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2월호

입욕휴식入浴休息

추위로 인해 행동은 굼떠지고 몸은 움츠러드는 겨울, 따뜻한 욕조에 몸을 담그는 것에 비할 휴식이 또 있을까. 여기에 여행을 더하면 금상첨화다. 노천탕과 히노키 탕, 차 한잔과 위스키를 즐기며 고립과 사색을 즐길 수 있는 국내 숙소를 소개한다.

GUEST EDITOR 박지혜





ⓒ 김동규


서로재

강원도 고성의 작은 마을 삼포리 낮은 언덕에 외따로 위치한 ‘서로재’는 여러모로 화제가 된 프로젝트였다. 건축가인 건축주가 스스로 설계하지 않고 카인드 건축에 설계를 맡겨 완성했으며, ‘2022년 한국건축문화대상 신진건축사 최우수상’ 등 굵직한 상을 수상하며 그 건축적 성과를 인정받았다. 완성도에 더해 ‘휴식의 질’을 추구하는 이들에게도 서로재는 기꺼이 찾을 가치가 충분한 곳이다. 야트막하게 펼쳐지는 소나무 군락을 조망할 수 있도록 세심하게 설계한 숙소는 총 7개로, 모두 별채라 해도 좋을 만큼 독립성이 보장된다. 전 객실이 각각 개별 정원을 갖추고 있으며, 중정과 별채가 마련된 객실도 있다. 여기에 모든 객실이 강원도의 호젓한 분위기를 만끽할 수 있는 별도의 실내외 입욕 시설을 갖춰 휴식을 넘어 ‘명상’에 가까운 안식을 누릴 수 있다. seorojae.kr


“소나무가 있는 작은 마당을 가장 좋아한다. 아래에 수 공간이 있어 소나무의 그림자를 비추는데 그 광경에 한없는 평온함을 느낀다. 또 노을이 지는 시간이면 서향 빛이 소나무를 비추고 그 그림자가 콘크리트에 드리워지는데 그 모습도 정말 아름답다. 객실에 TV나 거울도 없는 만큼, 이곳을 찾는 이들이 자연의 소리와 풍경에 좀 더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을 보냈으면 좋겠다.” _ 카인드 건축 김우상·이대규 소장




ⓒ Jerrygrapher


서서일로

부산 영도구 청학동 골목에 자리한 ‘서서일로’는 일본식 여관인 ‘료칸’의 시설과 감성을 누릴 수 있는 숙소다. 방치되어 있던 오래된 가옥을 레노베이션해 지난해 9월에 문을 열었다. 디딤석이 깔린 마당에 들어서면, 은은하게 불을 밝히는 석등과 작은 연못, 청단풍 등으로 꾸민 일본식 정원 특유의 운치를 느낄 수 있다. ‘느리고 평안한 하루’를 콘셉트로 꾸민 공간인 만큼, 곳곳에 넉넉히 배치한 입욕 시설이 이곳의 최대 장점이다. 정원을 마주한 침실은 문 하나 사이로 야외 족욕탕과 연결되고, 마당에도 작은 야외 저쿠지가 마련돼 있다. 실내에 위치한 대규모 저쿠지는 많게는 4인 이상 동시에 입욕이 가능해 가족끼리 즐길 수 있는 온천욕에 대한 갈증을 말끔히 씻어준다. 작은 일본식 정원을 조망하며 즐기는 다실에서의 차 한잔 역시 서서일로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경험이다. @stay.seoseoilo


“오래된 기존 건물을 재건축할 수도 있었지만, ‘시간을 담는 공간’으로 만들기 위해서 보존하는 방식을 택했다. 특히 거실과 저쿠지는 일본에 온 듯한 느낌을 내려 했다. 나무를 많이 사용해 온기가 느껴지게 했고, 자연석을 이용해 인위적인 느낌 대신 자연스러움을 주고자 했다. 4명 정도의 가족이 한 번에 입욕 가능한 실내 저쿠지 역시 자연석으로 제작해 애정이 남다르다.” _ 십삼월디자인 윤규·신용호 대표




