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뮬러 원Formula 1’은 단순한 자동차 경주가 아니다. 거대 자본과 최고의 인재들이 모여 만든 드라마다. 흔히 10개의 F1 팀과 드라이버 20명의 대결에만 시선이 집중되지만, 이는 빙산의 일각일 뿐. 수면 아래에선 21세기 정보 전쟁이 펼쳐진다. 예로, 연간 4000억 원 이상이 드는 팀 운영비 유치에는 전문 마케팅·금융 회사가 붙는다. 한쪽에선 모터스포츠 전문 매체들이 F1의 뒷이야기를 쏟아낸다. 드라이버 간의 갈등이나 팀 운영 불화처럼 시청자의 구미를 당기는 소식은 SNS를 통해 빠르게 전파된다. 또 수많은 유명인과 정치인이 F1 이벤트를 통해 인맥을 확장한다. 이러한 F1의 규모는 상상 이상으로 거대하다. 올림픽, 월드컵과 함께 세계 3대 스포츠로 꼽히는 F1의 연간 시청자는 6억 명에 달할 정도다.
올 시즌은 그 어느 해보다 흥행 중이다. 단언컨대 지난 10여 년간의 시즌 중 가장 박진감이 넘친다. 2021년부터 월등한 경주차 성능으로 선두를 독차지해온 레드불 팀은 현재 선두 그룹의 추격을 당하고 있다. 맥라렌, 페라리, 애스턴마틴 팀은 2022년 완전히 바뀐 경주차에 적응을 마쳤으며, 어느 순간 선두권까지 치고 올라왔다. 2014년부터 7년 연속으로 월드 챔피언을 탄생시킨 메르세데스 AMG 페트로나스는 경주차 적응 실패로 2022년부터 중하위권으로 추락했다.
그런데 이제는 분위기가 다르다. 올해 초부터 레드불을 위협하는 팀들이 속속 나타나면서 현재 시즌 절반이 막 지났지만 끝까지 결과를 알 수 없게 되었다. 실제로 레드불은 총 11라운드 경기 중 3라운드 이상을 포디엄(1~3위)에 오르지 못했다. 드라이버 포인트 1위인 막스 페르스타펀은 경주차 경쟁력 차이가 줄어든 상황에서도 뛰어난 감각과 강력한 정신력으로 꾸준히 높은 페이스를 선보이고 있다. 반면 같은 팀의 세르히오 페레스는 시즌 초부터 잦은 실수와 함께 경기 중 운도 따르지 않아 중하위권에 머무르고 있다. 그는 지난 5월, 레드불 팀과 2년 연장 계약을 따냈으나 계약서에는 경주 성적에 관한 내용이 명시되어 있기에 자칫하면 2025년 다른 드라이버로 교체될 위기에 처해 있다.
12라운드 영국 그랑프리에서 페라리 팀 카를로스 사인츠의 주행 모습.
2024 시즌은 맥라렌 팀의 젊은 드라이버 듀오의 기세를 주목할 만하다. 2023년이 끝나고 맥라렌팀의 기술 수장이 바뀌며 등장한 맥라렌 ‘MCL38’ 경주차는 현재까지 지속적인 업그레이드를 통해 뛰어난 경쟁력을 갖췄다. 이런 상황을 기다렸다는 듯 맥라렌 팀의 랜도 노리스와 오스카 피아스트리가 맹렬하게 선두 자리를 공략하고 있다. 노리스는 선두인 페르스타펀을 공격적으로 압박하며 추월하는 모습을 여러 번 보였다. 두 드라이버는 어릴 때부터 친밀한 유대 관계를 맺은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하지만 지속적인 경쟁으로 인해 조금씩 날카로운 모습을 보인다. 특히 오스트리아에서 열린 11라운드 경기에서 격렬한 선두 경쟁 중에 페르스타펀의 무리한 방어로 두 경주차가 접촉하며 각각 5위와 경기 포기를 하게 됐다. 이후 둘은 대화로 서로를 이해하고 관계를 회복했다고 밝혔으나, 앞으로 경기 중 이런 접전이 지속될수록 관계는 악화할 수밖에 없다는 전망이다. F1 비즈니스에서는 어제의 친구가 오늘의 적이 되는 일이 허다하다.
태그호이어의 ‘모나코 세나 크로노그래프’.
