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럭셔리> 2024년 12월호

모든 순간, 집념의 화살

김우진, 임시현 선수가 속한 양궁 국가대표팀은 2024 파리 올림픽에서 5개 전 종목을 석권하며 역대 최고의 성적을 냈다. 꾸준한 노력으로 쌓아 올린 자신감을 양분 삼아 감동의 경기를 선보이며 스스로를 증명한 두 사람. 축제가 끝난 뒤에도 변함없이 매서운 수련의 시간을 통과하고 있는 그들의 화살은 오늘도 정확히 과녁을 꿰뚫는다.

EDITOR 이연우 PHOTOGRAPHER 장덕화



(김우진) 그레이 울 그래픽 코트는 오니츠카타이거. 셔츠와 팬츠는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임시현) 하이넥 셔츠와

언밸런스 디자인의 스커트는 코스.



재킷과 팬츠는 스튜디오 톰보이. 셔츠, 타이, 슈즈 모두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바쁜 시간을 쪼개 카메라 앞에 섰습니다. 올림픽이 끝난 뒤에도 줄곧 경기와 훈련이었죠. 도통 느슨해지는 기간이 없네요.

김우진 종합선수권대회부터 2025 국가대표 1차 선발전, 세계양궁선수권대회 등 예정돼 있던 국내·국제 대회를 치르고 해외에서 열리는 팀 전지훈련에 참여했다가 바로 어제 귀국했어요. 어찌 보면 오늘이 휴가 첫날인데, 이렇게 <럭셔리>와 만나게 됐네요.

임시현 저는 휴가가 아예 없어요. 시즌이 끝나도 학기 중이라 학교 공부를 해야 하거든요. 수업도 듣고 열심히 운동도 하면서 학교 생활을 수행하는 중이에요.


두 분은 물론 저희에게도 잊지 못할 감동의 올림픽이었습니다. 뛰어난 경기력으로 최고의 성적을 거뒀죠. 그 순간을 종종 떠올리기도 하나요?

김우진 가끔 개인전 결승 경기 때 생각이 나요. 상대 선수와 슛 오프 접전 끝에 아주 간발의 차로 이겼잖아요. 불과 4.9mm, 그 아찔한 상황이 반대로 주어졌다면 어땠을까 싶어요. 정말 아깝고 속상했겠죠. 하지만 그런 일이 분명 일어날 수 있다는 것, 결과는 누구도 예측할 수 없다는 것, 그게 양궁이고 스포츠인 것 같아요.

임시현 올림픽 출전 과정을 돌이켜보면 스스로도 ‘대체 어떻게 했지, 대단하다’ 싶다가도 ‘다시 한번 해보고 싶다’는 마음도 들어요. 결과적으로는 좋은 성과를 거뒀지만 메달까지 가는 과정에서 아쉬운 점들도 있었거든요. 생애 첫 올림픽 출전이다 보니 압박감도, 스스로의 기대도 어마어마했고요. 조금 더 경기를 즐기며 제대로 시합을 이끌었으면 좋았겠다는 생각도 해보게 되네요.


올림픽 시상대 가장 높은 곳에 섰을 때의 기분은 어땠습니까?

김우진 말로 형용할 수 없는 벅찬 감정이 들었죠. 특히 제게는 올림픽 개인전 금메달이 간절하게 찾던 마지막 퍼즐 조각 같은 거였거든요. 세 번이나 올림픽에 출전하면서도 유독 개인전 메달만을 따지 못한 터라 이번에는 꼭 획득하고 싶었어요. 물론 경기 중에는 절실함을 최대한 내려놓고 부담 없이 화살을 쏘려고 노력했지만요. 덕분에 좋은 결과를 얻었다 생각해요.


과녁을 향해 활시위를 당길 때는 어떤 생각을 합니까? 긴장과 압박감이 굉장할 것 같은데요.

김우진 억지로 떨쳐내려 애쓰기보다는 잘 안고 가려고 합니다. 툭툭 어깨도 털어보고 깊게 심호흡도 하면서 긴장을 안으로 받아들이는 거예요. 무엇보다 자신을 믿어야죠. 경기가 잘 안 풀릴 때도 마음속으로 되뇌곤 해요. ‘끝까지 하면 내가 이겨’라고요.

임시현 저 역시 ‘준비한 것만 제대로 잘하면 분명 이긴다’는 생각을 해요. 오직 활사위를 당기는 데만 집중하며 마음을 다잡습니다. 파리 올림픽 개인전 마지막 경기 때는 “후회가 남지 않도록 내 경기를 하자”는 말을 되뇌며 화살을 쐈어요. 좀 더 단단한 믿음이 필요했거든요.


올림픽 이후에도 변함없이 최고의 기량을 떨치고 있는데요. 김우진 선수는 ‘왕중왕’을 가리는 종합선수권 대회와 월드컵 파이널에서 우승하며 세계 랭킹 1위를 탈환했고, 임시현 선수는 전국체전 4관왕에 오르며 MVP를 차지했죠.

