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럭셔리 M> 2024년 12월호

사진가 최용준, 평범한 도시를 더욱 사랑하는 법

남다른 시선으로 도시의 풍경을 포착하는 사진가 최용준은 수많은 요소가 모여 이루어진 이 거대한 세계에서 곳곳에 숨겨진 흥미로운 퍼즐 조각들을 찾고, 만들고, 소중히 기록하고자 한다. 그의 사진을 통해 우리는 보통의 일상을, 내가 살아가는 이곳을 조금 더 새롭게 사랑할 수 있다.

EDITOR 이연우 PHOTOGRAPHER 이기태


최용준  도시와 건축을 주제로 개인적인 작업과 상업 촬영을 진행하고 있는 사진가. 대학 시절 불문학을 전공했지만 건축과 사진에 흥미를 느껴 삶의 방향을 새롭게 설정했다. 사진집으로 도시의 건축적 단면을 다룬 과 도시를 이루는 요소들을 포착한 를 냈다.




사진가 최용준은 도시의 다양한 표정을 채집한다. 곧게 뻗은 건축물 사이로 선과 면이 만들어내는 조형적 풍경, 시간의 더께가 묻어 있는 공간, 시시각각 변화하는 빛이 빚어낸 다채로운 조망들. 습관적으로 오가며 쉽게 지나치곤 하는 일상의 장소들은 그의 시선을 거쳐 새롭게 해석된다. 그리고 그렇게 탄생한 사진들은 생경한 감상과 생각을 불러일으키며 우리의 삶을 다시 돌아보게 만든다. 그는 그렇게 이곳에 서서 사람과 삶, 사람과 세상을 연결하고 있다. 우리를 둘러싼 수많은 풍경 중에서도 특히 그를 사로잡는 것은 낯선 것들의 조합, 의외성이다. 구조적으로 완벽한 건물보다는 주변 환경과 어울려 또 다른 맥락을 만들어내는 조형물이나 전혀 의도하지 않은 요소들가합쳐져 형성된 낯선 장면을 좋아한다. 그런 점에서 이질적인 것들이 망라된, 그럼에도 조화와 균형을 이루는 도시인 서울은 사랑하지 않을 수가 없는 곳이다. “다양한 나라와 도시를 여행해봐도 결국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곳은 서울이에요. 그만큼 흥미롭고 매력적인 도시죠. 다각도로 살펴볼수록 찍고 싶은 것도 많은 곳이고요. 저는 앞으로도 계속해서 빠르게 변화하는 도시의 얼굴을 담아낼 생각이에요. 얼마 전 을지로에서 촬영을 했는데 불과 몇 년 만에 굉장히 많은 것이 변했더라고요. 그 시간과 변화를 기록한다는 사실만으로도 제가 하는 일이 꽤 가치 있다고 느꼈어요. 그래서 더 자세히, 꾸준하게 ‘지금’을 담아보고 싶고요.” 요즘 그가 구상하고 있는 작업은 험준한 자연과 모던한 건축물이 혼재된 장소에 관한 것이다. 거친 듯 단정한, 엉망인 듯하지만 그래서 결국 멋진, 특별한 아름다움을 찾아 나설 예정. 스리랑카나 브라질 등 이국에서의 작업도 계획하고 있다. 틈만 나면 지도를 들여다보고 있을 정도로 일과 삶에 진심인 그의 다음 작업을 기대하며 그에게 궁금한 여러 가지 질문을 던졌다.




건물과 도시, 지형과 경관을 주로 찍는다. 익숙한 풍경이 그만의 시선과 미감을 거쳐 새롭게 태어난다.



내 스타일의 ‘한 끗’은?

내가 좋아하는 것을 제대로, 정확히 아는 것. 쇼핑을 많이 한다거나 특정 아이템에 집착하는 편은 아니기 때문에 실질적으로 좋고 싫음에 대한 명료함이 나의 스타일을 만드는 것 같다. 음악, 미술 등 예술적 영역을 즐길 때도 직관적으로 호오를 결정하는 편이다.


나를 매료시킨 스타일 아이콘은?

독일의 사진가 볼프강 틸만스Wolfgang Tilmans. 1968년생, 50대 작가임에도 평소 스타일이나 사진 작업을 보면 여전히 젊음이 느껴진다. 그 태도 또한 어색하지 않다.



사물에 깃든 시간과 그 시간이 빚어낸 이야기를 좋아한다. 짬이 날 때면 빈티지 숍을 찾아 이것저것 구경하곤 한다.


옷장에서 가장 오래된 아이템은?

모자, 그중에서도 볼캡을 자주 쓰고 즐겨 모으는 편이어서 5년, 10년씩 된 것들이 제법 많다.


