사람이 드물다. 석유화학 오염, 핵실험 등 인간이 자연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을 논하는 작업에 사람을 제외한 이유는?
작가로 첫발을 내디딘 작업이 주목받으면서 의도치 않게 텔레그래프 작업이 노숙자들을 착취하는 게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일었다. 더는 사람에 초점을 맞추지 않겠다고 결심했다. 때마침 문화인류학자 카를로스 카스타네다Carlos Castaneda의 <돈 후앙의 가르침>을 읽고 있었는데, 그의 영적인 글에 감동한 나머지 스트로브를 손에 쥐고 한걸음에 한밤의 사막으로 달려가 피사체를 찍었다(‘Night Desert’, 1975~1977). 사막 작업의 서막이 오른 1970년대 후반, 나에게는 큰 변화가 있었다. 대형 카메라와 컬러필름을 사용하기 시작했고, 신비주의자 게오르기 구르지예프George Gurdjieff와 표트르 우스펜스키Pyotr Ouspensky에 빠졌다. 특히 인생을 알려면 하루 정도는 패턴을 바꿔보라는 신비주의자의 말에 공감했다. 가령, 어제 오른손으로 이를 닦았다면 오늘은 왼손으로 닦는다든지 같은. 이를 암실에도 적용해 현상과 인화 순서를 바꾸고, 전등을 켠 채 작업해봤다. 이렇게 거리와 사막, 암실에서 나만의 사진 언어를 습득한 것이, 즉 ‘언런Unlearn(버리고 다시 배운)’한 것이 ‘Desert Cantos’(1979~)의 토대가 됐다. 그렇게 돌아간 사막에서 지구온난화라는 단어를 처음 들었고, 그때부터 사람들이 인공적으로 조성한 환경을 담아냈다.
당신의 타임라인은 앨프리드 스티글리츠Alfred Stieglitz와 비슷하다. 작가 초기에는 날카롭게 현실을 기록했지만, 시간이 지난 후에는 스티글리츠의 ‘Equivalent(등가)’같이 피사체에 감정을 투영한 듯하다.
앨프리드 스티글리츠, 앤설 애덤스, 에드워드 웨스턴 등은 나의 사진 인생에서 알파벳과 다름없다. 그들을 따라 하며 사진을 배웠기 때문. 스티글리츠처럼 흑백으로 구름을 찍어보기도, 애덤스 작품 속 공간에서 풍경 사진을 찍어보기도 했다. 거듭 설명하면, 언런을 통해 선배 사진가들에게 배웠던 사진 규칙에서 벗어나 나만의 기법을 찾을 수 있었다. 예로, 컬러 작업을 하는 사진가가 드물었던 1970년대 후반, 내가 ‘스플릿 토닝split toning(색조 추가)’ 등을 흑백사진에 먼저 도입했다. 이때 탄생한 작품들을 보면, 흑백 위에 감도는 오묘한 색을 발견할 수 있다(‘Hawaii’, 1978~1979).
프로젝트 제목에 에즈라 파운드Ezra Pound의 연작 ‘칸토스The Cantos’ 개념을 빌렸다. 개별 작업으로는 다양한 형식을 실험하지만, 한데 모았을 때는 하나의 주제(태도)를 견지하는 옴니버스랄까?
사막의 불과 홍수를 찍을 때만 하더라도, 하나의 주제는 개별 시리즈로만 존재해야 했다. 역시나 때마침(!) 읽고 있던 에즈라 파운드의 시집 <칸토스>가 작업의 정석을 깨는 데 도움이 됐다. 난해한 언어로 쓰여 완벽히 습득하진 못했지만, 첫 번째 시가 두 번째 시로, 두 번째 시가 세 번째·네 번째로 연결되는 게 인상적이었다. 이런 구조는 사진 작업에 그간 없던 것이라 불, 홍수, 지형 등의 사진이 이어지면, 작업이 서로 대화하며 새로운 작업을 만들고, 나아가 하나의 시스템이 될 거로 생각했다. 참고로, 아주 긴 노래의 일부분을 지칭하는 단어가 바로 칸토스다.
