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5월호

친애하는 중국 현대미술 작가에게, 울리 지그

울리 지그보다 중국과 중국 현대미술에 대해 잘 아는 사람이 또 있을까? 그가 오랫동안 모아온 중국 현대미술의 정수가 현재 송은에서 <울리 지그 중국현대미술 컬렉션전>으로 펼쳐지고 있다.

EDITOR 정송

울리 지그  1946년생으로 제조업과 벤처 캐피털, 외교와 예술, 저널리즘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분야에서 경력을 쌓았다. 40년이 훌쩍 넘는 시간 동안 중국과 폭넓은 교류를 하면서 경제·문화·예술적으로 지대한 영향을 미쳐왔다. 1970년대부터 현재까지 중국 예술의 흐름을 알 수 있는 작품 컬렉션을 형성하고, 그 가운데 1500여 점을 홍콩 M+ 뮤지엄에 기증했다. 현재 지그는 M+ 뮤지엄 위원회, 뉴욕 현대미술관(MoMA) 국제위원회 및 영국 테이트Tate의 국제자문위원회에 몸담고 있다.



3월 10일부터 5월 20일까지 송은에서 열리는 <울리 지그 중국현대미술 컬렉션전>이 한창이다. 이번 전시는 세계적인 컬렉터 울리 지그의 소장품으로 구성되었는데, 울리 지그 컬렉터는 그간 중국 현대미술 작가에 집중해 방대한 양의 컬렉션을 축적한 것으로 이름이 널리 알려진 인물이다. 중국 예술사에서 그가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는지는 2021년 겨울 개관한 아시아 최초의 글로벌 미술관이라 불리는 홍콩 M+ 뮤지엄에 기증한 작품의 면면만 봐도 알 수 있다. 30대부터 꾸준히 모아온 1500개가 넘는 작품을 미련 없이 M+ 컬렉션의 일부로 귀속시켰다. 모두가 대단하다고 손뼉 칠 때, 울리 지그는 “내가 할 수 있는 일이고, 해야만 하는 일이었다”라며 손사래를 쳤다. 그런 그가 이번 전시에는 기증 이후 새롭게 컬렉팅한 작품을 선보이며, 또 한 번 컬렉터로서 큰손을 자랑하고 있다. 전시 오픈을 기념하며 한국을 방문했을 때 그를 만나 들은 컬렉터로서 철학과 사유를 비롯해, 뉴비 컬렉터에게 건네는 따뜻한 조언을 전한다.


엘리베이터 회사인 쉰들러에 있을 때, 중국에서 일하며 컬렉팅을 시작했다고 들었다. 사실 애초에 관심이 없었다면 컬렉팅을 상상조차 할 수 없었을 것 같은데, 이전부터 예술 컬렉팅과 어떠한 접점이 있었는지 궁금하다.

어렸을 때는 예술과 문화를 보는 눈이 없었다. 스위스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예술에 관심이 많긴 하지만, 당시 나에게 작품이란 그저 ‘가구’에 불과했던 것 같다. 1960년대에는 현대미술 전시를 선보이는 갤러리가 스위스에도 많지 않았다. 예술에 큰돈이 들지도 않았고. 심지어 현재 지구상에서 가장 큰 미술 페어인 ‘아트 바젤’ 역시 1970년에 처음 개최하지 않았나. 내가 청년이었을 때, 그러니까 1960년대에는 현대미술이 천천히 수면 위로 떠오르는 시기였다. 이때 건축가 친구 중 미술에 관심이 많은 친구의 영향을 받아 예술에 점차 관심을 두게 됐다.


제일 처음 봤던 중국 예술을 기억하는가?

1979년 중국에 처음 발을 디뎠다. 그리고 1997년 9월 베이징 국립미술관 주변 울타리에 설치된 중국 최초라 할 수 있는 ‘현대적’ 미술 전시를 보게 됐다. 당시 현대미술은 미술관 내부에서 선보일 수 없을 정도로 사람들의 경계가 심했다. 유럽에서 온 나에게는 처음에 흥미가 덜했다. 내게 익숙했던 작품은 그때 본 것보다 100년은 앞선 것이었으니까.


그렇지만 결국 중국 현대미술을 컬렉팅하게 되었다. 컬렉팅할 때 작품을 보는 눈이나 취향 등은 어떻게 만들어나갈 수 있을까?

좋은 작품이든 나쁜 작품이든, 혹은 의미가 있든 없든 상관없이 많이 보는 것이 첫 번째로 할 일이다. 그러고 나서 신중하게 한 작품을 고른 다음 그 작품이 나의 삶을 어떻게 바꾸는지, 어떠한 방향으로 나를 인도할지 두고 봐야 한다. 시간이 흐른 뒤 여전히 내가 그 작품을 바라보고, 같은 마음으로 아끼는지 되돌아보는 것이 관건이다. 만약 ‘가구’처럼 집 안 어딘가에 그냥 걸려 있다면, 그 작품은 큰 의미가 없는 것이니 말이다. 이렇게 작품을 사고 바라보며 고민하는 일련의 행위를 반복하다 보면 작가와 작품을 비교할 수 있고, 나아가 나만의 단단한 취향을 만들 수 있다.


오랫동안 백과사전 급으로 중국 현대미술 작품을 모았다고 들었다. M+ 뮤지엄에 한 차례 컬렉션을 기증한 후 선보이는 송은에서의 전시 <울리 지그 중국현대미술 컬렉션전>에는 또 색다른 이야기가 있을 것 같다.

