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12월호

HOUSE OF GOD 2.0

팬데믹 이후 사람들의 삶이 크게 변화한 것처럼 종교 건축 역시 이전과는 비교할 수 없게 달라졌다. ‘신의 집’은 이제 ‘사람의 집’을 지향한다. 모든 사람을 향해 활짝 열려 있는, 따뜻하게 환영하는 공간. 너그러운 포용을 통해 보다 시적이며 성스러운 공간이 된, 최근 세계 곳곳에 지어진 6곳의 종교 건축을 소개한다.

GUEST EDITOR 정규영



CHURCH OF THE HOLY FAMILY

BRAZIL

브라질의 수도 브라질리아는 20세기를 대표하는 계획도시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곳이다. 1960년대 건축가 오스카르 니에메예르Oscar Niemeyer와 함께 브라질리아의 토대를 마련한 도시계획가 루시우 코스타Lucio Costa가 이 고원 도시의 풍경에서 포착한 것은 광활한 평원, 그의 표현을 빌리자면 “마치 거대한 구름이 움직이는 바다와도 같은” 풍경이었다. 브라질 건축사무소 ARQBR이 설계한 ‘성가족교회’는 루시우 코스타와 오스카르 니에메예르가 함께 기틀을 세운, 브라질리아라는 기념비적 계획도시와 모더니즘 건축, 그 주변을 둘러싼 광대한 녹지와 자연에서 영감을 받은 교회 건축물이다. 브라질리아의 평원처럼 낮고 넓은 구조에 모더니즘 건축양식에 충실한 회색 콘크리트 건물. 교회의 중심에 자리하는 원형 본당은 6개의 기둥에 의해 지면에서 떠 있는 형태로 설계되었다. 천장 가장자리와 의자에 앉은 눈높이에 맞춰 외벽 둘레를 따라 둥글게 낸 창으로 들어오는 자연광이 회색 콘크리트와 목재 2가지로만 구성한 실내를 따스하게 비춘다. 내부의 벽은 안쪽으로 경사져 마치 오목하게 파인 그릇과도 같은 형태를 완성하며, 창과 창 사이의 수직 목재 스크린과 목재 가구가 공간에 질감과 패턴을 부여한다. 브라질리아 도시계획의 3가지 기본 전제, 즉 ‘지형에 이식된 건물’, ‘공공 공간과 사적 공간의 통합’, ‘주요 구성 요소로서 조경의 통합’ 등에 충실하면서도 지극히 시적이며 성스러운 공간을 완성해낸 종교 건축의 현대적 걸작.




CHAPEL IN SIERRA LA VILLE

SPAIN

중부 스페인 산악 지대에 자리한 쿠엥카Cuenca는 중세 유럽의 고풍스러운 분위기로 가득한 작은 마을이다. 소설 <돈키호테>의 배경이 되는 카스티야 라만차La Mancha 지방에 속하는 곳이기도 하다. ‘땅속의 다이아몬드’라고 불리는 송로버섯 경작지 주변, 100년을 훌쩍 넘긴 수령의 털가시나무holm oak가 서 있는 지역에 이 단순하면서도 우아한 예배당이 위치한다. 구조적으로 가장 흥미로운 부분은 마치 종이를 접고 구부려 완성한 듯한 독특한 형태. 스페인 마드리드의 건축 스튜디오 산초 마드리데호스Sancho +Madridejos는 이렇게 구부러지고 접힌 형태로 설계한 이유가 단순히 시각적으로 흥미를 끌기 위한 것이 아닌, 예배당이 자리한 산악 지형의 외부에서 작용하는 힘과 그에 대응하는 응력應力의 균형을 맞추기에 가장 효과적인 구조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내부 역시 예사롭지 않다. 예배당을 찾는 사람들을 환영하는 것처럼 규모에 비해 크고 높게 열려 있는 입구를 지나면 바로 맞은편에 콘크리트 외벽을 잘라 붙인 것 같은 커다란 십자가 조형이 등장하는데, 십자가 주변에 뚫려 있는 벽으로 들어온 자연광이 시간에 따라 각기 다른 빛과 그림자를 드리우며 내부 공간에 생동감을 불어넣는다. 건축주의 자택과 함께 지어진 이 예배당은 황량하면서도 풍요로운 산악 지대의 공적 영역과 사적 영역을 구분하는 역할을 한다. 누구나 이 예배당을 찾고, 건축적 경이와 고요한 영성을 누리는 한편으로 돈키호테와 산초 판사가 바라본 바로 그 풍광을 만끽할 수 있다.




