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으로 표현하는 다채로운 이야기, 춤은 인간의 다양한 생각과 감정을 담은 가장 솔직한 언어이자 가장 아름다운 관계의 대화다. 브랜드 설립 초기부터 무용을 향한 각별한 애정을 품어온 반클리프 아펠은 2020년 무용 후원 프로그램 ‘댄스 리플렉션Dance Reflections by Van Cleef & Arpels’을 출범하며 적극적인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매년 주요 도시에서 페스티벌을 주최 하고 이와 더불어 대규모의 파트너들로 구성된 네트워크를 통해 안무가와 관련 단체를 지원한다. 2022년 3월 런던, 2023년 5월 홍콩, 2023년 10 월 뉴욕에 이어 네 번째로 열리는 이번 행사는 10월 4일부터 11월 16일까 지 일본 교토와 사이타마에서 개최된다. 예술적 역량을 오롯이 느낄 수 있는 8개의 공연은 물론 일반 참가자들에게 몰입의 경험을 선사하는 워크숍, 예술가와의 만남, 그리고 지난 댄스 리플렉션을 돌아볼 수 있는 전시까지, 풍성한 프로그램으로 구성된다.
무용에 바치는 반클리프 아펠의 사랑과 존경은 오랜 역사를 자랑한다. 1920년대 파리, 발레 애호가였던 루이 아펠Louis Arpels은 조카 클로드 아펠Claude Arpels과 함께 방돔 광장에 위치한 메종의 부티크에서 멀지 않은 파리 오페라 가르니에를 찾아 발레 공연을 관람하곤 했다. 무용수들의 우아한 움직임에서 발견한 아름다움을 바탕으로 창의성을 확장한 반클리프 아펠은 이후 20세기 위대한 안무가 중 한 명으로 손꼽히는 조지 발란신 George Balanchine을 만나며 무용과 더욱 깊은 인연을 맺게 됐고, 나아가 공고한 예술적 파트너십을 구축하기에 이른다. 1967년 4월 조지 발란신이 뉴욕에서 처음 선보인 작품 ‘주얼스Jewels’는 젬스톤을 향한 더할 나위 없이 완벽한 찬사로 회자된다.
그리고 마침내 2020년, 오랜 시간 메종과 무용이 나눈 소통과 공감은 새로 운 영감으로 이어졌다. 새로운 작품의 창작을 장려하고 세계의 무용단과 단 체를 후원하는 ‘댄스 리플렉션’을 설립하게 된 것. 창작, 교육, 전승이라는 3 가지 핵심 가치 구현을 목표로 운영되는 ‘댄스 리플렉션’은 해를 거듭할수 록 지원을 늘려감과 동시에 한층 독창적인 스타일의 컨템퍼러리 작품을 발 굴, 관객들에게 선보이며 세상을 한 뼘 더 확장하는 데 앞장서고 있다.
특히 올해는 전통문화와 어우러진 작품부터 시대성을 반영한 작품까지, 무 용 예술의 전반을 폭넓게 아우른다. 이탈리아 볼로냐 지역에서 전해오는 민 속무용 폴카 치나타Polka Chinata에 대한 연구에서 탄생한 작품 ‘세이브 더 라스트 댄스 포 미Save the Last Dance for Me’를 필두로 무용가 로이 풀 러의 시그너처인 ‘서펀타인 댄스’에서 영감을 얻은 ‘로이 풀러: 리서치Loïe Fuller: Research’와 ‘봄빅스 모리Bombyx Mori’, 이스탄불 민속 의식에 서 발현된 무용을 기반으로 만든 ‘실화를 바탕으로 한 이야기D’après une Histoire Vraie’, 일렉트로닉 음악이 어우러진 세계에서 피어나는 감동적인 만남을 그린 ‘룸 위드 어 뷰Room with a View’ 등의 공연이 그것이다. 전승 과 교육의 가치를 충실히 재현할 안무 워크숍도 눈에 띄는 부분. 관객들은 안무가와 무용수를 만나 직접 그 몰입의 순간을 체험해볼 수 있다. 미국 사 진작가 올리비아 비Olivia Bee가 교토그래피kyotographie와 공동으로 진 행하는 전시 <아이 펠트 더 스타즈 인 댓 룸I Felt the Stars in That Room> 또한 놓칠 수 없는 이벤트다. 이전에 열린 페스티벌에서의 가장 아름다운 순간을 담아낸 사진들은, 반클리프 아펠의 댄스 리플렉션이 추구하는 정신 에 대한 명징한 도입이자 완벽한 소개가 된다. 무용과 사진이라는 두 예술 이 나누는 환희의 메시지를 이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다양성으로 빚어내는 희망
관객에게 독특한 경험과 감상을 선사하는 공연 ‘룸 위드 어 뷰’를 제작한 (라)호드를 만났다.
