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1월호

150년 역사를 넘어

에스.티. 듀퐁 CEO 알랑 크레베Alain Crevet는 2023년부터 시작될 리브랜딩에 자신감을 보였다. 
그는 정신없이 변하는 트렌드에 일일이 반응하는 대신, 브랜드의 시작점으로 돌아가는 것이 목표라고 말했다.

GUEST EDITOR 이기원 PHOTOGRAPHER 이경옥

알랑 크레베 P&G 그룹의 뷰티와 스킨케어 상품의 유럽 마케팅 매니저로 커리어를 시작했다. 이후 LVMH 그룹으로 이직해 지방시 향수 부문의 책임자로 일했고, 2007년 에스.티. 듀퐁의 CEO로 취임해 현재까지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 CEO이기 이전에 이미 몇 장의 앨범을 출시한 뮤지션이기도 하다.


인터뷰 직전에 시가를 피고 오는 것을 봤다. 시가를 좋아하나? 시가의 매력은 무엇인가? 내가 프랑스인이기 때문이겠지만(웃음) 시가를 입에 문다는 건 와인을 마시는 것과 비슷하다. 향과 맛을 음미할 수 있다는 점에서 말이다. 시가와 담배는 다르다. 담배는 빠른 시간 내에 소비해야 하기 때문에 가끔은 노동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시가는 인생을 느긋하게 즐기는 행위에 가깝다. 시가에 와인을 곁들여 친구들과 대화를 나누는 건 나에게 굉장히 중요한 일이다. 파리에서 뮤지션으로 밴드 활동도 한다고 들었다. 좀 더 자세한 이야기를 들려줄 수 있나? 일종의 직장인 밴드라고 할 수 있다. 밴드 이름은 ‘매니저Managers’인데(웃음) 함께하는 친구들이 전부 나처럼 여러 기업의 경영진으로 일하고 있다. 나는 밴드에서 기타와 보컬을 맡고 있고 틈날 때마다 멤버들끼리 모여 합주를 하곤 한다. 한때는 자작곡을 만들기도 했지만 요즘은 주로 비틀스의 음악 같은 대중적인 커버곡을 연주하거나, 에디트 피아프 같은 샹송 가수들의 곡을 록 버전으로 편곡해 부르곤 한다. 어릴 때는 펑크 록을 좋아해 뮤지션을 꿈꿨지만 재능이 부족하다는 걸 일찍 깨달았다. 당신이 듀퐁의 CEO가 된 2007년, 듀퐁은 심각한 재정난을 겪고 있었다. 힘든 여정이 예상되어 있었는데 CEO직을 수락한 이유는 무엇인가? 듀퐁에 오기 전, 지방시 코스메틱의 향수 부문 책임자로 일하고 있었다. 재미도 있고, 실적도 좋았지만 뭔가 지루함을 느꼈다. 마침 한 파티에서 듀퐁의 오너인 딕슨 푼Dickson Poon을 만났는데, 그에게서 CEO 직을 제안받았다. 그 순간 뭔가 운명적인 느낌을 받았다. 내가 대학에 입학할 때 아버지가 주신 선물이 듀퐁 라이터였기 때문이다. 집안의 아버지와 할아버지 모두 시가를 좋아하셨는데, 아버지가 듀퐁 라이터를 선물로 주시면서 “이제 너도 이 자리에 낄 수 있다”라고 말씀하셨던 게 기억난다. CEO가 된 이후에는 듀퐁의 비효율적인 사업을 축소하고, 주력 상품인 펜과 라이터에 집중했다. 선택과 집중이 좋은 성과를 낳았다. 하지만 최근에는 흡연자도, 만년필과 슈트를 좋아하는 사람도 조금씩 줄어들고 있다. CEO로서 조바심을 느끼진 않나? 전혀. 트렌드는 돌고 도는 것이다. 예컨대 흡연자가 줄어들고 있는 건 사실이다. 하지만 정작 우리의 라이터 판매는 전혀 축소되지 않았다. 한국을 비롯해 모든 국가에서 많은 라이터가 판매됐다. 젊은 고객을 중심으로 가치 있는 소비에 대한 선호도가 높아졌기 때문이다. 시가 판매도 가파르게 성장했다. 일반 담배의 흡연자가 듀퐁 라이터를 사는 건 부담될 수 있지만, 고가의 시가를 피는 이들에게 듀퐁 라이터는 상대적으로 부담이 적다. 필기구도 마찬가지다. 태블릿용 전자 펜을 사용하는 젊은이들이 늘었지만, 그 반대의 경우도 늘고 있다. 고가의 만년필 혹은 펜을 사용하는 것 자체가 특별한 경험으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완전히 사라진 것 같던 댄디 스타일이 돌아올 조짐을 보이는 것도 마찬가지다. 듀퐁은 2023~2024년에 걸쳐 리브랜딩을 계획하고 있다. 리브랜딩의 핵심 키워드를 간단히 설명해줄 수 있나? 우리 변화의 핵심을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근본으로 돌아가겠다’는 것이다. 예컨대 오래전에 에르메스가 사용했던 좋은 광고 카피가 있다. “Everything changes but nothing changes(모든 건 변하지만 또 한편으로 아무것도 변하지 않는다).” 트렌드는 늘 변하지만 트렌드만 좇아서는 안 된다. 브랜드의 철학은 유지해야 한다는 것이다. 지금 듀퐁의 가장 큰 매출은 라이터에서 생기고 있는 것이 사실이지만, 150년 듀퐁의 역사에서 라이터가 등장한 것은 불과 80년 전이다. 듀퐁의 시작은 럭셔리한 여행 가방을 주문 제작으로만 만드는 것이었고, 주 고객층도 여성이었다. 우리는 그 시작점으로 돌아가고자 한다. 리브랜딩의 핵심이 되는 아이템은 무엇인가? 가죽 제품군이다. 가죽 제품은 여행용 가방과도 관련이 있고, 남성뿐만 아니라 여성도 만족시킬 수 있다. 실제로 선보이는 건 2023년 말 정도가 될 것 같다. 경쟁 상대로 빅 패션 하우스들을 겨냥하고 있다는 것까지만 말하겠다.