SOLA CHURCH

NORWAY

노르웨이 남서부 해안 도시 솔라Sola의 중심가 한쪽 끝, 시청 건물 맞은편에 자리한 ‘솔라 교회’는 이 작고 아름다운 도시 한복판에 최초로 세워진 종교 건축물이자 마을 사람들이 모여드는 타운 홀 같은 곳이다. 너른 콘크리트 바닥에 세워진 목재 건물 두 채가 열려 있는 회랑을 통해 연결되는 구성. 높게 솟은 박공지붕이 인상적인 본당 건물은 명확한 좌우대칭을 이루며 차분하고 균형 잡힌 분위기를 조성하고, 교회 내부 제단 위편에는 솔라 지역에서 활동하는 아티스트인 마리 부스코프Marie Buskov가 설치한 날아오르는 새를 연상시키는 거대한 황동 조형물이 현대적이면서도 우아한 느낌을 선사한다. 교회 내부 공간에서 무엇보다 인상적인 것은 벽면을 따라 일렁이는 색색의 빛. 교회 북쪽 외벽에 루버louvre 형식으로 세로로 길게 잘라낸 나무판과 스테인드글라스를 결합해, 그 사이를 통과해 교회 내부로 들어오는 북극광이 공간에 시적이면서 숭고한 깊이를 더한다. 맑은 날에는 스테인드글라스를 투과한 빛이 교회 내부의 바닥까지 갖가지 색으로 춤추듯 움직이고, 밤이 되면 안쪽에서 밝힌 불빛이 마치 등대처럼 빛나며 도시의 랜드마크 역할을 한다. 덴마크 코펜하겐 기반의 설계 사무소 야야 아키텍츠JAJA Architects가 예배와 시민의 모임, 휴식 공간 모두가 되기를 바라며 설계한 이 교회는 마주하는 도시 중심가를 향해 활짝 열린 광장으로서 이 작은 마을의 정체성을 새롭게 정의하고 있다.




CHAPEL OF THE EARTH

MEXICO

이름처럼 땅속에 자리한 예배당. 마야문명이 생겨난 멕시코 유카탄반도 내륙, 작은 마을과 신흥 농촌 주택 개발 지역의 경계에 자리한 ‘대지의 예배당’은 특정 종교의 랜드마크를 강요하지 않으며, 지역 주민이 만나고 모이는 장소로서 더 큰 의미를 지니고 있다. 마치 땅속으로 사라지는 것 같은 이 예배당은 주변 경관과 어우러져 전통적인 마을과 새롭게 개발되는 지역 사이의 경계이자 두 영역을 통합하는 공공장소로서 기능한다. 대지의 예배당은 다양한 종교적 신념을 지닌 커뮤니티를 위해 설계한 다종교적 공간이다. 사색과 침묵, 기도의 장소일 뿐 아니라 자연과의 깊은 접촉을 목적으로 하는 곳이다. 사각형 콘크리트 프레임으로 시작하는 예배당으로 가는 길은 완만한 경사를 따라 길게 이어지며, 지역의 주민들에게 큰 의미를 지닌 감람나무가 길 주변에 심어져 있다. 마치 지구 중심부로 향하는 것 같은 독특한 경험. 길 끝에는 자연의 소리와 함께 침묵을 즐길 수 있는 공간이 나타난다. 그곳에 수상식물로 가득한 작은 인공 연못과 함께 속이 비어 있는 십자가가 존재한다. 유카탄주의 주도인 메리다Mérida 출신의 건축가 엔리케 카브레라Enrique Cabrera는 유카탄반도의 경이로운 천연 지하 우물, 세노테cenote에 대한 경의로서 물과 자연, 영성을 결합한 예배 공간을 설계했다. 하지만 이 공간에서의 경험은 그 순간의 날씨와 빛, 시간, 그리고 받아들이는 사람에 따라 얼마든지 변화할 수 있다.




