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4월호

자연으로 지은 건축

‘탄소 배출량 제로’를 향한 다양한 분야의 노력이 가속화되고 있는 시기, 건축계에서도 인간과 환경에 피해를 최소화하는 결과물을 향한 고민이 이어지고 있다. 자연에 가까운 건축 재료를 사용하고, 기존 자재를 전혀 새롭게 재활용하며 ‘지속 가능한 건축’의 현재를 보여주는 세계의 건축물 8.

EDITOR 김수진


© Finbarr Fallon


역사적인 발전소의 변신, Dyson Global HQ

싱가포르의 역사적인 국가 기념물에 다이슨 글로벌 본사가 들어섰다. 100년의 역사를 간직한 세인트 제임스 발전소를 현대적이고 친환경적인 사무 공간으로 탈바꿈한 것. 변화하는 시대 속 새로운 근무 환경에 대한 각종 솔루션을 제공해온 글로벌 건축 및 인테리어 디자인 기업, M 모저 어소시에이츠M Moser Associates가 레노베이션을 맡아 기계 중심으로 설계된 약 10만m2, 총 4층 규모의 공간에 ‘지속 가능하고 인간 중심인 사무 환경’을 조성했다. 창의적인 업무에 영감을 줄 기능적인 공간을 위해 다양한 아이디어가 현실화됐는데, 특히 기존 건물의 중앙부인 터빈 홀Turbine Hall로 4개 층 전체가 연결되게 디자인한 부분이 눈에 띈다. 건물의 강철 빔, 기둥과 지붕의 녹을 벗겨내고 친환경, 무독성 페인트로 칠하는 작업을 거쳤으며, 다이슨의 탄소 중립 목표에 따라 건물 전체에 인간과 환경에 해가 되지 않는 건강한 소재를 적용했다.



© Silvia Lavit


자연을 닮은 에코 호텔, LILELO

와이너리와 숲으로 우거진 이탈리아 몬페라토Monferrato 중부 지역에 에코 호텔 ‘릴렐로’가 자리하고 있다. 경사진 땅 위로 견고하게 솟아오른 독창적인 삼각형 건물은 친환경 로지lodge와 주택 설계 영역에서 두각을 보여온 프랑스 파리 기반의 건축 디자인 사무소 아틀리에 라비트Atelier LAVIT에서 디자인했다. 전통적인 건초 더미에서 영감을 받아 스위트룸 3동과 공용 공간 1동을 포함하는 총 4개의 오두막을 지었는데, 각 동은 가로 6m, 세로 9m, 높이 5.5m의 아담한 사이즈지만 지속 가능성과 에너지 효율을 위한 각종 요소가 두루 적용되어 있다. 시간이 지날수록 목재에 풍부한 영양을 공급하는 천연 오일 처리를 한 낙엽송으로 건물 외관은 물론 내부 마감재, 가구 등을 제작했으며 지역 환경에 영향을 최소화하기 위해 사전에 조립해 건물을 옮기는 방식을 채택했다. 다른 재료를 더하지 않고도 목재와 유리만으로 벽과 하중을 지지할 수 있도록 A자 형태로 세심하게 디자인한 점도 눈에 띈다.



© HG Esch


독일 최대 규모의 하이브리드 목재 건물, DGE Suedkreuz Berlin Offices

‘EDGE 쥐트크로이츠 베를린 오피스’는 독일의 도시계획 거점 지역인 쥐트크로이츠에 2022년 들어선 건물로, 세계적인 건축사무소 트호반 포스 아르키텍텐Tchoban Voss Architekten의 최신작이다. 프로젝트 초반부터 탄소 배출을 최소화하고 건물을 경량화하는 데 초점을 맞춰 설계했으며, 목재와 콘크리트를 결합한 하이브리드 목재를 주재료로 사용하는 혁신적인 모듈 시스템을 적용해 친환경 건물을 완성했다. 벽, 천장 등의 목재 부분을 미리 제작한 후 현장에서 조립해 시공 과정에서 탄소 배출을 획기적으로 절감한 것이 특징. 차후에 건축자재를 재활용하거나 교체할 것에 대비해 해체 방식도 고려했는데, 건물 외관에 1m2당 30kg에 불과한 유리섬유 강화 콘크리트 패널을 균일하게 배치한 것이 그 결과다. 트호반 포스 아르키텍텐의 대표 건축가인 제르가이 트호반Sergei Tchoban은 “EDGE는 단순한 건축물을 넘어 지속 가능한 건축의 플래그십이자 선두 주자”라고 설명한다.



© Wanderskyy, Kevin Mirc, Bianca Blajovan, Nora Brown, Symbiosis Studio


대나무와 흙으로 지은 럭셔리 리조트, Ulaman Eco-Luxury Resort

다채로운 콘셉트의 고급 리조트가 가득한 인도네시아 발리에 지난해 문을 연 ‘울라만 에코 럭셔리 리조트’. 정글을 연상시키는 울창한 자연 속에 자리한 친환경 리조트로 대나무를 휘고 꺾고 이어 붙여 완성한 기하학적이고 독창적인 지붕이 시선을 사로잡는다. 흙, 자갈, 자연석, 재활용 목재 같은 천연 재료와 탄소 배출이 매우 낮으면서 가볍고 단열이 강한 복합 SIP 패널 등을 활용한 것이 특징. 지상과 맞닿은 곡선 벽은 모두 리조트 주변에서 채집 가능한 흙, 모래, 석회, 자갈 등을 혼합해 다져 만들었으며, 누에고치 모양의 출입문, 대나무 계단, 흙받기 형태의 로비 등 곳곳에서 발리의 자연을 만끽할 수 있다. 지속 가능한 건축 부문에 높은 점수를 부여하는 유네스코의 ‘베르사유 건축상Prix-Versailles’을 받았다.