춤을 통해 저항과 반란의 형태를 탐구해온 (라)호드(LA)HORDE는 10월 5 일과 6일 교토 롬 시어터에서 작품 ‘룸 위드 어 뷰Room with a View’를 무대에 올렸다. 아티스트 로네Rone와 함께 제작한 이 작품은 빈 페이지인 공간에 소리, 신체, 이미지를 새기며 변화하는 인류의 모습을 담아낸다. 기계가 울부짖는 듯한 파열음 사이로 일렉트로닉 사운드가 울려 퍼지고, 여러 종류의 기계들이 작동해 암석을 절단하고 연마한다. 암석의 부동성에 갇혀 있던 무용수들은 점차 자유롭게 다양한 동작을 온몸으로 구현하며 해방과 희망을 향해 다가선다. 2020년 프랑스 파리 샤틀레 극장Théâtre du Châtelet에서 16개국 28명의 무용수로 구성된 마르세유 국립 발레단과 함께 처음 무대를 선보이며 호평을 얻은 바 있다. 공연을 위해 교토를 찾은 (라)호드의 세 아티스트 마린 브루티Marine Brutti, 조너선 드브로어 Jonathan Debrouwer, 아서 하렐Arthur Harel을 만나 이번 작업을 포함해 관객의 고정관념과 일상을 뒤흔드는 작품 활동에 관한 이야기를 나눴다.
창작, 교육, 전승이라는 핵심 가치를 구현하고자 하는 반클리프 아펠의 댄스 리플렉션을 통해 작품을 선보이게 됐다. 이 프로젝트의 시작은 어디서부터 였나?
사실 출발은 꽤 오래전이라 볼 수 있다. 우리가 아직 학생이던 시절, 현재 반클리프 아펠의 댄스 및 문화 프로그램 디렉터인 세르주 로랑Serge Laurent이 기획한 공연을 다 함께 보러 갔었다. 그의 공연들을 보면서 작품 자체에도 반했지만 그가 무대를 통해 전하고 싶은 바가 무엇인지, 어떤 비전을 갖고 있는지 등을 읽을 수 있었던 게 인상 깊었다. 이후 그가 반클리프 아펠에서 일하게 되고 댄스 리플렉션을 구상하면서 우리에게 연락을 해왔다. 그때가 마침 ‘룸 위드 어 뷰’ 초연 직후였는데 이 작품을 매개로 빠르게 관계를 발전시킬 수 있었다.
작업해본 소감은 어떠한가? 함께하며 어떤 의미를 찾을 수 있었나?
매우 흥미로운 여정이었다. 세르주 로랑 그리고 반클리프 아펠은 매우 명확한 비전을 갖고 있고 또한 무척 세련된 열린 태도를 견지한다. 우리는 물론 함께 하는 스태프, 무용수들, 아티스트와 끊임없이 열린 대화를 나누며 이를 통해 모두를 한 단계 끌어올려 성장하게 한다. 특히 세르주는 정말 현명하고 재치가 넘치는 사람이다. 일하는 내내 즐겁게 했다. 짚어보면 반클리프 아펠과 (라)호드는 동일한 가치를 공유하고 있다. 우리는 아티스트일 뿐 아니라 마르세유 국립 발레단의 디렉터이기도 한데, 그곳 역시 창작, 교육, 전승 이라는 3가지 핵심 가치를 추구한다. 함께 즐겁게 일할 수 있고, 또 시너지를 낼 수밖에 없는 이유다. 우리는 세르주 그리고 브랜드의 취향과 생각에 100% 공감하며 취향을 존중한다. 함께할 수 있어 큰 영광이라 생각한다.
(라)호드는 언제나 예상을 뛰어넘는 결과물을 보여주지 않나. 이번 역시 여러모로 울림이 큰 공연이었다. 연출 면에서 특별히 신경 쓴 부분이 있다면 무엇인가?
우리의 생각과 스타일에 대한 이야기를 먼저 해야 할 것 같다. 우선 우리 셋이 함께 작업한 지는 10년이 넘었는데, 우리에게 춤이란 단순한 매개(medium)가 아니라 주제(subject)다. 무용 작업을 중심으로 영화, 설치미술, 조각을 아우르는 것은 물론 무대 밖에서의 공연도 하고 대중문화 와 접목된 창작도 진행한다. 우리는 춤을 다루는, 매우 시각적인 컨템퍼러리 아티스트다. 작품을 만들 때는 연극과 같은 이미지를 먼저 만들고, 춤에 맥락을 부여하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춤은 많은 이야기를 담고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또한 관객이 움직임을 더 잘 이해할 수 있도록 서사가 이해될 수 있는 특별한 환경을 제공해야 한다고 여긴다. 많은 암시와 질문을 던질 수 있는 환경. 강력한 이미지를 제시함으로써 낯선 감정을 유발하는 것 은 우리의 작품에서 매우 중요한 문제다. ‘룸 위드 어 뷰’ 역시 이러한 가치관과 과정이 반영된 결과물이다.
