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럭셔리> 2023년 10월호

OLD MONEY

조용하고 품위 있게. 2023 F/W 컬렉션과 셀러브러티들의 스타일에서 발견한 ‘올드 머니’라는 새로운 열풍.

EDITOR 김송아


한차례 코어 패션 열풍이 지나가고 ‘올드 머니’ 시대가 도래했다. 단어 그대로는 집안 대대로 전해 내려오는 엄청난 부를 말한다. 이를 다시 패션업계의 시각으로 바꿔 표현하면, 고가의 라벨을 겉으로는 티내지 않지만 질 좋은 소재와 정제된 테일러링 덕분에 걸치기만 해도 태가 나는 옷을 고도로 연출하는 것을 가리킨다. 과시하지 않는 면모로 일각에서는 ‘조용한 럭셔리quiet luxury’라고 부르기도. 올드 머니 유행의 배경은 틱톡과 같은 SNS 열풍, 경제적 지표 등 여러 가지를 들 수 있지만 그 시초라 할 수 있는 모델들은 뚜렷하다. 바로 재클린 케네디 오나시스, 다이애나 왕세자비 등의 로열 레이디들이다. 이들은 지위나 파급력으로 인한 제약 탓에 브랜드가 특정되지 않는, 품위 있고 우아한 스타일을 입어야 했기 때문. 다이애나 왕세자비가 공식 석상에 선보인 프린지 디테일의 그레이 슈트, 휴가를 즐길 때 입었던 옐로 톤의 올인원 슈트가 그 예다. 트렌드를 주도하는 셀러브러티와 인플루언서의 스타일에서도 올드 머니를 느낄 수 있다. AI 아트로 탄생한 버추얼 인플루언서 펠리(@feli.airt)는 한껏 고급스럽게 차려입고 요트를 타거나 승마를 즐기는 등 여유로운 취미를 즐긴다. 완벽한 올드 머니 스타일로 2023년 9월 현재, 팔로워 30만을 넘어서며 그 인기를 실감케 한다. 미국의 싱어송라이터 라이오넬 리치의 딸이자 진정한 올드 머니의 소유자인 소피아 리치도 이 같은 스타일의 진수를 보여준다. 크리미한 컬러 톤, 심플한 라인으로 떨어지는 아웃핏에 볼드한 주얼리나 벨트를 활용해 마무리하는 것이 그의 비법. 파격적인 패션을 즐기던 카일리 제너와 켄들 제너 또한 유행에 탑승했다. 정제되고 클래식한 아웃핏, 홀터넥 드레스, 블랙 & 화이트 컬러 팔레트를 키 아이템으로 활용해 그 출처가 어디인지 궁금증을 불러일으킨다. 최근 스타일리스트 제이미 미즈라히와 손을 잡은 제니퍼 로렌스, 배우 니컬라 펠츠의 패션에서도 올드 머니 트렌드를 흠뻑 느낄 수 있다. 이러한 트렌드를 더욱 반기는 브랜드들이 있다. 올슨 자매가 전개하는 더 로우는 미니멀리즘의 대가로 이번 시즌 더욱 빛을 발한다. 시간에 구애받지 않은 클래식한 디자인, 최고급 소재를 고집하며 브랜드만의 독자적인 입지를 완전히 구축했다. 유려한 테일러링으로 완성한 슈트, 매우 정교한 양면 캐시미어 등은 올드 머니에 완벽하게 부합한다. 안정감 있는 재단, 정확한 비례를 자랑하는 막스마라도 주목할 만하다. 이번 시즌 ‘카멜로크라시’라는 테마를 바탕으로 캐멀, 아이보리, 와인, 카키 그린 등 올드 머니를 관통하는 컬러 팔레트를 선보였다. 이탈리아 하이엔드 브랜드의 정수, 로로피아나는 언제나 그래왔듯 최상의 소재로 자연스러운 실루엣과 색감을 온전하게 구현했다. 착용했을 때 느껴지는 소재의 우수함은 두말할 것도 없다. 마티외 블라지가 부임한 이래 세 번째 컬렉션을 선보인 보테가 베네타는 몸을 타고 흐르는 화이트 시스루 드레스와 장인 정신으로 완성한 가죽 백으로 포문을 열었다. 그 외에도 브랜드 이름을 전면에 내세우지는 않지만, 그의 세심한 터치가 하나하나 느껴지는 룩들이 가득하다. ‘최고급 재료만을 사용해 아름답고 오래 지속되는 제품을 선보인다’라는 철학 아래 운영하는 브랜드 브루넬로 쿠치넬리도 올해가 더없이 만족스러울 것이다. 올드 머니 패션이 그들과 일맥상통하기 때문. 품질과 디자인뿐만 아니라 윤리적인 생산방식까지 염두에 둔 착한 브랜드로, 더 많은 입소문을 탈 예정이다. 랄프 로렌의 최상위 여성 라인 랄프 로렌 컬렉션 또한 올드 머니에서 빼놓을 수 없다. 유행을 타지 않는 세련된 아메리칸 클래식이 바로 이번 트렌드의 핵심과도 마찬가지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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