2022년 새로운 경주차 규정과 함께 중하위권으로 추락한 메르세데스-AMG 페트로나스 팀에는 월드 챔피언 7회를 기록한 루이스 해밀턴이 속해 있다. 그는 맥라렌의 전폭적인 지원으로 성장한 기획형 F1 드라이버로 2007년 맥라렌-메르세데스 팀으로 데뷔, 2013년부터 현재의 메르세데스-AMG 페트로나스에서 활동 중이다. 하지만 지난 2월, 갑작스럽게 퍼진 이적 뉴스가 F1 업계를 뜨겁게 달궜다. 해밀턴이 2025년부터 페라리 팀으로 옮긴다는 것. 시즌을 막 시작한 상황에서 공식 발표가 이뤄진 이례적인 경우였다. 이후 메르세데스-AMG 페트로나스 감독인 토토 볼프는 “그가 2024년 시즌 좋은 성적을 낼 수 있도록 끝까지 최선을 다하겠다”라고 밝혔지만, 이미 이적을 앞둔 드라이버를 100% 지원하면서 장기적인 팀 계획을 공유하는 일은 사실상 불가능한 게 당연지사. 자연스럽게 일부 레이스에서 업그레이드 패키지를 팀 동료 조지 러셀이 먼저 사용하는 모습을 보이면서 드라이버 차별 의혹도 있었다. 어쨌든, 이런 우려 속에서도 해밀턴은 12라운드였던 영국 그랑프리에서 올 시즌 처음으로 우승하며 F1 역사에서 새로운 기록을 세웠다. 그는 경기 후 한동안 헬멧을 벗지 못할 정도로 눈물을 흘리며 감격한 모습이었다. 경기 직후 인터뷰에서 “나는 언젠가부터 앞으로 시즌 월드 챔피언을 다시 하지 못하리라 생각할 만큼 슬럼프에 빠졌다”라고 말하기도. 이런 종합적인 상황으로 볼 때 그가 2025년 페라리로 이적한 것도 39세의 나이를 고려한 은퇴 절차라 추측할 수 있겠다. F1 드라이버라면 누구나 원하는 특별한 팀을 자신의 F1 마지막 커리어로 선택했다는 추측.
12라운드 영국 그랑프리에서 우승한
메르세데스-AMG 페트로나스 팀의 루이스 해밀턴.
한편, 페라리로 이적할 해밀턴의 자리를 두고 메르세데스-AMG 페트로나스 감독 토토 볼프는 현행 최강 팀인 레드불 레이싱의 막스 페르스타펀에게 노골적으로 계약을 제시 중이다. 레드불 팀 핵심 인력 일부가 내년 떠날 것이라는 보도가 전해진 가운데 페르스타펀도 이적이 가능할 수 있다. 앞서 이야기했듯 F1 비즈니스에서는 어제의 적이 오늘의 친구가 되는 일이 종종 벌어진다.
그 외에도 뛰어난 경주차와 팀을 가졌지만 가끔 큰 실수를 보여주며 휘청거리는 페라리, 작년까지 레드불을 압박하며 선두 대열에 있었지만 올해는 다른 팀들에 밀려 중위권에서 힘을 못 쓰는 애스턴마틴, 팀 동료와 불필요하게 경쟁하며 알핀 팀으로부터 연장 계약을 따내지 못한 에스테반 오콘, 부상으로 경주에 참여하지 못한 카를로스 사인츠를 대신해 갑자기 경기를 뛴 페라리 리저브 드라이버 올리버 베어먼의 뛰어난 실력과 정신력 등 F1 2024 시즌은 다양한 볼거리와 앞으로 전개될 흥미로운 이야기 소스가 계속해서 만들어지는 중이다. 2024년 7월 현재, 레드불 레이싱의 막스 페르스타펀(255점)은 2위 랜도 노리스(171점)와 3위 샤를 르클레르(150점)에게 바짝 쫓기고 있다. 더불어 드라이버 포인트 3위부터 8위까지 거의 모두가 비슷하다는 점에서 끝까지 결과를 예측할 수 없는 전개가 이어지고 있다.
김태영 자동차 콘텐츠 기획 및 제작 회사 데이브컨텍스트 대표. 자동차 전문 매체와 남성 라이프스타일 매거진에서 에디터로 활동했다. 현재 CJ 슈퍼레이스 래디컬 컵에서 프로 레이서로도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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