럭셔리 M 2023년 11월호

The Art of Hybridity

경기도 광주시 초입에 자리한 ‘이지재’는 김홍석 작가가 한국을 기반으로 활동한 20여 년의 세월이 담긴 공간이다. 어떠한 위계도, 질서도 존재하지 않는 이지재의 수많은 재료와 작품은 뒤엉켜 있고 미완성된 모습 그 자체로 익숙한 미술의 개념에 질문을 던진다.

GUEST EDITOR 한동은 PHOTOGRAPHER 이기태


“다를 이, 알 지, 집 재. 다양한 개념과 형태가 탄생하는 공방입니다.” 인터뷰를 마치고 나서야 김홍석 작가의 작업실 ‘이지재異知斋’에 담긴 의미가 완벽히 와닿았다. 각종 페인트와 캔버스가 놓여 있는 곳은 영락없는 화가의 공간이지만 용접 기계, 펜치, 드라이버, 톱을 빼곡히 모아놓은 한쪽 코너는 철물점을 연상케 하고, 박스와 포장 자재가 불규칙하게 쌓여 있는 안쪽은 택배사를 방불케 한다. 산과 빌라로 둘러싸인 경기도 광주 삼동. 이곳에 김홍석 작가의 이지재가 자리한다. 1990년대 독일 유학 생활을 마친 후 해외를 오가며 활동한 작가는 2000년대에 들어서며 한국에 정착해 작업할 작업실을 찾기 시작했다. 2004년, 한적하지만 서울에서도 멀지 않은 광주시 초입에 위치한 이 땅을 발견했고, 약 2년간 전기부터 페인트, 내부 인테리어까지 직접 완성해나갔다. “2007년 가을에 입주했으니 18년이 흘렀네요. 지금은 창고로 쓰고 있지만, 작업실 2층에는 서재를, 3층에는 침실과 부엌을 만들어 초기에는 여기서 먹고 자기도 했죠. 한국에서의 작업은 모두 여기서 탄생했어요. 여러모로 애정이 가는 공간이죠.” 조각, 회화, 영상, 퍼포먼스 등 다양한 매체를 오가며 작업하는 김홍석 작가는 자신을 특정 스타일로 규정짓는 것을 거부한다. 작가 한 명이 사용하는 작업실이라기에는 너무나 다양한 성격의 작품들을 발견할 수 있는 이유가 그 때문이다. 또, 그의 작업실에는 나무나 석고 같은 순수 재료보다 박스, 비닐봉지, 스티로폼, 포장재 등 부차적 재료를 더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박스를 쌓아놨다고 생각했지만, 알고 보니 ‘기울고 과장된 구성에 대한 연구’라는 이름의 작품이었다. 부재료를 의도적으로 사용해 주인공으로 앞세운 것. 이지재에는 세상이 만들어낸 어떠한 위계도 존재하지 않는다.


1층에서 바라본 ‘이지재’ 전경. 작업은 대부분 1층에서 이뤄진다.


긴 풍선으로 만든 작품 ‘부적당한Inadequate’ (2016)이 작업실 3층 옥상에 놓여 있다.


이지재가 그의 작업 세계의 탄생과 과정, 결실을 드러내는 온상이라면, 스페이스 이수에서 열리고 있는 개인전 <속옷을 뒤집어 입은 양복과 치마를 모자로 쓴 드레스>는 혼잡해 보이는 그의 작업 세계를 관통하는 ‘뒤엉킴’이라는 주제를 관객에게 관철시키는 커다란 장치다. 전시장을 채우는 3개의 조각, 하나의 사운드 그리고 회화 한 점은 매체도, 형태도 통일되지 않은 채 뒤엉켜 있다. “관객에게 일부러 혼란을 준 거예요. 전시 자체가 하나의 작품이라고 생각했을 때 비로소 주제가 보이죠.” 우리가 익숙하게 접하던 전시의 형태나 미술의 모습이 이곳에서는 완벽히 깨진다. 예술이라고 믿는 세계를 하나씩 뒤흔들며 관객에게 혼란을 주는 것에서 더 나아가 새로 생각해볼 것을 제안하는 것이다. “현재 예술은 20세기 초 서구에서 태동한 모더니즘을 기반으로 해요. 이후 포스트모더니즘 시대로 발전하며 다양성을 인정하게 되었죠. 다양한 것들이 혼재하며 새로운 양식이나 형태가 자생적으로 출현하게 되었고요. 저는 혼잡하고 비틀어진 세상에서 탄생하는 것들에 관심이 있어요.” 이번 전시에서는 작가가 2014년부터 지속해온 프로젝트 ‘완전한 불완전성’의 조각 작품들을 만날 수 있다. 완성과 미완성의 경계에 대해 오랫동안 생각해온 그는 그 경계를 흐릿하게 지우는 방법을 택했다. “불완전한 것 그 자체에서도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어요. 이 세상은 ‘완성’을 대단히 중요하게 생각하지만 ‘완전하다’는 개념은 인식의 차이로, 어느 누구도 완성과 미완성을 구분해낼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과정 속에 있는 작품을 의도적으로 끄집어내 완성한 작품이라고 선보이며 그 구분에 대해 다시금 생각해보도록 했죠.” 작가로 활동한 긴 세월 동안 그는 다양한 개념을 전복하는 작업을 이어왔다. 그러나 뒤엉켜 있는 작품들의 꼬리를 물고 따라가다 보면, 결국 하나의 목적에 귀결하게 된다. “서구로부터 축적된 수직적이고 일률적인 체계를 새로 쓰는 것이죠. 뿌리 깊은 체계를 예술로 변화시킨다는 것을 무모하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예술가로서 제가 할 수 있는 몫을 지속적으로 수행하는 것뿐입니다.”


회화 작업 중인 김홍석 작가.



COOPERATION  스페이스 이수(070-7737-70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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