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럭셔리> 2023년 10월호

관계의 미학을 담은 도서관

도서관은 도시, 국가 차원에서 문화적 자료를 수집하고 보관하는 장소인 만큼, 건축가부터 운영 프로그램까지 세심하게 신경 써야 하는 대형 프로젝트다. 현대 도서관이 어떻게 사람과 소통하는지 살펴본다.

EDITOR 정송


MOHAMMED BIN RASHID LIBRARY, UAE

아랍에미리트의 부통령이자 두바이의 통치자인 셰이크 모하메드 빈 라시드 알 막툼Sheikh Mohammed bin Rashid Al Maktoum은 범국가적으로 국민의 학습 정신을 키우고 독서 문화를 장려하며 창의성을 촉진하는 데 도서관이 꼭 필요하다고 보고 2016년부터 이에 대한 건립을 적극적으로 추진해왔다. 이에 ASP 아키텍텐 슈투트가르트Architekten Stuttgart와 오베르메예르 플라넨+베라텐Obermeyer Planen+Beraten, ACG 아키텍처 컨설팅 그룹Architecture Consulting Group이 컨소시엄을 맺고 7년간의 준비 끝에 2022년 비로소 ‘모하메드 빈 라시드 도서관’이 문을 열었다. 긴 시간 동안 구슬땀을 흘린 덕에 도서관은 두바이에서 새롭게 자랑할 만한 랜드마크로 빠르게 자리 잡았다. 도서관의 외관은 강의 연단의 모양에서 차용해 V자 형태를 취하고 있다. 내부에는 성인을 위한 일반 종합 도서관은 물론 어린이 도서관, 비즈니스 도서관, 독서실, 콘퍼런스 센터, 교육실, 전시 공간, 극장, 정원, 카페, 서점 등을 마련했다. 비록 ‘도서관’이라고 불리지만, 이러한 다양한 성격의 공간 확보와 이에 맞춘 프로그램 개발은 지역사회 발전에 기여하는 복합 문화 공간으로서 자리매김하도록 돕는다. 수세기에 걸쳐 모은 희귀한 종교 원고부터 화려하게 장식된 고지도책까지 두바이의 보물도 한데 모여 있으니, 단순히 책을 읽기보단 문화를 체험하러 가기에 안성맞춤인 곳이다.




UNDERGROUND LIBRARY, JAPAN

일본 건축의 위대함은 말하자면 입 아플 정도다. 이미 세계적인 건축가가 여럿 배출됐을 정도로 높은 수준을 자랑한다. 그래서일까. 그간 수많은 스타 건축가를 배출한 이곳에 녹지로 둘러싸인 색다른 지하 도서관이 새롭게 문을 열었다. 지바현에 위치한 ‘쿠르쿠 필드Kurkku Fields’에 히로시 나카무라Hiroshi Nakamura와 NAP 건축사무소가 설계한 ‘지하 도서관’이다. 도서관을 이해하기 위해선 먼저 위치한 쿠르쿠 필드에 대해 알아야 한다. 일본 음악 프로듀서 고바야시 다케시Kobayashi Takeshi가 설립한 지속 가능한 농장으로, 윤리적인 유기농 농업 방식과 식문화, 예술과 자연적 요소를 모두 결합한 다양한 프로그램을 선보인다. 도서관 역시 이들이 운영하는 자연과 문화가 어떻게 어우러지는지 보여주는 중요한 건축물이자 프로젝트다. 이름에서 바로 알 수 있듯이 도서관은 땅 위에 솟은 형태가 아닌 동굴 같은 형태를 취하고 있다. 산책하듯이 푸른 잔디와 잘 가꾼 정원 사이에 난 길을 따라가다 보면 자연스레 피난처 같은 지하 도서관을 발견할 수 있다. 천장이 개방된 절구 형태를 취하고 있으며 보와 기둥을 제외하고 모두 곡선의 형태를 유지하는 것이 큰 특징이다. 바닥과 벽, 천장에 흙 마감재를 사용하고 목재를 주재료로 활용해 이용자들이 머무는 시간 동안 최대한 편안함을 느낄 수 있도록 만들었다. 이곳에 방문하거든 비밀의 방을 꼭 찾아보길 바란다. 책장 사이, 천장의 높낮이가 다른 어딘가에 혼자만의 조용한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숨겨진 공간이 있기 때문.




