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12월호

ART OF LIFE, ART OF TIME

홍콩 기반의 갤러리 빌팽이 한국에서 처음 마련한 전시이자, 강명희 화백이 함께한 개인전<강명희 : 시간의 색THE COLORS OF TIME>.

EDITOR 이호준 PHOTOGRAPHER 이창화

강명희  세계적인 미술관과 기관에서 전시한 최초의 한국 여성 작가다. 파리 퐁피두 센터, 한국 국립현대미술관을 비롯해 중국 미술관, 상하이 미술관 등에서 전시를 열었다. 올해는 2023년 중국 칭다오 서해미술관에서 개인전을 가진 다음, 지난 10월 서울에서 또 한 번의 개인전 <강명희:시간의 색>을 선보였다.

갤러리 빌팽  공동 창립자이자 부자 관계인 도미니크 드 빌팽과 아르튀르 드 빌팽이 창립했다. 도미니크 드 빌팽은 과거 국무총리와 외교관 등을 역임하며 예술의 힘을 실감했다. 그가 아들과 함께 2019년 홍콩에서 설립한 빌팽은 자오우키, 프랜시스 베이컨, 조지 콘도 등을 조명하며 근현대 거장부터 신진 아티스트까지 두루 아시아 예술 시장에 소개해왔다.



‘붓 그리고 캔버스와 떠난 여정의 시간.’ 작가 강명희의 생애를 단 한 문장으로 요약하면 이렇다. 예술 세계에서 여성 작가에게 명성과 인정은 쉽게 주어지지 않던 시절, 혈혈단신으로 프랑스에 갔던 한국 여성은 1986년, 한국 작가 최초로 파리 퐁피두 센터에서 전시를 열 만큼 파리 미술계의 인정을 받았다. 그러나 영광은 예술가의 목마름을 해소하지 못했다. 강명희는 고비사막부터 파타고니아 빙하에 이르기까지 계속해서 낯선 자연으로 떠났다. 마치 부적처럼 화백의 곁을 지켰던 붓과 캔버스는 마를 날이 없었다. 그렇게 태어난 그림은 여느 풍경화와 달랐다. 명확한 선을 활용한 구상이 아닌 색의 힘을 활용한지라 추상회화의 성격과 유사한 강명희의 그림에는 그가 봤던 장소의 모습은 물론, 당시의 시간과 분위기 그리고 미지의 자연에 스스로를 던져두었을 때 느꼈던 감정까지도 오롯이 배어 있었기 때문. 더욱이 같은 장소라도 시간의 흐름에 따라 풍경이 완전히 달라지는 것처럼, 그림 위에 색깔을 덧입히는 과정을 거듭했기에 그 깊이감 또한 남달랐다. 지난 10월 말 성수동 키르 서울에서 열린 전시 <강명희 : 시간의 색>에 등장한 크고 작은 그림 50여 점은 이렇게 탄생했다. 오래 전부터 인연을 쌓아온 갤러리 빌팽의 창립자 도미니크 드 빌팽과 그의 아들이자 유년 시절부터 작가의 작품을 보고 자란 핵심 큐레이터 아르튀르 드 빌팽이 함께 준비했다. 갤러리 빌팽은 홍콩에 기반을 둔 신생 갤러리로, 팬데믹 시기 즈음 ‘절망에 빠진 인류에게 필요한 건 다름 아닌 예술이다’라는 기치를 내걸고 오픈했다. 예술가가 지닌 수단이 인류를 보듬을 수 있다는 믿음은 생애와 감정이 담긴 강명희 작가의 작품과도 합을 이뤘다. 세 사람이 의기투합해 중국 칭다오와 홍콩 등에서 전시를 열다가 올해 드디어 작가의 고국인 한국에서 개인전을 개최한 것. 갤러리 빌팽의 한국 첫 전시이자, 지난 2020년 서울 인디프레스에서의 전시 이후 3년 만의 국내 개인전을 맞이한 이들에게 그 감회부터 물었다.


이번 전시는 여러모로 뜻깊다. 갤러리 빌팽에는 한국 첫 전시인 동시에 강명희 화백에게는 오랜만에 한국에서 여는 전시이니 말이다.

