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2월호

나무에 새긴 서정, 우다 마사시

든든한 만듦새와 독특한 패턴이 새겨진 목공예품을 만드는 우다 마사시. 예술과 생활의 경계에 선 공예의 본질을 꿰뚫는 작가의 진면목은 바로 나무에 넌지시 새겨둔 진심에 있다.

EDITOR 이호준

우다 마사시ウダ マサシ 

1983년 아키타현에서 태어나 지바로 이주한 후 학창 시절을 보냈다. 지바현립 이치카와공업고교 인테리어과에 입학해 처음으로 가구와 디자인을 접한 우다 마사시는 디스플레이 디자인과 무대미술을 심화적으로 배우고 대도구 회사에 입사한다. 이후 지역 장인이 이끄는 특수 가구를 만드는 공방에서 근무한 후 2011년 가을, 스튜디오 모놈을 설립하며 독립 디자이너로 활동하고 있다.



우다 마사시는 테이블 웨어와 오브제 같은 나무 기물을 만드는 데 주력한다.


몇 해 전, 나무를 다루는 작가의 작업실을 방문한 적이 있다. 조용한 가운데 분주한 작업실 풍광도 인상적이었지만, 기억에 남은 건 따로 있다. 나무를 다루는 거친 손과 소재를 존중하는 태도 그리고 작품에 밴 애정의 흔적이 그곳에서의 시간을 잊지 못하게 만들었다. 소재를 깊이 이해한 뒤, 결 하나를 구현하고자 담아내는 치열한 노력과 열의는 작품의 가치를 드높이는 유일무이한 요소다. 일본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작가 우다 마사시는 이러한 점을 정확히 이해하고 있었다. 자연에서 안온한 삶을 즐기는 듯하지만, 작업의 순간만큼은 달라지는 그를 직간접적으로 마주하게 된다면 십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산업용 가구를 만들다 독립 스튜디오 모놈Monom을 설립한 그는 10년이 넘는 시간 동안 나무 공예에 할애했으며 자신이 다루는 소재인 나무를 깊이 이해하기 위해 여념 없이 달려왔다. 색을 입히고 다양한 패턴을 기물에 접목하는 작업은 물론, 우연적인 상황과 우발적 시도를 담아낸 결과물을 선보이는 데 이런 시간이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주었다.“제가 만든 작품은 다 달라요. 색도, 패턴도, 모양도 어느 하나 같은 것이 없어요. 손으로 만든 흔적이기도 하거니와 제가 새겨넣은 감정이 담겨 있기 때문이죠.”일본 각지에서 열리는 공예 전시는 물론, 작년 공예 숍 늬은Nuieun과의 전시로 활동의 저변을 넓힐 수 있었던 데에는 이 같은 시도가 서서히 빛을 발하고 있기 때문일 터. 우다 마사시와 나눈 대담 또한 그의 작품처럼 문장 하나하나에 저마다 감정이 서려 있었다.


나무 작업을 시작하게 된 계기가 흥미로웠어요.

친구의 부탁이 지금껏 이어져 왔다는 사소한 얘기가 우연을 운명으로 만든 것처럼 다가왔습니다. 가구 공방을 다닐 무렵, 친구가 테이블로 쓸 가구를 만들어달라고 부탁하더군요. 제 노력으로 타인에게 도움이 되는 기물을 제작하는 것이 묘한 성취감으로 다가왔습니다. 내 손과 땀으로 타인의 삶을 아름답고 윤택하게 만든다는 게 작은 빛을 내어주는 것처럼 여겨지더군요. 친구를 생각하며 나무를 자르고 결을 다듬으며 모양을 내는 시간내내 그 생각 하나로 작업했습니다. 그리고 느꼈죠. ‘내가 평생 할 수 있는 일이겠구나!’ 이후 12년이 흘렀습니다. 처음 독립할 때만 해도 무턱대고 차에 작품들을 싣고 다양한 공예 페어에 참여했어요. 무모했지만 잊지 못할 추억이죠.



평소에는 꽃과 나무를 기르며 안온한 삶을 즐기지만, 작업에 임하는 순간 누구보다 치열해진다.


이전에는 부피가 큰 가구를 다뤘지만, 독립 이후에는 테이블 웨어나 오브제 등 작은 기물 위주의 작업을 선보이고 있어요.

가구를 만드는 것도 매력적인 일이지만, 더 사소한 부분에서 제 손의 예술이 스며들 수 있으면 좋겠다 싶었어요. 부피가 큰 기물에서 얻는 행복도 좋지만, 사소해 보여도 더 깊이 생활에 관여하는 것에서 언뜻 아름답다는 생각이 든다면 늘 똑같은 매일, 쳇바퀴 같은 일상이 조금씩 아름다움으로 물들어갈 테니까요.


철이나 금속, 유리 같은 색다른 물성의 소재에도 관심이 갔을 법한데 꿋꿋하게 나무 외길을 걷고 계시지요.

나무는 아득한 옛날부터 인간 곁에 자리했습니다. 본능적으로 친근하게 느낄 수밖에 없죠. 식생활에 필요한 테이블웨어나, 커틀러리처럼요. 그로 인해 다른 물성에서는 쉬이 찾을 수 없는 온기를 지니고 있어요. 나무를 줄곧 다뤄온 가장 큰 이유입니다. 나무는 사용할수록 사용자의 습관이 묻어나며 변화해갑니다. 또, 호두 기름이나 참기름 등 천연 오일을 반복적으로 바르면 윤기는 물론, 독특한 감촉을 구현할 수 있어요. 어찌 보면 심플하지만 다르게 보면 남다른 깊이감을 가지고 있는 셈이죠.


