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5월호

청춘의 이름으로, 안도 다다오

“살아 있는 동안은 모두가 청춘이에요.” 50여 년을 건축에 몸담아 온 거장의 눈빛은 여전히 맹렬한 패기로 가득하다. 직접 설계한 미술관인 뮤지엄 산에서 열린 개인전 <청춘>으로 그간의 작업을 돌아보는 시간을 마련한 안도 다다오는 머무르지 않고 나아갈 태세를 취한다. 앞을 보며 내달리는 청춘의 모습처럼.

EDITOR 이호준

안도 다다오  1941년생으로 건축을 전문적으로 배우지는 않았으나 한 중고 서점에서 르 코르뷔지에의 건축 서적을 본 후 건축가의 길로 입문하게 됐다. 그의 도면을 달달 외울 정도로 대단한 열의를 보이며 건축가로서 뚝심 있게 달려온 안도 다다오는 1969년 자신의 건축사무소를 설립했고, 1995년 프리츠커 건축상을 수상하며 건축사에 한 획을 그었다. 여든이 넘는 나이임에도 부르스 드 코메르스, LG아트센터 등을 건축하며 젊은 건축가 못지않은 열정을 발휘하고 있다.



건축을 전공하지 않은 이단아, 빛의 마술사, 한국에서 가장 많은 팬을 보유한 건축가, 노출 콘크리트의 대가. 안도 다다오에게는 수많은 수식어가 뒤따른다. 건축가로서의 맹렬한 행보를 증명하는 자랑스러운 훈장처럼 말이다 1941년 오사카에서 태어나 독학으로 건축을 시작했던 어린 청년이 1995년 프리츠커 건축상을 수상하며 건축사에 한 획을 긋기까지는 수많은 좌절과 고독이 있었으며, 끊임없이 다시 시도하는 집념이 필요했다. 안도 다다오라는 ‘거장’의 이름은 바로 실패와 시도로부터 만들어진 것. 그리고 지금, 한국에서 그의 일대기를 살펴 보는 전시가 열리고 있다. 자신이 직접 설계한 미술관, 뮤지엄 산에서 말이다. ‘나오시마 프로젝트’, ‘빛의 교회’ 등 그를 상징하는 대표작부터 세계 곳곳에 지은 공공 건축 프로젝트, 그리고 2020년 준공한 프랑스 현대미술관 ‘부르스 드 코메르스Bourse de Commerce’까지 안도 다다오의 건축 세계를 구성하는 250여 점의 작품을 조망할 수 있는 자리다. 여든이 넘는 나이지만, 전시명인 <청춘>처럼 건축을 논할 때만큼은 여느 청년의 모습 같던 그에게 몇 가지 물음을 던졌다.


<청춘>은 도쿄, 파리, 밀라노, 상하이, 베이징, 대만에 이은 일곱 번째 순회전이자, 한국에서의 첫 회고전이다. 직접 설계한 건축물에서 갖는 전시인 만큼 감회가 남다를 듯싶다.

사실 ‘건축 전시’라는 것 자체가 모순을 품고 있다. 전시장 안에 실제 건축 작품은 결코 존재할 수 없으며, 완성에 이르기까지의 흔적만 남아 이를 대체하니 말이다. 다만, 뮤지엄 산에서의 전시는 이러한 모순점을 어느 정도 상쇄할 수 있는 자리다. 초기 드로잉과 모형은 물론이고 그 결과 탄생한 실제 건축물을 체험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전시회장 자체가 가장 큰 전시 작품이 되는 셈이다. 그러니 오감으로 이 공간을 만끽하면 된다. 뮤지엄 산의 설계 프로세스를 모은 특별 전시 코너도 마련했다.


‘청춘’, 듣기만 해도 벅찬 낭만의 단어다. 다만, <도전>이나 <노력> 등 다른 도시에서 열린 순회전과 한국에서 열린 개인전 전시명을 다르게 정했다는 점이 꽤 흥미롭다. 왜 청춘이라는 단어를 선택했나.