대상을 가운데에 두는 프레이밍이 눈에 띈다. 유사한 유형의 사진을 반복해서 보여주는 구성은 도감을 연상케 한다. 이미지들의 응집력을 높이기도 하고. 더욱이 낮은 채도의 사진은 묘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칸토스처럼 사진으로 미국이라는 나라의 서사시를 구축하고자 했다. 나에게 사막은 무엇이든지 말할 수 있는 ‘백지(tabula rasa)’다. 숲에 들어가면 오직 나무만 보이지만, 사막에선 주변의 모든 것이 선명하게 보인다. 작업을 예로 들면, 수영장을 닮은 움푹 파인 구덩이, 폭격 훈련을 했던 장소 등은 저마다 상징성을 드러낸다. 사막에서 포착한 것들을 병치했을 때 관객은 ‘이들이 왜 모여 있지’라는 의문이 들 것이다. 이와 더불어 정신역동(정신이 행동을 어떻게 자극하는지, 정신과 행동이 개인의 사회 환경과 어떻게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지 강조하는 이론) 역시 작동할지도. 내 작업이 우리의 삶을 복합적으로 사유하게 하는 원동력이 됐으면 한다.
결국 비판으로 귀결된다. 이 대목에서 작가에게 ‘정치적’이라는 단어가 주는 의미는?
방금 대답한 것과 같이 우리 삶을 복합적으로 사유하는 것. ‘Telegraph 3 AM’에는 사회적 어젠다가, ‘Night Desert’에는 신묘함이 있다. 둘 다 메시지를 전달하는 강력한 도구다. 1970년대 후반 사진적 갈림길에 섰을 때 나는 예술의 기능과 역할에 열중하겠다고 결론 내렸다. 제리코와 피카소의 커다란 작품처럼 사람들이 그 앞에 서서 인류에 관해 고뇌하는 사진 작업을 지향한다. 신문에 게재되는 사진은 중요도에 비해 수명이 짧은 게 사실 아니던가. 이를 극복하는 방법론 중 하나가 대형 카메라다. 사진 스케일이 커지면, 그 안에 빠져서 사유하는 시간을 보낼 수 있다.
하지만 디지털 매체가 활성화된 오늘날 스펙터클을 전면에 내세우지 않는 사진은 수명이 짧다. 보는 이의 시선을 오랫동안 사로잡지 못하는 사진은 작가의 메시지를 해석하는 단계로 넘어가는 일이 어렵지 않을까?
작가 경력 말미를 향해가고 있는 나를 난관에 빠뜨리기 위한 질문인가.(웃음) 지난날을 반추했을 때 당장은 AI가 두렵겠지만, 머지않은 미래엔 분명 긍정적 결과를 가져올 것으로 예측한다. 필름 카메라 시절에는 세팅을 하는 동안 피사체가 사라지는 일이 비일비재했는데, 디지털카메라가 나오면서 이런 에피소드가 사라지지 않았는가. 끔찍한 이미지를 필터링하는 기술이 진일보한다면, 또 다른 유형의 사진이 창조될 거라고 믿는다.
이번 전시는 갤러리 1층과 2층이 구분된다. 소금 사막에 식탁과 의자를 놓은 ‘Outdoor Dining, Bonneville Salt Flats’(1992), 일몰 시각에 촬영한 ‘Cloud, Roden Crater’(2016) 등이 있는 1층이 ‘자연과 인간’이라는 주제를 바탕으로 사진들이 서로 관계 맺는 칸토스적 구성이라면, 페이스갤러리 서울에서 최초로 공개한 2층의 작품들은 실험적 성격이 짙다.