듀퐁의 첫 번째 매장이 탄생했던 의미 있는 장소를 기념한 ‘호텔 파티큘리에’ 컬렉션. 2개의 라이터와 하나의 펜으로 구성했다.


2022년은 듀퐁이 창립 150주년을 맞은 해다. 특별한 이벤트를 열었다고 들었다. 듀퐁의 아이코닉한 빈티지 제품 150여 개를 초창기 여행 가방에 넣은 형태로 전시하는 로드쇼를 개최했다. 한국에서도 내년 초에 선보일 예정이다. 어떤 제품들인가? 우선 ‘호텔 파티큘리에Hotel Particulier’ 컬렉션이 있다. 호텔 파티큘리에는 듀퐁의 첫 번째 매장이 생긴 곳으로 가죽부터 귀금속까지 듀퐁과 관련된 모든 공예품을 전시했던 곳이다. 이를 기념해 2개의 라이터와 하나의 펜으로 구성한 패키지다. ‘골든 아워Golden Hour’라는 컬렉션도 있다. 듀퐁의 창립자 시몽 티소 듀퐁과 까르띠에의 창립자 루이 프랑수아 까르띠에는 절친한 사이였고 서로 영향을 주고받았다. 이를 기념한 골든 아워 컬렉션은 까르띠에의 시그니처 중 하나인 ‘트리니티 링’과 닮았다. ‘트리니티 링’ 고유의 3가지 골드 컬러를 팔라듐, 옐로 골드, 핑크 골드로 재해석해 라이터와 펜에 적용했다. ‘몬테크리스토Montecristo’ 컬렉션은 세계적인 프리미엄 시가 브랜드의 이름이자, 알렉상드르 뒤마의 유명 소설이기도 한 <몬테크리스토 백작>에서 영감을 얻었다. 라이터와 만년필, 시가 커터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새해 첫날 계획은? 스페인 로레알에서 일하는 큰딸이 휴가를 내고 파리에 오기로 했다. 파리에 있는 두 아들도 함께 모여 파티를 즐길 것이다. 아이들이 스키 타는 걸 좋아하기 때문에 알프스 인근의 파베르주Faverges에 갈 계획이다. 마침 파베르주는 듀퐁의 생산 공장(아틀리에)이 모여있는 곳이기도 하다. 일과 휴식이 공존하는 첫날이 될 것 같다.



COOPERATION 에스.티. 듀퐁(2106 35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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