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5월호

LIVING IN JOY

아트선재센터에서 한국 작가 박보마, 우한나, 박론디 3인의 전시 <즐겁게! 기쁘게! Living in Joy>가 한창이다. <하이디 부허: 공간은 피막, 피부>의 연계 전시로, 예술을 통해 자기 삶에서 유의미하고 행복한 순간을 만들기 위해 고군분투한 스위스 설치 예술 작가 하이디 부허로부터 영감을 받은 신작을 선보인다. 예술로 ‘기쁨’의 의미를 환기한 세 작가를 만나 이야기를 나눴다.

EDITOR 정송 PHOTOGRAPHER 안지섭

우한나  아이보리색 블레이저 재킷과 롱 슬랙스 모두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나뭇잎 형태의 골드 이어링은 1064 스튜디오. 실버 볼 반지는 셀뮤트. 화이트 펌프스는 레이첼 콕스.

박론디  블랙 싱글브레스트 재킷과 팬츠, 니트 톱 모두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크고 작은 고리를 이어 만든 목걸이와 실버 링 모두 1064 스튜디오. 롱 펜던트 네크리스는 셀뮤트. 오픈토 펌프스는 크리스찬 루부탱.

박보마  케이프 칼라 블라우스는 레호. 블랙 팬츠는 메종 마레. 체인 네크리스는 앤아더스토리즈. 골드 & 실버 루프 이어링과 반지 모두 코스. 검정 스트랩 샌들은 지안비토 로시.



“웨딩을 키워드로 작업했어요. 결혼식은 영원한 사랑을 약속하는 아주 기쁜 자리잖아요. 엉망이 된 결혼식의 장면에서 기쁨을 비롯해 영원, 사랑 등의 의미를 다시 한번 생각해보고 싶었어요.”


박보마  디지털, 웹, 미디어, 설치, 오브제, 장식, 우발적인 이벤트, 멜로디, 향 등 다양한 매체를 다루며 수많은 아이덴티티를 가지고 활동하는 작가. 최근 가상의 회사 ‘Sophie Etulips Xylang Co.’를 세우고 웹사이트 자체를 자신의 작업이자 전시로 선보인 바 있다. 현재 ‘매터’라는 브랜드를 만들어 조향사로도 활동 중이다.



“작업할 때 당연히 창작의 고통도 있지만, 저만 아는 기쁨도 있어요. 작업이 생각한 대로 흘러갔을 때, 혹은 그날 구상한 것이 매끈하게 진행됐을 때 창작자만이 느낄 수 있는 쾌감이 있달까요.”


화이트 오픈 숄더 블라우스는 레호. 스트레이트 핏의 코튼 팬츠는 메종 마레. 구조적인 형태의 싱글 이어링은 1064 스튜디오.

가죽 소재 스트랩 뮬은 마이클 마이클 코어스.


우한나  한국예술종합학교에서 조형예술과 예술사와 전문사를 취득하고, 패브릭을 주로 사용해 자신만의 예술 언어를 적립해왔다. 2016년 촉촉투명각에서의 개인전 <시티 유니츠City Units>를 시작으로 다양한 곳에서 개인전과 단체전에 참여해왔다. 다양한 것들이 제 목소리를 내면서 동등한 존재감을 가지고 사는 이상적인 세상을 그려나가고 있다.



“어떻게 보면 소유하고 싶은 마음, 즉 ‘욕망’ 그 자체가 저에게 굉장히 흥미로운 주제였습니다. 이번 전시 제목인 ‘Joy’와 색다르게 연결 지어봤어요.”


박론디  그동안 스스로를 ‘만드는 사람Crafter’이라고 부르며 드로잉, 텍스타일, 퍼포먼스, 세라믹 등 다양한 매체로 작업을 전개해왔다. 자본주의사회에서 ‘욕망’에 얽힌 인간의 다양한 감정을 다룬다. 많은 사람이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를 통해 동시대 작가로서의 태도를 환기하고, 자신만의 뚜렷한 개성을 만들어가는 중이다.



전시 제목이 <즐겁게! 기쁘게! Living in Joy>예요. 하이디 부허라는 작가와 전시 제목에 대해 들었을 때 어떠셨나요?

우한나(HN) 현대미술 전시는 대체로 ‘기쁨’에 대해 다루기 힘들다고 생각했어요. 실제로 별로 본 적이 없는 것 같아요. 그래서 인상적이었어요. 작업은 고통스럽기도 하지만 동시에 기쁘기도 한 행위예요. 이번 전시를 위해 작업하면서 최대한 이런 순간을 많이 만들고자 했습니다. 창작자의 입장에서 느낄 수 있는 ‘기쁨’이라는 감정으로 접근한 거죠.

박보마(BM) 제목을 딱 들었을 때 ‘기쁨’이라는 단어를 다시 생각해보게 됐습니다. 하이디 부허의 작업을 보면서 20대 때 구상했던 작업이 떠올랐어요. 언젠가 꼭 해보고 싶은 주제였던 ‘웨딩’을 꺼내들었죠. 결혼식에는 영원한 사랑에 대한 기대와 기쁨이 넘치잖아요. 행복한 자리죠. 그걸 전복해서 이 단어에 담긴 기존의 의미를 재고해보고자 했어요. 이후에 하이디 부허의 험난했던 결혼 생활과도 연관이 있다는 걸 알게 됐을 때 묘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박론디(RD) 이번 전시는 저에게 좀 특별합니다. “나는 이런 작업을 해”라고 분명히 보여줄 만한 전시는 처음이거든요. 저는 ‘엔터테인먼트’적인 면을 매우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이에요.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건 결국 관심이고, 그 관심이 인간의 욕망과 맞닿아 있다고 생각해요. 시각적으로 사람들의 마음을 현혹할 수 있는 작업을 하는 것이 곧 재밌고 기쁜 일이 아닐까요.