여러 인종과 각기 다른 체형의 무용수들로 구성된 마르세유 국립 발레단은 그 다양성에서 비롯되는 아름다움이 남다르다. 작품을 더욱 인상적으로 느끼게 하는 특별함이라 생각한다. 이들과 작업하며 느끼는 바가 궁금하다. 우리는 이 굉장한 무용수들과 함께할 수 있어 정말 행운이라 느낀다. 우리가 그들을 부르는 말이 있다. 바로 “몸의 사상가Thinkers of the Body”다. 일단 그들이 16개의 서로 다른 국적 출신이기에 한 주제를 다룰 때 각자의 문화적 배경에 따라 접근 방식이 모두 다르다는 점이 특별하다. 물론 신체 동작somatic에 대한 이해와 파악도 차이가 있고. 덕분에 우리는 다양한 관점을 획득할 수 있다. 연출자의 사고를 확장하고 발전시킨다는 점에서 무용수들은 우리에게 단순한 협력자가 아니라 더욱 깊은 탐구에 이르게 하는 전문가이자 새로운 영감을 주는 소중한 존재다.
이러한 다양성은 (라)호드가 계속해서 더 많은 관객과 만나고 세상과 접촉하 는 면을 넓혀가는 동력이기도 하겠다.
그렇다. 어쩌면 유토피아의 세계에 대응하는 우리의 방식이기도 하다. 우리는 어떻게 하면 우리의 정직·성실성, 유산, 지식, 정체성을 보존하면서도 세상의 존재들과 좋은 이웃으로 서로 조화롭게 살아갈 수 있을지에 대한 답을 찾고자 한다. 서로를 맹목적으로 모방하지 않고, 서로의 차이를 고스란히 간직하면서 어울려 사는 것. 그것이 우리가 춤을 선보이며 염두에 두는 것 중 하나다. 우리는 결코 무용수들이 똑같이 춤을 추거나 몸의 형태를 동일하게 구성하는 것을 원치 않는다. 오히려 다양성을 축하하고 가꾸어나가는 것이 큰 목표다.
이번 댄스 리플렉션에서의 특별한 점은 사전 워크샵을 통해 관객들과 소 하고 직접 교류할 수 있었다는 점이다. 워크숍으로 관객들을 직접 만난 시은 어땠나? \사무실에서 기획을 할 때는 주로 지적 혹은 시각적으로 접근하지만, 스튜디오에 들어서면 철학적 물음을 비롯한 이미지, 회화, 시각 요소에 기반한 질문을 떠올리게 된다. 나아가 몸을 통해 그 질문들을 탐구하게 되는데, 이는 정신이 몸에 미치는 영향을 파악하는 것이 아니라 몸이 스스 로 생각하는 방식에 대해 묻는 것이기도 하다. 관객 역시 워크숍에서 직접 무용수들의 움직임을 보면서 함께 공감하고 강한 유대감을 형성할 수 있다. 몸을 움직여 체험하며 자신의 몸으로 만들어내는 감정 또한 느낄 수 있고. 이러한 과정을 통해 각자 세계의 폭을 넓히고 자신의 비전을 키워갈 수 있다고 생각한다. 사실 가장 중요한 것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실제로 깊게 빠져보는 것이 최고의 방법이다. 앞으로도 이런 워크숍을 통해 더 많은 이들 과 소통할 수 있는 기회를 넓혀가고 싶다. 무용수들도 이 시간을 무척 좋아 한다. 넘치는 열정을, 그것을 이해하는 이들과 연결·공유하는 것 자체가 자연스러운 기쁨이자 보람이다.
이번 공연을 보면서 관객들이 어떤 경험과 감정을 얻어가길 바라나? 나아가 관객들이 댄스 리플렉션이라는 성대한 축제를 어떻게 즐기고 누렸으면 좋겠나?
재차 언급하지만, 공연은 대화의 시작이며 이야기와 연극적 요소를 무대 위에 올려놓는 것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일단 공연이 끝난 뒤에는 더이 상 우리의 것이 아니다. 다양한 관점과 문제를 다룬 우리의 공연을 본 관객들이 기쁨에 취할 수도, 알 수 없는 감정에 휩싸일 수도, 화가 날 수도, 하고 싶은 말이 많아질 수도 있다. 우리는 관람자들이 각자의 감정과 해석을 해 그것들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길 원한다. 요즘처럼 다양한 매체와 소셜 미디어가 발달한 상황에서는 훨씬 더 다채로운 시각으로 사고하고 성찰할 수 있지 않나. 우리의 작업이 사람들에게 어떻게 받아들여질지, 얼마나 이해시킬 수 있을지, 어떤 감정들이 생길 수 있을지, 우리는 이 모든 것에 대해 활짝 열려 있고자 한다. 더 많은 관점을 이해하고 배울 수 있을 때 우리도 한층 성장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아티스트의 작업과 삶에서 가장 중요한 자세이자 요소가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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