전시장 입구에 전시한 커다란 풋사과 조형물을 봤나? ‘청춘’이라 명명한 사과는 계속해서 나아가겠다는 도전 의식 그리고 좌절하더라도 계속 정진하겠다는 청춘의 자세를 담은 작품이다. 청춘은 완벽하지 않지만, 더 나은 것으로 나아가려는 정진과 도전 의식이 깃든 단어라고 생각한다. 이러한 진취적인 정신과 마음을 전시에 반영하고 싶었다.


‘공간의 원형’, ‘풍경의 창조’, ‘도시에의 도전’, ‘역사와의 대화’ 4가지 섹션으로 전시를 구성했다. 건축의 본질을 두드리는 주제이자, 안도 다다오의 건축적 철학을 집약하는 키워드로도 보인다.

나의 건축 프로젝트를 축약하는 가장 좋은 테마라 생각해 구성을 4개의 파트로 나눈 것은 맞다. 다만, 이는 그저 전시를 감상하는 하나의 이정표일 뿐이다. 아까도 말했듯 이번 전시의 가장 큰 특징은 미술관 자체가 전시 작품이라는 점이다. 나는 뮤지엄 산을 하나의 ‘정원’으로 봤고, 전시를 감상하는 행위를 정원 속을 거니는 산책처럼 느끼길 바란다. 부디 구성에 얽매이지 않았으면 한다.


한국의 젊은 건축학도들과 협업한 작품을 비치한 점도 재밌다.

도쿄와 파리에서 진행했던 전시에서도 현지 학생들에게 설치와 모형 제작을 부탁했다. 건축에 뜻을 둔 이라면 이 기회가 자양분이 되리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다음 시대를 책임질 이들이지 않나. 학생들을 내 편으로 끌어들이면 그들의 지인들이 전시를 많이 봐주지 않겠느냐는 의도도 있었지만.(웃음)


지금 시점에서 청년기의 안도 다다오를 회고해본다면?

매 순간 구보를 뛰는 것 같은 분주한 나날을 보냈다. 1972년 도시 게릴라 주거 프로젝트를 맡으면서 당시의 벅찬 감정을 기록했던 기억이 난다. 일을 시작하고 처음 10년 정도는 일거리조차 쉽게 얻을 수 없었다. 건축을 전공하지 않고 건축을 직업으로 삼는 것 자체가 도전이었으며, 프로젝트를 맡게 되더라도 부지가 좁거나 예산이 부족했다. 역경을 어떻게 극복할지 고민하고 시도하던 시간의 연속이었다.


자서전에서 “나 역시 여전히 청춘을 살고 있다”라는 말을 남겼다. 나아가 청춘과 같은 마음가짐을 가질 것을 강조하기도 했는데, 과연 안도 다다오에게 청춘이란 무엇인가.

새뮤얼 울먼Samuel Ullman의 시 ‘청춘’에는 다음과 같은 구절이 있다. “청춘이란 인생의 어느 한 시기가 아닌 사람의 마음가짐이다. 세월이 흐른다고 늙는 것이 아니라, 이성을 잃어버릴 때 늙는 것이다.” 청춘은 나이와 무관한 것이다. 꿈을 포기하지 않고 목표를 가지고 사는 모든 이가 청춘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전시는 건축가로서 반세기를 돌아보는 자리지만 회고전이라 부르고 싶진 않다. 내게는 ‘건축이란 무엇인가?’, ‘무엇을 위해 건축할 것인가?’ 같은 미래를 향한 질문을 던지는 자리니까.


그간 프로젝트를 개괄하는 자리인 만큼, 안도 다다오 건축의 가장 큰 특징 중 하나인 빛과 물, 바람 등의 자연 요소를 어떻게 건축의 일부로 들여왔는지 눈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나아가 자연과 건축의 상관관계 그리고 인간과 건축의 상관관계에 대한 의문도 동시에 들었다.

내게 자연이란 생명의 원천이다. 인간은 그 일부로 자리하며 자연과 더불어 사는 생활이야말로 인간이 영위해야 할 삶의 방식이라고 생각한다. 건축에 임할 때는 항상 건물이 언젠가 자연에 매몰되어 보일 만큼 완벽히 녹아든 미래를 그려본다. 빛과 물 등의 요소는 선제적으로 활용하는 자연의 단편이다. 건축과 자연 그리고 인간은 하나의 연결선상에 놓여 있는 것이다.