단 한 벌만 챙겨야 한다면?

계절에 크게 구애받지 않고 두루 입을 수 있는 워크 재킷. 실제로 1년의 절반 정도는 반팔 티셔츠에 몇 개의 워크 재킷을 돌려가며 입는다. 실내외 여러 곳을 다니고, 다양한 날씨를 겪어내야 하는 직업 특성상 편하게 입기엔 워크 재킷만 한 것이 없다. 주머니가 많은 것도 유용하다. 촬영할 때 렌즈 뚜껑 같은 자잘한 것도 잘 챙겨넣어야 하니까.


늘 지니고 다니는 가방 속 필수품은?

여행용 향수를 챙겨 다닌다. 워낙 빨리 써버리기 때문에 종류는 자주 바뀌는데, 지금 가방에는 면세점에서 구매한 탬버린즈의 제품이 들어 있다.


최근에 구입한 것은?

엔타이어 스튜디오라는 브랜드에서 인조가죽 소재의 바지를 하나 구매했다. 어떤 이유에선지 평소에 잘 입지 않던 스타일을 시도해보았는데, 입어보니 의외로 어색하지 않아서 종종 착용하고 있다.


요즘 가장 갖고 싶은 것은?

집이든 사무실이든, 해가 잘 드는 아름다운 정원을 갖고 싶다.



5년째 꾸준히 사용하고 있는 향수. 편백나무 향이 마음을 차분하게 다독여준다. 깔끔한 패키지도 마음에 든다.


나의 시그너처 향은?

꼼데가르송과 모노클이 컬래버레이션한 향수 시리즈가 있는데 그중 히노키 향을 좋아한다. 5년 전부터 계속 재구매하고 있다. 차분하게 가라앉는 기분이 들어 좋다.


요즘 즐겨 듣는 음악은?

시대와 장르를 가리지 않고 다양하게 듣는 편이다. 계속해서 새롭고 좋은 음악을 찾는 즐거움이 크다. 어제부터는 어릴 때 좋아한 잭슨 파이브의 ‘Never Can Say Goodbye’라는 노래를 반복해서 듣고 있다.



아트 북, 사진집, 건축 관련 책을 쌓아놓고 그때그때 끌리는 대로 꺼내본다. 이미지와 디자인을 통해 새로운 자극과 영감을 얻는다.


근래 가장 인상 깊었던 책은?

마티 출판사에서 펴낸 <전후 일본 건축>이라는 책. ‘패전과 고도성장, 버블과 재난에 일본 건축은 어떻게 대응했을까’란 부제를 갖고 있다. 일본은 건축계의 노벨상이라 불리는 프리츠커상 수상자를 가장 많이 배출한 나라다. 1990년대 중반 이후 그런 환경이 만들어지게 된 배경과 유명 건축가들의 젊은 시절 이야기가 흥미로웠다.


근래 가장 인상 깊었던 영화는?

빔 벤더스 감독의 <퍼펙트 데이즈>. 도시 보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도쿄의 도심과 빛을 서정적으로 담아낸 장면들이 너무 좋았다. 한 컷 한 컷, 소장하고 싶을 정도. 영화에서 주인공이 사진을 찍으며 ‘코모레비’란 단어를 이야기하는데, ‘흔들리는 나뭇잎 사이로 일렁이는 햇살’을 뜻하는 일본어에만 있는 말이라고. 평범한 일상에서 느낄 수 있는 순간의 아름다움을 명료하면서도 우아한 방식으로 보여준다고 생각했다.


작품을 소장하고 싶은 아티스트가 있다면?

미국 아티스트 에드 루샤Ed Ruscha의 작품, 특히 타이포그래피를 다룬 페인팅 작품을 갖고 싶다. 가능하면 큰 사이즈로.


내 인생의 스타를 꼽는다면?

지금 당장 떠오르는 사람은 천재 싱어송라이터로 불리는 프랭크 오션Frank Ocean이다. 2010년 이후 음악의 지형을 바꾼 뮤지션이라 생각한다. 작년에 그가 무대에 선다고 해서 코첼라 페스티벌을 보러 갔는데 공연 일주일을 앞두고 하차해서 아쉬웠다.


일어나면 가장 먼저 하는 일은?

미지근한 물을 한잔 마시고 스트레칭을 한다. 건강을 위해서 그나마 실천하는 루틴이다.


잠들기 전 하는 일은?

누워서 호흡을 정리한다. 깊은 숨을 쉬면서 마음속으로 나름의 마인드컨트롤을 해본다.


절대 빼먹지 않는 자기 관리법은?