현재 머무는 일본 사마타현의 치치부 지역은 열도 내에서도 아름다운 풍광을 자랑하는 곳으로 유명하더군요. 매일 목가적 풍경을 마주하는 감회가 남다를 것 같습니다. 숲이 우거져 있던데, 영감의 원천이 되기도 할 것 같아요.

치치부는 분지에 속하는 지역이에요. 숲속을 걷는 것만으로 많은 영감이 떠오릅니다. 마당에서 식물을 돌보면서도 떠오르는 것들이 많아요. 3년 전쯤부터 집과 작업실 사이에 자리한 안뜰에 식물을 심었거든요. 가장 큰 영감은 가족에게서 얻어요. 무엇보다 소중한 존재죠. 특히 아이가 무구한 감성으로 무심코 그리는 그림과 각종 창작 활동에서 많은 아이디어가 떠오르기도 합니다. 작업에는 어떤 나무를 주로 사용하나요? 일본에서 나는 벚나무나 호두나무, 밤나무를 주로 사용합니다. 단단할 뿐 아니라, 생활 도구를 만드는 만큼 물에도 강해야 하는데 세 나무 모두 이 조건을 충족하는 최적의 재료예요.


작품 전반에서 두드러지는 가장 큰 특징을 꼽으라면 다양한 패턴을 목공예에 도입한 점이라고 봅니다. 에스닉한 패턴이 있는가 하면, 민속적 인상을 주는 패턴까지 다채로워요. 많은 분이 작가님의 작품을 칭할 때면 “우발과 우연이 연속적으로 나타나고 있다”는 평가가 여기서 기인한 듯합니다.

도자나 유리에 비해 목공예는 비교적 패턴을 입히는 작업이 드물어요. 나무의 결을 살리면서 패턴을 조각하는 작업은 더욱더 많은 시간과 노력을 요합니다. 그렇지만 작업의 영역을 넓히기 위해 필수적인 선택이었어요. 아프리카 문화 속 민속적 디자인에 자주 등장하는 신화적이고 기하학적 성격을 지닌 문양에서 아이디어를 얻기도 하고, 미드센트리, 오리엔탈 텍스타일에서 발견할 수 있는 조직적인 패턴을 적용해보는 것도 즐깁니다. 단순한 패턴의 작품도 있는데, 이 경우에는 잠옷에서 자주 사용되는 반복적 패턴에서 모티프를 얻었습니다.



우연적이고 우발적인 형태와 다양한 민족문화에서 영감을 얻은 패턴으로 독특함을 더한 우다 마사시의 작품들.


옥을 활용한 남염藍染 접시 작업은 그중에서도 이색적입니다.

지인 중 남염 전문 작가가 있어요. 시험 삼아 민무늬 나무 다기를 염색해봤는데, 나무의 결에 따라 그러데이션하듯 층이 진 채로 색이 배어 오묘해지죠. ‘인디고’라 명명하는 이 작업은 제게도 인상적인 프로젝트 중 하나입니다. 잘 시도하지 않는 방법이기도 했고요.

다양한 변주를 시도하지만,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늘 한결같다고요. 

기물을 만들면서 소재의 원형을 다듬고 지금의 모양에 이르기까지 가졌던 마음가짐을 전달하고 싶었습니다. 의도적이고 우발적인 패턴과 형태를 즐기는 만큼, 조각하며 겪게 되는 여러 상황을 발견했을 때 감정과 경험의 잔상도 함께 전하고 싶었어요. 만드는 동안 제 심경이 변화하기도 하고요. 제가 느낀 바가 사용자에게 닿아 이윽고 그들의 감정과 교감한다면 제게도, 사용자에게도 더없이 소중한 기물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늘 카타르시스를 유발하는 기묘한 경험이죠.


공예 작업에 임하면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점이 있다면요?

공예는 예술과 생활의 경계를 넘나드는 장르입니다. 둘 중 어느 하나에 치우쳐선 안 되죠. 예술성을 극대화하기 위해 사용감이 불편하면 안 됩니다. 도구 역할에도 충실해야 한다는 뜻이에요. 아름다움과 실용성을 모두 충족할 수 있어야 좋은 공예품이 아닐까요. 비단 목공 작가만이 아닌, 모든 장르의 공예 작가들이 늘 고민해야 하는 부분이라고 봅니다.


나무 공예품을 오래도록 사용할 수 있는 노하우가 있나요?

사용한 후에는 세척하고 말리는 시간이 꼭 필요합니다. 빛과 바람이 안 드는 서랍에 두면 금방 부패하기 마련이에요. 쓰다 보면 나무가 말라 난감한 경우도 있는데, 식물성 기름을 골고루 도포하면 오래도록 윤기가 유지되고 소재 자체도 보다 단단해져 장기간 사용할 수 있습니다.


다음 행보가 궁금하네요. 한국에서의 전시 계획도 있을까요?

구마모토, 가나가와, 후쿠오카에서 열릴 전시를 차례로 준비 중입니다. 한국에서는 늬은과 두 번째 전시를 기획하고 있어요. 봄이 올 무렵예요. 아직은 생소할 테지만, 언젠가 이 독특한 기물을 만드는 사람의 작품으로 식사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많은 분들의 마음 한 구석에 남기를 바라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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