임시현 굵직한 대회가 끝나고도 쉬지 않고 운동한 만큼 좋은 결과를 얻어 다행이라고 생각해요. 무엇보다 한 번 반짝 잘하고 끝나는 선수가 아니란 걸, 진짜 제대로 실력을 갖춘 선수라는 걸 보여드린 것 같아 뿌듯하고요. 경기를 치르며 다시 한번 깨달았어요. 저는 정말 노력한 만큼 결과가 나오는 사람이란 사실을요. 한때 잠깐 거만해질 뻔하기도 했는데(웃음), 결국 노력의 힘을 절실히 체감할 수 있었어요.



(임시현) 케이프 디테일 울 코트와 미디스커트는 준지. 셔츠와 타이는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김우진) 트위드 소재 코트와 팬츠는 코스. 셔츠와 타이는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사실 이 정도 결과면 성취의 달콤함에 취해 있을 법도 한데, 두 분의 행보를 보면 놀라울 만큼 덤덤하단 생각이 듭니다. 선수로서의 성실한 자세도 변함없고요.

김우진 저는 누구보다 꾸준함의 가치를 굳게 믿는 사람이에요. 누구나 기본적으로 자신의 일에 최선을 다해 노력을 기울인다고 생각해요. 다만 중요한 건 그 노력을 얼마나 꾸준하게 가져가느냐죠. 오늘 2시간 연습하고 내일 쉬는 것보다 매일 한 시간씩 지속적으로 쌓아가는 쪽이 좀 더 저의 태도에 가깝습니다. 선수로 사는 동안은 계속, 흔들림 없이 꾸준함을 이어가고 싶어요.


계속해서 자신을 일으켜세우는 동력은 어디에서 얻나요?

임시현 스스로에게 꽤 냉정한 편이에요. 물론 우진 오빠의 자기 관리에 비하면 아직 많이 흔들리는 편이지만요. ‘이만하면 됐지’라는 생각이 들 때는 객관적으로 자신에게 물어봐요. ‘금메달 바랄 수 있을 만큼 충분히 연습한 거 맞아?’ 하고요. 더불어 저를 믿고 응원해주는 이들의 격려에도 큰 힘을 얻어요. 잘할 거라는 기대에도 반드시 부응하고 싶고요.

김우진 양궁 종목의 특성상 계속해서 새로운 목표를 설정하게 돼요. 양궁 경기는 매번 0에서 시작합니다. 아무리 최정상의 자리에 있다 해도 다른 선수들과 똑같은 조건으로 국가대표 선발전을 치르죠. 자연스럽게 새로운 목표가 생기고, 그 목표를 위해 노력하게 돼요. 누가 이기고 질지는 아무도 모르는 거죠. 밀리지 않기 위해서는 나아갈 수밖에 없어요.



김우진 선수가 남긴 명언이 있죠. “젖어 있지 마라, 해 뜨면 마른다”라고요.

김우진 제가 한때 그랬거든요. 어린 나이에 메달을 따고 에이스라 불리며 영광에 잔뜩 젖어 있었어요. 자만해서 나태해지기도 했고요. 때문에 크게 좌절을 맛봤죠. 이제는 확신합니다. 오늘의 자리가 영원하지 않다는 것을요. 올해 올림픽에서도 큰 성과를 거뒀고 꿈꾸던 모습에 한층 가까워진 것에 뿌듯한 마음도 들지만 절대 안주하지는 않으려 해요. 오늘 역시 내일의 과거가 될 테니까요.



영광의 경험을 바탕으로 새롭게 만들어나가고자 하는 것이 있나요?

임시현 화살을 제대로 잘 쐈을 때, 손을 놓자마자 ‘이건 반드시 정가운데 꽂힌다’는 확신이 들기도 해요. 말로 설명할 수 없는 짜릿한 감각인데요. 어렵지만 그 감각을 좀 더 몸에 익혀보려 해요. 시합 자체를 완벽히 컨트롤할 수 있는 선수가 되고 싶거든요. 그리고 올 한 해, 좋은 성적을 거두며 새삼 양궁 선수로서의 제가 참 좋아졌어요. 스스로를 증명했다는 자부심도, 내일에 대한 기대도 조금 더 커졌고요. 앞으로 새로운 도전을 이어가는 데 탄탄한 밑거름이 될 것 같아요.


아마도 현재진행형일 다음 목표는 무엇인가요?

임시현 우선은 내년에 있을 광주세계선수권대회 출전을 목표로 하고 있고요. 내후년의 아시안게임, 나아가 2028 LA 올림픽까지 바라보며 최선을 다해 노력할 생각입니다. 지금의 이 자리를 계속해서 유지할 수 있게요.


뜨겁게 응원을 보내는 팬들에게 훗날 어떤 선수로 기억되고 싶습니까?

김우진 오래전부터 항상 생각해왔던 건데, 저는 시대를 대표하는 선수가 되고 싶어요. 예를 들어 ‘축구’ 하면 손흥민 선수를 떠올리는 것처럼요. 선수 생활의 마침표를 찍는 그날까지, 오래도록 ‘양궁’에서 제 이름이 앞설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 노력하고 매진해 나가겠습니다.



화이트 새틴 원피스는 손정완. 블랙 레더 롱부츠는 아르켓.



STYLIST  문승희  HAIR  장해인  MAKEUP  유혜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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