솔직히 자기 관리를 잘하는 편은 아니다. 하는 일의 특성상 출장도 잦은데다 수면 패턴도 일정하지 않은 편이고. 그나마 강박적으로라도 일주일에 2~3회는 헬스나 러닝을 하려고 한다.


냉장고 속 필수품은?

요리를 자주 해서 먹는 편은 아니라 냉장고에 뭘 많이 채우진 않는데 늘 들어 있는 것이라면 탄산수나 맥주 정도 되겠다.


평생 하나의 음식만 먹는다면?

여러 영양소가 골고루 들어있는 햄버거.


나에게 의미 있는 장소는?

이탈리아 베네치아에 위치한 퀘리니 스탐팔리아Querini Stampalia 재단에 가면 건물 뒤쪽으로 펼쳐진 정원을 만날 수 있다. 무더운 여름, 그곳에 앉아 아름다운 정원과 소박한 분수를 보며 땀을 식힌 기억이 있다. 오래된 시간의 흔적과 세련된 모던함이 더해져 궁극의 아름다움을 만들어냈다는 생각을 했다.


최고의 여행 기념품은?

여행을 가면 항상 그 지역에서 생산된 술을 사온다. 의미도 있고 실용적인 기념품이라 생각한다.



지난 생일에 선물 받은 마크 레빈슨 ‘No.5909’ 헤드폰. 사운드를 섬세하게 표현해 음악에 온전히 몰입할 수 있게 해준다.


내가 받은 최고의 선물은?

지난해 생일에 아내로부터 마크 레빈슨의 ‘No.5909’ 프리미엄 헤드폰을 선물 받았다. 아끼는 편이라 외출할 때는 갖고 나가지 않고 주로 저녁에 오롯이 혼자만의 시간을 즐기며 음악을 들을 때 사용한다.


요즘 내가 가장 집중하고 있는 것은?

현재보다는 미래에 꽂혀 있다. ‘앞으로 어떤 작업을 하며 어떻게 살아야 할까’ 하는 고민이 있다. 건강, 경제적 상황, 일과 작업, 삶의 의미 등을 생각해보게 된다.


얼마 전 레몬서울에서 발견하고 흠뻑 반해버린 카세트 플레이어. 요즘 카세트테이프를 모으고 꺼내 듣는 즐거움에 푹 빠져 있다 .


인생에서 포기할 수 없는 즐거움은?

이 질문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본 적이 있다. 영화를 보는 것도, 술을 마시는 것도, 미술 작품을 보는 것도, 다 좋은데 무엇보다 음악을 들을 때가 가장 즐겁다. 음악을 들으며 느끼는 감정이 가장 즉각적이기도 하고, 또 그 좋음이 무수히 다양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 이유에서 여유가 된다면 최상급의 오디오 시스템을 갖춘 음악 감상실을 가져보고 싶다.


인생에서 가장 의미 있었던 조언은?

출처가 정확히 기억은 안 나지만 “당신이 옳은 말을 해서 상대방의 마음이 상했다면 사실은 옳은 말이 아닐 수 있다”라는 문장을 자주 떠올린다. 문장만으로는 언뜻 비문에 가까운 것도 같지만, 평소 직언을 많이 하는 성격이라 곱씹어볼 만한 말인 것 같다. 실제 삶의 태도에 크게 영향을 미친 말이기도 하다.


내가 만약 다른 삶을 살 수 있다면?

지금의 삶에 너무 만족하고 있기 때문에 답하기가 어렵다. 다만 시간적 여유가 조금만 더 있으면 좋겠다.


작업실 한편에 디제잉 테이블과 음향 장비를 세팅해두었다. 그날그날 날씨와 기분에 따라 선곡하는 재미가 있다.


내가 가장 편안함을 느낄 때는?

보통 한 달에 한 번 정도는 부담스럽거나 어려운 상황이 찾아오는 것 같은데 그런 일들을 무사히 잘 해결하고 난 뒤, 고요하게 맞는 저녁 시간이 참 좋다.


나의 영감의 원천은?

여러 책을 통해 많은 영감을 얻는다. 주로 이미지로 구성된 사진집이나 건축 관련 책들이다.


내가 생각하는 ‘럭셔리’란?

주어진 시간을 온전히 자신의 것으로 쓸 수 있는 삶.


답변을 마치는 소감은?

‘나’라는 사람에 대해, 내가 쌓아온 양식과 삶의 방식에 대해 돌아볼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된 것 같아 뿌듯한 마음이 든다.


쉬기 위해 떠난 여행에서도 아름다움을 향한 본능은 카메라를 들게 한다. 캘리포니아의 강렬한 햇빛이 쏟아지던 팜스프링의 풍광, 늘 보던 것과는 다른 색감과 분위기에 매료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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