그렇게 듣고 보니 박론디 작가님의 작품명이 흥미로웠던 기억이 나네요. 마치 단편소설처럼 작품 제목을 붙이셨더군요.

RD 맞아요. 많은 분이 아마 같은 생각을 하셨을 거예요. 저는 이야기하는 걸 좋아해요. 수다쟁이죠. 모든 사람에게 왜 이런 작업을 했는지, 그리고 이를 통해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지 직접적으로 얘기해주고 싶었어요. 작품 좌측에서 우측으로 하나의 서사가 이어져요. 밖에서 집으로 돌아와 치장하던 것들을 풀고 나면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그리고 인생 전반을 아우르죠. 작품이 어떤 한 장면만을 포착하는 게 아니기 때문에 ‘단편소설’ 급으로 길어졌어요.


우한나 작가님은 ‘블리딩 7’과 ‘젖과 꿀-3’ 두 작품으로 어떤 메시지를 전하고 싶었나요?

HN 작업을 하면서 ‘나’라는 사람에 집중하다 보니 요즘 자연스럽게 여성과 신체에 대한 이야기에 관심이 많아졌어요. 제가 점점 나이 들어가면서 생물학적으로 임신이 어려워지는 시기에 접어들게 됐어요. 아이를 낳아야 하는 분위기와 출산이나 여성의 신체에 대한 고민으로 자연스럽게 이어졌죠. 예를 들어 ‘블리딩 7’은 생리에 관한 이야기를 하는데, 생리가 일종의 현상이기도 하지만 ‘사인’처럼도 느껴졌어요. 아이를 갖길 원하는 여성에게 생리는 ‘나의 몸이 이번에도 임신에 실패했다’는 것을 알리는 신호니까요. 제가 요즘 깊이 탐구하는 주제에 대한 이야기를 즐거운 마음으로 풀어보았죠.


박론디 작가님에서부터 우한나 작가님을 거치며 박보마 작가님에 이르기까지 점점 주제가 좁혀지고 또 상세해지는 것 같은 느낌이 들어요. 박보마 작가님은 이번 전시에서 인간의 역사 속 가장 중요한 의식 가운데 하나인 ‘결혼’을 다루시죠. 앞서 잠깐 언급하셨지만 왜 결혼이 주제가 되었는지 궁금해요.

BM 대학 시절 ‘만약 결혼하게 되면 나는 페이크 결혼식을 해야지’라고 생각했던 때가 있어요. 다이아몬드가 아닌 모조 보석 반지와 가짜 꽃으로 결혼식을 가득 채우는 거죠. 그걸 작업처럼 선보여야겠다는 생각도 했고요. ‘영원한 건 아무것도 없으니 나는 모조품에 깨어질 수도 있는 맹세를 해야겠다’란 마음이었던 것 같아요. 이 오래된 작업 기획을 다시 꺼내게 된 데는 주변인들의 결혼식이 매우 크게 작용했어요. 여러 번 가다 보니까 제 눈에는 모든 결혼식이 다 똑같은 거예요. 그런데 또 결혼식마다 꼭 제가 눈물을 흘리고 있더라고요. 영원을 약속하는 순간이 나중에 변질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면서 알 수 없는 공허함, 슬픔 같은 단어를 떠올린 것 같아요. 전시를 기획한 외부 큐레이터 추스 마르티네스Chuz Martinez는 있는 말 그대로 ‘JOY’를 말하고자 했지만, 저는 결혼식에 빗대어 기쁨 이면의 것을 형상화해보고자 했어요.


작가님 세 분 모두 이 전시의 주제에 대해 다르게 생각하고 접근했다는 점이 흥미롭습니다. 전부 다른 작업인데, 하나의 장면에 펼쳐진 것을 봤을 때 어떤 생각이 들었나요? 이번 전시에 대한 소회를 부탁합니다.

HN 처음 작품 배치를 보고 놀랐어요. 박론디 작가와 박보마 작가는 서로 매우 다른 성향을 보이고, 그런 것들이 작업에 투영되기 때문에 작업 톤에도 간격이 있을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어요. 저는 성격도, 작업 스타일도 이 두 작가의 중간인 듯해요. 결국 세 작업이 어우러져서 지금 같은 시너지가 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이건 정말 큐레이팅의 힘이죠.

RD 저와 다른 색깔을 가진 작가와 함께하는 경험은 소중한 것 같아요. 여러 작가와 동일한 주제 아래 작업을 할 때 제가 집중하고 있는 주제와 하고 싶은 말을 제대로 보여줄 기회가 많이 없었어요. 대체로 사람들이 제 작업을 보면 어떤 기분 좋은 감정을 극단까지 끌어올려 표현한다고 생각하는데, 사실 저는 일정한 선을 지키고자 노력하거든요. 그랬기 때문에 여기 함께 한 다른 두 작가의 작업과 잘 어우러질 수 있었던 것 같아요.

BM 그런데 결국 이 모든 건 우한나 작가의 말처럼 마르티네스 큐레이터의 힘이에요. 우리를 자주 불러 모았어요. 먹고 마시면서 서로 생각을 공유하는 시간이 많았죠. 그래서 편안한 마음으로 전시에 임할 수 있었고,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어우러지지 않았나 생각해요. 작업을 고민하면서도, 만들면서도, 또 전시가 올라간 뒤에도 즐거움의 연속이에요.



HAIR & MAKEUP  강다슬  STYLIST  차세연  ASSISTANT  박소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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