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계는 그 어느 때보다 성별 코드를 유연하게 해석하고 있다. 남성복과 여성복의 경계는 점차 흐려지고, 디자이너들은 이제 성별보다 개인의 취향과 정체성에 주목한다. 물론 이러한 흐름이 갑작스럽게 등장한 것은 아니다. 1960~1970년대의 유니섹스가 남성과 여성이 같은 옷을 입는다는 새로운 발상이었다면, 1980~1990년대의 앤드로지너스는 남성성과 여성성을 넘나들며 중성적 미학을 탐구했다. 이후 젠더리스와 젠더 플루이드를 거쳐 패션은 오늘날 코에드Co-ed라는 새로운 단계에 이르렀다.


PRADA 2026년 S/S. 오랜 시간 계승해온 브랜드의 유산을 토대로 정제된 실루엣과 절제된 구조미를 구축하고, 신체의 자유와 유연성을 강조했다.
남녀공학Co-education에서 유래한 코에드는 남녀의 차이를 지우기보다 공존에 가치를 둔다. 남성과 여성이 하나의 컬렉션 안에서 각자의 개성을 유지한 채 나란히 서는 것. 지금 패션계가 가장 주목하는 흐름 역시 바로 여기에 있다.


VERSACE 2026년 S/S. 몸의 곡선을 강조하는 실루엣과 하이웨이스트, 대담한 컬러, 메탈릭 요소를 조화시켜 1990년대 지아니 베르사체가 구축한 글래머러스한 미학에 현대적 감각을 더했다.
2026년 S/S 시즌, 캘빈 클라인 컬렉션의 베로니카 레오니와 베르사체의 다리오 비탈레는 남성과 여성의 룩이 유기적으로 어우러지는 런웨이를 선보였다. F/W 시즌에는 미우미우, 보테가 베네타, 펜디, 구찌, 버버리, 생 로랑 바이 안토니 바카렐로, 페라가모, 톰 포드까지 가세하며 코에드의 흐름에 힘을 실었다. 이제 성별은 컬렉션을 정의하는 절대적 기준이 아니다.


GUCCI 2026년 F/W.
울 저지, 스판덱스, 레더, 레이스 등 다양한 소재로 제2의 피부 같은 감각을 구현하고, 뎀나는 자신만의 언어로 새로운 구찌다움을 제시했다.
물론 이 흐름을 모두가 반기는 것은 아니다. 일각에서는 코에드 쇼의 확산이 디자이너의 창의적 실험이라기보다 변화한 패션 산업의 구조가 만들어낸 결과라고 말한다. 컬렉션 통합이 효율성을 높이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 이면에는 남성복의 존재감이 점차 희미해질 수 있다는 우려도 따른다. 지난 시즌 영국패션협회가 6월에 진행하던 런던 패션 위크의 남성복 일정을 폐지한 것 역시 패션계의 달라진 풍경을 단적으로 드러낸다.


TOM FORD 2026년 F/W.
과감한 컷아웃 크롭톱과 로라이즈 팬츠, 맨살을 스치는 가느다란 벨트로 톰 포드 시대의 글래머를 하이더 아크만식 보헤미안 무드로 새롭게 풀어냈다.
분명한 사실은 하나다. 오늘날 코에드는 남녀의 차이를 지우기보다 서로 다른 이들이 같은 런웨이 위에서 자신만의 개성을 펼칠 수 있도록 한다. 한때 패션이 성별을 구분하는 기준이었다면, 이제는 각자의 취향과 정체성을 담아내는 도구가 됐다. 코에드는 하나의 트렌드를 넘어 패션이 사람을 바라보는 시선의 변화를 보여준다. 그리고 지금 런웨이는 그 새로운 시대의 시작을 가장 먼저 비추고 있다.


FENDI 2026년 F/W. 30년 만에 펜디로 복귀한 마리아 그라치아 키우리는 브랜드의 헤리티지와 자신의 아카이브를 교차시키며 익숙하면서도 새로운 컬렉션을 선보였다.
PHOTO | © LAUNCHMETRICS/SPOTLIGH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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