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도 얼굴도 아직은 낯선 배우 강상준은 올 들어 벌써 세 편의 드라마에 얼굴을 내비쳤다. <내 남편과 결혼해줘>의 ‘유상종’부터 <닥터슬럼프>의 미워할 수 없는 친구 ‘손찬영’ 그리고 <재벌×형사>의 강직한 강력계 형사 ‘박준영’까지. 그야말로 열혈 행보다. 인상적인 점은 숨가쁜 발걸음에도 작품 안에서 차분히 자신의 인장을 새기고 있다는 것. 익숙한 듯 다른, 새로운 현실의 얼굴로 말이다.
“작품마다 맡은 캐릭터에 걸맞은 모습을 보여드리기 위해 많은 노력을 했어요. 촬영 시기가 비슷해서 어려운 점이 많았는데 일단 외형을 만드는 것부터 쉽지 않았죠. ‘찬영’과 ‘준영’ 사이 10kg가량 차이가 나거든요. 촬영이 없는 날엔 하루 다섯 끼를 챙겨 먹으며 종일 운동에 매달렸어요. 그래서 두 작품을 다 보셨어도 저를 못 알아보시는 분들이 많더라고요. 연기 부분에서도 완전히 다르게 보이고자 준비를 많이 했어요. 제 안의 다양한 모습을 각각 극대화하고 싶었고, 작품 내 비중이 크진 않더라도 제 역할이 제대로 빛날 수 있도록 완벽히 몫을 해내고 싶었어요.”
스스로도 의아할 만큼 오디션마다 각각 다른 이미지로 쓰이고 있다는 그는 그 다채로움을 바탕으로 자신만의 궤적을 그려가고 싶어 한다. 쉽게 판단할 수 없는 얼굴을 가졌다는 건, 배우로서 큰 축복이자 고마운 재능일 테다. 그리고 그는 그 위력을 제대로 사용할 줄 아는 근성과 감각을 지녔다.
“원래부터 꿈이 배우는 아니었어요. 막연히 예고 진학을 꿈꿨는데 그냥 거기 가면 뭐라도 되는 줄 알았죠. 그런데 현실은 아무것도 없더라고요.(웃음) 저는 그저 힙합 음악과 랩을 좋아하는 조용한 학생이었는데 진지하게 배우의 길을 걷고자 노력하는 친구들을 보며 차츰 자신을 들여다보게 됐어요. 내가 뭘 좋아하는지, 뭘 하고 싶은지를요. 한번은 전공 수업 중 역할이 주어졌는데 물 만난 듯 잘하는 친구들 사이에서 저는 입도 떼지 못하고 쭈뼛대다 자리로 돌아왔어요. 그게 너무 부끄럽고 자존심이 상하는 거예요. 그때 각성했어요. ‘나도 잘하고 싶다, 나도 사람들 앞에서 제대로 이야기하고 싶다’는 걸요.”
‘이야기’에 대한 갈망을 확인한 순간, 확실한 목적지를 찾은 나침반을 따라 질주가 시작됐다. 겁 없이 부딪치고 망설임 없이 뛰어들었다. 이후 그의 시간은 다양한 경험과 도전으로 가득하다. 중앙대 음악극과를 졸업하고 나서는 극단 생활을 했고, 이어 서울예술단에 입단해 폭넓은 역할을 소화했다. 한국무용부터 발레까지, 춤을 섭렵하며 봉산탈춤 전수자라는 성과도 남겼고 래퍼라는 독특한 이력을 쓰기도 했다. 하고 싶은 연기를 오래도록 ‘잘’하기 위해서는 머뭇거리지 않을 확신이 필요했고, 스스로를 믿고 던질 만한 단단한 뼈대가 갖춰져야 했기 때문이다.
“예술단 입단을 준비하며 과장이 아니라 진짜 전 재산을 털어 1년 치 댄스 학원과 보컬 트레이닝 프로그램을 결제했어요. ‘내가 나의 제작자다’라는 마음으로 스스로를 다듬고 연습시켰죠. 웬만큼 해서는 진짜 실력 있는 사람들, 오랫동안 이 일을 준비해온 사람들을 절대 따라갈 수 없을 것 같더라고요. 욕심을 내야 했죠. 절박한 심정으로 스스로를 벼랑 끝에 세웠어요. 해내고 싶었으니까요. 좋은 연기를 펼치고 싶었으니까요. 떳떳한 배우가 되겠다는 확고한 목표가 저를 움직이게 했어요.”
정확한 지도를 쥔 사람에게 욕심은 울창한 희망이 된다. 매체를 넘나들며 골고루 경험하면서 다채로운 즐거움과 성장을 맛보고 싶다는 그는 더 많은 기회에 대한 욕심을, 더 좋은 스토리텔러가 되고 싶다는 진심을 감추지 않는다. 하지만 이 비장함이 또 다른 매력으로 느껴지는 것은 한순간도 허투루 하지 않는 그의 최선이 믿음직한 결과로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다.
“얼마 전 배우로 성공하기에 다소 늦은 건 아닌지에 대한 질문을 받았어요. 제가 30대에 들어서서 드라마를 시작했거든요. 좀 더 일찍 대중적으로 얼굴을 알리려는 노력이 필요했을 수도 있죠. 하지만 그에 대한 조급함이나 불안함은 전혀 없어요. 저는 오래갈 거거든요. 계속해서 궁금한, 다음이 기대되는 배우로요. 오히려 저는 지금도 충분히 빠르게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고 생각해요. 무엇보다 저는 이 일을 사랑해요. ‘배우’라는 직업을 내가 빛나기 위한 수단으로 생각한다면 너무 초라하고 슬플 것 같아요. 주연이 되지 못하면, 스타가 되지 못하면 모든 것이 얼마나 무의미해지겠어요. 앞으로도 저는 멀리 보고 달릴 거예요.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해서요.”
‘강상준’이라는 이름보다 자신이 살아낸 이야기 속 인물로 사람들에게 오래 기억되고 싶다는 그는 지금까지 그래왔던 것처럼 넓은 스펙트럼으로 다양한 장르의 작품을 만나며 연기적 충돌을 이어갈 생각이다. 진심을 다해 예열의 시간을 거쳐온 그의 내일은 이제 뜨겁게 달아오를 일만 남았다.
STYLIST 강미선 HAIR 이봉주 MAKEUP 김부성
COOPERATION 마르니(772-3233),
코스(1800-2765), 토즈(3438-6008), 페라가모(3430-78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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