사람들이 이 컬렉션에 주목하기보다 중국 현대미술의 창조성과 깊이, 넓이를 보았으면 좋겠다는 마음이다. 이는 모든 것을 관통하는 나의 바람이다. 중국 현대미술이 많은 이에게 새롭게 느껴진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이번 전시는 3가지 주제로 구성했다. 첫 번째는 ‘순수 회화–추상을 향하여’로, 추상화와 이를 이끌어가는 힘에 대한 이야기를 다루고, 두 번째는 ‘몸–여성의 복수’란 주제 아래 여성과 여성성, 페미니즘을 소재로 작업하는 작가들을 소개한다. 마지막은 ‘재료에 관한 이야기들’로 문화의 일환으로 차용되는 자연에 대한 얘기를 담았다. 좀 더 자세히 설명하자면, 먼저 첫 번째 섹션의 주제인 ‘순수 회화에서 추상화로 향하는 과정’은 중국 현대미술이 현재 당면한 중요한 이슈 가운데 하나다. 전통에 뿌리를 두면서도 서양의 회화적 언어를 수용해 자기만의 독특한 작업으로 승화시키는 작가들이 인상적이다. 두 번째 섹션은 다소 도발적으로 읽힐 수 있겠다. 남성 중심의 사회에서 여성이 느끼는 불편함, 여자의 몸으로만 할 수 있는 퍼포먼스 등이 담겨 젠더 평등에 대한 여성의 갈망을 다룬다. 마지막 섹션은 전통적 소재인 ‘자연’이 과거부터 현재까지 그리고 분재부터 사진까지 다양한 매체에 어떻게 드러나는지를 살펴본다. 중국의 특수한 정치·사회적 상황 때문에 중국 예술에 갖는 편견이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이번 컬렉션을 두루 살펴본다면, 이들만이 가질 수 있는 작업 및 주제적 특징이 있음을 읽을 수 있을 것이다.


어떠한 점을 염두에 두고 작품을 수집했나?

기본적으로 백과사전적인 방법으로 컬렉팅에 접근하고 있지만, 모든 것을 소유할 수는 없다. 특정 시기 예술가의 진정한 관심사를 반영하는 작품과 그렇지 않은 작품을 판단해야 한다. 이때 이미 가지고 있는 컬렉션을 돌아보며 특정한 사유의 흐름과 형태가 있는지 살펴본다. 어떠한 컬렉션도 완벽하고 온전할 수 없다는 생각으로 임하고 있다. 주관적이며 개인적인 ‘공감’이 일어날 수밖에 없는데, 선택하는 과정에서 이를 통제하기 위해서는 최대한 투명하게 평가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허샹위의 ‘The Death of Marat’와 창킨화의 ‘The Second Seal - Every Being That Opposes Progress Should Be Food For You’의 설치 전경, Photo: CJY ART STUDIO, © SONGEUN Art and Cultural Foundation and the Artist. All rights reserved



당신에게 과연 작품을 ‘컬렉팅한다’는 것은 어떠한 의미일지 궁금하다.

개인적으로 컬렉팅은 ‘여행’이라고 생각한다. 새로운 기술과 AI, NFT 등과 같은 새로운 예술 수단에 대한 탐구이며 그 미지의 세계로 떠나는 여행이기도 하다. 나는 이를 통해 세상에서 일어나는 모든 새로운 주제를 들여다보고 있다.


진정한 컬렉터는 어떻게 될 수 있을까?

작품 수집을 이어오며 다양한 매체와 스타일의 작품, 작가를 만났다. 그러면서 편견 없이 모든 것을 수용하는 개방적인 마음을 갖게 된 것 같다. 개인적으로는 현실적이고 진실성을 가진 다큐멘터리 같은 작품보다는 작가만의 세계와 개성 있는 에너지를 내뿜는 작품에 더 관심이 간다. 사실 좋은 작품과 나쁜 작품을 구분하는 일은 어렵지 않기 때문에 모두 할 수 있다. 그렇지만 그중에서 최고의 작품을 골라내는 사람은 극소수일 뿐이다. 그들이 진정한 컬렉터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어떻게 그러한 수준에 도달할 수 있느냐고 묻는다면 2가지를 꼽을 수 있다. 먼저 호기심이다. 무의미한 예술에도 노출될 수 있어야 한다. 이는 경험으로 이어진다. 그러니 주저하지 않는 마음으로 많이 보러 다니는 것이 중요하다. 다른 하나는 직감 같은 개인의 특정한 재능과 감성이다. 이 부분은 취향을 기르듯 훈련을 통해서도 만들어질 수 있지만, 타고나는 것이 있기 때문에 개인마다 편차가 있을 수 있다.


평생 당신은 작품 컬렉팅을 멈추지 않을 것 같다. 최종적인 목표는?

지금까지 오랜 시간 컬렉팅을 해왔으니, 말처럼 한순간에 멈추기는 쉽지 않을 것 같다. 지금 모으고 있는 컬렉션이 어떻게 흘러가는지는 두고 봐야겠다. 올해 홍콩 M+ 뮤지엄에서 이전에 중국 현대미술상이던 ‘CCAA’를 ‘SIGG 프라이즈’로 재정비했고, 그 첫 수상자를 곧 발표할 예정이다. 또 중국 현대 예술 비평가를 위한 상 ‘아트 크리틱 어워드’도 제정해 수상자를 선정하고 있다. 중국 현대미술에 대한 나의 관심은 단순히 작품과 작가에만 머무르지 않고 비평을 비롯해 그 이상의 영역까지 뻗어가는 중이다. 작품을 수집하는 것은 중국 현대미술에 대한 나의 사랑을 표현하는 하나의 방식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PHOTOGRAPHER  안지섭  COORPERATION  송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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