(아르튀르 드 빌팽, 이하 아르튀르) 유년 시절을 돌이켜 보면 곁에 늘 강명희 작가의 작품이 자리하고 있었다. 그의 고국인 서울에서 개최할 수 있어 감회가 새롭다. (강명희) 한국에서의 전시는 늘 두려움이 앞선다. 그러나 이번 전시는 좀 달랐다. 도미니크와 아르튀르가 전시를 준비하는 내내 늘 곁에 있었고, 그림을 거는 3일 동안 조금씩 태를 갖춰가는 전시장의 모습을 보며 그림을 그릴 때와는 또 다른, 새로운 언어, 새로운 작품이 탄생하는 것을 목격하는 기분이었다.


갤러리 빌팽과 강명희 작가의 인연이 깊다고 들었다. 시작점이 궁금하다.

(도미니크 드 빌팽, 이하 도미니크) 30여 년 전 장 미셸 오토니엘, 로베르토 마타 등 여러 방면의 예술가들이 모이는 자리에서 처음 그를 만났다. 당시 예술계에서 여성 작가는 남성 작가와 동등한 기회를 가질 수도 없었을뿐더러 명성 또한 얻기 힘들었다. 하지만 강명희는 1986년 퐁피두 센터에서 한국인 최초로 전시를 했을 정도로 대단한 업적을 이룬 작가였다. 그의 작품에서 나는 현대성의 추구는 물론, 자연과 인간의 관계에 대한 고찰을 읽을 수 있었다. 전 세계로 여정을 떠나 자연과 인간 그리고 예술의 극치를 직접 경험하고 탐험했다는 점을 알고서는 놀라웠다. 지금은 조안 미첼, 리 크래스너 등의 여성 작가들이 예술계를 이끌고 있지만 당시 봤던 한국인 여성은 한발 더 앞서 예술계에 충격을 줬다.


전시명 <시간의 색>에 담긴 의미가 있다면.

(도미니크) 강명희는 작품에 시간을 담는다. 붓과 캔버스를 가지고 떠난 여정의 결과물인 그림은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당시의 진실을 잡는 행위의 일환이다. 동시에 여정에서 무엇을 보고 그리는가에 따라 우리는 작품을 보며 역사와 전통에 관한 맥락을 발견할 수도 있다. ‘시리아’나 ‘중국해’ 등의 작품이 예시가 될 테다. 이 모든 것은 눈으로 보고 ‘기억’이라는 행위를 거치지 않는다면 금세 사라져버릴 것들이기도 하다. 나아가 무너져 내리는 빙하나 황폐한 사막을 담은 작품을 보면 ‘사라져버릴 것들’에 대한 경각심도 든다. 다만 작가는 충격적인 화풍이 아닌 색과 터치를 활용한 부드럽고 안온한 방식으로 전달한다. 강명희의 그림을 ‘노아의 방주’라고 표현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일반적인 화이트 큐브가 아닌 오래전에 지어 낡고 허름한 공장을 전시장으로 선택했다는 점도 놀랍다. 공간이 지닌 힘이 강렬하면 작품이 지닌 매력이 잠식되지는 않을까하는 우려도 들었을 텐데.

(아르튀르) 전시명은 그림에 대한 이야기지만, 동시에 공간 또한 포괄하는 명칭이다. 전시장의 낡은 지붕과 창문, 갈라진 벽에는 시간의 흔적이 역력하다. 이는 작가의 작품과도 부합하는 지점이기에 더없이 마음에 들었다. 덧붙이자면, 이 공간을 골랐을 당시는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이 발생하기 전이었다. 예술은 세상과 언제나 관계를 맺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오늘날 지구는 곳곳이 부서지고 있고 그곳에 사는 이들은 위기 속에 살아간다. 우리는 예술이 인류를 구원하는 수단이라고 본다. 완벽하고 깔끔한 곳에서 마치 성역처럼 예술을 연출하고 싶진 않았다.


“강명희는 한국을 단 한 번도 가슴에서 놓은 적이 없다.” 기자 간담회에서 도미니크 드 빌팽이 한 말이다. 한국 작가로서의 정체성을 저버린 적이 없다는 말로도 들렸다.