국내 최초로 안도 다다오의 개인전이 열리고 있는 뮤지엄 산 전시장 내부 전경.



자연과 건축의 관계를 논하는 과정 중 ‘지속 가능성’의 맥락에서 보면 안도 다다오 건축의 시그너처인 ‘노출 콘크리트’는 얼핏 지속 가능한 소재와는 다소 거리감이 느껴지기도 한다.

전인류적인 과제의 해결을 위해 여러 방도를 모색하고 있는 흐름은 이해하지만 그것이 맹렬하게 ‘콘크리트는 나쁘다’는 결론으로 귀결되는 풍조에는 동의하기 어렵다. 저이산화탄소, 저비용적 측면을 실현할 수 있는 시멘트 대체 소재 개발 기술의 발전은 꼭 이뤄져야 할 사안이지만, 그렇다고 현대건축의 범주를 확장하는 데 일조한 콘크리트 자체를 부정할 수는 없는 것이라 본다. 기존 콘크리트의 물성을 완벽히 대체할 지속 가능한 소재가 세상에 나온다면 제일 먼저 도전해보고 싶다. 누구나 사용할 수 있는 수단으로 누구도 흉내낼 수 없는 세상을 만들고 싶다는 것이 오늘날까지 내가 콘크리트에 집착해온 이유이니 말이다.


특히 최근 완공 소식을 알린 LG아트센터까지 포함해 한국 내에서도 당신의 건축을 체험할 수 있는 곳이 많이 자리한다. 그만큼 한국 건축에 대한 지리적, 사회적, 문화적인 연구에 쏟은 시간이 상당했을 텐데, 한국 건축의 특징은 무엇이라 생각하나?

역사적으로 한국은 강대국에 대항하는 자세와 강한 구축 의지를 보여왔다. 이와 같은 특성이 건축에서도 파격적인 아름다움으로 드러나는데, 좋은 예가 바로 종묘다. 통상적인 대칭 미학을 따르고는 있지만, 열주의 형상이나 포장석의 부착 방식 등에서는 의도적인 비대칭의 흔적이 보인다. 그로 인해 미묘한 여백의 미와 의례를 비트는 파격적인 미학이 만들어진 것이다. 한국에 적합한 건축에 대해서는 각기 다른 견해를 지녔을 테니 쉽사리 대답하기 힘들 듯하다. 단 하나 확실히 말할 수 있는 것은 ‘50년, 100년 후를 고려해 설계한 것인지’를 고려해야만 지역과 상응하는 건축믈을 지을 수 있다는 점이다. 이를 위해선 전통 건축물을 많이 참고해야 한다. 지금껏 남아있는 전통 건축은 지역적 특질에 대한 높은 이해도를 바탕으로 인고의 시간을 버텨온 것이기 때문이다.


“내 건축의 원점은 결국 주택이며, 프로젝트의 마지막 또한 주택으로 짓고 싶다”라고 말한 바 있다. 데뷔작 ‘스미요시 나가야’ 역시 주거 건축이었는데, 생애 마지막 프로젝트 또한 주거 건축을 언급한 이유는?

건축이란 인공과 자연, 이상과 현실, 추상과 구상이라는 대비되는 이항 사이에서 갈등하며 생겨나는 것이라고 본다. 주택은 인간의 생활에서 가장 가까운 곳에 있기 때문에 가장 깊은 갈등이 서린 건축이기도 하다. 그래서 내게는 주택이야말로 건축의 원점이자 정수이며, 건축가로서의 마지막을 원점으로 회귀하는 것으로 장식하고 싶다. 당신에게 ‘럭셔리’란 무엇인가? 질문을 받고 사전을 뒤적여봤다. ‘호사’라는 뜻이 있더라. 10여 년간 암으로만 두 차례 수술을 받았고, 췌장을 포함한 장기 5개를 제거한 상태다. 그럼에도 ‘미래를 바라보며 일을 계속할 수 있다는 것’, 그 자체만으로도 내게는 호사이며 럭셔리다.



COOPERATION  뮤지엄 산(0507-1430-9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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