ⓒ 이병근


서리어

멀리 애월 바다와 앞으로 펼쳐지는 귤밭을 바라보는 곳에 자리 잡은 ‘서리어’는 사이트 선정에서부터 기획과 브랜딩까지 ‘사색’을 위한 장소로 사려 깊게 설계한 곳이다. ‘서리어’라는 이름 역시, “달이 서리어, 대화에 따뜻한 노을이 서리어”라는 윤동주 시인의 시구에서 따온 것이라고. 이처럼 서리어에서는 ‘사색’ 그리고 ‘휴식’을 위한 여러 겹의 레이어를 온전히 맛보아야 한다. 우선 공간은 본채와 별채, 야외 공간으로 구획된다. 중목 구조의 긴 본채 건물에 있는 긴 툇마루는 정원을 바라보며 사색할 수 있는 공간. 또한 내부 복도를 거쳐 이어지는 욕실과 침실에서는 밭과 바다를 동시에 조망할 수 있다. 외부 화로와 다이닝 공간이 있는 라운지 그리고 다실과 욕실이 이어지는 ‘별채’는 그야말로 ‘저녁의 사색’이 가능한 장소다. 다실 곁의 미닫이문을 열면 바로 이어지는 ‘노천탕’에서 달빛 아래 몸을 담그는 것이야말로 ‘서리어’에서 누릴 수 있는 사색의 절정이라 할 수 있다. stayfolio.com


"노을이 지는 시간에 입실하기를 추천한다. 지금처럼 낮고 깊은 해가 비추는 겨울철이면 5시 30분 이후에 입실해 넓은 창으로 들어오는 노을빛을 두 눈 가득 품을 수 있다. 침실과 다실에서 연결된 노천탕은 방해받지 않는 시간을 누릴 수 있게 해주는 좋은 장치다. 식스티세컨즈의 룸 스프레이와 ‘사루비아 다방’의 차, ‘카페 이면’의 커피까지, 노천탕과 함께 즐길 수 있는 다양한 아이템이 준비되어 있다.” _ 지랩 박중현 대표





취호가

‘취호가趣虎家’라는 호방한 이름의 이곳은 실제로 ‘호랑이’를 모티프로 지은 곳이다. 숙소가 위치한 강원도 평창 호명리는 과거 ‘호랑이가 우는 마을’이라는 기원이 있고, 숙소를 구상한 호스트 역시 이곳이 ‘호랑이의 기운’을 얻어 다시금 힘을 낼 수 있는 ‘치유의 공간’이 되기를 바랐다. 이렇게 완성된 취호가에서는 곳곳에서 다양한 호랑이 모티프를 맞닥뜨릴 수 있다. 리셉션 전면의 정원에서는 호랑이 석상이, 객실에서는 액운을 물리친다는 호랑이 그림이 게스트를 맞이하는 식. 입구에서 이어지는 디딤석은 2개의 길로 나뉘는데, 각각 ‘들숨’, ‘날숨’ 객실이다. 독립된 건물로 분리된 두 객실은 낮은 돌담으로 프라이버시를 보호하고 있으며, 캠핑 의자가 놓인 테라스 공간이 마련되어 있다. 계절이 한눈에 담기는 액자 같은 창을 낸 히노키 탕에서는 허브 볼을 비치해 편안한 휴식을 즐길 수 있으며, 신청자에 한해 호스트가 엄선한 ‘셀프 칵테일 키트 서비스’도 제공한다. chwihoga.com


“숙소 곳곳에 호랑이와 관련된 스토리텔링이 숨어 있다. 호랑이 석상이나 그림 등 모티프를 담기 위해 여러 작가들과 협업했고, 세면대도 호랑이의 이미지를 구현하기 위해 독특한 재질을 사용했다. 무엇보다 이곳은 건축주가 먼저 치유를 받기 위해 터를 잡은 곳인 만큼 방문객에게도 이를 전하고자 신경 썼다. 히노키 탕, 침실이나 침구류, 작은 어메니티까지 모든 것이 ‘치유의 목적’을 가지고 디자인한 것이니, 그 과정을 온전히 즐겼으면 한다.” _ 백에이어소시에이츠 안광일·박솔하 소장