(강명희) 작품을 보는 이들이 그렇게 느꼈다면 그것이 맞는 것이다. 나는 한국인이고, 그리는 행위에서 이를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다. 서양화를 배우기 위해 프랑스로 갔지만 한국인임을 잊은 적은 단 한 번도 없던 것처럼. 나는 그저 그리는 사람이다. 그리는 걸 멈춰본 적이 없다. 적어도 나는 국경과 국적을 그리는 행위와 동일선상에 놓아두지는 않는다. 한국인이면서 동시에 작가라는 소리다. 프랑스에 동백이 피어 있든, 한국에 동백이 피어 있든 나는 단지 내가 본 동백을 그릴 뿐이다.


특히 자연에 매료되어 그린 그림이 많다. 무엇이 당신으로 하여금 붓을 들게 만드나?

(강명희) 제주 화실에 난 창 너머로 하얀 지붕이 있는 돌담집이 보인다. 평소에는 지나치지만 하늘과 담의 색이 똑같이 느껴지는 순간이 어느 때인가 찾아온다. 하늘과 돌담이 같은 회백색을 띠는 그 순간 가슴이 두근두근 뛴다. 내가 붓을 들고자 결정하는 것이 아니다. 어느덧 그려야만 하는 순간이 찾아오는 셈이다. 오랜 뒤에 그림을 보면 ‘그림이 익어간다’는 느낌을 받을 때도 있다. 난 그것을 그림과 내가 그리는 대상이 질문을 건네는 것으로 받아들인다. 그러면 나는 다시 붓을 들고 그리며 나름의 답을 써내려간다. 계속해서 붓을 들 수 있는 이유는 이 때문이지 않을까.


전시를 감상하는 관객이 유념했으면 하는 부분이 있다면.

(아르튀르) 동시대 작가 중 이만한 명성의 작가가 얼마나 희귀한지를 알았으면 좋겠다. 유명한 동양 여성 작가를 한번 떠올려보라. 쿠사마 야요이? 한국에는 강명희가 있다. 그는 한국 예술사를 빛낼 중요한 한 획이며 누구와도 쉽게 견줄 수 없는 인물이다. 잡지명이 <럭셔리>이지 않나? 럭셔리는 희귀함의 가치를 조명하는 단어다. 그런 의미에서 강명희 작가가 바로 한국의 럭셔리에 부합하는 인물이다.(웃음)


몇 달 전, 한국은 그야말로 아트로 물들었다. 갤러리 빌팽이 바라본 한국 예술의 현주소와 비전이 궁금하다.

(아르튀르) 잠재성과 위험성을 동시에 봤다. 키아프(한국국제아트페어)처럼 한국 작가가 자신의 가능성과 명성을 눈으로 확인하는 장이 있다는 점에서는 비전이 있다. 하지만 현재 한국 아트페어의 작품 다수는 해외에서 온다. 한국 미술만의 정체성과 방향이 있을 텐데, 왜 외국 작가의 작품을 통해 그들의 현재를 판단하는지가 의문이다. 해외 작가들과 함께 나아갈 수는 있지만, 그들을 통해 한국 예술의 매력과 정체성을 판단하는 건 자가당착 같다. (도미니크) 한국과 한국 예술은 모든 걸 갖췄다. 발전의 여지와 고유함이 있고, 전통 깊은 역사를 지녔다. 지금의 한국 미술을 완성하는 건 그 누구도 아닌 한국 작가다.


다음 행보가 궁금하다.

(도미니크, 아르튀르) 다양한 방법으로 또 다시 서울을 찾을 것이다. 한국 기반의 박물관이나 예술 기관과 협력해 한국적인 정체성을 보존하고 발전할 수 있는 예술 문화 재단을 설립하는 방안도 논의하고 있다. 우리는 한국과 아시아의 미술을 ‘글로벌 사우스’라고 부른다. 그만큼 지금 한국과 아시아는 예술의 메카가 되기에 충분한 모든 조건과 흐름을 갖추고 있다.



강명희 작가의 개인전이 열리는 성수동 키르 서울 전시장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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