VENESSLA CHURCH

NORWAY

우주선을 닮은 독특한 목조 도서관 건축으로 잘 알려진, 인구 1만5,000명이 채 되지 않는 노르웨이 남부의 작은 마을 베네슬라에 또 하나의 랜드마크가 세워졌다. ‘사람들의 집People’s House’을 표방하는 ‘베네슬라 교회’는 앞서 소개한 솔라 교회와 마찬가지로 지역의 종교 행사와 더불어 공적, 사적 문화 행사가 모두 열리는 시민들을 위한 공간이다. 노르웨이 오슬로를 기반으로 스칸디나비아반도 지역 전체를 대표하는 건축사무소 중 하나인 링크 아키텍투르LINK Arkitektur의 건축가 토네 오센Tone Osen은 지역 사회의 종교적 필요와 일상적 필요를 모두 만족시키는 친근한 건물이 되도록 베네슬라 교회를 설계했다. 일반 교회 건물과 달리 예배가 이뤄지는 본당보다 시민들의 모임이 열리는 별관이 전면에 자리한 것도 이채롭다. 또한 어린이와 청소년을 위한 활동 공간을 남쪽에 배치해 주변 초등학교와의 접근성을 높였다. 베네슬라 교회에선 예배가 열리는 중에도 근처 학교와 시민들의 모임을 위한 다채로운 행사를 개최할 수 있다. 건물 외관 전체를 덮고 있는 독특한 형태의 벽돌은 건축가의 요청에 따라 이번 프로젝트를 위해 특별히 제작한 것으로, 계절과 시간의 변화에 따라 그림자가 달라지고, 단순한 구조에 생동감을 불어넣는다. 특수 개발한 하부 구조로 개별 타일을 쉽게 교체할 수 있도록 해 지속 가능성을 높이고 유지 보수가 용이하다. 16세기 베네슬라에 최초로 지어진 교회에서 가져온 목재로 본당 제단과 내벽을 꾸며 지역의 역사를 기념한 이 교회는 신도를 포함한 시민 모두를 향해 열려 있는 공간이다.




SANTA MARIA GORETTI CHURCH

ITALIA

아동 범죄의 희생자로서 가장 나이 어린 가톨릭 성인으로 알려진 성녀 마리아 고레티(1890~1902)를 기리는 교회. 현대적이면서도 시대를 초월한 듯한 내외부 건축이 무척 인상적이다. 남부 이탈리아의 폴리노 국립공원 한가운데에 자리한 언덕 마을 모르마노의 북쪽 가장자리에 있는 ‘성 마리아 고레티 교회’는 옛 로마제국 동부의 수도사들이 박해를 피하기 위해 산기슭에 지은 소박하고 아름다운 압시딜 칼라브리아Apsidil Calabria 교회의 전통에서 영감을 받아 건축가 마리오 쿠치넬라Mario Cucinella가 설계했다. 본당 건물은 마치 네 잎 클로버를 연상시키는 4개의 흰색 콘크리트 아치로 구성되어 있는데, 물결치듯 구부러진 아치의 정면에 절개된 부분을 통해 드나들 수 있다. 밤에 조명이 켜지면 십자가 모양으로 빛나는 입구의 형태가 무척 독특하다. 16m 높이의 천장에 드리워진 흰색 반투명 천은 여러 겹으로 굽이치며 고대의 수도원을 연상시키는 내부 돌벽과 장엄한 조화를 이룬다. 천창을 통해 자연광이 풍부하게 들어오며, 성 마리아 고레티 축일인 7월 6일에는 제단 뒤쪽 벽에 설치된 십자가 조형물에 햇빛이 비춰지도록 설계했다. 이탈리아 주교회의(CEI)가 주최한 공모를 통해 2015년 공사를 시작해 2022년 완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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