© Kevin Scott Photography


섬 위에 뜬 조립식 주택, The Sail House

카리브해 윈드워드 제도에 위치한 섬나라 세인트빈센트 그레나딘Saint Vincent and the Grenadines의 작은 섬 베키아Bequia에 하얀 돛을 띄운 커다란 배 모양의 건물이 들어섰다. ‘세일 하우스’는 지속 가능한 디자인으로 유명한 미국 건축가 데이비드 허츠David Hertz가 디자인한 작품으로, 자연에 해를 입히지 않는 요소들을 집약해 설계했다. 건축자재를 조달하기 어렵고, 폐기물 처리도 쉽지 않은 섬 지역의 특성에 초점을 맞춰 건축에 필요한 모든 요소를 외부에서 먼저 제작한 후 운반해 조립하는 방식을 취했다. 마감재, 가구 등 건물을 이루는 모든 요소는 야자수, 코코넛 껍질 조각 같은 천연 재료와 보르네오섬의 버려진 부두에서 수집한 철재 등의 재활용 소재를 활용했다. 이 건물은 세계적인 건축상인 아키타이저 A+어워즈의 주거 및 사유 주택 부문에서 수상했다.



© Adrien Guitard


지역 환경을 200% 활용한 건물, Port Marianne Secondary School

미래의 주역들이 자라나는 곳이라는 점에서, 학교 건물은 어느 분야보다도 적극적으로 지속 가능한 건축의 다양한 요소를 수용해왔다. 올해 완공된 프랑스 몽펠리에의 ‘포르 마리안 세컨더리 스쿨’도 그중 하나. 포르투갈 리스본과 영국 런던을 기반으로 유럽에서 주로 활약 중인 젊은 건축가 그룹 A+아키텍처에서 설계를 맡아 저탄소 콘크리트와 다양한 목재, 바이오 기반 단열재 등을 활용해 친환경 학교를 완성했다. 파사드의 목재 패널은 학교가 위치한 주변부인 가르Gard 지역에서 수급한 전나무로 제작했으며, 목재 프레임 벽, 모듈러 나무로 지은 직원 숙소에는 세벤Cévennes 지역의 가문비나무를 활용했다. 양방향 순환이 가능한 구조로 설계한 교실, 나무 모듈을 집처럼 세운 중정, 여름에 그늘과 시원함을 제공하도록 보존된 나무 등 자연과의 공존을 위해 고민한 요소들이 곳곳에 녹아 있다. 모듈식 목재 시스템으로 건축해 공간을 확장, 재배치하거나 해체하고 이동하기에도 용이하다. 



© Travis Mark


뉴욕 최대의 목조건물, timber house

지난해, 브루클린에 뉴욕시 최대 규모의 목조건물이 등장했다. 유럽에 비해 뉴욕에서는 목조건축을 찾아보기 힘든데, 화재 위험 때문에 19세기부터 건축 자체를 금지해왔기 때문이다. 2010년부터 특별 심사를 거친 목재 사용을 허락하면서 규제를 완화했지만 까다로운 규정 탓에 시도하기가 쉽지 않았다. 이런 여러 난관을 뚫고 등장한 ‘팀버 하우스’는 총 6층 규모에 스튜디오부터 3 베드룸까지 다양한 형태의 14개 유닛을 갖춘 주거용 빌딩. 뉴욕 부동산 개발업체 브루클린 홈 컴퍼니The Brooklyn Home Company가 투자하고 로컬 건축 스튜디오 메시 아키텍처Mesh Architectures에서 디자인했다. 건물의 기둥, 보, 바닥 등은 모두 목재로 이루어져 있으며 안전을 위해 비상계단이 있는 부분은 콘크리트 벽돌로 마감했다.



© Rasmus Hjortshøj – COAST


나무와 짚을 품은 학교, Feldballe School

덴마크의 ‘펠드발레 스쿨’은 최근 확장을 시도하며 지속 가능한 건축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했다. 탄소 배출을 줄이는 것을 넘어 주변의 이산화탄소를 포집하는 건축물을 시도한 것. 미국 기술·경제 전문지 <패스트 컴퍼니Fast Company>가 발표한 ‘2023년 세계에서 가장 혁신적인 기업’ 리스트에 이름을 올린 코펜하겐 건축 디자인 스튜디오 헤닝 라르센Henning Larsen의 프로젝트로, 기후 위기에 따른 문제를 직면하게 될 다음 세대를 위한 건축물로 설계했다. 콘크리트, 벽돌, 철재의 대안으로 유독 물질이 없으며 화재에 대한 안전성과 절연 효과가 뛰어난 생분해성 재료를 건물 전반에 활용했고, 벼로 만든 패널과 목재 지붕, 해초로 제작한 환기 시스템 등 혁신적인 친환경 시스템을 다수 적용했다. 지속 가능한 건축의 무한한 잠재력을 보여주는 사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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