BRIXEN PUBLIC LIBRARY, ITALY

이탈리아 브릭센에 위치한 ‘브릭센 공공 도서관’. 이 도서관을 짓는 것은 조금 특이한 프로젝트였다. 법원과 형무소 등으로 쓰이던 기존 건축물과 새로운 건축물을 합병해 하나의 새로운 공간으로 재탄생시켰기 때문이다. 이를 지휘한 이는 이탈리아 기반의 칼라나 메찰리라 펜티말리Carlana Mezzalira Pentimalli 건축 스튜디오다. 이들은 다양한 연령층의 사람이 문화적으로 얽히고 교류할 수 있는 장소를 만드는 데 주력했다. 도서관은 기존 두 건물 사이에 있는 빈 곳에 만들어졌으며, 약 3만6000권의 책을 보유하고 있다. 건축가는 이 도서관을 특별한 이름으로 부른다. 바로 ‘쿨투르바움Kulturbaum’, 즉 ‘문화의 나무Tree of Culture’다. 기존 건물 사이에 새 건물을 지으면서 시멘트 ‘가지’를 치는 것을 ‘나무’에 빗대어 생각하게 되었고, 나아가 옛것과 새것, 사람들 사이에 생겨나는 유기적인 관계를 구축하는 것과 같이 느꼈기 때문이라고. 건물들을 연결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스케일 역시 커졌으며, 복잡한 구조까지 갖추게 되었다. 새 건축물인 도서관의 1층에는 리셉션 등이 널찍하게 펼쳐지는데, 맞춤형 가구를 배치해 통일감을 주었다. 예전 법원이었던 공간은 주로 어린이를 위한 공간과 놀이방, 다목적실을 비롯해 각종 서비스를 중심으로 구성했다. 옛 형무소였던 건물은 특히 자연 채광이 잘 들어오게 만들었다. 또 책장 벽을 설치해 이전 ‘감옥’이었던 공간의 의미를 ‘지식의 보물 상자’로 완전히 전복시켰다. 이렇듯 역사적으로 의미 있는 공간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해 도서관으로 만들면서 다시 한번 문화적 의미를 부여한 프로젝트로 많은 이가 방문하고 있다.




PLEASANT HILL LIBRARY, USA

보린 사이윈크시 잭슨Bohlin Cywinksi Jackson 건축사무소에서 캘리포니아에 기분 좋은 도서관을 설계해 지난 2022년 오픈했다. 바로 ‘플레전트 힐 도서관’이다. 천장부터 바닥까지 이어지는 창문은 이곳에 따사로운 햇살이 가득 들어와 공간을 채우도록 만들었다. 마치 보석 상자를 연상케 하는 외관을 통해 도서관 속 책들이 얼마나 소중한 자산인지 시각적으로 풀어냈다. 이곳 역시 평범한 도서관은 아니다. 주변 조경을 특히 신경 써서 디자인했는데, 조경 디자이너 아인윌러 쿠엘Einwiller Kuehl과 협력해 토종 참나무와 가뭄에 강한 종을 사용해 정돈된 풍경을 만들었다. 야외에 마련한 활동 공간에는 아이들이 언제든지 뛰어놀 수 있도록 자석 놀이 벽으로 놀이터를 조성하고, 목재로 다양한 활동을 전개하는 에번 시블리Evan Shively가 유칼립투스로 만든 독특한 조각 작품까지 감상할 수 있게 배치했다. 내부로 들어오면 널찍하게 개방된 공간이 시선을 사로잡는다. 낮은 책장 사이사이에 독립적이면서 프라이빗한 자리를 만들어 아늑하고 편안한 느낌을 더했다. 기본적으로 ‘유연함’을 지향하는 이 도서관은 성인 문맹 퇴치실, 그룹 학습실, 서점, 공연장 등을 구비해 지역사회의 문화 소양을 한층 더 업그레이드할 방법을 모색하고 있다. 결국 도서관의 역할이 단순히 책을 소장하고, 정보를 공유하는 장소에 국한되지 않고 좀 더 다양한 문화적 활동이 벌어지는 시민의 장으로서 점점 변모하고 있음을 방증한다.