휴가 스테이

답답한 가슴을 뚫어주는 듯한 시원한 오션 뷰와 입욕, 이 2가지를 모두 중요한 숙박의 조건으로 생각하고 있다면 ‘휴가 스테이’는 그 최적의 답이 될 수 있다. 부산 해운대구 송정해수욕장의 끄트머리에 호젓하게 자리한 이곳은 ‘여름’과 ‘바다’라는 단 2개의 객실로 이뤄져 있다. 총 4층 규모로, 2층과 3층이 각각 한 객실에 오롯이 할애되는 만큼 넓은 공간이 특징이다. ‘겨울룸’은 달항아리와 히노키 탕, 다다미방, 장식석을 비추는 곡선의 거울까지 모든 장식과 기능을 동양의 ‘젠zen’ 미학을 만끽할 수 있는 차분하고 명상적인 분위기로 꾸몄다. 시원한 바다를 조망할 수 있도록 마련한 히노키 탕과 건식 사우나 시설은 어느 호텔에서도 쉬이 누리기 힘든 호사의 극치라 할 만하다. 화이트 톤의 모던한 분위기로 꾸민 ‘여름룸’은 개방할 수 있는 통창 옆으로 2.5m 길이의 인피니티 풀을 마련해 어린이를 동반한 여름 여행에 더욱 추천할 만하다. hew-ga.com


“모든 부분에 최고급 사양을 선택하고자 노력했다. 겨울룸의 욕조 같은 경우는 캐나다산 적삼나무를 사용했고, 사우나실에도 절단면이 없는 통히노키 나무를 사용해 좋은 성분들이 그대로 우러나오도록 했다. 대중탕이나 가족탕이 점점 사라지고 있는 만큼 이곳에서는 가족들이 함께 오붓하게 좋은 뷰를 보면서 휴식을 취할 수 있도록 하는 게 가장 큰 목표였다.” _ 베이몬드 건설 한기운 대표



ⓒ 이병근

스테이 오묘

제주 한림읍 금악리에 올해 초 문을 연 ‘스테이 오묘’는 ‘와온’, ‘눈먼고래’ ‘잔월’ 등 고유한 아이덴티티를 지닌 숙박 공간을 설계해온 ‘지랩’의 최근 프로젝트다. 단풍나무가 있는 정원, 시간을 품은 우직한 돌 창고는 세심한 손길을 거쳐 완전히 새로운 공간으로 탈바꿈했다. 조도를 한껏 낮춘 라운지 동은 휴식을 위한 소파와 아날로그 음악을 즐길 수 있는 LP 플레이어, 다양한 술을 즐길 수 있도록 구비된 술잔 등 ‘오감’을 열어주는 감각적인 요소들로 가득하다. 천장의 빛이 그대로 떨어지도록 설계한 중앙의 욕조 공간이 그 백미. 숙소 동에는 블렌디드 티를 즐길 수 있는 공간과 금오름을 마주할 수 있는 침실이 마련되어 있다. 뒤편으로 연결된 이끼 정원을 지나면 잔잔한 능선의 금오름과 눈을 맞출 수 있는 노천탕도 만날 수 있다. 바로 옆 작은 사우나 시설을 마련해 더 편리한 입욕을 즐길 수 있도록 한 세심함이 돋보인다. stayfolio.com


“1960~1970년대에 지어 개량한 제주 돌집이 기존 건물이었고, 다른 한 채는 돌 창고로 사용한 곳이었다. 전통 돌집과 다르게 서까래가 없어 트러스로 지붕 구조를 보강하고, 돌벽은 시멘트로 메워 강도를 보강했다. 기존 건물과 어우러지게 재료의 톤을 설정하고 구조미를 살리기 위해 고민했다. 야외 욕조의 경우 금오름 뷰를 잘 감상할 수 있도록 했다. 노을을 받아 아름다운 형상을 만들어내는 금오름의 풍경을 꼭 경험해보길 바란다.” _ 지랩 노경록 대표



COOPERATION  스테이폴리오(서리어, 스테이 오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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