2층에 있는 ‘Elephant Parable’ 시리즈는 UCSF 낸시 프렌드 프리츠커 정신병동의 의뢰로 제작했다. 시각장애인과 코끼리 우화에서 영감을 받은 작업은 우리가 모두 다른 경험을 하며, 같은 사안일지라도 서로 다른 입장을 갖는다는 것을 비유한다. 한 장의 원본 사진을 포토샵에서 조작해 여러 장으로 저장했다. 사진들을 자세히 보면, 원본의 어느 부분을 공유했는지 분간할 수 있으니 꼼꼼히 살펴보길 바란다.
다만, 2층 작업은 사진마다 너무 명확한 힌트를 준 까닭에 사람들의 호기심을 불러일으킬 수 있을지 고개를 갸우뚱거리게 된다. 기존보다 작게 픽셀을 크랍crop했으면 어땠을까?
잠시 ‘내가 더 잘했어야 했군’이라고 반성했다.(웃음) 당신이 제안한 내용을 밀어붙일 수 있었으나, 이미지마다 뉘앙스를 주는 것에 무게추를 뒀다. 보통 사진 작업은 한 장의 결과물만 이야기하는데, ‘Elephant Parable’은 하나의 사진에서 파생된 독특한 이미지들을 다루지 않는가. 새로운 작업을 위한 시도 혹은 전환점으로 이해했으면 한다.
‘Elephant Parable’을 자세히 보니, 불현듯 언런이 떠오른다. 포토샵이라는 디지털 도구를 활용했지만, 당신이 암실에서 했던 ‘규칙에서 어긋난 행동’이 사진에 녹아 있다.
코로나 19 기간 정신병동이라는 맥락 안에서 준비한 작업으로, 무거운 주제를 선택할 수 없어서 실험에 열중했다. 솔라리제이션solarization(필름, 인화지에 과도한 빛을 주는 것) 등의 사진 기법을 고려한 게 맞다. 똑같은 시각적 효과를 준 작업인데, 손과 발을 직접 움직였던 예전과 달리, 지금은 의자에 앉아서 마우스 클릭 몇 번 만에 완성한다는 게 흥미롭지 않은가.
그렇다면 동시대 사회, 정치, 환경문제에 집중한 당신 작업은 우리 일상에 어떤 반향을 일으킬까?
오히려 당신 의견이 듣고 싶다. 세상에 작업을 내놓은 작가는 당연히 사람들 반응이 궁금하다. 작업에 기대하는 바가 있지만, 그것이 실현되는지 안 되는지는 파악하기 힘들다. 그저 작업에 몰두할 뿐. 내 작업이 어떤 반향을 일으켰나? 개인적인 소감도 괜찮다.
‘Atomic Bomb Loading Pit #2’(1989)의 경우 처음엔 일반적인 수영장으로 다가와 미궁에 빠졌지만, 실제로는 원자폭탄을 실험했던 곳이란 걸 인식하고 역사책을 펼쳤다. 반면, 하와이 호텔 발코니에서 20여 년 동안 동일한 시점에서 셔터를 누른 ‘On the Beach’ 시리즈는 로맨틱하더라. 이처럼 상반된 작업을 보노라면, 리처드 미즈락이 인류애적 사고를 하는 게 느껴진다.
의식적으로 그렇게 작업했다. 사막에서 황량한 풍경을 찍은 후엔 하와이에 가 바다를 보며 머리와 가슴을 정화했다. 팔레트를 비워야 주제를 넘나들며 다른 관점을 선보일 수 있음을 깨달았다. 마지막으로, 내 작업을 감상하는 팁이 있다면, 사진 속 작은 요소에도 눈길을 줄 것. 대표적으로 ‘Diving Board, Salton Sea’(1983)에는 페데리코 펠리니의 동명 영화를 함축하는 ‘8½’이 작게 쓰여 있다. 물론, 대다수는 신경조차 쓰지 않겠지만. 수영장인데 물이 수영장 대신 저 멀리 배경에 있는 점, 만약 다이빙을 한다면 어느 곳으로 해야 할지 등을 상상한다면, 몇 겹의 레이어를 들추는 행위가 즐겁게 다가올 테다. 그리고 우리의 삶을 복합적으로 사유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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