THE WATER DROP LIBRARY, CHINA

중국 광둥성에 위치한 ‘워터 드롭 도서관’은 수영장과 도서관을 함께 즐길 수 있는, 그 어디에서도 본 적 없는 공간이다. 수앙위에 베이Shuangyue Bay가 내려다보이는 곳에 있는 도서관은 원형의 메인 건축물과 긴 흰색 벽으로 이뤄져 심플하면서도 감각적인 디자인을 뽐낸다. 이를 디자인한 이들은 중국의 건축 스튜디오 ‘스리앤드위치 디자인3andwich Design’이다. ‘단순한 것이 최고’라는 미학을 가장 잘 드러내면서도 스케일로 압도하는 영민함이 돋보인다. 내부 공간은 단층으로 구성했고 높은 층고, 물결치듯 휘는 낮은 계단, 화이트 톤의 마감재와 가구, 그리고 바닥부터 천장까지 이어지는 통창 모두 이 공간이 ‘개방감’과 ‘정돈됨’을 키워드로 삼아 이를 극한으로 끌어올리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음을 알려준다. 다른 도서관과 다르게 내부는 ‘도서관’이라는 정체성을 보여주는 데 필요하지 않은 요소를 최대한 지워나간 것으로 보인다. 도서 열람실을 외의 주요한 시설로는 찻집과 식수 공간, 그리고 화장실이 전부다. 오롯이 자연경관을 벗 삼아 책에 집중할 수 있는 최적의 환경이다. 대신 이들이 색다른 아이디어로 야심 차게 제시한 부분이 바로 수영장. 내부 계단을 따라가다 보면 옥상으로 연결되는데, 건축 스튜디오는 이 도서관이 ‘수중에 있다’라는 느낌을 주기 위해 열람실 바로 위에 원형 풀을 배치했다. 외부 난간 없이 디딤돌만 깔아놓아 깔끔한 디자인의 일관성을 유지한다. 이 수영장은 ‘배움의 고통 뒤 해방’이라고 볼 수 있지 않을까. 책과 자연, 그리고 또다시 사람이 만든 인공 자연까지 한데 어우러진 곳에서 얻는 순간의 평화가 많은 깨달음을 줄 것이다.




BIBLIOTECA GABRIEL GARCÍA MÁRQUEZ, SPAIN

콜롬비아의 노벨상 수상자인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Gabriel García Márquez의 이름을 따서 지은 도서관이다. 조금은 어울리지 않는 곳인 스페인 바르셀로나에 생겼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사실 그렇지 않다. 작가는 1967년부터 1975년까지 바르셀로나에 살며 글을 썼고, 이곳에서 자신의 근간이 되는 라틴아메리카 문학에 대해 알리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 인물이다. 도서관은 그를 기리는 동시에 이러한 문학을 전문으로 다룬다. 이만큼 중요한 도서관의 건립을 추진하면서 2015년 시에서는 건축 공모를 시행했고, 그 결과 엘레나 오르테Elena Orte와 기예르모 세비야노Guillermo Sevillano가 이끄는 건축 스튜디오 SUMA 아키텍투라Arquitectura가 건축을 맡게 되었다. 건축디자인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이 바로 ‘깎이는 부분’이다. 건물의 중요한 볼륨이 마치 잘려 나간 것처럼 보이도록 디자인했다. 동시에 목재를 주로 사용하고, 내·외부에 필요한 재료들을 사전에 제작해 탄소 발자국을 줄이는 노력도 기울였다. 내부 공간 역시 계단을 무게감 있게 툭툭 얹어놓아 건축에서 스케일이 주는 ‘압도감’을 여실히 보여준다. 그렇지만 이곳이 너무 무거운 공간은 아니다. 사람들이 편하게 휴식하며 책을 읽을 수 있게 해먹같이 다양한 가구를 배치해 느슨함을 더했다. 지난 8월 도서관은 국제도서관협회 및 기관 연맹International Federation of Library Associations and Institutions이 뽑은 ‘세계 최고의 새로운 공공 도서관’으로 선정돼 수상의 영예를 안았다. 이는 스페인 도서관 중 첫 번째로, 그동안 이들이 후보에 오르지 못했던 것을 생각하면 엄청난 쾌거인 셈이다. 세계적인 라틴 문학의 거장 마르케스의 이름을 따고 라틴아메리카 문학을 다루는 ‘전문’ 도서관이 건축적으로 또 문화 예술적으로 바르셀로나와 얽히며, 대중과 소통할 수 있음을 입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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